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reativity in My Hand

라면, 꼭 냄비에 끓여야 하나? ‘기능적 고착’ 극복하자 ‘컵라면’ 혁명이 일어났다

201호 (2016년 5월 lssue 2)

Article at a Glance

통상적으로 우리는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더 좋은 것을 추가하려고 하지만 SIT (Systematic Inventive Thinking, 체계적 발명사고)에서는 정말 놀라운 신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기존 요소 중 하나를제거하라고 한다. 만약 기존 요소 중 하나를 제거한 상태에서 새로운 효용이나 용도를 찾지 못한다면 남아 있는 요소 중 하나로 하여금 제거된 요소의 역할을 대행하도록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사고도구인용도통합(Task Unification)’이다. 용도통합은 창의적 발상을 가로막는기능적 고착을 극복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편집자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창의성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존재입니다. 무수히 많은 창의적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그 안에 뚜렷한 공통적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창의적 사고의 DNA를 사례 중심으로 체계화해 연재합니다.

 

지난 DBR 199호에서 40가지 발명원리로 구성돼 있는 TRIZ(창의적 문제해결이론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ch의 앞 글자를 딴 용어)의 핵심을 5가지 원리로 요약 정리한 SIT(체계적 발명사고·Systematic Inventive Thinking)중 첫번째 사고 도구인제거(Subtraction)’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번 기고문에서는 SIT 5가지 원리 중 두 번째 사고 도구인용도통합(Task Unification)’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우선 용도통합은 하나의 요소가 두 개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 1>에 나타난 디자이너 우기하의 작품프런트 & 은 용도통합의 개념을 아주 잘 살린 작품이다. 벽시계를 새롭게 디자인한 이 작품이 전통적인 시계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선 시계판의 눈금을 제거했다. 사실 눈금이 없어도 현재 시간이 1010분쯤 된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서 시계판의 눈금은 사족에 불과하다.

 

 

 

 

이 작품이 정말 창의적인 이유는 건전지가 시계바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요소가 다른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이용도통합이다. “건전지를 시계바늘로 쓴다는 것과 같은 용도통합의 발상이 특별히 어려운 이유는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 때문이다. 말하자면건전지의 역할=에너지 공급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돼 있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쓸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한다.

 

이러한 기능적 고착을 극복하기 위해 SIT에서는 첫 번째 사고도구인제거와 두 번째 사고도구인용도통합을 연관시켜서 다음과 같은 흐름에 따라 생각을 전개한다.

 

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계바늘이다.

 

→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시계바늘을 제거해보자.

→ 시계바늘을 제거한 상태로는 시계의 새로운 용도나 다른 효용을 찾을 수 없다.

→ 그렇다면 시계바늘의 역할을 대신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 그런데닫힌 세계의 조건을 지키려면 외부에서 다른 요소를 가지고 오면 안 된다.

→ 그렇다면 기존에 있는 다른 어떤 요소가 시계바늘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 기존 요소 중 시계바늘의 역할까지 맡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 건전지가 시계바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도식적으로 나타내면 <그림 2>와 같다. 일반적인 우리의 사고 관성은 그림의 왼쪽을 향해 있지만 SIT의 첫 번째 사고도구인 제거와 두 번째 사고도구인 용도통합은 그 반대쪽으로 가라고 한다. 이처럼 SIT에서는저항이 가장 큰 경로를 따르라(Follow the path of most resistance)”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이 원칙을 따르면 발명적 해결책이 되기 위한 두 가지 충분조건 중 하나인닫힌 세계가 충족된다.

 

 

 

 

우리가 쓰는 속담 중도랑치고 가재잡고’ ‘꿩 먹고 알 먹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등은 용도통합과 잘 어울리는 말이다. 용도통합의 많은 사례 중 몇 가지만 추려서 살펴보자.

