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파괴 시리즈를 마감하며…

188호 (2015년 11월 Issue 1)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개념적으로는 매우 쉽습니다. 외부 환경 변화를 감지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전략을 수립하고,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인력과 자원을 확보해 오퍼레이션을 바꾸면 됩니다. 또 새로운 오퍼레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조직의 구조와 문화까지 바꾼다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수정하기로 결정한 미디어 기업이라면 기존 오프라인 인력을 줄이고 온라인 역량을 갖춘 인력을 신규로 채용해 오퍼레이션에 투입하면 됩니다. 여기에 온라인과 모바일 사업의 특성을 감안한 조직의 프로세스와 문화를 구축하면 더욱 성공적으로 전략이 실행될 것입니다. 실제 최근 만난 한 미국 미디어 기업에서는 전략 변화에 따라 오프라인 인력을 정리해고 했으며 대신 온라인 분야 인력을 보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상황에서 이런 일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선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유연하게 새로운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확보하기가 힘듭니다. 또 대체로 환경 변화가 이뤄지면 이전보다 차원이 높은 역량을 필요로 하는데 추격형 전략에 의존해온 많은 한국 기업들은 고도의개념 설계(concept design)’ 역량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고층 빌딩이나 대형 구조물, 전투기 등도 잘 만들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 설계는 외국의 전문 기업들이 했고 한국 기업들은 싸게 구조물을 만드는 분야에서 수익을 올려왔습니다. 물론 개념 설계 역량을 가진 해외 기업을 M&A하는 방법이 있지만 유독 한국 기업들은 해외 M&A에 취약합니다.

 

최근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있는 조선업체들은 이로 인한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선업이 어려워졌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기존 인력을 유지하면서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이 필요했고 조선사들은 해양 플랜트 같은 성장 산업으로 대거 몰려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플랜트 건설을 주도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획득할 수밖에 없는 개념설계 역량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다의 조류와 특징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와 이를 결합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이는 시행착오 속에서 경험적으로 체득할 수밖에 없는 고도의 전문 지식입니다. 조선사들은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을 기대했지만 개념 설계 역량은 단기간에 확보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무리한 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에다 역량 부족까지 겹치면서 조선사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비단 이런 문제가 조선업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개도국의 추격을 받고 있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또 디지털 파괴에 직면한 많은 기업들도 경직된 인력 운용과 역량 부족 등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업종별로 디지털 파괴 전략을 다룬 5차례의 DBR 스페셜 리포트를 이번 호로 마감하면서 이런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거나 경험하게 될 기업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개념 디자인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거나 극도로 복잡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경험지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 역량을 의미합니다. 추격자로 살아온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런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파괴는 우리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고 부족한 역량을 외부에서 적극 수혈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해외 M&A 역량도 이제는 확보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한 현명한 리더십도 요구됩니다. 디지털 파괴 현상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대안을 모색했던 스페셜 리포트가 파괴의 시대를 항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현명한 지침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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