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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과 기(氣)

한계를 뛰어넘는 독창성, 자신감에서 나온다

이병주 | 133호 (2013년 7월 Issue 2)

 

 

“여기서 여덟 번이라, 생각조차 못한 일이죠.”

 

지난 69일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선수가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에서만 여덟 번째 우승이었다. 한 메이저 대회에서 여덟 번 우승한 기록은 테니스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2주 후 열린 올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그는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것도 세계 랭킹 135위의 무명 선수에게 졌다. 심지어 경기 후 상대 선수는 이 경기 DVD를 구매해서 집에 영구 보관하겠다고까지 했다. 한 곳에서는 우승, 다른 곳에서는 어이 없는 1회전 패배. 나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달이 남미로 간 이유

나달은 6월까지 프로 투어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뒀지만 올 초만 해도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7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선수 경력에서 가장 긴 공백기였다. 워낙 공백기가 커서 연습을 시작했을 때도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2월에 나달은 복귀를 위해 칠레로 향했다. 칠레는 처음이었다. 칠레 대회는 프로 테니스 투어 중에서도 소규모로 주로 남미 선수들이 참가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이다. 칠레를 시작으로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펼쳐지는 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나달이 남미로 향한 이유는 이들 대회가 모두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중동, 미국에서 열리는 대규모 토너먼트는 하드 코트 대회여서 피한 것이다. 독특한 스타일의 테니스를 하는 나달은 클레이 코트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왔다. 클레이 코트의 통산 승률이 93%로 부동의 역대 1위다. 클레이 코트의 황제로 불릴 만하다. 프랑스오픈 역시 유일하게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다.

 

긴 공백으로 떨어진 경기력을 재빨리 끌어올리기에는 클레이 코트가 제격이었다. 비록 작은 대회지만 우승을 하면 승부에 대한 확신이 생겨 컨디션 회복이 더 빠를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2009년에도 나달은 무릎 부상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두 달 반을 쉰 후 투어에 돌아왔는데 하드 코트 대회로 복귀했다. 11개 대회에서 우승은 한 번도 못했으며 랭킹 10위권 이내의 선수들과 대결한 경기에서 211패로 대부분 패했다. 그때 나달은 자신의 플레이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이듬해 클레이 코트에서 펼쳐지는 대회에 가서야 비로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기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 칠레 대회에서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브라질과 멕시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자신감을 충전한 나달의 경기력은 급속도로 회복됐다. 3월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하드 코트 대회에서 전성기 때 기량으로 우승했다. 이후 유럽에서 펼쳐지는 클레이 시즌(프로 테니스 투어 중 대규모 클레이 코트 대회가 모여 있는 기간) 동안, 프랑스오픈까지 다섯 개의 큰 대회에서 한 번 준우승하고 모두 우승했다. 윔블던 전까지 출전했던 9개 대회에서 모두 결승에 올랐고 그중 7번 우승했다. 언론에서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화려한 복귀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잔디에서 벌어지는 윔블던은 달랐다. 잔디 코트에서는 공이 낮게 깔리기 때문에 무릎을 더 굽혀야 한다. 무릎이 안 좋은 나달에게 윔블던은 특히 부담스러웠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나달은올해 윔블던은 어느 해보다 특히 힘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윔블던의 첫 경기에서 나달은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에서는 무릎 부상을 패배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프랑스오픈과 이전 대회에서도 절뚝거리면서도 멋진 플레이를 펼쳤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클레이 코트에서 최강이라는 자신감은 그의 플레이를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윔블던에서는 이런 자신감이 없었다.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달을 위축시켰고 1회전 탈락을 가져왔다.

