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의 글로컬(Glocal) 콘텐츠 전략
Article at a Glance
문화산업은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미국 할리우드의 강자들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으며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거부감 등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화가 까다로운 영역이지만 CJ E&M은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중국에서 현지 파트너와의 공동 제작 방식으로 대형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았고 베트남에서는 1위 영화 사업자라는 타이틀도 꿰찼다. 철저한 현지화를 위해 콘텐츠의 원재료는 한국과 같지만 현지 문화에 맞게 각각 다른 토양과 요리법을 토대로 만들어낸 소위 ‘원소스 멀티 테러토리(One Source-Multi Territory·OSMT)’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CJ E&M은 2020년께는 글로벌과 국내 매출비중을 7대3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글로벌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
“한 지배국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세력의 출현에 따라 이제 머지않아 더 이상 유일한 지배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군웅할거’ 시대의 서막을 예고하는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프레데릭 마르텔이라는 프랑스의 저명 문화 비평가가 5년 넘게 3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대중문화 콘텐츠의 역학 구도를 탐문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1 여기서 대다수 소비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면서 문화영토의 ‘메인스트림’을 이끌고 나가는 ‘지배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이다.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전 세계적으로 유통, 배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공룡 기업들을 거느린 거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2
단적인 예로 지난해 말 디즈니가 배급한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통해 새 에피소드를 선보인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은 총 33조 원에 이르고, 워너브라더스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8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최근 글로벌 영화판은 물론 한국 극장가를 화끈하게 달군 ‘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주토피아’ 같은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들의 여전한 존재감을 봐도 알 수 있듯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분야에서 대중문화 콘텐츠를 양산하고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유통시키는 거대 미국 기업들의 힘은 무적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르텔 박사를 비롯한 문화산업 전문가들의 예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 콘텐츠 형태와 산업 구도를 바꿔놓은 디지털 시대가 펼쳐지면서 장르와 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지고 콘텐츠 수요가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지형도를 새롭게 수놓을 세력으로는 흔히 중국, 인도, 브라질처럼 ‘신흥 경제국’들이 꼽히곤 한다. 아무래도 인구와 경제 규모, 그리고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나라라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가운데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경계대상 1호는 단연 ‘차이나 파워’. 중국은 이미 지난해 영화시장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선 콘텐츠 소비대국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비호 아래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제2의 알리바바와 샤오미가 되겠다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1세기를 주도한다는 ‘소프트파워’의 핵심 축으로 여겨지는 문화 영역에서 소비는 물론 생산으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를 꿈꾸고 있다. 제조업 분야를 이미 휩쓸어버린 중국이 휴대폰 시장보다도 1.5배나 규모가 큰 황금시장에 대한 정복 욕구가 발동한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그림 1)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설탕과 밀가루를 주로 만들다가 돌연 ‘문화’라는 키워드로 사업을 꾸려가겠다고 선언한 CJ그룹(당시 제일제당)은 그에 못지않은 원대한 꿈을 품었다. 영상, 음악 등의 콘텐츠를 제작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도약하겠다는 꿈이었다. 그 첫 행보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던 할리우드의 신생 스튜디오 드림웍스 SKG에 3000억 원을 통 크게 투자하면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작은 영화 배급이었지만 점차 영화 기획·투자, 멀티플렉스, 방송, 홈쇼핑, ‘체험경제’의 정수를 담은 이벤트 등 다각도로 사업을 확대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세간에 꽤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2000년대 중반부터는 본연의 의지를 살려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1차 대상은 한류 효과를 활용할 수 있는 아시아 시장.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각국의 영문 첫 글자를 따 ‘VIP’ 시장이라고도 불린다)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동남아시아는 인프라가 부족한 터라 21세기형 문화산업을 제대로 펼치기에는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시장 규모는 우리가 키우면 된다’는 담대한 생각으로 선점 효과를 노렸다. 아무리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했다지만 리스크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단계적 진화를 꾀했다.3 그 과정에서 ‘과연 될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CJ라는 브랜드는 아시아 시장에서 윤곽이 제법 뚜렷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의 강세와 문화할인(cultural discount)4 때문에 성공적인 진출이 까다롭다는 영화 부문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CJ의 활약은 돋보인다. ‘아시아의 할리우드’라는 목표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지만 지금까지의 성공에는 글로컬(global+local) 전략이 그 중심에 버티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현지 파트너와의 공동 제작 방식으로 대형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았고 베트남에서는 1위 영화 사업자라는 타이틀도 꿰찼다. 미국과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글로벌 문화콘텐츠 기업이라는 커다란 청사진 아래 아시아 시장을 나름의 차별된 방식으로 공략해온 CJ E&M의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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