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인문 고전 강독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은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샌프란시스코만(灣)의 작은 섬 앨커트래즈, 현재는 관광명소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재정수입을 늘려주고 있지만 한때는 철옹성 감옥이 있던 곳이다. 악명 높은 마피아 보스 알카포네도 이곳에서 형을 살았다.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 <일급살인>은 앨커트래즈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배고픔 때문에 5달러를 훔친 죄로 헨리 영이 앨커트래즈에 수감된 것은 17살 때다. 앨커트래즈는 원래 흉악범들만을 관리하는 감옥이었으나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헨리 같은 경범죄자들도 수용했다. 고아였던 헨리에게는 부양을 책임져야 할 여동생이 있었다. 그 때문에 가담한 탈옥 시도는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 된다. 철옹성 앨커트래즈의 명예를 실추시킨 괘씸죄로 어린 헨리는 특별 관리대상이 되고 이후 3년을 독방에 감금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따사로운 햇볕을 쐴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단 하루, 크리스마스날뿐이다. 외로움과 공포에 그는 점점 미치광이가 돼간다. 독방생활이 끝나던 날 그는 환청에 사로잡힌 채 부소장을 재소자용 스푼으로 찔러 죽인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찾아온 신출내기 국선 변호사에게 헨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묻는다. “5달러 훔쳐 본적 있어?” 어릴 적 아버지의 지갑에서 푼돈을 훔친 경험은 누구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는 않는다. 헨리는 나직이 말을 이어간다.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 둘 다 혼자고 나이도 비슷해. 내가 만약 너의 집에 살고 우리가 어릴 때 바뀌었다면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었을 거야. 네가 독방에 있었다면 나처럼 여기 앉아서 똑같은 걸 묻고 있겠지.” 감옥이라는 제도가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대신 또 다른 범죄의 온상이 된 셈이다. 제도의 부조리가 만든 살인에 법정은 과연 일급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
철학사의 인물 중 감옥 개혁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이를 꼽으라면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사설 감옥을 설립하려다 파산했다. 그래도 수감자들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만으로도 감옥을 운영할 수 있다는, 다소 공상적인 생각만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에 해를 가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또 다른 사회적 비용손실이 뒤따라서는 안 된다는 신념과 더불어.
벤담에 따르면 범죄행위는 그것이 사회의 행복을 저해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어떤 행위가 10만큼의 고통을 야기했다면 행위자는 그 대가로 10만큼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라도 재소자의 건강과 생명에 해를 끼치거나 신체에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처벌은 피해야 한다. 감옥은 어디까지나 교화의 공간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서 자유를 박탈해 다시는 동일한 죄를 짓지 않도록 훈육하는 데 감옥의 목적이 있다. 따라서 모든 징벌은 오직 교화와 훈육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가해져야 한다.
이러한 엄격성의 원리와 더불어 벤담은 경제성의 원리를 감옥개혁의 모토로 삼았다. 잔악한 간수보다 더 잔인한 것은 효율적이지 않은 관리체계로 봤다. 관리의 효율성을 담보하지 않은 채 감독관의 관대함에만 호소한다면 개혁은 필경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감옥개혁은 새로운 인프라의 구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벤담은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새로운 건물구조를 직접 도안했다. 파놉티콘은 말 그대로 ‘일어나는 모든 사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벤담이 직접 설계한 도안에 따르면 파놉티콘은 수레바퀴 모양의 이중적 구조를 갖는다. 중앙에는 탑 형식의 건물이 들어서는데 이는 감독관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탑을 둘러싼 원형 건물이 수감자용 감방이다. 두 건물은 층높이가 서로 다르게 설계되는데, 이는 감시탑의 감독관이 감옥 두 개 층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긴 복도를 끼고 일렬로 나열된 감방들의 문을 일일이 열어 죄수를 확인해야 하는 수고는 이제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에 걸맞은 관리방식이 그 다음으로 요구된다. 벤담은 ‘신뢰에 의한 관리’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은 신뢰가 보장되면 보장될수록 신뢰를 얻을 만한 일을 하는 데 소홀해지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금전적 계약에 의한 관리’를 높이 평가한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설 단체에 아웃소싱을 주자는 것이다. 정부와 계약한 관리자는 수감자의 인원만큼만 책임을 지면된다. 그 대신 재소자의 노동력을 활용한 이익창출이 관리자에게 허용된다. 재소자의 노동착취를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재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편이 관료주의에 사로잡힌 공무원들의 감독을 받는 것보다 백 번 나을 수도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성과에 따른 보상이 조금이라도 보장된다면 수감자들은 훨씬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것이다. 요컨대 관리자나 수감자 모두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니 말 그대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실현된 셈이다.
감옥개혁의 마지막 요건은 투명성이다. 계약에 의한 관리의 핵심이 금전적 동기를 통한 강한 애착에 있다면 그것의 지속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오직 투명성에 있다. 벤담은 감사를 위해 조직된 공공위원회뿐만 아니라 수감자를 찾아온 방문객들에게도 감옥의 관리감독이 공개돼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파놉티콘 속에서 재소자들의 모든 행동이 감독관의 감시 아래 놓이듯 감독관들의 행동이 사회구성원의 감시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18세기 말 벤담이 감옥개혁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까닭은 감옥을 인간 사회의 작은 축소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감옥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사회 안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윤리를 실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장 인간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벤담의 프로젝트를 프랑스의회에 소개한 뒤몽의 요약판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일 다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도록 그들을 에워쌀 수 있는, 그들의 행동과 인적 관계, 생활환경 전체를 확인하고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감시에서 벗어나거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여러 주요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하고 효력 있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전체를 통제·관리하는 감독관’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매우 위험한 발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감독관의 위치에 서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벤담에게 파놉티콘은 단순히 건축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투명성의 원리로 인간 사회를 재구성하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담겨 있다. 그의 공리주의 철학 또한 그러하다. 공리주의는 단순히 쾌락을 최고선으로 숭앙하는 쾌락주의도, 개인적 이익추구를 삶의 유일한 목적처럼 옹호하는 이기주의도 아니다. 공리주의의 요체는 오직 하나의 원리로 인간 행위 전부를 설명하고자 했던 데 있다.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인간사회는 완전히 투명해질 것이며 사회적 행복의 총량은 객관적인 방식으로 측량 가능해질 것이다.
개혁이 시대적 화두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개혁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인프라와 그에 걸맞은 운영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이루겠다는 열정이 없다면 모든 것이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뒤몽의 요약본 서문에서 벤담은 만약 프랑스의회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따라 감옥을 설립한다면 자신은 그곳에서 기꺼이 무보수 감독관의 역할을 수행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벤담과 그의 뒤를 이은 개혁가들의 열정 덕에 앨커트래즈는 1963년 영구히 폐쇄됐다.
김원철 철학박사 won-chul-kim@hanmail.net
필자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스피노자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윤리학의 역사, 스토아철학, 아우구스티누스에 관심을 갖고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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