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UX전략

10년 전 함께 웃으며 비전 밝혔는데… UX전략, 소니와 애플 확실히 갈랐다

150호 (2014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지금으로부터 10 전인 2001, 소니와 애플이 나란히 디지털-콘텐츠-서비스의 융합 플랫폼화를 예측했다. 당시 회사의 전망과 비전은 비슷한 지점에 맞닿아 있었지만 오늘날 애플은 명실상부 글로벌 톱으로 부상한 반면 소니는 예전의 명성을 잃어버린 오래다. 회사의 명암은 융합 플랫폼의 UX 얼마나 매끄럽게 구축했느냐에서 엇갈렸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콘텐츠를 보유했더라도 소비자가 접점에서 느끼는 UX 구성에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얻기 어렵다. 

 

2001년 두 회사의 비전 선포와 그 10년 후

인터넷 생태계 등장이 가져온 혁신적인 변화에 어리둥절했던 닷컴 버블 시기가 지나고 IT산업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증이 증폭되던 2001, 소니(Sony) CEO 안도 구니다케는 미래의 브로드밴드 네트워킹은 더 고도화할 것이다. 우리는 기기와 콘텐츠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를 만들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된 오늘날 되돌아봤을 때 10여 년 전 이미 IT산업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것과 다름이 없다.

 

안도 구니다케가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과 자사의 경영전략 비전을 발표한 같은 해, 애플(Apple) CEO 스티브 잡스는 이른바 디지털 허브 전략을 공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컴퓨터는 생산성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를 넘어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의 시대로 가고 있다. 맥은 모든 디지털 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허브가 될 것이다.” 용어는 서로 달랐지만 두 CEO의 일성은 사실상 같은 의미였다. 디바이스-콘텐츠-서비스의 융합 플랫폼화다. 다시 말해 고도로 발달하는 기기들이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콘텐츠나 서비스와 사실상 하나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겠다는 포부였다는 것이다.

 

2001년 당시 두 회사 CEO의 말만 듣고 소니와 애플의 미래를 예견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소니가 더 나을 것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당시 애플은 고객들의 브랜드 충성도는 상대적으로 높았을지 모르나 보유제품의 시장점유율이 턱없이 낮은 회사였다. 컴퓨터 제품과 맥 OS, 몇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애플이 가진 전부였다. (굳이 더 꼽자면 스티브 잡스라는 독특한 개성의 CEO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소니는 음악과 영화 콘텐츠를 직접 제작했고 TV PC, 게임기, 휴대폰에 이르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맥 컴퓨터가 디지털 허브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던 반면 안도 회장은 소니가 가진 제품 및 서비스들을 연결하겠다는 말만으로도 자사 전략을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년 후 양사의 실적은 극적으로 갈린다. 10년 후 애플이 세계 1위 시가총액 회사로 발돋움한 반면 소니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몰락했다. 2001년 이후 애플은 컴퓨터(아이맥), 노트북(아이북), MP3플레이어(아이팟), 휴대전화(아이폰), 태블릿PC(아이패드), TV셋톱(애플TV)에 이르는 기기 포트폴리오와 음악-영상(아이튠즈), 애플리케이션(앱스토어), 출판(아이북스), 클라우드 서비스(iCloud)를 아우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융합 플랫폼을 갖춘 회사로 성장했다. 소니는 주력 제품이었던 TV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넘겨줬고, 스스로 창출한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서는 존재감을 확인하기 어려우며,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주목할 점은 두 회사 모두 비전 있는 경영자, 기술적 혁신 능력, 디자인 능력,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경쟁 전략상의 유사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과 10년 사이에 실적이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콘텐츠 UX 경영 전략의 의미가 있다. 2005년 안도 회장이 사임하고 최초의 외국인 회장을 맡은 하워드 스트링어는 소니의 몰락 원인을 폐쇄적인 조직 구조, 자사 기술에 대한 집착, 지나치게 광범위한 제품군과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에 분산된 역량, 제품 간 호환성 미흡과 플랫폼화의 실패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내외부에서 이미 인식하고 있던 노출된 문제였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소니의 핵심 문제는 그동안 플랫폼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부지불식간에 소홀히 하고 놓쳐버린 부분이 따로 있었다는 데 있다.

