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Minds

70세 넘은 피카소가 다른 화가의 그림을 모방한 이유

151호 (2014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인간은 누구나모방을 한다. 혹자는 이를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 보기도 하고, ‘합리적 판단에 의한 선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모방이 창조와 발전을 위한 출발점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천재화가 피카소도 끊임없이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만들었고 노후에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같은 그림을 다시 모방하기도 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모방을 하면 빨리 배울 수 있고, 변형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신만의 경쟁우위를 만들어 경쟁자(모방의 대상)를 넘어설 수 있다.

 

편집자주

창조와 혁신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예술가, 문학가, 학자, 엔지니어, 운동선수 등 창작가들의 노하우는 기업 경영자에게 보석 같은 지혜를 제공합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이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의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미술사에서시녀들만큼 화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은 없다. ‘시녀들은 스페인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656년 완성한 그림이다.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가 화실을 방문한 공주와 시녀들을 그린 초상화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 중앙에는 필리페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 공주가 서 있고 양쪽에서 두 시녀가 공주를 보좌하고 있다. 그 앞에는 큰 개와 두 명의 궁정 난쟁이가, 뒤쪽에는 하인들이 서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공주 옆에 붓을 들고 있는 화가 자신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또 맨 뒤에서 한 남자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고,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는 국왕 부부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다. 국왕 부부는 관람객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즉 이 그림은 그림 앞에 있는 국왕 부부의 시선에서 그린 것이다. 그래서 그림 안에서 화가가 캔버스에 그리고 있는 게 공주인지, 국왕 부부인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화가 자신을 그려 넣음으로써 그림의 주인공은 공주가 아니라 화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시선도 화가, 국왕 부부, 뒤에 서 있는 남자 등 다양하다.

 

하나의 그림을 이처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인지 후배 화가들은 이 그림을 수없이 모방했다. 고야, 달리, 클림트, 마네가시녀들을 다시 그렸고 현대에도 해밀턴, 보테로, 위트킨까지 이 그림을 재해석했다. 그러나 이 그림을 가장 사랑하고 평생 제일 많이 그린 사람은 피카소다.

 

16세 때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서시녀들을 보고 감동했다. 그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매일 이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서 실력을 키웠다. 심지어 피카소는 76세의 노년에도시녀들을 따라 그렸다. 새로 그림을 배우던 때도 아니었고 20대에 이미 입체파라는 현대미술 사조를 창시한 거장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다른 그림을 모방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이렇게 답했다. “천재성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라진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피카소가 늙어서도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까닭은 영감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여든이 넘은 후에도 그는 과거의 미술에 눈을 돌려 마네, 쿠르베, 엘 그레코, 들라크루아 같은 거장의 작품을리메이크했다. 그의 전기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피카소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주제는 없다. 그는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 주제를 취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단지와 접시를 장식할 뿐이다.”

 

피카소에게 모방은 창작의 시작이었다.

 

모방의 이유, 모방의 이점

피카소의 모방을 살펴보기에 앞서 모방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다뤄보자. 모방하는 이유는 뭘까. 반드시 합리적인 판단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모방은 우리 삶의 일부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따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방하며 살아간다. 사회와 국가는 더 발전한 사회를 모방하면서 문명을 이룩해왔다. 인간에게는 상대를 모방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진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결과다. 즉 남을 따라 하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모방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심리학의 동조이론은 모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타인과 의견이나 판단을 달리할 때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빠진다. 이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의 생각을 다수의 견해에 맞추는 것이다.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다수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처럼 기업도 무비판적으로 다른 기업들을 따라 한다. 기업도 사회의 일원이므로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법규나 관습을 지켜야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기업 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으므로 다른 기업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를 강제적 동질화(coercive isomorphism)라 한다. 또 성공한 기업을 모방하려는 욕구로 인해 다른 기업을 모방하기도 하는데 이를 모방적 동질화(mimetic isomorphism)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업계의 표준을 따르거나 대학, 언론, 컨설팅회사의 충고를 따라 다른 기업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바로 규범적 동질화(normative isomorphism). 인간이 그런 것처럼 기업에도 모방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벨라스케스의시녀들

 

