착한 식당, 착한 경영

마진 적어도 ‘진짜’를 파는 감동. 착한 식당엔 착한 경영이 있다

220호 (2017년 3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 도가니탕 집들에 정작 도가니는 없었다. 손질을 하고 나면 재료가 얼마 남지 않는 도가니 대신 대부분 식당들이 스지(힘줄)를 선택한 것이었다. ‘도가니탕에 도가니를 쓰지 않는 것은 손님들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고집을 지키며 도가니만 사용한 착한 식당은 오히려 적자 속에 도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방송을 통해 ‘진짜 도가니탕’을 팔아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착한 식당은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손님들은 도가니탕의 맛이 아니라 도가니탕 한 그릇에 담긴 이 식당의 원칙과 경영철학에 감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편집자주

많은 식당들이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더 자극적인 맛으로 손님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려고, 더 쉽고 빠르게 음식을 만들려고 재료를 은근슬쩍 바꿔치기하거나 적절치 않은 첨가물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는 외롭게 손님과의 약속을 지켜온 ‘착한 식당’들도 있습니다. ‘먹거리 X파일’의 진행자로 착한 식당과 그 경영자들을 만나온 김진 기자가 착한 식당에서 만난 ‘착한 경영’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손해를 감수해가며 음식을 팔아온 착한 도가니탕 집

소의 무릎 뼈를 흔히 ‘도가니’라고 부른다. 무릎 뼈에 붙어 있는 연골과 살코기에서 우러난 특유의 고소함과 담백함, 그 영양가와 든든함은 도가니탕만이 가진 매력이다. 그런데 참 애석하게도 서울의 수십 년 된 유명 도가니탕 집들 대다수는 하나같이 ‘가짜 도가니’를 사용해왔다. 이들이 도가니 대신 ‘스지’라고 불리는 소의 힘줄로 가짜 도가니탕을 끓여왔다는 사실에 많은 소비자들을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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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가짜 도가니탕 케이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일단 스지가 도가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할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도가니와 가짜 도가니(스지)의 가격은 엇비슷하다. 그렇다면 왜 진짜 도가니를 안 쓰고 힘줄로 가짜 도가니탕을 끓여서 판매해온 걸까.

비밀은 삶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재료의 비중, 한마디로 ‘로스(loss) 비율’ 차이에 있다. 스지는 조리 과정에서 양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많은 고기가 나온다. 반면 도가니는 같은 중량이라고 해도 무릎 뼈에 붙어 있는 살코기 자체가 적기 때문에 손질을 하고 나면 정작 먹을 수 있는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도가니의 로스 비율이 훨씬 높은 셈이다. 이 때문에 식당들은 더 많은 양을 만들어낼 수 있는 스지를 선택해 온 것이다.

식당을 경영하는 오너라면 이 같은 조건에서 어떤 경영 판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할까. 30년 전통 도가니탕 집도 30년간 스지를 사용해왔으니 소비자들이 가짜 도가니의 맛을 구분해 낼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스지라는 부위가 사람이 못 먹을 부위도 아니고, 나름 적당히 맛도 있는 식재료다. 그렇게까지 부도덕한 행위도 아닐뿐더러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고, 소비자들이 알아챌 가능성도 낮은 것 아닌가.

게다가 진짜 도가니만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로스 비율이 높고 마진이 적은 진짜 도가니만을 사용하다보면 영업이 잘되거나, 안 되거나 경쟁 업체에 비해 항상 영업이익이 적다. 급기야 적자를 기록할 때도 찾아올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짜를 쓰는 집보다 ‘진짜’를 쓰는 집이 더 큰 경영상 고민에 빠져들었다. 필자가 찾은 도가니탕 편 ‘착한 식당’의 주인공 역시 식당을 계속 경영해야 하느냐는 선택의 기로에까지 몰리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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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장부상의 회계 숫자들로만 보면 착한 도가니탕 집이 경영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단 두 가지였다. 눈 딱 감고 다른 집처럼 스지를 사용하는 방법. 또 하나는 가게 문을 닫는 방법이었다. 진짜 도가니를 고집하면서 그로 인한 손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은 없어보였다.



그런데 착한 도가니탕 집은 숫자로는 증명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에 경영의 명운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스지 고기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진짜 도가니의 맛. 비록 고기의 양은 적지만 진짜 도가니에 붙어 있는 극소량의 살코기라는 ‘희소한 가치’와 품질을 세일즈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스지는 소 한 마리 중 앞다리 4군데, 뒷다리 4군데 총 8군데서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도가니는 뒷다리 양쪽 골반 부분 2군데만 존재한다. 소 한 마리에서 딱 2군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부위다.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스지보다 희소성 있는 귀한 도가니의 가치를 소비자들이 알아봐주길 기다렸다.



