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칼 융은 인격이 발달하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보편적이고 집단적인 심리와 다른 개별적이고 독특한 심리를 가진 자아로 발전하는 것이 인격 발달의 핵심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분석이 개인이 아닌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기업의 발전 과정 역시 개성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무척 흥미로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 줄리언 버킨쇼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조직이 색다르고 일관성 있는 믿음 체계를 갖는 것이 개성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개성화란 그저 독특하거나 특이한 성격을 갖는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치열한 학습 과정을 통해 기본 소양을 갖춘 다음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화가들이 기본적인 데생 능력을 갖춘 후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과거에 알지 못했던 그림이라도 피카소나 클림트의 작품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모두 개성화 덕분입니다.
개성화에 성공하기까지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까지 많은 조직들은 개성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사명(mission)을 보면 쉽게 개성화 수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비즈니스위크> 기고를 통해 “300여 명의 CEO들을 만나본 결과 60%가 제대로 된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갖고 있지 않았고 나머지 대부분도 무의미한 말들로 가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약 기업의 사명(mission)이 ‘매년 20% 성장’과 같은 숫자로 된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이거나 ‘업계 1위가 되겠다’는 식의 성과 지표라면, 혹은 ‘최고의 품질로 고객 가치 극대화’ 같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언어로 채워졌다면 개성화 단계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수치 목표들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돈이나 지위 같은 ‘수단’을 활용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지 못한 조직에 고객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애정을 갖기 힘듭니다.
반면 개성화에 성공한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IBM은 더 똑똑한 지구를 만들고 싶어 하며, 나이키는 운동선수들에게 혁신과 영감을 선물하고 싶어 하고, GE는 지구상에서 가장 풀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개성화를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 모두 기본적인 가치 창출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여기에 삶을 살아가는 이유, 삶의 목적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더해져야 합니다. 경영 사상을 선도한 학자들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입니다. DBR이 주관한 동아비즈니스포럼 2012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마케팅 3.0 및 성장 전략과 관련한 다양한 견해를 피력한 코틀러 교수의 혜안 속에서 기업과 조직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코틀러 교수는 기존 전략과 마케팅 방법론이 종말을 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이해관계자 전체를 고려하는 관점의 전환을 주문했습니다. 또 구체적인 성장 방법론도 제시했습니다. 우리 기업과 브랜드의 개성화를 위한 빛나는 조언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 가장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인 마케팅이란 학문의 사실상 창업자 격인 거장의 지혜와 통찰을 음미하면서 올 한 해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김남국 편집장·국제경영학 박사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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