 

소니는 왜 몰락했나

소니가 몰락한 핵심 원인, 그것은 바로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된 접점 구축과 관련이 있다. 소니의 제품들은 기능과 제품 디자인 측면에서 우월했지만 사용자 만족도 면에서 경쟁사에 뒤처졌다. 소니는 스스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결합하는 기업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사용자가 이를 경험하는 통로, 즉 실제 환경에서 콘텐츠와 디바이스, 서비스가 통합되는 접점을 매끄럽게 구축하는 데 소홀했다. 자사 음반에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디지털 음원 사용이 일반화된 시점인 2005년에도 불법복제를 막겠다는 목적으로 무려 2200만 장에 달하는 자사 음반에 DRM 코드를 삽입해 사용자들 PC에 있던 개인정보를 사전고지 없이 전송받았다. 이 와중에 사용자 PC가 의도치 않게 악성코드에 노출됐다. 그런데도 사용자가 스스로 제거할 수도 없게 만들어 음원 서비스 사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했고 디지털 음악시장에서 소니의 브랜드 가치는 형편없이 망가져버렸다.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이란?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 디자인은 1970년대 업무용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사용자의 오류를 줄이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이제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인정받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최대한 만족스러운 경험을 갖게 하기 위한 사용성, 심미성, 감성, 유용성 등을 하위 구성요소로 하며 이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 디자인, 마케팅 활동을 포괄한다.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폰의 성공은 직관적이며 감성적인 인터페이스 적용을 통한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UX 시장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필수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스마트폰, 스마트TV IT 분야는 물론 자동차, 의료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콘텐츠 플랫폼화를 위해 채택했던 Xross Media Bar(XMB)라는 통합 인터페이스는 보기 좋은 메뉴 구성과 시각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실제 기기 간 통합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게임 콘솔, HDTV, 카메라, 노트북에 획일적인 인터페이스를 적용해 사용자 관점에서 매끄러운 통합적 콘텐츠 사용 경험을 유도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예컨대 사용자가 소니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소니 HDTV로 가족과 함께 보려면 여러 단계의 복잡한 설정 메뉴를 한참 뒤적이다가 결국 포기해야 했다. 그저 기기들을 한데 모아 통합 인터페이스로 포장했을 뿐 각 기기가 지닌 특성과 기능을 면밀히 파악해 사용자 입장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반면 애플은 사용자와 콘텐츠가 만나는 접점의 고도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기울였고 이를 경쟁 우위 요소로 사용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음원 콘텐츠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한 자동 동기화가 대표적이다. 아이팟을 PC에 연결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동기화가 시작된다. 사용자는 따로 메뉴를 읽어보거나 사용법을 배우지 않아도 쉽고 빠르게 곡을 업로드 또는 다운로드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수많은 곡들을 빨리,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버튼들을 제거하고 (심지어 전원 버튼까지도) (wheel) 인터페이스 기술을 도입하는 등 아이튠스와 아이팟의 모든 기능과 디자인 요소들을 콘텐츠 사용자 입장에서 통합적으로 기획했다. 직관적인 멀티 터치 인터페이스와 접근이 용이한 앱스토어, 심플한 디자인 등은 모바일 컴퓨팅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위한 아이폰을 개발하는 데 효율적으로 결합됐다. 다시 말해 갖고 있는 고유의 콘텐츠, 첨단 기술과 플랫폼들을 단순히 보기 좋게 포장해서 내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를 꼼꼼히 분석해 가장 단순하면서도 편리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애플이 만들어낸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는 쉽게 결정하거나 추진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니다. 기술팀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첨단 기능이 사용자에게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다는 이유로 빠지기도 했으며 디자이너들은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교한 작업을 해야 했다. 이 모든 기획과 디자인, 개발 업무는 철저하게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두고 사용자의 시각에서 조율됐다. 애플이 단순 기기 제조사에서 콘텐츠와 서비스를 망라한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애플의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음악, 영상, 출판, 게임, 애플리케이션 콘텐츠는 이제 전 세계 콘텐츠의 유통과 마케팅은 물론 콘텐츠 자체 크리에이션 과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니는 공급자 관점에서만 혁신을 해석하고 디자인적 완성도를 추구했던 회사였다. 공급망(supply chain)은 잘 갖췄지만 사용자 접점 구축에는 미흡했다. 이는 공급자 주도의 시장에서 급성장한 과거의 성공 경험과 2000년 이후 물량 공급(supply push) 위주의 경쟁 전략이 소비자 주도의 수요 중심(demand push)으로 전환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다. 소니는 이런 문제를 인식한 후 2011년에서야 ‘One Sony’를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고, 통합 UX 부서와 CXO(Chief Experience Officer) 직책을 신설했다. 소니의 몰락은 수요자 주도 시장, 플랫폼 환경에서의 경영 전략의 요체가 기술 혁신이나 디자인 혁신이 아닌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사용자 경험의 혁신이라는 점을 보여준 뼈아픈 사례다. 그렇다면 사용자 경험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국내 콘텐츠 관련 기업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스마트 TV는 망했다?