소비자들을 감동시킨 고집

사실 필자에게 진짜 도가니로 만든 착한 도가니탕의 맛은 ‘당혹스런 맛’이었다. 싱거운 듯하면서도 담담한 국물 맛. 첫맛은 솔직히 ‘뭔가 빠진 듯한 맛’이었다. 마치 심심한 평양냉면을 처음 맛봤을 때 느꼈던 기분 같았다. 그간 스지의 맛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화학조미료로 국물을 낸 스지탕만 먹어보다가 조미료 없이 진짜 도가니로 우려낸 국물을 맛보니 혀가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짜 도가니의 힘은 두 번, 세 번 맛 봤을 때 찾아왔다. 조미료의 맛을 걷어낸 국물 속에는 도가니 뼈와 고기에서 우러나온 특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 담백함이 있었다. 맛을 보면 볼수록 개운하면서도 든든한,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뭐하나 부족함 없는 뼈 국물의 매력이 느껴졌다. 고기 맛이 좋은 건 두말할 필요 없었다.

이 식당은 20년 지기 친구 둘이 의기투합해서 차린 식당이다. 한 명은 버젓한 게임업체를 운영하던 경영자였고, 다른 한 명 역시 학원 사업을 하던 독특한 경력을 지녔다. 평소 도가니탕을 좋아하던 두 사람이 2013년 채널A ‘먹거리 X파일’의 ‘도가니탕의 진실’ 편을 보다가 ‘제대로 된 도가니탕을 만들어서 파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우리가 한번 제대로 된 식당을 차려보자’고 뛰어든 것이 이 식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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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두 명의 사장은 경쟁업체에 비해 현저히 적은 마진을 남기면서도 진짜 도가니를 쓰는 원칙을 버릴 수 없었다. 남들처럼 스지로 만든 가짜를 만들어 팔 바엔 식당을 접는 것이 낫다는 원칙이 이 식당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힘이었다. 잘나가던 사업체를 접고 제대로 된 식당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현저히 적은 마진을 견디며 착한 음식을 만들었는데도 ‘자극적인 맛이 빠졌다’는 이유로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현실은 정말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수년의 시간 동안 이런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며 소비자들을 설득했고 진심은 결국 통했다. 이 식당을 찾는 손님들 중에는 유독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엄마들이나 노부모를 모시고온 자식들이 많다. 몸에 건강한 음식은 결국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보는 법이다. 비록 시간은 걸렸지만 정성이 담긴 도가니탕의 맛을 알리기 위해 추가적인 마케팅 비용은 필요치 않았다.

경영 적자를 견디면서도 ‘도가니탕에는 도가니만을 쓰는 것이 손님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라는 고집을 지켜온 착한 식당.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제 이곳엔 벌 떼처럼 손님들이 모여들고 있다. 전국에 있는 그 어떤 도가니탕 집보다 더 많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넉넉히 준비한 도가니탕의 재고가 불과 오후 2시에 동이 나서 가게를 일찍 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진짜 도가니탕의 깊은 맛도 한몫했겠지만 오너의 경영 철학에 시장이 화답한 셈이다. 착한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도가니탕뿐만 아니라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맛보았다. 비록 작은 도가니탕 한 그릇이지만 대부분의 식당들이 스지로 소비자를 속이는 시장 환경에서 꿋꿋이 진짜 도가니를 써온 착한 식당의 철학과 가치가 더해져 소비자들은 기꺼이 기분 좋게 돈을 지불한다. 많은 손님들이 지불한 돈은 ‘착한 도가니탕’에 쓰여 결국 손님들에게 돌아가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이다. 당장의 손해를 피하려고 손님을 속이는 업주와 찝찝한 마음으로 돈을 내던 손님의 모습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수년간 전국 각지에 숨어 있는 착한 식당을 찾으며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착한 식당은 단순히 좋은 음식을 착하게 조리하는 식당이 아니라 분명한 경영 원칙과 음식 철학을 갖춘 곳이라는 사실이다. 소비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음식의 맛이 아니라 착한 식당의 경영 철학이었다. 현대사회의 소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 착한 식당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착한 경영’이다.



김진 채널A 기자·앵커 Holyjjin@donga.com

필자는 2010년 동아일보에 입사, 채널A 개국 이후 방송기자 및 앵커로 활약하고 있다.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왔으며 2014년부터 ‘먹거리 X파일’의 진행을 맡아 착한 식당들을 발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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