물론 합리적 판단에 의해 모방하기도 한다. 모방은 그만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모방에 국한해 논의를 전개한다면 모방의 이점은 선발자나 혁신가가 지니는 약점에서 비롯된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선발자의 이점부터 생각해본다. 선발자는 제일 먼저 시장에 진입하므로 이미지나 평판을 끌어올릴 수 있고 충성스러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기술을 앞서서 주도할 수 있고 제품 표준을 설정할 기회를 갖는다. 기술을 개발한 후 특허를 통해 진입장벽을 쌓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번 선발자의 제품을 사용한 고객이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따르는 전환비용도 선발자의 이득이다. 쉽게 말해 독점적 지위로 시장 수익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선발자의 이득이 이처럼 많은데도 혁신가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선발자의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의 위험, 높은 개발비용, 성공한 후 따라오는 자만심 등이 선발자의 위험에 속한다. 이에 대비되는 모방의 이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신제품 개발에 따르는 위험이나 비용이 적다. 둘째, 초기 제품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이를 저명한 경영학자인 레빗(Theodore Levitt)은 먹다 남은 사과 이론(The Used Apple Policy)으로 설명했다. 사과를 꼭 먼저 먹을 필요는 없고 남들이 한 입 베어 문 것을 보고 그 사과가 쓴지 단지 판단하는 게 현명하다는 비유다. 셋째, 선발자처럼 성공에 만족해서 잠복한 위험들을 과소평가하는 자만에 빠질 가능성이 낮다.

 

정리해보면, 모방은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조직들을 따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고 모방의 이유를 합리적으로 분석한 이론도 있다. 합리적으로 분석한 이론의 핵심은빠른 모방자 전략을 택하라는 것이다. 선발자가 당면한 위험과 비용은 최소화하고 너무 늦게 출발해서 갖게 되는 불이익을 피하라는 충고다. 그러고 보면 모방에 대한 논의에서 창조와 혁신을 다룬 것은 많지 않다. 여기에서는 모방의 창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보겠다. 피카소의 모방은 창조를 위한 수단이었다. 모방이 창조로 승화되기까지 세 단계를 거친다.

 

피카소의 시녀들

 

빨리 배운다

첫째, 모방을 통해서 빨리 배울 수 있다. 1881년 스페인의 낙후된 해안도시 말라가에서 미술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피카소는 신동이었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자 그림 그리기를 그만뒀다. 그리고는 아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아버지는 피카소를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에 보냈다. 안타깝게도 피카소는 학교 규칙이나 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자 삼촌은 피카소를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 보냈는데 여기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교사보다 유능하다고 생각했던 피카소가 학교에 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벨라스케스를 만난 것이 바로 이때였다. 학교에 가지 않고 마드리드 시내를 떠돌다가 프라도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배울 대상을 찾았다. 매일 미술관에 들러 하루 종일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는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사람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 요령도 생기고 쉬워진다.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복하는 일에 대한 지식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생산성이 올라간다. 이를 학습곡선이라고 한다. 모방을 하면 학습곡선을 따라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된다. 우리나라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지금 한국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전자, 반도체, 조선산업 등은 모두 일본 기업을 똑같이 베끼는 것에서 출발했다. 모방을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재빠르게 학습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산업계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다.

 

1997년 설립된 대만의 스마트폰 전문기업인 HTC도 이렇게 발전했다. 최근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애플과 삼성전자에 이어 스마트폰의 강자로 떠오른 대만의 HTC는 원래 노트북 제조업체였다. 그것도 자신의 브랜드가 아니라 해외 IT 업체를 대상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윈도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MS와 관계가 긴밀해졌다. 당시 HTC는 노트북 개발 경험으로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휴대용기기 제조 분야로 들어가고 싶어 했고 PC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한 MS는 휴대폰에도 자사의 운영체제를 확산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PC 사업의 주도권이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로 넘어간 것을 지켜봤던 휴대폰 제조사들은 MS의 운영체제에 적대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MS는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이 없는 HTC PDA나 휴대폰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HTC MS의 소프트웨어 개발 노하우를 차근차근 전수받았다. 이제 HTC는 주문자가 개발한 대로 생산만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여러 업체들을 대상으로 휴대폰, 터치스크린 폰, PDA 등을 주도적으로 개발해서 생산해줄 수 있게 됐다. ODM 업체가 된 것이다.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HP PDA iPaq을 개발할 수 있었고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통신회사가 원하는 휴대폰을 MS의 운영체제를 탑재해 개발했다. HTC는 비록 브랜드를 가진 제품은 없었지만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래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휴대폰을 처음 개발할 회사로 HTC를 택했고 2008년 제품이 출시됐다. 2010년부터 HTC는 자사의 브랜드를 단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진기업들과 정면승부하고 있다. 처음에는 남이 시키는 대로 물건을 만들고 10년 이상 남의 요구에 따라 제품을 생산하다가 비로소 자신의 제품을 출시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HTC가 세계 최고 기업들과 어떤 승부를 벌일지 지켜봐야겠지만 이들의 제조 역량과 노하우는 OEM ODM을 거쳐 쌓인 것으로 매우 탄탄하다. 또 오랫동안 통신회사가 원하는 휴대폰을 개발하면서 근거리에서 통신회사의 마케팅 활동을 지켜본 입장에서 스마트폰 판매에서 중요한 마케팅과 유통의 노하우를 쉽게 모방해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변형한다