스마트 TV는 이미 영상가전 시장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3D TV 이후 새로운 미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며 시작했던 혁신 선도 제품이었다. 당시 소니와 같은 기존 경쟁사와 중국의 후발주자들이 초고화질, 대화면, 가격차별화 등 전통적인 하드웨어 기술과 공정 효율화 전략만 추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넘어 시장 선도적인 혁신 제품 기획에 나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2011 LG전자의 제품 소개문을 보자. “영상을 보는 기기라는 단순 기능에서 탈피해 다양한 정보를 감상할 수 있는 미래의 스마트 TV는 본격적인 인터랙티브 기능이 추가돼 TV를 통해 인터넷을 하고, 다른 TV 사용자와 혹은 스마트폰 사용자와 화상통화를 할 수 있고… TV 자체 애플리케이션의 발전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독서, 게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디바이스로서 스마트 TV는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2009 LED TV 200만 대 파는 데는 8개월이 걸렸지만 2011년 스마트 TV 4개월 만에 200만 대를 팔았다. 2배나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스마트 TV는 비참한 실패였다. 2013년 방송통신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 TV 이용시간 중 기존 방송프로그램 시청 외에 VOD, , SNS, 앱을 이용하는 비중은 1% 미만이었다. 스마트 TV 사용의 기본 조건인 인터넷 연결도 5%를 넘지 못했다. 스마트 TV 1대당 설치된 앱은 평균 1개 이하였다.

 

선도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왜 하드웨어-콘텐츠-서비스를 연결하는 영상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일까?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두 회사 모두 UX 조직을 확장하고 인재를 영입해 내부 역량을 강화해왔다. LG전자의 매직모션 리모콘은 레드닷 어워드와 IF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디자인 감성과 인간공학적 사용성을 인정받았다. 삼성전자의 스마트 리모콘도 동작 인식, 음성 인식, 안면 인식 등 자연스러운 인터랙션(Natural User Interface·NUI)을 위해 최고 수준의 인터페이스 혁신 기술을 투입했다. 하지만 TV시청자들은 숫자키가 있는 익숙한 구식 리모콘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스마트 리모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마트 TV의 콘셉트는 왜 사용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넷플릭스는 DVD 대여사업자로 출발했지만 고객의 참여를 유도해 콘텐츠를 기획·제작했다. 또한 이를 매끄럽게 구성된 웹사이트를 통해 정확한 추천 또는 몰아보기 서비스로 연결해 콘텐츠 소비 경험을 새롭게 창출했다. 크롬캐스트는 단 35달러의 가격으로 스마트TV의 핵심 기능을 서비스하며 기존 구글의 콘텐츠 및 서비스와 매끄럽게 연동해준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단지 콘텐츠 수급의 어려움이나 스마트폰이 지닌 대체성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스마트 TV UX 문제는 손님 없는 뷔페식당처럼 가짓수가 적고 다른 곳에도 다 있는 콘텐츠, 즉각적 만족과 몰입을 방해하는 리모콘과 메뉴 인터페이스, 엉성한 추천 서비스와 복잡한 결제 과정 등 콘텐츠 선택과 시청의 전 과정에서 매끄러운 사용자 접점이 구축되지 않은데 있다. 스마트 리모콘 자체의 기능은 고도화됐지만 화면의 메뉴 선택이 복잡해서 정작 사용자는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없고 이는 몰입을 방해했다. 또 애플의 아이튠스나 앱스토어처럼 통합 결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콘텐츠 경로별로 결제를 따로 해야 했고(예를 들어 pooq이나 tving으로 드라마 다시보기를 하려면 별도로 해당 서비스에 가입하고 결제해야 한다) 영화를 한 번 보려면 몇 차례나 스크롤링을 해야 했으며 소개 내용도 엉성하고 구매 선택에 이르도록 설득적이지도 못했다. 그 결과 사용자는 스마트 TV를 시청하며 불만족스러운 경험을 겪어야 했고 결국 초기 관심이 수그러들고 말았다.

