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마이클 포터
편집자주
문휘창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손자와 마이클 포터’를 연재합니다. 고대 동양의 군사전략가인 손자와 현대 서양의 경영전략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전략 모델들을 비교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합니다.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추수감사절(11월 넷째 주 목요일) 다음날로서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쇼핑이 이뤄지는 날이다.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미국의 대부분 소매업체와 백화점들은 연중 가장 파격적인 할인율을 내세워 고객을 유치한다. 얼핏 보기엔 파격적인 세일을 하여 기업들이 손해볼 것 같지만 재고를 빠르게 처분하고 자금 순환을 개선함으로써 적자(赤字)의 폭을 줄이거나 때로는 이를 흑자(黑字)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프라이데이 앞에 ‘블랙’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한편, 미국 중소도시의 작은 유통업체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유통업체로 성장한 월마트는 1962년에 설립된 후 50여 년 동안 ‘매일 저가(Every Day Low Price·EDLP)’라는 상시 세일 전략을 유지해왔다. 이 밖에도 월마트만의 특유한 경쟁전략이 있는데 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다른 유통업체와는 달리 미국 중소도시를 공략함으로써 주요 유통업체와의 경쟁을 피하고 새로운 시장을 보다 쉽게 개척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른 유통업체들이 PB상품(private brand products)을1 싸게 판매하는 것과는 달리 월마트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블랙프라이데이 동안에 업체들이 파격세일을 통해 고객의 소비를 유인하는 판매전략이나 월마트의 독특한 경쟁전략은 <손자병법> 5편의 기정(奇正)사상과 포터의 전략적 포지셔닝으로 잘 설명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손자병법> 5편의 핵심 군사전략인 기정사상을 소개하고 이를 베트남전쟁에 적용해 손자가 제시한 군사전략의 유용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포터의 운영 효과성 및 전략적 포지셔닝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소개하고 이들이 손자의 기정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경영실무자들의 실제 경영에 있어 손자의 군사전략을 정확하게 적용하는 데 유용한 시사점을 정리하겠다.
<손자병법> 5편의 핵심 군사전략: 기정(奇正)사상
<손자병법> 5편의 제목인 ‘세(勢)’는 기세를 의미하는데 이는 일의 진행에 있어서 관련된 요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힘의 작용을 말한다. 손자는 ‘세’를 둥근 돌이 천 길 높은 산에서 굴러 내려 오면서 생기는 막을 수 없는 힘(如轉圓石于千?之山者,勢也)에 비유했다. 싸움에서 세가 형성되면 두려움에 떨던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가 용감하게 싸우게 되고, 군대가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된다. 손자는 4편에서 전쟁을 하기 전에 이미 적을 압도하는 ‘형’에서는 물리적 힘의 우세에 대해서 논했고, 5편의 ‘세’에서는 이러한 힘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강조했다.
4편과 5편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손자병법> 연구자들은 흔히 이 두 편을 자매(姉妹) 편이라고도 부른다. ‘형’은 움직이는 물질, ‘세’는 물질의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형’은 ‘세’의 기초가 되고 ‘세’는 ‘형’이 움직일 때 외부로 드러나는 위력 또는 효과로서 ‘형’과 ‘세’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세’ 편에서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장군의 주관적 능동성을 발휘, ‘세’를 형성해 승리를 이루는 것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논했다. ‘세’를 형성하는 핵심은 ‘기정(奇正)’을 어떻게 잘 조합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손자는 “군대가 적을 맞아 싸우면서 패하지 않는 것은 ‘기정’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三軍之衆, 可使必受敵而無敗, 奇正是也)”라고 했다. 따라서 ‘정’과 ‘기’가 각각 무엇을 의미하고, 이들 간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으며, ‘정’과 ‘기’를 활용하는 데는 어떠한 기본원칙이 있는지를 다음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正)’과 ‘기(奇)’의 개념
<손자병법>은 도가사상을 철학의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립 또는 모순되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는 도가사상의 특징을 많이 볼 수 있다. ‘정’과 ‘기’가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손자병법에서 ‘정’과 ‘기’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 장군의 지휘에 있어서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것은 ‘정’이고, 원칙을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잘 활용하는 것은 ‘기’이며, 군대의 배치에 있어서 적을 견제하는 것은 ‘정’이고, 적을 기습하는 것은 ‘기’이며, 작전방법에서 정면으로 적과 싸우는 것은 ‘정’이고, 측면이나 후방에서 공격하는 것은 ‘기’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이 해석들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기정’을 살펴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정’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이고, 정규적인 방법으로 적과 정면에서 맞서 싸우는 용병법인 반면 ‘기’는 특수하고, 비정상적이고, 비정규적인 방법으로 적이 대비하지 않는 곳에 병력을 집중해 적을 이기는 용병법이다.