둘째, 모방을 하다 보면 대상을 변형하고 개선하게 된다. 피카소는 76세 때 60년 전에 처음 만났던 벨라스케스의시녀들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이미 입체파라는 자신의 화풍을 완성한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자기 스타일로 변형해 그렸다. ‘시녀들전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일부를 떼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그리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박물관에 가면 이렇게 해서 그린 피카소의시녀들 58점이나 전시돼 있다. 수없이 모방하면서 기존 그림을 수정하고 개선해나간 것이다. 피카소는 다른 작품을 모방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화가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모방은 자연스레 개선으로 이어진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훈수효과 때문이다. 플레이어로 활동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고쳐야 할 점이 눈에 들어온다. 맥락이 다르므로 만든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어색함이나 부족함이 쉽게 인지된다. 가령 해외의 성공한 비즈니스 프랙티스를 모방한다고 해보자. 그런 방식은 그 나라의 제도, 문화, 국민성과 그 회사의 특유한 전통과 관행이 합쳐져 탄생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뭔가 어색할 수밖에 없다. 도입해서 활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닌 특징과 결합해 애초의 방식을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또 모방이 변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아이디어의 속성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백지에서는 나오기 힘들다. 아이디어에 불을 붙일 심지가 필요하다. 이때 남의 아이디어는 가장 좋은 도화선이 된다. 피카소가 남의 작품을 모방한 것도 백지 상태에서 주제를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냐는 질문에 한 건축가가 그런 말을 했다. “생각이 안 나거나 아이디어가 막힐 때 서재에 있는 책을 아무거나 펼쳐 봅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어떤 책을 봐도 내 생각과 관련되는 게 나오더군요.” 아이디어는 다른 아이디어라는 스파크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모방은 그 자체로 내 아이디어를 일깨운다. 따라 하다 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행동하면서 깨닫는 것이다.

 

 

항공업계만큼 모방이 잘 일어나는 곳도 없다. 1970년대 미국 텍사스 주에서 운항을 시작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저가항공이라는 사업모델로 성공했다. 허브 공항을 두지 않고 왕래가 잦은 두 지역을 연결하는 노선 정책, 보잉 737 단일 기종 운항을 통한 관리비용 절감, 기내식 등 부가서비스 폐지, 좌석제 폐지, 단일 요금제, 빠른 회전율 등의 정책을 통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항공권을 판매했다. 심지어 9·11테러가 일어난 직후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항공업이 불황인 시기에도 견실한 실적을 냈다. 사우스웨스트가 승승장구하자 수많은 항공사가 저가항공 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대형 항공사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나지 않아 사우스웨스트만큼 저렴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실패했다. 사우스웨스트의 모델을 충실하게 실행한 기업은 대부분 소규모 신생 항공사였다. 사우스웨스트를 모방했던 항공사 중 제트블루는 저가항공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에 새로운 변형을 시도했다. 닐먼(David Neeleman)은 자신이 창업한 모리스에어가 사우스웨스트에 인수된 후 거기서 일했다. 그는 저가항공을 유지하면서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제트블루를 창업했다. 제트블루는 지점별 운항 정책, 단일 모델 비행기 운항, 단순화된 요금 구조 등 사우스웨스트를 그대로 모방하면서도 가죽 시트에 개인용 TV 스크린이 달린 좌석을 제공하는 등 기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특화했다. 이러한 전략의 변형으로 제트블루는 사우스웨스트처럼 저비용을 유지하면서도 더 나은 시설과 서비스를 원하는 승객을 끌어들였다. 현재 제트블루는 타 항공사로의 이동률이 가장 낮은 항공사 중 하나다.

 

넘어선다

셋째, 완전한 모방을 해보면 대상의 원리와 작동방식에 대해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분석적인 지식이 아니라 종합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결국 자신만의시녀들을 그렸듯이 수많은 문학가들이 모방을 통해 스스로의 문체를 창조해왔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다. 필사를 하는 동안의 그 황홀함은 내가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각인시켜준 독특한 체험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은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신경숙의 문체는 선배 작가들을 그대로 베끼면서 완성된 것이다. 예로부터 문학을 익히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은 암송이다. 그래서 영문학과나 불문학과에서 장편의 시를 외우는 테스트를 한다. 문학이 발달한 프랑스의 국어 시험에는 앞에 나와서 시를 암송하는 게 빠지지 않는다.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의 흐름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암송하면 잘 이해한 것이고, 악센트를 주어야 할 때 안 주거나 쉬어야 할 부분을 지나치면 시를 잘 모른다고 판단해 점수를 깎는다.

