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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결정 다시보기

"필요한 이에게 약을 제공하는 회사"GSK, 진정성이 위기보다 강하다.

이동진 | 207호 (2016년 8월 lssue 2)

“필요한 이에게 약을 제공하는 회사

GSK, 진정성이 위기보다 강했다

 

Article at a Glance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에이즈 퇴치를 위해 복제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매했다.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은 즉각 특허 침해에 따른 소송을 제기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특허를 침해 받은 쪽이 유리하지만 상황은 반대였다. 제약회사가 환자 치료 대신 경제논리만 따진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GSK는 윤리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GSK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가격 차별화 전략을 통해 저개발 국가에 보급하는 약과 백신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세계백신면역연합 등의 기관과 활발하게 협업을 추진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GSK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시장에서 리더가 될 수 있었다.

 

편집자주

지금은 분명해 보이는 것도 시간을 되돌려 고민하던 때로 돌아가면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시간 차이가 주는 묘미입니다. 흥미로운 기업 사례들을 선정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의사결정을 되짚어봤습니다. 전략적 선택의 순간에 놓였던 기업들의 과거 결정과 현재의 결과를 대비해 시간 차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행착오와 배울 점을 분석했습니다. 연재하는 사례들이 전략적 의사결정 연습을 위한 충실한 해설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 원고는 저서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미래의창, 2014)>의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현황이 덧붙여져 작성됐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과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막은 장군. 둘 중에 누가 더 영웅일까? 영웅으로 칭송받는 건 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 것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유지하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이더라도, 사람들은 전쟁을 막은 장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후 처리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사전 예방에 대한 보상이 적다는 뜻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목을 받은 책 <블랙스완>에서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언급하는 아이러니다.

 

그의 말처럼 사전 예방은 중요하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을 미리 막는 건 장려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무리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사고는 터지기 마련이다. 모든 일에서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고가 발생해 위기에 빠졌다면 해야 할 일은 사고를 수습하고 위기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하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발생한 문제가 생명과 직결돼 있을 때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최근 영국계 생활용품 회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철저한 사전 검증과 안전 규정 준수를 통해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유해성을 지닌 제품을 출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건 사고가 발생한 후에 사과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제품을 판매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으로서 윤리성보다 경제성을 앞세운 결과다.

 

물론 논란이 되는 제품들은 사라져야 하지만 윤리적으로 타격을 입은 기업이 회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글로벌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이하 GSK)의 사례는 힌트를 던져준다. GSK도 한때 윤리적인 비난을 받았지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글로벌 제약회사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했다. GSK는 약 자체가 아니라 약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GSK의 딜레마

 

GSK의 주력 상품은 감기약이나 소화제처럼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이 아니다. 종양, 에이즈 등과 같이 치료가 어려운 질병들에 대한 의약품에서 대부분의 이익이 발생한다. 특히 GSK는 에이즈 관련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에이즈 관련 연구와 치료, 의약품 생산에서 전 세계 4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다. 에이즈 같은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력과 전체 시장의 절반을 지배할 정도의 강력한 판매력을 가지고 있어 GSK는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특수성이 GSK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심각한 질병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환자는 대부분 저개발 국가에 몰려 있다. 수요는 충분하지만 문제는 구매력이 있는 수요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이즈를 놓고 보면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는 약 4000만 명인데 이 중 70% 이상이 아프리카 지역에 분포해 있다. 에이즈 치료를 위해서는 보통 연간 2만 달러( 24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선진국에 사는 환자에게도 버거운 비용을 저개발 국가에 사는 환자가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저개발 국가에서는 다양한 후원 등을 통해 연간 500달러( 60만 원)에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소득이 겨우 300달러( 36만 원) 남짓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아픔을 완화시켜줄 약값은 배고픔을 달래줄 빵 값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치료를 하지 못한 감염자들은 병을 옮기거나 사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GSK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에이즈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한다. 저개발 국가의 에이즈 감염자들은 에이즈 자체가 아니라 특허법에 기대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글로벌 제약회사들로 인해 자신들이 병들어 간다고 주장한다. 특허를 받은 약값이 그들이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로 비싸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GSK 입장에서도 무턱대고 가격을 낮출 수는 없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을 따르자니 환자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윤리적 관점을 따르자니 주주들의 압박이 거세진다.