‘정(正)’과 ‘기(奇)’의 관계
‘정’과 ‘기’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아군이 ‘기’로 병을 배치했는데 적군이 이를 ‘정’으로 생각하고 견제하면 ‘기’가 ‘정’으로 바뀐다. 반면 아군이 ‘정’으로 병을 배치했는데 적군이 이를 소홀하거나 ‘기’로 여기면 ‘정’이 ‘기’로 바뀐다. 따라서 손자는 “‘정’이 ‘기’를 낳고, ‘기’가 ‘정’을 낳는 것과 같이 ‘정’과 ‘기’가 서로 바뀌는 변화는 마치 둥근 고리가 끝이 없는 것과 같다(奇正相生, 如環之無端)”고 했다. 예를 들면, 삼국지에서 사마의(司馬懿)의 압도적인 위(魏)군을 제갈량이 공성계(空城?)를 이용해 퇴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마의가 제갈량이 일부러 계획한 모략인 것으로 의심해 함부로 모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제갈량은 ‘기’를 사용했는데 사마의는 이를 ‘정’으로 본 것이었다.
손자는 “싸움의 세에는 ‘기’와 ‘정’ 두 가지만 있지만 이들을 잘 이용하면 무궁무진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戰勢不過奇正, 奇正之變, 不可勝窮之也)”고 했다. 즉, 군사작전에 있어서는 고정된 법칙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대 지휘자들은 반드시 전장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정확하게 판단하고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상의 원칙(正)이 현실에서는 다양한 변화(奇)로 나타난다. 손자는 기와 정의 결합으로 만들어내는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소리는 불과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지만 그 요소들을 잘 조합해 생기는 다양한 소리를 사람이 다 구분해 들을 수 없는 것과 같고, 색은 불과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지만 그 요소들의 결합에 의해 생기는 다양한 색은 사람들이 다 식별할 수 없으며, 맛이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지만 그 요소들이 결합해 생기는 다양한 맛을 다 구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聲不過五, 五聲之變, 不可勝聽也; 色不過五, 五色之變, 不可勝觀也; 味不過五, 五味之變, 不可勝嘗也).
‘정(正)’과 ‘기(奇)’의 활용원칙
손자는 “무릇 전쟁의 수행은 정正병으로 적과 대치하고 기奇병으로 승리를 얻는다(凡戰者, 以正合, 以奇勝)”라고 했다. 이는 ‘정’과 ‘기’를 활용하는 일반적인 원칙이다. 손자의 이 말은 ‘정’과 ‘기’ 중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보다는 두 가지가 서로 의존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정’은 ‘기’와 함께 사용해야 하고 ‘기’는 ‘정’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만약 ‘정’이 약하면 ‘기’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고 전쟁에서 전체 국면을 통제하기 힘들다. 반면, 작전에서 정병만 믿고 기병이 없으면 군대 진형의 질서는 정연하겠지만 위력이 없어 승리를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오직 ‘정’과 ‘기’를 잘 조합해야 적이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세를 형성할 수 있다.
기병으로 승리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손자는 세는 맹렬해야 하고 절도는 짧아야 한다는 두 가지 작전 원칙을 제시했다. 세가 맹렬하다는 것을 손자는 “거세게 흘러내리는 물이 암석을 떠내려가게 하는 것(激水之疾,至于漂石者,勢也)”에 비유했다. 물은 본질적으로 유연하고 암석은 단단하고 무겁다. 하지만 물의 흐름이 빠르고 물살이 거세질 때 거대한 ‘세’가 생겨 막고 있는 암석도 쓸어 갈 수 있다. 한편 손자는 절도가 짧은 것을 “사나운 매가 내리꽂듯이 빠르게 날아들어 새의 목을 부러뜨리고 날개를 꺾는 것(?鳥之疾,至于?折者,節也)”에 비유했다. 높은 하늘에서 날고 있는 매가 공중에서 빠르게 내려와 먹이를 낚아갈 때 속도에 따른 충격은 매우 크겠지만 손상을 받지 않고 먹이를 잘 낚아채 갈 수 있는 것은 ‘절(節)’을 교묘하게 운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절’은 박자, 시간을 강조한다. 즉, ‘세’가 실린 공격이 짧은 시간 내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공격시간이 길어지면 병사의 사기가 무뎌지고 기동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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