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Z Consulting

이상적 해결책은 골칫거리 ‘유해자원’에서 나온다

112호 (2012년 9월 Issue 1)




편집자주

트리즈(TRIZ)는 창조적 문제 해결 이론(Theory of Inventive Problem Solving)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모든 발명 과정에는 공통되는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믿음하에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B분야에서의 문제 해결책을 참조해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TRIZ입니다. 쉽게 말해재발명을 통한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간 TRIZ 컨설팅 외길을 걸어 온 송미정 박사가 TRIZ를 활용해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실전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신개념 LNG 운반선인 ‘sLNGc(sealed LNG carrier)’, 공동현상(cavitation)을 적용한 어뢰쉬크발(Shkval)’, 고급 디저트 와인의 대명사인 아이스와인….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던 유해 자원을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으로 적극 활용한 혁신 사례들이다. 원래 기체 상태였던 것을 냉각 과정을 통해 액화시킨 LNG의 경우 운송 시 다시 가스로 증발하는 문제를 해결한 게 sLNGc이고, 큰 소음을 만들어 잠수함을 적들에게 노출시켜 문제가 되는 공동현상을 아예 적들을 공격하는 어뢰에 적용한 게 쉬크발이다. 아이스 와인의 경우 얼어 버려 못 쓰게 된 포도에서 얼지 않은 포도 부위에 집중, 상품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당도가 높은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유해 자원은 결코 창조적 혁신의 걸림돌이 아니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안은 종종 골칫거리였던 유해한 자원에서 나올 때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는 원래 채굴될 때 가스 상태로 채굴되는 에너지 자원이다. 석유는 분자의 크기가 큰 것들이 많이 섞여 있어 끈적끈적한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반면 천연가스는 분자의 크기가 작은 기체다. 기체 상태 그대로 가스를 보관, 운반하려면 부피가 너무 크다는 단점 때문에 보통 액체 상태로 변환해 저장을 한다. 천연가스를 액화시키기 위해서는 통상 영하 160도까지 온도를 내린다. 냉각 과정을 통해 기체의 부피가 수백 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보관과 운반이 용이해진다.

 

그러나 천연가스를 액화시키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원래 가스 형태였던 만큼 온도 변화에 따라 액체로 만든 후에도 다시 가스로 돌아가기 쉽다. 대부분의 LNG 선박은 화물적재 운항 시 시간당 4∼6톤 정도의 증발 가스(boil off gas)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이에 따라 LNG를 보관하는 탱크의 압력도 상승하게 된다. 가스(기체) LNG(액체)의 부피 차이는 무려 500배 이상이다. 증발 가스가 많아지면 탱크 폭발 위험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 LNG선에선 효율이 좀 떨어지더라도 증발 가스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엔진 및 제반 장비들을 장착해 증발 가스를 처리하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증발 가스 대부분을 태워 없애야 했다.

 

이 상황을 트리즈 사고법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단계 모순인식:기화된 LNG 가스를제거하면(approach) LNG 탱크의 폭발을 막을 수 있으나(good), 팔아야 할 LNG를 태워 버리니 경제적인 손실이 크다(bad).

 

2단계 이상해(理想解) 설정:모순이 없어진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기화된 LNG 가스를제거(approach), LNG 탱크의 폭발을 막을 수 있으면서도(good→better), 팔아야 할 LNG를 태워 버리지 않아서 경제적인 손실이 없으며(bad→good) 시스템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 동작하는 X가 있는 상태다.

 

3단계 자원분석:문제의 근원은 다름 아닌 기화된 LNG. 이를 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자원으로 활용한다. 다른 요소 역시 파악해 자원 분석표에 정리해 두고 해결안 도출에 활용한다면 금상첨화다.

 

4단계전화위복을 이용한 자원 변환:크게 4차례에 걸쳐 이상해로부터의 문워킹(Moonwalking·이상적인 해답을 설정해 놓은 후 역발상을 통해 거꾸로 해결책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골칫거리인 기화된 가스가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조건은 없을까? → 기화된 가스가 기화 자체를 억제하면 좋겠다.