 

이 와중에 GSK의 딜레마가 표면화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에이즈 퇴치를 위해 값싼 복제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매한 것이다. GSK는 특허 침해에 따른 소송을 제기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특허를 침해받은 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GSK의 경우는 반대였다. 비난 여론이 쏟아지며 GSK는 윤리성에 타격을 입었다. ‘에이즈 퇴치라는 절대선 앞에서 그 어떤 경제 논리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GSK는 소송을 철회했다.

 

‘약을 추가로 생산하는 데 드는 원가는 크지 않을 테니 약값을 낮추면 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약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한다면 GSK의 시름을 공감할 수 있다.

 

제약회사가 사는 법

 

비틀즈가 저작권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얼마일까? 7년 정도 활동하고, 해체 후에는 40여 년 동안 공연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음에도 비틀즈는 저작권료 수입으로만 약 18조 원을 벌었다. 원곡뿐만 아니라 리메이크, 컴필레이션 앨범 등으로 비틀즈의 음악이 꾸준하게 재생산되며 저작권료가 화수분처럼 들어왔기 때문이다. 음악의 지적재산권 보호기간이 사후 70년까지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저작권료 수입은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틀즈의 사례는 지적재산권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적재산권의 형태로 독점적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국가를 막론하고 시장경제에서는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지적재산권의 경우 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시장 경제 논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이윤 독점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시장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보통 창작의 영역, 혁신의 영역 등에서 독점이 허용된다. 저작권을 통해 70년 이상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창작의 고통을 극복하게 하고, 특허권으로 20년 동안 이윤을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특허권 중에서 권리를 짧게 보장받는 분야가 제약산업이다. 특허권은 최대 20년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제약 분야의 경우는 사회적 선의 추구라는 명목 아래 10∼12년으로 특허 기간이 제한된다. 보호 기간이 끝나면 제조 방법을 공개해야 하고 특허가 만료된 약에 대해서는 다른 제약회사들이 각자의 브랜드로 동일한 효능의 약을 생산할 수 있다. 특허가 만료된 경우 약을 처음 개발한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이익이 감소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10년이라는 시간이면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신약 개발을 위해 투자되는 비용과 노력, 리스크 등을 감안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세상에 없던 약을 개발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최소 1만 번 이상의 실험을 거쳐야 한다. 개발된 5000개의 약 가운데 하나만이 시장에서 판매되며 그중에서도 약 30%만이 상업적으로 성공한다. 성공 확률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개발 기간과 투자 금액을 고려하면 제약회사들이 왜 신약 개발을 주저하는지, 혹은 정부가 왜 특허권을 인정함으로써 초과 이윤을 보장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신약 개발 과정은 평균적으로 13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투자비용도 평균 4000∼8000억 원 정도로 높은 편이다. 바늘구멍을 뚫고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매몰비용 때문에 회생이 어려울 수도 있다. 고객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개발하는 약이 제약회사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셈이다.

 

제약회사는 정부가 특허권을 통해 신약 개발에 따른 초과 이윤을 보장해주는 10∼12년간 신약 개발을 위해 투자한 막대한 금액을 회수하고 초과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최적의 전략을 세우고 시장과 고객을 찾아야 한다. GSK의 딜레마는 이런 이유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신약을 개발했으니 보상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생명과 직결돼 있으니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GSK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송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차원에서 아프리카에 의약품 지원을 결정한다.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는 김에 적극적으로 일을 벌이기로 했다. 경제성과 윤리성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앞이 깜깜해 보이는 길을 나선 GSK는 어떻게 이를 개척해왔을까.