 

국내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단지 심미성 높은 그래픽 디자인이나 인간공학적인 사용편리성으로만 국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은 어느 한 가지에 초점을 둔다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첨단 기술이나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큰 조직 안의 일개 UX 디자이너가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기업 경영자가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유도하고자 할 때 그 시작점은 무엇이 돼야 할까. 사용자 경험은 사용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일단 사용하게끔 하라는 지침이 유용한 이유다.

 

 

UI UX는 어떻게 다른가?

 

독립적 접점과 총체적 경험 가치의 차이다. 유저 인터페이스(UI)는 한 가지 특정 제품 혹은 서비스 단위의 최적화와 관련이 있다. 컨버전스 시대 이전의 제품과 서비스는 개별적으로 혹은 독립적으로 기능했으며 각 제품과 서비스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으면 회사 전체로도 성공을 보장할 수 있었다. 즉 디자인이 매력적이거나 유용한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혹은 편리하고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라면 개별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 - 서비스 - 콘텐츠가 상호 작용하며 소비되는 플랫폼 전략 시대이기 때문에 고객이 평가하는 브랜드 가치는 총체적인 사용 경험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공급자 관점에서 제품 단위의 최적화로는 이 같은 흐름에 대처할 수 없으며 사용자 입장에서 무엇을경험하는지 살펴야 경쟁 우위의 속성을 알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소니는 제품 단위가 아닌 소비자 경험의 총체적 측면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사용해야 사용 경험이 있다

교보문고는 국내 1위 오프라인 서점이다. 연 매출이 5500억 원에 이르고 전국적으로 16개 지점을 운영한다. 하지만 출판 콘텐츠 기업으로서 교보문고의 성장 지속성은 어떨까? 2011년 이후 영업이익 규모는 15억 원 내외, 영업이익률은 0.3%에 불과하다. 온라인 진출을 머뭇거리다가 예스24에 시장을 선점당했고 eBook 사업에서도 2013년 개선된 SAM 단말기를 출시했지만 판매대수는 2만 대를 넘지 못했다. eBook이 종이책을 대체하기 어렵고 대중적 시장을 형성하기 어려운 상품이기 때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아마존은 이미 2009년 종이책보다 eBook이 더 많이 팔리는 시대가 됐음을 선언했고 디지털 출판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eBook의 상대적 장점과 성장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의 eBook 시장은 헤게모니 다툼의 전쟁터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파편화돼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전자출판 시장이 영세한 것은 사업자별로 서로 다른 DRM을 채택하며 시장을 갈랐기 때문이다. 뷰어 포맷은 IDPF(국제디지털출판포럼)에서 제안한 ePUB으로 시장 표준이 형성됐지만 단말기와 콘텐츠마다 다른 DRM을 채택하는 바람에 상호 호환이 어려워졌다. DRM은 불법복제 방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략적 마케팅에 필요한 정보 소스이며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DRM 파편화의 결과로 eBook 단말기의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소프트웨어 설계와 디자인이 복잡해지면서 사용자 접점이 매우 부실해졌다. 1999년 대부분의 출판사업자들을 망라해 컨소시엄 형태로 출발한 북토피아가 경영권 분쟁과 전략 부재, 전자책과 사용자 간 접점 및 경험 창출 실패로 도산한 탓에 사업자 간 불신의 뿌리가 깊어졌다. 이 때문에 표준화를 위한 업계의 공동 대응도 어려운 상태다.

