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만의 기업 생태계 비교’ 국제 세미나 중계

기업 선순환 구조 만들려면 R&D, 점유율, 생산성 패러독스 극복해야

141호 (2013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최윤영(Assumption University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풍부한 노동력과 적극적인 수출정책으로 고도의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다. 1990년대에는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결과 한국과 대만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 2012년을 기준으로 모두 2만 달러를 웃돈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압축성장을 이뤄냈지만 산업 구조는 각기 다르다. 한국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만은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연세대 경영대학 경영연구소와 경기개발연구원은 115일 서울 연세대 상남경영관에서한국과 대만의 기업 생태계 비교를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열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와 린쭝훙 대만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 연구원, 정구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사비우 대만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 연구원 등은 한국과 대만의 기업 생태계의 공통점과 차이점, 전망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한국 기업 생태계의 건강성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 정도다. 한국 중소기업의 평균수명은 더 짧아 10.6년에 불과하다. 결국 기업에는 단기적으로 돈 버는 것보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기업이 건강하고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을까. 두 가지 방법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순환구조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기업 생태계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 미국 시카고의 오헤어국제공항은 인천국제공항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런데 돈은 인천공항에 비해 적게 벌고 있다. 승객 한 사람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쓰는 돈은 평균 49달러인 반면 오헤어국제공항의 승객은 고작 6달러에 그친다. 왜 이럴까. 인천국제공항에는 570개의 협력업체와 35000명의 관련 직원들이 출입국 수속을 15분 만에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탑승객에게 한 시간 좀 넘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40분 동안 쇼핑하고 20분 정도 밥을 먹으며 평균 49달러를 쓰는 것이다. 반면 오헤어국제공항은 아무도 관리해주지 않는다. 빨리 수속을 마쳐달라고 하면 공항 직원들이 화를 내기만 한다. 탑승 수속에 많은 시간 걸려서 수속을 마친 뒤 잘해야 햄버거를 먹거나 커피를 마실 정도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의 빠른 출입국 생태계는 인천국제공항을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 생태계 체계로 만들다.

 

다음으로 선순환구조의 관점이다.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선 자기혁신을 통해 끊임 없이 진화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강건성(robustness)과 틈새시장 창출력(niche creation), 생산성(productivity) 등의 요소를 갖춰야 한다. 강건성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등으로 현재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며 틈새시장 창출력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변화하는 시장에 대한 적응하는 능력을 뜻한다. 생산성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다. 이 같은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기업은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기업은 연구개발에 투자해서 새로운 특허를 얻고 이렇게 취득한 특허로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만들며 생산성을 높여서 수익성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얻어진 이윤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선순환구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선순환구조를 형성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기업들도 많다. 단기적인 이윤에 집착해서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매달리고 연구개발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코닥은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성과에 급급해 아날로그 필름을 이용한 사진기에 집중하다가 설비 전환을 빨리 하지 못해서 결국 문을 닫았다. 기업들이 선순환구조를 이어가지 못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연구개발(R&D) 패러독스와 시장점유율 패러독스, 생산성 패러독스 등 3가지의 패러독스가 실패 이유로 작용했다. 연구개발 패러독스는 기업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에서는 성공했으나 연구 결과물이 시장성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연구원들이 연구성과 자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숱한 특허를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특허가 신제품 개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연구개발 부서가 마케팅부서나 생산부서와 분리돼 시장과 동떨어진 목표만 추구할 때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 다음으로 시장점유율 패러독스(Market Share Paradox)는 판매와 시장점유율 제고에만 집중해서 현재 매출액은 높지만 정작 이윤은 내지 못하는 사례에 해당된다. GM 2000년대 후반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도 대규모 적자를 냈다. GM은 전투적인 노조의 영향으로 과도한 운영비용을 써야 했고 원가관리에도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생산성 패러독스는 단기적으로 생산성과 수익성 개선에는 성공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에 소홀해서 이후 성장을 이어가지 못한 사례에 해당된다. LG전자는 2008년 생산성 향상에 따라 28855억 원의 수익을 냈으나 스마트폰 개발에 실패해서 2010년 이후 수익성이 대폭 줄었다.

 

글로벌화와 중국효과

린쭝훙 대만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 연구원

 

대만인이 중국에 가면 호적을 다시 얻는다.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은 80∼1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대만과 중국을 오가면서 몇 달씩 체류하는 순환인구까지 고려하면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이 20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 20년 동안 대만의 산업구조 등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양안 지역의 경제 통합으로 인한중국효과. 중국의 경제 개혁 및 개방 조치 이후 대만의 노동집약적 중소기업이 중국으로 대거 이동했다. 그 결과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1990 6%에서 2010 36%로 늘었다. 1992년부터는 대만 자본이 중국에 집중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대만의 대중국 투자는 1995년 전체 대외투자의 45%에서 2005 71%로 증가했다. 2010년 대만 정부가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하면서 대중국 투자는 81%까지 올라갔다.

 

중국효과는 대만의 전통적인 산업기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먼저 제조업체들이 대부분 해외로 이전했고 관련 산업의 창업기회가 크게 줄었다. 중산층도 쇠퇴했다. 대만 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대만 전체 기업 대비 신규 창업비율은 1992 13%에서 2008 6% 정도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폐업비율은 3%에서 9%로 증가했다. 창업자의 투자 문턱은 갈수록 높아졌다. 과거 대만인들은검은 손에서 보스로바뀐다고 했다. 공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창업해서 자본가로 바뀌는 계급 이동의 현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 중국과 관련된 또 다른 이슈는 바로 다국적기업의 이전가격(price transferring)이 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대만의 무역은 대만 기업이 수주해서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구미지역으로 제품을 파는 트라이앵글 구조다. 그런데 중국의 기업세율이 대만보다 높기 때문에 대만의 모회사는 중국 자회사의 일부 영업수입을 모회사 장부로 이전해서 탈세 이익을 얻고 있다. 그 자금을 다시 중국 자회사에 투자해서 이를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하면 대만에서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부상의 영업수입은 대만의 국내총생산(GDP)을 허위로 부풀릴 뿐만 아니라 대만의 주주와 경영자들의 주식 배당금과 소득은 올리는 반면 대만 국내 소득과 소비, 노동자 임금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해서 소득 불평등 현상을 악화시키고 있다.