 

 

선순환 구조가 지속가능함을 만든다

 

1. 가격 차별화를 통해 약값을 현실화

GSK는 저개발 국가에 에이즈 퇴치 약을 무상으로 보급하지 않았다. 당장의 이미지 회복과 인기를 위해서는 무료로 보급하는 것이 더 낫겠지만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가격 차별화 전략을 통해 저개발 국가에 보급하는 약과 백신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생산원가를 확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국민소득 수준에 맞춰 약값을 조정했다. GSK는 아예 2009년 공식적인 선언을 통해 이 정책을 더욱 공고히 한다. GSK는 자사가 특허권을 가진 약을 아프리카 대륙에 헐값에 팔기로 선언한 것이다. 영국 판매가의 25%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최고 가격 제한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저개발 국가에서 이미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던 약들은 최대 45% 더 할인됐다.

 

국민 소득 수준에 맞춰 가격 차별화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윈-(win-win) 전략이자 지속가능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격 차별화 전략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했다. 일단 첫째는 시장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 국가별, 성별, 연령별 등 가격 차별을 할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구입한 물건을 다른 곳에 되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시장에 혼란이 발생하고 제3자가 수익을 챙기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저개발 국가에서의 가격 차별화 전략은 지역적으로 시장이 명확히 구분된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나 두 번째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저가에 유통됐던 에이즈 치료제가 유럽 시장에서 고가에 다시 팔리는 일이 벌어졌다. GSK가 세네갈과 콩고 등에 보낸 에이즈 치료제에 표시를 해놓았는데, 이 약들이 스위스를 경유해 영국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GSK는 알약의 모양과 포장을 다르게 만들어 공급함으로써 가격 차별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해했다. 지금도 실효성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2.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GSK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기관, NGO 단체, 학계, 기업 등과 다양한 형태로 협업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뿐만 아니라 다른 치명적인 병들을 퇴치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유엔(UN), 유니세프(Unicef), 세이브더칠드런 등 다양한 단체들과 힘을 합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세계백신면역연합과의 협업이다. 세계백신면역연합은 2000년에 설립된 민관협력기관이다. 면역 체계의 증진을 목표로 한 이 기관은 저개발 국가의 저소득 계층 어린이들을 위해 백신을 지원한다. 선진국 정부, 유럽위원회, &멜린다게이츠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등으로부터 자금을 후원받고 있다.

 

 

GSK는 약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백신의 보급이라 믿는다. 따라서 세계백신면역연합과의 협업을 통해 저개발 국가 내 백신 보급에 힘쓴다. 자체적으로 백신을 보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백신면역연합을 통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백신면역연합의 후원금 규모다. 2012년까지 세계백신면역연합은 약 37억 달러(44000억 원)를 모금했다. 후원금을 통해 백신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백신 가격이 약값보다 저렴하다 하더라도 사전 예방 차원이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는 사치일 수 있다. 그래서 세계백신면역연합과 같은 단체에서 백신을 구매해 보급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GSK가 독자적으로 백신을 보급할 경우 유통 범위에 한계가 생긴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에이즈 환자 수는 1560만 명으로 베이징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이 때문에 협업을 하지 않고서는 백신을 제대로 공급하기 어렵다.

 

GSK는 에이즈 퇴치에 박차를 가하고자 새로운 시도도 했다. 2009년 화이자(Pfizer)와 함께 에이즈 치료를 목적으로비브 헬스케어(Viiv healthcare)’라는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것이다. GSK 85%, 화이자가 1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에이즈 치료를 위한 신약 및 백신 개발을 전문으로 한다. 에이즈 치료에 관해 선도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어얻을 것보다줄 것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GSK는 화이자와의 제휴를 통해 더 나은 연구개발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로 조인트벤처를 추진했다. 자사의 여느 신약 개발보다 프로젝트당 연구 인력도 많이 배치하고, 일부 약에 대해서는 로열티도 받지 않았다. 에이즈 퇴치에 대한 GSK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GSK는 정부기관, NGO 단체, 학계, 타 기업 등에 손을 내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잡는 손이 늘어날수록 아프리카가 더 건강해질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3. 재투자를 통한 체질 개선