 

 

식품의 용도통합

 

우리 생활과 밀접한 상품들 중에는 일본인들이 발명한 것들이 많다. 전기밥솥, 즉석 카레, 샤프펜슬, 비데, 게임기, 가라오케 등이 대표적 예다. 그런데 이들의 발명품 중 최고의 것은 무엇일까? 일본인들은 인스턴트 라면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한 해에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라면이 1000억 개나 된다고 하니 족히 그럴 만도 하다. 라면이 이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맛있고 저렴하며 조리까지 간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라면은 장기간 변질 없이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식품이다. 라면의 가장 큰 시장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지만 1인당 소비량은 우리나라가 가장 많다.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당 연간 74개의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면은 대만 태생의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1958년에 개발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먹을 것이 부족하던 일본인들에게 라면은 큰 인기였다. 이후 여러 기업들이 라면 생산에 뛰어들면서 라면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자 안도 모모후쿠는 라면의 세계화를 새로운 돌파구로 정하고 서양의 여러 국가들을 순회했다. 그에게 결정적 영감을 준 것은 한 슈퍼마켓 바이어와의 만남이었다. 이 슈퍼마켓 바이어는 인스턴트 라면을 끓인 뒤 컵에 면을 넣고 국물을 부어 포크로 먹었다고 한다. 이를 본 그의 머릿속에라면을 컵에 담아서 포크로 먹을 수 있도록 하면 국제적 식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1971년 출시된 컵라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흔히들 컵라면을 가리켜라면의 재발명이라고 한다. 컵라면의 발명으로 인해 인스턴트 라면 시장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컵라면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별도의 그릇이 없더라도 곧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컵라면의 컵은 포장재 역할뿐 아니라 그릇의 역할도 하고 있다. 포장재와 그릇의 용도통합이 대박을 터뜨리게 만든 핵심이다.

 

 

 

식당 운영에 용도통합이 적용된 사례를 하나 보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에 가면 클램 차우더(대합조개를 넣어서 끓인 크림수프)로 유명한 식당보댕이 있다. 이 식당에서는 발효된 빵의 중간을 도려내어 공간을 만들고 여기에다 수프를 담아준다. 고객들은 수프를 먹은 다음 그것을 담았던 빵을 먹는다. 빵이 수프를 담는 그릇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식당 입장에서는 설거지할 게 따로 없다. 일회용 종이접시 위에 발효된 빵을 얹고, 그 빵의 중간을 도려내고 거기에 수프를 넣어서 주니까 고객들은 수프와 빵을 차례로 먹고 난 다음 종이접시만 쓰레기통에 던지고 가면 된다. 빵과 그릇의 용도를 통합해 필요한 일손을 대폭 줄인 것이다.

 

이번에는 수박, 참외, , 사과 등과 같은 과일에 명품이라고 홍보하기 위해 붙이는 스티커를 생각해보자. 고객들 입장에서는 끈끈한 접착제로 붙여 놓은 이 스티커를 떼는 것이 성가신 일이다. 또한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과일 껍질을 음식 폐기물로 그대로 버릴 수 있는지 신경 쓰인다. 이 스티커를 다른 용도와 통합할 수는 없을까?

 

 

 

 

 

유명한 제품 디자이너인 스콧 앰론(Scott Amron)은 수용성 세제로 만든 과일용 스티커인워시라벨을 고안했다. 이 라벨은 다른 스티커처럼 손으로 뗄 수도 있지만 물로 문지르면 유기 세제로 변하기 때문에 과일 표면에 있는 농약이나 먼지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 또한 이 스티커에 상품 정보를 담은 바코드를 인쇄하면 매장의 운영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정보기기의 용도통합

 

전화기의 재발명이라고 불리는 아이폰의 출시는 통신기기 역사의 흐름을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아이폰의 탄생으로 인해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거대기업 노키아가 사라지고 미국 통신기기의 역사라고 자부하던 모토로라가 파산했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출시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의 가장 큰 특징이혁명적 사용자 인터페이스라고 소개했다. 왜 그것이 혁명적일까?

 

이 발표회에서 스티브 잡스는 기존 스마트폰의 가장 큰 문제는 플라스틱 입력 자판기라고 지적했다. 기존 전화기에서는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키보드가 계속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이것 때문에 화면의 크기를 키울 수 없었다. 아이폰은 터치스크린을 도입해 화면이 입력 자판기의 역할까지 수행하도록 했다. 지금은 터치스크린을 통한 정보 입력이 당연시되지만 입력 자판과 출력 화면의 용도통합이 가져온 변화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2007년 아이폰 출시에 이어 애플은 2010년에 태블릿 컴퓨터인 아이패드를 시장에 내놓는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인해 정보기기 액세서리라는 새로운 시장이 탄생했다. ‘스마트 커버라고 불리는 아이패드의 화면 보호용 덮개는 사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출시 당시 이 덮개는 10만 원에 가까운 높은 가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판매됐다.

