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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도 못꺾은 창업자의 위대한 집념

김선우 | 106호 (2012년 6월 Issue 1)


안 깨지는 (화장품) 뚜껑을 만들 수 없을까….” - 구인회 LG그룹 창업자

 

포목점으로 사업을 시작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1907∼1969)가 크게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화장품럭키 크림덕분이었다. 여성들의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구를 일찍이 간파한 구 회장은 락희화학공업사를 차려 해방 직후인 1947 1월부터 크림 생산을 시작했다. 먹을 것조차 귀한 시절이었지만 이 크림 제품은 생산이 수요를 못 따라갈 만큼 전국적인 히트 상품이 됐다. 계속된 연구개발로 크림의 품질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던 덕분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크림 통의 뚜껑이 잘 깨진다는 점이었다. 내용물의 품질은 훌륭했지만 겉포장 때문에 물건의 평판이 떨어질 판국이었다. 도매상들은크림 통 절반의 뚜껑이 깨져서 크림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팔 수가 없다고 항의하기 일쑤였다. 구 회장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안 깨지는 뚜껑을 입버릇처럼 되뇌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구 회장은 미군 부대서 흘러나온 가볍고 깨지지 않는 크림 통 뚜껑을 만나게 됐다. 플라스틱이라고 불리는 합성수지였다. 구 회장은바로 이거다하며 무릎을 쳤다. 그때부터 구 회장을 필두로 락희화학 사람들은 플라스틱 생산에 사활을 걸었다. 플라스틱 사출성형기를 구입하기 위해 구 회장은 그때까지 모은 돈 3억 원을 투자하는 모험을 하기에 이른다. 더군다나 때는 1951. 한국전쟁이 한창인 때였다. 전쟁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 재산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의 집념은 강했다. 친한 친구였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찾아와 공동 출자로 원당을 수입하자고 했을 때도나는 기왕에 결심한 바가 있어 생산업에 전념할 테니 이 형은 무역업을 해보소라며 정중하게 거절을 했을 정도다. 결국 1952년 구 회장은 플라스틱 생산에 성공하고 크림 통 뚜껑뿐 아니라 빗과 비눗갑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제품들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렸고 이때부터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한 LG그룹의 얼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깨지지 않는 크림 통 뚜껑을 만들어 보겠다는 작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구 회장의 집념은 전쟁 통에도 국내에 플라스틱 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 셈이다. 후대에 크게 성공한 사업들 중에도 이처럼 사소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예가 많다. 미국 DVD 대여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넷플릭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블록버스터에서 DVD를 빌리곤 했던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어느 날 DVD를 반납할 시한이 6주나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연체료는 5만 원 수준이 돼버렸다. 헤이스팅스는 DVD 대여점이 연체료를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신 헬스클럽처럼 월정액 사용료를 내고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기 싫을 때 가지 않듯 원하는 때 반납을 할 수 있는 DVD 대여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헤이스팅스가 이러한 모델을 토대로 만든 DVD 대여 업체 넷플릭스는 대성공을 이뤘다. 반면 기존 모델을 고수했던 DVD 대여점 블록버스터는 파산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필터 없는 진공 청소기와 날개 없는 선풍기로 유명한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도 문제의식 덕분에 창업에 성공했다. 진공청소기의 종이 필터를 교체하다 날리는 먼지에 짜증이 난 다이슨은 필터가 없으면서도 흡입력이 강한 청소기를 만들기로 작정한다. 1979년부터 시제품 5000여 개를 만드는 시행착오 끝에 다이슨은 결국 먼지를 공기와 원심 분리해 깨끗한 공기를 배출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1993년 출시된 이 청소기는 2년 만에 영국의 베스트셀러 진공청소기가 됐다.

 

이들 사례는 모두 작은 문제의식이 위대한 기업 창업의 원동력이 됐음을 보여준다. 구 회장이 럭키 크림 자체의 품질만 믿고 깨지는 크림 통 뚜껑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LG그룹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한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 모두에게 발명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 회장은 깨지는 크림 통을 문제의식을 가지고 봤고 깨지지 않는 크림 통을 집념을 가지고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LG그룹을 키워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필자는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인문지리학을 전공하고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200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산업부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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