 

어느 사업자도 10만 권 이상의 매출을 보장하는 플랫폼 규모를 갖추지 못하고 매끄러운 사용자 접점을 만들지 못하다 보니 단말 제조사로서는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익을 얻기 어렵고 콘텐츠 판매 수익 배분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원가 안에서만 제품을 만들어 납품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들은 이 기기를 통해 다양하지 못한 콘텐츠, 4개밖에 없는 폰트, 질 나쁜 액정패널, 조잡한 물리적 버튼, 약한 배터리 등으로 부정적인 사용경험을 갖게 된다. 이제 아마존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 국내 전자출판 사업은 더 심각한 경쟁 열위에 놓일 것이다. 아마존은 엄청난 협상력으로 e-Ink사의 신기술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확보했고 콘텐츠 수익을 통해 기기 가격을 낮춰 시장에 내놓고 있다.

 

사용 경험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사용 자체가 전제돼야 한다. 사업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소비자가 콘텐츠 사용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시장에서는 만족스러운 소비자 경험을 전달해주기 어렵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접점을 가능한 넓게 펼쳐야 하며 이를 위해 콘텐츠 크리에이션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경영전략 차원에서 UX를 바라봐야 한다.

 

콘텐츠 UX 경영 전략 제안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관점에서 자사 상품의 차별화된 가치를 정의하고 그 차별화 가치가 경쟁사에 의해 쉽게 모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 통합할 수 있는 조직화를 이뤄 낼 경영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이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과 그에 대응한 실천 전략은 다음과 같다.

 

Q 1 사용자 경험을 매끄럽게 구축하고 콘텐츠 크리에이션과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콘텐츠 소비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이란 콘텐츠를 선택, 결제, 재생, 감상, 공유하는 전 과정에서 기기와 서비스, 콘텐츠 사이의 인터페이스가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며 콘텐츠 자체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넷플릭스의 혁신 사례가 대표적이다. HDTV, 초고속 인터넷망, 스마트폰의 보급 등 시장 환경이 갖춰지는 동안 넷플릭스는 영상 콘텐츠와 관련해 사용자의 핵심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와 콘텐츠 크리에이션 역량을 구축했다. 즉 다양한 콘텐츠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선택하고 원할 때 즉각적으로 시청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넷플릭스 사용자의 80% 이상이 추천 인터페이스인 Cinematch에서 콘텐츠를 골라 시청한다. 사실 개인별로 취향이 들쭉날쭉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정확도 높게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추천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넷플릭스가 상금 100만 달러를 걸고 경연대회를 진행한 사례는 유명하다. 사용자 경험 고도화를 위해 그만큼 투자와 연구를 많이 했다.

 

가능한 많은 디바이스와 유통 플랫폼에 넷플릭스 서비스를 삽입해 고객 이용 접점을 늘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경쟁 콘텐츠 서비스와의 차별화를 위해 드라마 시리즈를 직접 제작하고 배우 캐스팅 등 기획에 고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콘텐츠 크리에이션의 새로운 성공 유형을 제시했다. 시간표를 미리 편성해놓고 순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파일럿 형식으로 일부를 공개한 후 전작을 한꺼번에 풀어놓는 방식의 편성으로 몰아보기(binge viewing)라는 독특한 시청 경험을 제공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소비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되는 플랫폼과 새롭게 인식되는 시청 형태에 매료됐다. 콘텐츠와 플랫폼을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한 결과다.