 

액정화면의 덮개가스마트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화면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한 덮개 이상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 아는 대로 거치대 역할을 한다. 액정을 보호하기 위한 덮개가 받침대 역할도 하니 일거양득이다.

 

휴대용 정보기기가 안고 있는 기술적 모순은 배터리 용량이다. 장시간 사용이 가능하려면 배터리 용량이 커야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무거워져서 휴대가 불편하다. 배터리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을 때 스위치를 꺼야 하는데 틈틈이 사용하는 휴대용 기기의 특성상 매번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는 일이 여간 번잡하지 않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액정 덮개를 덮으면 자동으로 전원이 나가고 떼면 다시 들어온다. 얼마나 스마트한가? 액정 화면을 보호하기 위한 덮개, 편안한 사용을 위한 거치대, 배터리 소모량을 줄이기 위한 스위치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운송기구의 용도통합

 

용도통합의 개념을 자전거에 적용한 재미있는 예를 보자. 자전거를 도둑맞지 않으려면 잠금 체인이 필요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다니기는 불편하다. 자전거에 있는 기존 요소 중 체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이상화, 김진호, 여민구 디자이너는 자전거의 안장을 뒤로 젖혀서 뒷바퀴를 잠글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안장을 잠금장치로 이용하기 때문에새들락이라고 작명한 이 디자인은 ‘2012 Reddot Design Concept Award’를 수상했다.

 

 

용도통합이 적용된 미래형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2008년 터키의 한 디자이너는 자동차회사 푸조(Peugeot)의 미래형 자동차로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콘셉트카를 설계했다. 수소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이 자동차는 투명한 원통 안에 앉아서 핸들이 아닌 조이스틱으로 운전한다. 물론 원통의 양쪽 측면이 회전하더라도 중앙부에 있는 의자는 함께 돌아가지 않도록 측면의 회전부와 분리돼 있다. 머릿속에 그려본 콘셉트이기는 하지만자동차 바퀴를 차체로 이용한다”는 발상은 획기적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를 실용화하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첫째는 지면과의 접촉에 의해 발생하는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편안한 주행을 위해서는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완충기(shock absorber)가 필요한데 이를 설치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둘째는 주행하다보면 노면 위에 있는 흙탕물이나 각종 오물이 튀어 의자를 감싸고 있는 원통 자체가 금방 지저분해질 것 같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콘셉트카가 나왔다. 2012년 중국에 진출한 폴크스바겐은 온라인으로 미래형 자동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무려 119000건의 아이디어가 접수됐다고 한다. 또한 이 웹사이트에 3300만 건의 접속이 있었다고 하니 창의혁신에 대한 중국인들의 뜨거운 열정을 실감할 수 있다.

 

접수된 119000건의 아이디어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앞서 설명한 원통형 자동차를 공중 부양시킨후버 콘셉트카. 공중에 떠서 갈 수 있다면 지면과의 접촉으로 인한 충격이나 표면 오염 문제가 모두 다 해결된다. 마그네틱 시스템을 이용한 공중 부양과 조이스틱을 이용한 조종이 핵심인 이 아이디어는 한 여학생이 고안한 것인데 폴크스바겐은 정교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공중에 떠서 주행하는 장면을 홍보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이번 호에서는 식품, 정보기기, 운송기구를 대상으로 용도통합의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봤다. 창의적 발상을 방해하는 보편적 요인 중 하나인 기능적 고착에서 탈피할 때 용도통합이 일어나기 때문에 용도통합이 적용된 아이디어는 매우 참신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박영택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ytpark@skku.edu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품질경영학회 회장, 성균관대 산학협력단 단장,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명예객원교수,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대학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다. 성균관대에서비즈니스 창의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온라인 대중공개 강의인 K-MOOC창의적 발상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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