 

자신감이 있어야 독창성 발휘

자신감의 유무가 나달의 플레이를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감은 창의성의 토대가 된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자신감이 있어야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다. 독창성은 남 다름을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바꾼 천재들은 어린 시절 괴짜가 많다. 그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괴짜 성향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강점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창의적인 업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나달 역시 독특하고 창의적인 테니스를 구사한다. 그의 테니스는 모방이 어렵다. 그는 독특한 타법을 가지고 있어서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탁월한 성적을 기록한다. 나달은 공의 방향과 라켓이 거의 일자가 될 정도로 극단적으로 빗겨 친다. 때문에 그의 스트로크는 분당 6000번 회전하는 강한 톱스핀(topspin)을 만들어낸다. 보통 선수들의 서너 배라고 한다. 톱스핀으로 친 공은 투수의 변화구처럼 높이 날아가다가 공기를 긁어 뚝 떨어진다. 네트에 걸리거나 라인 바깥쪽으로 나갈 확률이 적기 때문에 에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톱스핀은 공을 비스듬히 때리는 것이므로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나달은 공에 가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근력을 강화해 안정적이면서도 시속 160㎞의 강력한 공도 칠 수 있게 됐다. 강력한 톱스핀을 구사하기 때문에 범실이 다른 선수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그래서 컨디션이 나쁠 때나 부상을 당했을 때도 실수가 나오지 않아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달은 포핸드만 잘 치는 선수였다. 스페인 마요르카섬의 소도시 마나코르에서 네 살에 테니스를 시작한 나달은 삼촌에게 지도를 받았다. 삼촌은 나달이 포핸드를 다르게 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더욱 연습시켰다. 그 덕에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한 포핸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됐다. 발이 빠른 나달은 백핸드 쪽으로 공이 오더라도 두 걸음 더 뒤로 뛰어 포핸드로 공을 치곤 했다.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2008년까지만 해도 나달이 백핸드 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보통 백핸드가 약하면 백핸드 연습을 많이 하지만 나달은 잘하는 포핸드에 집중했다. 상대방 선수들이 나달의 백핸드를 공략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나달의 정교하고 강력한 포핸드를 받아내는 데 급급해서 백핸드 쪽으로 공을 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강점을 더욱 발전시켜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역사상 가장 독특한 테니스를 구사하는 선수가 됐다.

 

나달이 14세 때 스페인 테니스 연맹은 그의 가능성을 보고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나달에게 바르셀로나의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최신 기술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대부분의 스페인 유망주들이 여기에 모여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코치이자 삼촌인 토니 나달(Toni Nadal)은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반드시 미국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재능이 있고 꾸준히 노력하면 어디든 상관 없어요. 지금 생각하면 잘한 선택이었어요.”

 

나달이 바르셀로나에 가서 남들과 똑같은 테니스를 배웠다면 지금처럼 창의적인 테니스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뛰어난 선수는 됐겠지만 테니스 역사에 기록되는 선수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독특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도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기본이다. 자기확신이 있어야 생각의 한계를 넘어 창의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애플은 벤처기업일 때도 IBM 같은 거대기업을 무시하며 그들의 제품을 조롱했다. 만약우리가 IBM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회산데라거나어떻게 자본과 기술이 풍부한 IBM과 경쟁하지라고 생각했더라면 애플은 컴퓨터 산업을 뒤바꾼 과감한 제품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강점을 발전시켜 독창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자신감이 없으면 전략적 자유도가 현저히 줄어든다. 그러므로 창조는 머리가 아니라 배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리는 남들에 비해 뒤처진 약점을 고치는 데 집중했다. 선진기업을 따라 하던 시절에는 약점을 수정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고 자신감보다는 모자란다는 질책이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게 잘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지금은 내가 지닌 강점을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다. 남들과 달라야 앞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독특한 전략의 실행을 위해서도 자신감은 필수적이다. 독특한 전략일수록 직원과 주주, 소비자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스스로를 믿어야 주변 사람들도 확신을 갖는다. 유능한 마케터들이 하는 말이 있다. 제품을 파는 사람보다 자기를 파는 사람이, 자기를 파는 사람보다 자기를 사는 사람이 더 고수라는 얘기다. 파는 사람 스스로 강하게 믿으면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자기를 사는 사람, 즉 자신을 믿는 사람이 최고의 설득가이며 실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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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주capomaru@gmail.com

    DBR 객원 편집위원

    필자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LG경제연구원에서 창의성, 혁신, 마케팅 관련 연구와 컨설팅을 수행했다. 여러 벤처캐피털에서 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스타트업 투자와 보육, 성장을 도왔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촉』, 『3불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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