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tegic Communication
중학생들에게 물었다.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니?” 답이 무엇이었을까? 괴롭히는 친구? 공부하라고 간섭하는 선생님? 아니다. 1등은 ‘부모’였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부모가 중학생들이 평균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라니… 놀라운가? 이유는 더 충격적이다. 부모가 싫은 이유는 흔히 생각하듯 ‘잔소리를 많이 해서’가 아니다.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아서’와 같이 철학적 이유 때문도 아니다. “다 맞는 얘기인데 말을 너무 밉게 해서”라고 한다.
부모의 말이 다 맞는 얘기라는 걸 아는데 싫어하는 아이들의 심리. 이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 있다. 우리는 인간이 이성의 판단을 따르는 합리적 존재라 생각한다. 이성의 존재 때문에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이성적이지 않다. ‘이유는 모르겠지만…’이라면서 하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성에 앞서 힘을 쓰는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서 사람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하는 말이 어떤 메시지인가를 ‘이성과 합리’로 판단하기 전에 ‘감정 운동’이 먼저 일어난다. 결국,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보다 그 내용이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 즉 표현이 더 중요하다. 갈등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별 것 아닌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큰 다툼이 훈훈한 화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갈등이 드러나는 것도, 부드럽게 해결되는 것도 모두 ‘말’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 관리에 필요한 4가지 언어를 기억해야 한다.
1. 질문하라
많은 갈등은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몰라서 생긴다. 이유를 모르니 나 스스로 판단해 ‘소설’을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겨난다. 이를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물어보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해 상대의 입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는 게 갈등 해결의 출발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잘 묻지 않는다. 질문을 하게 되면 상대가 답을 할 동안 말을 하지 못하기에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상대가 말하는 내용은 내가 묻는 것에 대한 답변이다. 결국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상대가 아닌 상대가 말하도록 질문한 사람이다.
그럼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보자. 설계팀의 자료를 받아 고객사와 미팅을 해야 하는 당신. 아침 10시까지 건네받기로 한 자료가 점심시간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 오후 2시가 다 돼 도착한 자료. 내용을 훑어보는데 고객사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다. 화가 난 당신이 설계팀 담당자를 찾아가 묻는다. “일 처리를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만약 당신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뭐가 문제라는 거냐”라고 맞받아 치며 싸우지 않을까?
커뮤니케이션학에선 이런 질문을 ‘부정 질문’이라고 한다. 상대의 행동을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한 상태에서 그 이유를 묻는다. 회의 도중 누군가의 새로운 제안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와 같이 묻는 것도 부정 질문의 하나다. 이런 질문을 받은 상대는 ‘방어 기제’가 작동한다. 그래서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을 옹호하기 위한 변론을 하게 된다. 질문을 통한 생산적 대화가 아닌,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싸움이 될 확률이 커진다.
이를 막으려면 ‘중립 질문’을 해야 한다. 주관적 판단을 버리고 상대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그 제안의 장단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식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대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강화하는 제안으로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설계팀과의 대립 상황에선 어떤 중립 질문이 필요할까? “설계를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라고 물으면 어떨까? 질문을 이렇게 하면 당신은 미처 몰랐던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설계의 방향을 바꿨을 수도 있고, 고객의 요구사항에 큰 결함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알면 소모적 논쟁에서 건설적 해결책 찾기로 대화가 바뀐다.
우리는 흔히 ‘나는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특히 리더일수록 더욱. 하지만 누구도 상대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물어야 한다. 질문, 갈등 해결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다.
2. 경청하라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대화를 한다. 한 사람이 말을 하고 있다면 다른 한 사람은 뭘 하고 있을까? 너무 뻔한 질문이라고? 당연히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란 답이 떠오르는가? 미안하지만 틀렸다. 답은 ‘말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갈등 상황에서 이런 성향은 더욱 심해진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들으며 ‘반박할 거리’를 찾는 게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갈등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장하는 내용이 다른 것도 모자라 서로의 말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란 낙인을 찍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잘 듣는 게 중요하다. 그럼 그 방법은 뭘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듣는 데에도 ‘레벨’이 있다고 말한다. 가장 아래, 하수의 듣기는 ‘배우자 경청’이다. 예를 들어보자.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마침 TV에선 그날의 스포츠 하이라이트가 방송 중이다. TV에 집중하고 있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한다. “오늘 학부모 모임이 있어서 학교를 갔는데 담임 선생님이…” 아내는 한참 동안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말한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찾는다. TV 리모컨이다. 그리곤 TV의 볼륨을 점점 높인다. 여전히 고개는 끄덕이면서. 바로 이게 배우자 경청이다. 듣는 것 같지만 전혀 듣지 않는 것. 갈등 상황에서 이런 모습은 갈등 해결은커녕 갈등을 키울 뿐이다.
이보다 한 단계 나은 것을 ‘수동적 경청’이라 한다. 어느 날 부인이 말한다. “여보, 쓰레기통이 꽉 찼네?” 무슨 말일까? 쓰레기 좀 버려달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어떤 남편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좀 큰 걸 사자고 했잖아. 그리고 분리수거 좀 잘해, 무조건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아내가 “왜” 그 말을 하는지, 상대가 진짜로 말하고 있는 메시지는 관심 밖이고 그저 고막을 울리는 ‘소리’만 듣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들어야 잘 들을 수 있을까? 답은 ‘적극적 경청’에 있다. 적극적 경청이란, 말하는 사람의 느낌, 감정, 생각까지 헤아리면서 듣는 것이다. 조직의 상황으로 생각해 보자. 일이 너무 힘들다며 팀장을 찾아온 부서원. “팀장님, 요새 너무 힘드네요.” 하수인 배우자 경청을 하는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난 더 힘들다. 직장 생활이 다 그런 거지 뭐.” 수동적 경청을 하는 리더는 ‘힘들다’고 말하는 상대의 말만 생각한다. “힘들어? 그럼 휴가 쓰고 좀 쉬어.” 그럼, 적극적 경청을 한다면? “그래, 요즘 힘들지?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야? 아니면 맡은 일이 어려워서 그런 거야? 내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
적극적 경청을 위해서는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상대 말을 듣는 중간에 옳고 그름을 얘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은 갈등을 빨리 해결하려면 듣기보다 해결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라고 말하며 상대의 말을 끊고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상대는 더 이상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의견을 말해봤자 상대가 끝까지 듣지도 않고 미리 결론을 내버릴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들으려면 일단 상대가 말을 계속 이어가도록 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두 번째 방법, 백트래킹(Back Tracking)이 필요하다. 상대의 말에 “그렇군요!” 같은 ‘추임새’를 넣거나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한다는 말씀이시죠?”처럼 ‘바꿔 말하기’가 백트래킹의 기본이다.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상대가 느끼는 감정에 적극적으로 공감만 해주면 된다. 이를 통해 내가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비언어적 경청’이다. 쉽게 말하면 듣는 자세의 문제다. 말하는 상대와 눈맞춤을 하는 것, 팔짱을 끼거나 뒤로 기대지 않고 상대를 향해 몸을 기울여 듣는 것과 같은 작은 행동들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행동이지만 갈등 상대에겐 ‘나에게 집중해 주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는 경청 방법이다.
어떤가? 갈등 상황에서 거창한 답을 줄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이건 무엇보다 어렵다. 사람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기에. 하지만 그래야 갈등 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갈등 대화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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