 

암기는 옛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던 학습법이다. 학동들은 천자문과 사서삼경을 소리 내어 외웠고, 다음날 서당에 오면 전날 배운 구절을 암송하는 게 공부의 시작이었다. 옛날 학습법인 외우기가 문학에서 아직도 가장 효과적으로 쓰이는 이유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한글이나 영어를 배울 때 자음과 모음(영어는 알파벳), 음운, 단어, 문장, 문단 순으로 익힌다. ‘ㄱㄴㄷㄹ아야어여를 먼저 배운다. 그러나 아이들이 말을 익히는 과정은 이와 정반대다. 아이들은 상황에 따른 문장을 먼저 외운다. 배가 고플 때, ‘엄마, 배고파, 밥 줘라는 문장을 통째로 배운다. 상황에 맞는 문장을 한꺼번에 익히는 것이다. ‘고프다주다의 뜻은 정확히 모른다. 점차 여러 상황에 따른 문장을 써나가다 보면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언어를 익힐 때 이처럼 문장부터 통째로 배우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통째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뭉쳐진 것을 분석할 때 그 구성요소를 잘게 나누어 이해한다. 국어나 영어 시간에 배우는 방법은 언어를 익히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방법인 것이다.

 

 

외우기는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작품을 있는 그대로 학습하는 방법이다. 오래 전부터 ‘learn by heart’는 영어에서암기하다란 뜻으로 쓰였다. 암기라는 말이 머리로 배우다(learn by head)가 아니라 가슴으로 배우다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머리로 배우는 것은 세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가슴으로 배우는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세상을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로 암기이며 모방이다. 그래서 모방은 부분을 분석하지 않고 전체를 보게 한다. 외우면서 자연스레 문학을 터득하고 글을 쓰는 능력이 길러진다. 뛰어난 평론가 중에서 위대한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론가는 문학을 분석하는 사람이다. 나누어 분석하는 버릇이 생기면 창조할 수 없다.

 

가끔 비즈니스 현장에서 정확히 규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한다. 심지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때도 있다. 이럴 때 비슷한 경험을 한 기업을 그대로 따라 해보면 그 과정에서 모르던 문제를 깨닫는 경우가 많다. 사우스웨스트항공도 사실은 남을 모방하면서 시작했다. 창업 초기 사우스웨스트는 항공사가 아니라 장거리 버스회사를 경쟁사로 설정했다. 기존 항공사와 다른 식으로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사우스웨스트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미국 최초의 저가항공사인 퍼시픽사우스웨스트항공을 무조건 모방했다. 이들의 운영 매뉴얼을 가져와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사용했다. 모방을 거치면서 사업을 크게 바라보게 됐다. 경영자들은 업의 핵심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자 퍼시픽사우스웨스트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조직문화가 만들어지게 됐다. 사우스웨스트는 선진업체를 분석하지 않았다. 통째로 모방했다.

 

모방에서 창조로의 원동력

19세의 피카소는 스페인을 떠나 서양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이주했다.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정착한 후, 당시 미술계의 주류인 인상파를 비롯해 거장들의 작품을 흡수했다. 피카소는 20대 초반에 이미 단순 모방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 시기를청색시대라고 하는데 청색을 활용해서 알코올 중독자, 걸인, 장님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이때의 그림은 대부분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고흐, 드가, 고야의 그림에 있는 형태나 인물의 자세를 그대로 차용했다. 이 시기는 곧 끝났다. 26세에 그는아비뇽의 처녀들을 선보이며 입체파를 창시했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그림을 창조한 것이다.

 

어떻게 모방에서 창조로 이렇게 빨리 도약할 수 있었을까. 피카소는 신동이었다.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감탄과 놀라움 속에서 자랐다. 그가 성인이 되자 동료 화가들도 모두 그처럼 그릴 수 있게 됐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음악과 달리 회화 분야의 신동은 없습니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처음 그린 그림은 아동 전시회에서도 걸리지 못했어요. 아이다운 천진성이나 소박함이 없었던 거지요. 어린 시절에 나는 그저 아카데미 화풍에 따라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 보면 충격을 받을 정도로 거의 똑같이 베끼다시피 했더군요.”

 

신동이었던 그는 자존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었다. 선배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모방했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고 싶었다. 따라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생각이 투철했다. 애초에 창조를 위해 모방한 것이다. 결국 그의 창조의 원동력은 남과 다른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 전략>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