약은 일반 제품과는 다르다. 생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구매를 위해서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잘못 복용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구호 식량을 보급하듯이 무턱대고 뿌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낮은 가격 체계와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고 해서 에이즈 치료제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는 것은 아니다. 약을 나눠줄 수 있는 병원, 보건소 등의 헬스케어 센터가 필요하다. 센터를 구축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진료를 하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전 세계 질병의 24%가 아프리카에 몰려 있지만 전체 의료 인력의 3%만이 아프리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기본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약의 가격이 저렴하고, 아무리 많은 약을 공급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GSK는 아프리카에 에이즈 치료제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 등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개발 국가 지역에서 발생한 수익의 20%를 헬스케어 인프라 구축을 위해 재투자하기로 결정한다. 재투자를 통해 약이 더욱 널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보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파급력을 높이기 위해 아프리카 의료&연구재단(African Medical & Research Foundation), 케어인터내셔널(Care International), 세이브더칠드런 등의 NGO 단체들과도 손을 잡았다. 이렇게 2009년 이후 약 2100만 파운드( 365억 원)를 재투자했고, 4만여 명의 의료 인력을 양성했다.

 

의료 인프라 구축에 아프리카 각국 정부도 적극 참여시켰다. 아직 아프리카는 의료 인프라에 신경을 쓸 만큼 의식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인식을 개선하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적잖이 필요했다. 아프리카로 흘러가는 다양한 형태의 후원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하고, 의료 인프라 투자에 우선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GSK는 정부를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겼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GSK는 그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면피용으로 접근하지도 않았다. 진정성을 갖고 GSK와 아프리카 모두가 지속가능하게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가격 차별화를 통한 가격 체계 혁신, 전략적 제휴를 통한 다수의 참여자 확보, 재투자를 통한 의료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이런 시도들을 통해 아프리카의 의료 자생력을 강화시키고, 지속가능한 지원을 위한 재무 건전성을 확보했다. 자칫미운 오리취급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백조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GSK는 어렵게 개발한 약을 생산원가 수준으로 판매하고 적극적으로 다른 단체들을 끌어들이며 얻은 이익을 저개발 국가 지역에 재투자한다.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비즈니스 구조를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는 차원에서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윤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응원할 만한 시도이지만 기업으로서 이런 도전을 마음 편히 응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GSK의 이러한 활동들이 당장 손익계산서에 반영돼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다주진 않지만 미래를 위한 가치투자임에는 분명하다.

 

1. 투자가 있어야 미래가 있어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제약시장은 약 5%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약 1000조 원 정도의 시장 규모를 달성했다. 그중에서도 저개발 국가와 이머징마켓의 성장률은 15%로 가파른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들 국가의 경제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성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GSK는 성장이 기대되는 미래 시장에 미리 투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CSR 활동을 통해 의료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헬스케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저개발 국가 지역으로 본격적인 시장 진출에 나설 때 유통망, 의료 인력 등의 확보가 용이해진다. 또 저개발 국가 지역 내에서의 의료 활동을 통해 그 지역 사람들의 건강 문제 및 이슈에 대해서 현장성 있는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 경쟁사 대비 살아 있는 마켓인사이트를 확보할 수 있고, 이는 현장에 적합한 신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개발 국가 및 이머징마켓의 경우 소비자들이 약품을 선택할 때 선진국 소비자들에 비해 브랜드에 더욱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CSR 활동을 통해 확보한 브랜드 이미지는 미래 시장에서 시장 지위를 확보하는 데 빛을 발할 것이다.

 

2. 제약회사는 신뢰가 약

약은 생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제약회사에 신뢰는 생명과도 같다. 신뢰를 잃으면 약도 없다. 따라서 제약회사들은 다양한 형태를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산업에 비해 CSR 활동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CSR 활동이 사회 환원이라는 의미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GSK는 경영의 최고책임자가 CSR 수장을 겸임하게 함으로써 CSR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프리카에서의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은 GSK가 글로벌하게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 CSR 활동이백신 주사를 맞은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지출한 것 같지만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비용의 지출을 막아주고 더 건강하게 해준 것이다.