 

기업 생태계의 변화와 성과

정구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최근 한국과 대만의 기업을 분석한 결과 기존 고정관념을 많이 수정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대만은 중소기업, 한국은 대기업(재벌)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형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만은 이미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었고 한국에도 일부 성공적인 중견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대기업을 앞지르고 있다. 또 대만에서는 창업이 활발한 반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대만보다 한국에서 창업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창업률은 대만보다 높았다. 과거 대만은 기업의 관계가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반면 한국은 수직적이며 폐쇄적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 기업도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년간 대만에서 창업활동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 3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산업과 기업이 기술 및 자본집약적으로 바뀌면서 누구나 쉽게 창업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이다. , 창업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두 번째는 대만 경제가 저성장에 접어들면서 사업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다. 세 번째는 잠재 창업자들이 대만이 아닌 중국에서 창업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만과 한국의 기업 생태계 성과는 어떨까. 한국은 일부 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웠고 변화에도 적응했으나 대부분의 기업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생태계가 활력을 가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만의 기업 생태계는 중국의 생태계와 통합되는 과정이므로 대만 자체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대만의 기업 생태계의 분위기만을 본다면 공동화를 경험하고 있고 활력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 한국과 대만의 기업 생태계를 비교해본 결과 두 나라가 모두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한 현실은 상당히 달랐다.

 

대만의 문제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심화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대만 경제활동의 활력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대만과 중국 경제가 단일경제가 됐을 때 대만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연구개발과 고부가가치 업무는 대만에서 하고 생산과 영업 등은 중국에서 하는 것이다. 또 대만이 중국 경제에서 하나의 경제적 중심(business hub)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사업서비스 산업을 키우면서 동시에 관광 등 새로운 서비스 산업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략 모두 대만 인력의 고급화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두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지난 50년 동안 한국 경제의 주축 역할을 했던 재벌을 대체할 새로운 기업 모델이 나와야 하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전문화된 기업이 성장해야 하고 경영에서는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 체제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또 하나는 크게 성공하고 있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기업 생태계에서 지배자가 아니라 주춧돌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기업 생태계가 건전하게 발전하도록 공진(co-evolution)의 모델이 나와야 한다. 케냐와 탄자니아에는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라고 커다란 초원이 있다. 두 초원은 서로 연결돼 있어서 기후나 다른 자연 조건에 따라서 동물들이 대 이동한다.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거대한 영양의 무리다. 영양은 매우 평화롭게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지만 사자나 표범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시속 60∼80㎞로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사자는 굶지 않으려면 영양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사자와 영양은 먹고 먹히는 살벌한 관계지만 동시에 둘 다가 강해지는 관계이기도 하다. 먹이사슬 때문에 사자와 영양은 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자와 영양의 관계는 공진화(co-evolution)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사자와 영양처럼 공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반면 대만의 기업 생태계는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초원처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회생하는 대만 중소기업

사비우 대만 중앙연구원 사회학연구소 연구원

 

전후 대만 경제발전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문성을 가진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한 지역에 분포하면서 서로를 돕는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 덩어리가 돼서 이른바대만의 기적의 초석을 놓았다. 일본과 한국, 미국, 프랑스 등의 중소기업과 비교할 때 대만의 중소기업은 그들이 직접 수출에 참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1980년대 신발과 의류, 자전거, 기계 등의 제품부터 1990년대 이후 IT산업까지 세계시장에서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일부 변화가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만은 다국적기업이나 일부 대기업이 전체 산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토착 중소기업들이 역동적인 산업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생산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국제적인 하도급 업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공동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직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생산으로 역할을 바꿔서 세계시장에서 강력한 수출업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대만의 중소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제조업체들이 생산라인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다른 분야의 제조업체들과 네트워크를 맺는 네트워크 중심생산(network-based production)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둘째는 대만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국제 하청업자로 국제적인 생산네트워크에 참여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셋째는공동화 현상(hollowing out)’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만의 중부지역은 현재도 기계도구산업과 자전거 및 관련 기계부품 산업의 중심지다. 컴퓨터 산업의 조립생산라인이 대거 중국으로 옮겨갔음에도 불구하고 신츄(新竹)지역은 아직까지도 IT 산업과 반도체산업 등의 중심지 역할을 유지하고 있다. 이 밖에도 대만의 중소기업에서 주목할 점은 일부 기업들이 중국과 대만에 분업구조를 만들어서 대만에서는 고품질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량 생산을 추구했고 중국에서는 저렴한 제품의 대량생산에 집중한 것이다. 대만의 자전거 수출은 1998 1000만 대에 달했으나 2003 400만 대로 떨어졌다. 2010년에는 수출량이 다소 늘어 500만 대를 수출했다. 대만의 자전거 수출량은 과거와 비교할 때 절반 정도로 크게 줄었지만 수출액은 오히려 증가했다. 1998년 수출된 자전거 1대의 가격은 평균 95달러에 불과했으나 2012년 수출 자전거는 1대당 400달러에 팔렸다. 업체들은 중국과 베트남에 저가의 자전거의 생산라인을 뒀으나 대만에서는 계속 값비싼 자전거를 생산하면서 대만이 여전히 자전거 중심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정리 =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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