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Minds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인간은 누구나 ‘모방’을 한다. 혹자는 이를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합리적 판단’에 의한 선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방이 창조와 발전을 위한 출발점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천재화가 피카소도 끊임없이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만들었고 노후에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같은 그림을 다시 모방하기도 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모방을 하면 빨리 배울 수 있고, 변형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경쟁우위를 만들어 경쟁자(모방의 대상)를 넘어설 수 있다.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미술사에서 ‘시녀들’만큼 화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은 없다. ‘시녀들’은 스페인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가 1656년 완성한 그림이다.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가 화실을 방문한 공주와 시녀들을 그린 초상화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 중앙에는 필리페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 공주가 서 있고 양쪽에서 두 시녀가 공주를 보좌하고 있다. 그 앞에는 큰 개와 두 명의 궁정 난쟁이가, 뒤쪽에는 하인들이 서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공주 옆에 붓을 들고 있는 화가 자신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또 맨 뒤에서 한 남자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는 국왕 부부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다. 국왕 부부는 관람객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즉 이 그림은 그림 앞에 있는 국왕 부부의 시선에서 그린 것이다. 그래서 그림 안에서 화가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게 공주인지, 국왕 부부인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화가 자신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림의 주인공은 공주가 아니라 화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시선도 화가, 국왕 부부, 뒤에 서 있는 남자 등 다양하다.
하나의 그림을 이처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인지 후배 화가들은 이 그림을 수없이 모방했다. 고야, 달리, 클림트, 마네가 ‘시녀들’을 다시 그렸고 현대에도 해밀턴, 보테로, 위트킨까지 이 그림을 재해석했다. 그러나 이 그림을 가장 사랑하고 평생 제일 많이 그린 사람은 피카소다.
16세 때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 ‘시녀들’을 보고 감동했다. 그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매일 이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서 실력을 키웠다. 심지어 피카소는 76세의 노년에도 ‘시녀들’을 따라 그렸다. 새로 그림을 배우던 때도 아니었고 20대에 이미 입체파라는 현대미술 사조를 창시한 거장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다른 그림을 모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이렇게 답했다. “천재성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라진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피카소가 늙어서도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까닭은 영감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여든이 넘은 후에도 그는 과거의 미술에 눈을 돌려 마네, 쿠르베, 엘 그레코, 들라크루아 같은 거장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피카소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주제는 없다. 그는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주제를 취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단지와 접시를 장식할 뿐이다.”
피카소에게 모방은 창작의 시작이었다.
모방의 이유, 모방의 이점
피카소의 모방을 살펴보기에 앞서 모방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다뤄보자. 모방하는 이유는 뭘까.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모방은 우리 삶의 일부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따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간다. 사회와 국가는 더 발전한 사회를 모방하면서 문명을 이룩해왔다. 인간에게는 상대를 모방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진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결과다. 즉 남을 따라 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모방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심리학의 동조이론은 모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타인과 의견이나 판단을 달리할 때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진다. 이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의 생각을 다수의 견해에 맞추는 것이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다수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처럼 기업도 무비판적으로 다른 기업들을 따라 한다. 기업도 사회의 일원이므로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법규나 관습을 지켜야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기업 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기업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를 강제적 동질화(coercive isomorphism)라 한다. 또 성공한 기업을 모방하려는 욕구로 인해 다른 기업을 모방하기도 하는데 이를 모방적 동질화(mimetic isomorphism)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업계의 표준을 따르거나 대학, 언론, 컨설팅회사의 충고를 따라 다른 기업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바로 규범적 동질화(normative isomorphism)다. 인간이 그런 것처럼 기업에도 모방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물론 합리적 판단에 의해 모방하기도 한다. 모방은 그만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모방에 국한해 논의를 전개한다면 모방의 이점은 선발자나 혁신가가 지니는 약점에서 비롯된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선발자의 이점부터 생각해본다. 선발자는 제일 먼저 시장에 진입하므로 이미지나 평판을 끌어올릴 수 있고 충성스러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기술을 앞서서 주도할 수 있고 제품 표준을 설정할 기회를 갖는다. 기술을 개발한 후 특허를 통해 진입장벽을 쌓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번 선발자의 제품을 사용한 고객이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따르는 전환비용도 선발자의 이득이다. 쉽게 말해 독점적 지위로 시장 수익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선발자의 이득이 이처럼 많은데도 혁신가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선발자의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의 위험, 높은 개발비용, 성공한 후 따라오는 자만심 등이 선발자의 위험에 속한다. 이에 대비되는 모방의 이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신제품 개발에 따르는 위험이나 비용이 적다. 둘째, 초기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를 저명한 경영학자인 레빗(Theodore Levitt)은 먹다 남은 사과 이론(The Used Apple Policy)으로 설명했다. 사과를 꼭 먼저 먹을 필요는 없고 남들이 한 입 베어 문 것을 보고 그 사과가 쓴지 단지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는 비유다. 셋째, 선발자처럼 성공에 만족해서 잠복한 위험들을 과소평가하는 자만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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