 

3. 제약회사의 존재의 이유

GSK 3개의 회사가 합병해 탄생한 기업이다. 1995년 글락소와 웰컴(Wellcome)의 합병으로 글락소웰컴(GlaxoWellcome)이 됐고, 2000년 글락소웰컴과 스미스클라인 비첨(SmithKline Beecham)이 합병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됐다. 3개의 회사가 합병했음에도 불구하고 M&A에 의한 불협화음이나 휘청거림이 없다. 특히 합병 후에도 단기적 수익 창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CSR과 같은 활동들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외형 확장, R&D 강화, 제품 라인 확대, 유통망 확보 등 다양한 이유로 합병을 했겠지만 철학적 기반을 함께하는 기업들이 모였다는 사실이다. 인류 건강 증진을 위한 혁신을 추구해왔고, 지역사회를 위한 투자와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기업들이었기에 GSK는 합병 이후에도 동일한 DNA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부자들만을 위한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약을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약을 제공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합병 당시의 CEO였던 장 피에르 가르니에(Jean-Pierre Garnier)의 말이 GSK가 존재하는 이유를 대변한다. 다른 제약회사들도 대부분 인류 건강 증진이라는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GSK만큼 진정성이 느껴지는 제약회사는 드물다.

GSK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3대 우선 퇴치 질병인 에이즈, 말라리아, 결핵에 대한 백신 및 신약을 연구 개발하는 몇 안 되는 제약회사이다. 3대 질병은 주로 저개발 국가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약회사에 근본적인 딜레마를 안겨준다. 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치료제를 구매할 만큼의 구매력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우선 퇴치 질병에 대한 연구개발은 수익이 아닌 인류 건강 증진을 최우선 목적으로 두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과제다. GSK ‘ATM(Access to Medicine)’ 재단에서 2년마다 평가하는 ATM 지수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4번 연속 1위에 올랐다. 이는 GSK가 제약회사들 중에 약품 및 백신을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노력을 가장 많이 했다는 뜻이다.

GSK는 에이즈 치료제 외에도 말라리아와 결핵에 대한 연구개발을 한다. 돈이 되는 선진국 외에 저개발 국가 지역까지 약품과 백신을 보급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GSK의 정체성을 강화해 흔들림 없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체성이 분명할수록 구성원의 결속에 구심점이 생기고, 전략적 의사결정의 기준이 명확해지며, 브랜드 이미지가 강화되는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법, CSV

 

GSK의 사례는 기업 윤리를 제고하고, 사회 공헌을 강화하려는 다른 기업들에 본보기와 같다. 지속가능한 공헌을 위해 저개발 국가들과 GSK가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GSK의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CSR의 새로운 확장 형태인 공유가치 창출(CSV)이라 볼 수 있다. CSV는 하버드대의 마이클 포터가 제안한 개념으로 기업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는 경영 활동을 의미한다. 사회 환원 관점에서는 CSR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비즈니스와의 연계성이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CSR은 기업이 본연의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이후에 수익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후적인 개념이다. 기업의 이익으로 학교를 지어 저소득층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이 대표적 예다. 그렇기 때문에 CSR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가장 먼저 중단되는 등 지속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CSV는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수익을 내는 개념이다. 기업의 이윤이 커질수록 사회적인 가치도 동시에 증가하는 상관관계를 형성한다. 물론 CSV도 완벽하진 않다. 어디까지나 기업의 수익창출을 위한 모델이기 때문에 기업의 수익 및 가치 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는 거의 조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SV CSR보다 지속가능하고 진일보한 개념이기에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이동진 트래블코드 대표 dongjin.lee@travelcode.co.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Oliver Wyman CJ E&M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여행의 가치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여행사트래블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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