 

구글은 텍스트 검색 광고시장을 새롭게 창출하며 성장했다. 이후 구글은 영상 콘텐츠 서비스 사업에 진출했다. 16억 달러를 들여 유튜브(Youtube)를 인수할 때만 해도 애널리스트들은 수익성이 불확실한 무분별한 투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유튜브는 UCC라는 새로운 사용자 참여 콘텐츠의 제작 및 유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구글은 자유로운 참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사용자가 편하게 콘텐츠를 편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제는 다양한 콘텐츠의 유통망으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검색 서비스와 연계돼 새로운 광고 수익을 발생시키는 등 지구상 최대 영상 및 음악 콘텐츠의 유통 플랫폼이 됐다.

 

 

Q 2 콘텐츠 사용 경험에서의 혁신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분야에서 혁신을 통한 성장을 목표로 할 때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업 관점에서 자사 상품의 가치를 정의하는가, 아니면 사용자 관점에서 가치를 정의하고 있는가?

 

사용자 경험(UX) 기반의 시장 전략이 중요한 것은 공급자 시장에서 수요자 시장으로 콘텐츠-서비스-디바이스 생태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수요자 주도 시장에서는 기능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이 콘텐츠 상품의 본질이다. 제품과 서비스에 첨단 기술, 새로운 기능, 다양한 콘텐츠를 구비하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나아가 소비자 경험을 만족시키겠다는 방향으로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양한 기능의 단순한 사용성이나 서비스의 효용이 아니라 사용 자체의 통합적 의미와 경험이다. 당신의 회사가 아직도 기능 위주의 차별화 가치만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물어 보라. 우선 기업의 사명 선언서부터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계 최고의 유통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한 아마존의 사명 선언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적인 회사가 되는 것이다. 한때 미국의 대표 도서유통 기업이었다가 아마존에 밀려 쇠락한 반즈앤노블스의 사명은 최고의 전문 소매사업자가 되는 것이었다. UX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존은 지속적인 혁신과 서비스 확장을 통해 ‘shoptainment’라고 일컬어지는 쇼핑 경험의 정서적 가치를 기획하고 구축하고 평가하고 관리하는 UX 선도 기업이다.

 

 

Q 3 콘텐츠 가치의 차별화는 어떻게 만드는가?

애플과 삼성 사이의 특허 소송은 상당 부분이 사용자 경험 차별화와 관련된 인터페이스 기술과 인터랙션 디자인 방식이었다. 그만큼 애플은 자사 상품의 사용자 경험 차별화 가치를 경쟁사가 모방할 수 없게 비용(개발 비용 또는 특허 분쟁 소송 비용)이 많이 들도록 전략적으로 노력해왔다. 사용자 경험의 차별화가 없으면 소비자들은 콘텐츠나 상품에 차별화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선도 기업의 이미지를 얻는 것도 사용자 경험의 차별화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렇다고 UX 전략을 브랜드 전략과 동일하게 봐서는 곤란하다.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전략은 상품의 가치와 품질에 대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작업이고 사용자 경험 전략은 상품 가치의 품질에 본질과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기술과 마케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특히 IT 제품, 콘텐츠, 온라인-모바일 서비스에서는 사용자 가치가 곧 가격이다. 이제 UX 전략은 기술, 기능, 인터페이스, 서비스, 상품기획, 마케팅에 대한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프레임워크다. 해외에서는 반도체 산업군인 인텔마저도 CXO 조직을 신설해 매끄러운 사용자 접점을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고도의 사용자 경험 구축을 통한 혁신과 지속적 성장을 위해 이를 통합적으로 기획 및 관리하는 조직과 리더를 갖출 필요가 있다.

 

콘텐츠 사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하드웨어 및 서비스와 유기적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점에서 사용자 경험의 고도화가 필수적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은 영상, 음악, 출판,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뿐 아니라 가전, 의료, 자동차,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도 콘텐츠 통합 플랫폼으로서 고도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느냐 못하느냐 여부가 성공의 관건이 되고 있다. 특히 스티브 잡스가 있던 애플처럼 경영자가 UX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제대로 활용할 것인지가 혁신 기업으로서의 성공과 지속적 성장 기반을 가능하게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준호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 junhochoi@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버팔로)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RPI)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정보대학원 디지털문화콘텐츠/UX 트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HCI학회 부회장과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관심 분야는 UX 경영전략과 융합 콘텐츠 기획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5호 Fake Data for AI 2022년 0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