 

2) 기화된 가스의 성질 중 어떤 속성이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작용할까? → 기화된 가스의 압력이 높아지면 기화 자체를 억제할 수 있다.

 

3) 기화된 가스가 유용한 일을 할 때 다른 주변의 자원들 중 도와줘야 하는 자원은 무엇인가? → LNG 탱크다.

 

4) 이때 다른 주변의 자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도와줘야 할까? →LNG 탱크가 충분히 튼튼해서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LNG의 증발가스

실제로 이러한 개념을 구현해 LNG 증발 가스가 생기지 않도록 한 운반선 ‘sLNGc(sealed LNG carrier)’가 존재한다. 기존 LNG운반선이 증발 가스를 단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선박 설계가 됐다면 신개념 운반선의 경우 유해한 증발 가스의 압력을 유익하게 활용해 LNG 증발 가스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억제했다. , 기존 LNG선에선 배출되는 증발 가스를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연료로 사용했다. 선박 연료로는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LNG를 연료화시키기 위한 엔진 등 제반 장치들에 대한 투자도 필요했다. 그나마 엔진을 쓰지 않는 항구 입출항과 운항 통과 시, 터미널 대기 시 등에는 아까운 LNG를 그냥 태워 없애버려야 했다. 이에 따라 경제적 손실은 물론 이산화탄소 배출로 환경 오염까지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반면 신개념 LNG운반선은 마치 압력을 높여주면 끓는 온도가 높아져 액체의 증발을 억제하는 압력밥솥처럼 화물창 압력을 높여 LNG의 자연증발을 원천적으로 막아준다. 이에 따라 선박의 연료도 LNG보다 더 효율이 높은 연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배출되는 LNG도 없어져 낭비를 줄이고 환경오염도 감소시킬 수 있다.유해한 자원을 단지 피하고 제거하려고만 했다면 이러한 신개념 운반선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가장 이상적인 해결안은 종종 골칫거리였던 유해한 자원에서 나올 때가 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발명의 원리를 적용할 때에는 문제를 만드는 자원에 지혜를 집중하는 게 트리즈의 자원 선택 전략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를 직접적으로 야기하거나 혹은 해당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유해하다고 하는 자원을 잘 이용한 사례를 또 하나 더 살펴보자.

 

공동현상(cavitation)을 역으로 활용한 어뢰

물속의 어군 탐지나 해저 지형, 숨겨진 보물선의 존재 여부를 알아내는 데 가장 유용한 자원은소리. 많은 해양 생물체들이 상대방의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소리로 상대의 크기나 상태를 가늠한다. 깊은 바닷속에서 은밀하게 이동해 적을 공격하는 잠수함을 찾아내는 거의 유일한 방법도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잠수함에서 가장 큰 소음원은 프로펠러, 더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펠러가 돌아갈 때 주위에 생기는 공기방울이다. 프로펠러가 고속으로 회전하면 주변의 유체 속도가 높아지고 베르누이 원리(Bernoulli’s principle·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에 따라 압력이 낮아진다. 프로펠러 주변의 압력이 점점 낮아져 포화압력(saturation pressure·증기와 액체가 어떤 온도, 어떤 압력하에서 평형 상태를 유지할 때의 압력)보다도 낮아지면 프로펠러 주변의 물은 액체에서 기체로 바뀌게 된다. 물이 수증기로 바뀌면서 공기방울이 생기게 되고 이렇게 생겨난 수증기가 터질 때 큰 소음이 발생한다. 이 공기방울 폭발 현상을 공동 현상(cavitatioin)이라고 부른다.

 

공동 현상에 따라 발생하는 소음은 잠수함의 존재를 노출시키는 주범이 된다. 잠수함의 결정적인 약점인 공동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프로펠러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상적인 연구 방향과 정반대로 공동현상이라는 유해한 현상을 도리어 어뢰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사용해 획기적인 무기를 개발한 사례가 존재한다. 바로 러시아 과학자들이 개발한 초고속 어뢰쉬크발(Shkval)’이다.

 

어뢰는 잠수함이나 군함이 물속의 적을 공격할 때 쓰는 무기로 쉽게 말해 물속을날아서가야 한다. 물속을 날아서 가는 만큼 대기 중을 날아가는 미사일이나 대포에 비해 속도가 느려서 대략 100/h 이내의 속도를 보인다고 한다. 선박이나 잠수함이 어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영화 속 설정이 가능한 것도 이처럼 느린 어뢰의 속도 덕분이다.

 

그런데 만약 어뢰의 속도가 일반적인 속도보다 5배 정도 빠르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잠수함이나 군함도 그 어뢰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일반적인 어뢰는 추진을 위한 가스를 진행 방향의 후면으로만 100% 분출시킨다. 반면 쉬크발은 진행 방향 앞쪽으로도 추진 가스의 10% 내외를 분출시킨다. 전면으로 분출된 가스는 공동 현상에 의해 공기층을 추진부 전면에 만들어 주며 추진체 표면에 가해지는 마찰력을 극소화시킨다. 결국 기존 어뢰가 물속을 헤엄쳐 가야 했다면 쉬크발은 마치 물속에서도 공기 중을 날아가는 효과를 갖게 되고 이 때문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확보할 수 있다.

 

일반적인 어뢰를 디자인할 때에는 유해한 공동 현상을 역이용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통상적인 연구개발자라면 가능한 한 이러한 현상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관성에만 젖어 있는 이들은 초고속 어뢰를 개발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러한 어뢰의 개발 여부는 실제 교전 상황에서 어른과 어린이의 싸움처럼 일방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군사무기 체계에 있어서도 혁신이란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와인에서 찾아보는 유해 자원의 선용

와인 산업에 있어서도 유해하다고 생각됐던 여러 도전들을 유익하게 바꾼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유명한 사례가 바로 아이스 와인이다.

 

아이스 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 매우 고가에 판매된다. 이 와인의 유래와 관련해선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와인을 키우던 한 농가에 서리가 내려 포도가 얼어버렸는데 이 포도가 아까워 얼지 않은 부분만 골라 와인을 만들었더니 당도가 대단히 높은 아이스 와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언 포도라는 유해한 자원의 잘 보이지 않는 속성 중 하나는얼지 않은 부분이다. 이 얼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있는 부위에는 포도의 당분이 모두 몰리게 된다. 소금물을 얼릴 때 언 부분은 소금 성분이 줄어들고 얼지 않은 부위에 소금 성분이 농축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아이스 와인을 처음 만들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학 지식이 있어서 일부러 포도를 얼린 후 얼지 않은 부분으로만 와인을 만든 건 아닐게다. 그러나 얼어 있는 포도의 얼지 않은 부분을 유익하게 활용하고자 노력한 덕택에 결과적으로 가장 당분이 많이 농축된 부분을 선택한 결과가 됐고 이를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유해 자원을 의도적으로 활용한 사례만이 훌륭한 혁신 사례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점은 일견 골칫거리로만 보이는 유해한 자원들이 결코 창조적 혁신의 걸림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준비된 마음과 자세를 가진 이들에게는 이것이 다른 이들은 전혀 따라올 수 없는 디딤돌의 초석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발생한 문제 상황을 가장 유리하게 변환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때로는 훌륭한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미정 삼성전자 VIP센터 부장 triz_institute@hanmail.net

필자는 KAIST에서 화학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트리즈협회 공인 Level 5 전문가(TRIZ 마스터)로 세계 최초의 여성 마스터이자 전 세계 89번째 마스터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300건 이상의 연구 개발 과제 컨설팅을 수행했으며 70여 건 이상의 국제 특허를 발명했다.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을 지냈다. 저서로 <회사를 살리는 아이디어 42가지(공저)>가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50호 Smart Worcation 2022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