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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urrection of Samsung Total: From Restructuring to Success

‘Why Not!’ 혁신 DNA가 잠든 역량을 깨웠다

이방실 | 79호 (2011년 4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서울대 경영대학과 함께 서울대의 임원 교육 과정(주임 교수 황이석 경영대학 교수)서울대 CFO 전략과정의 최신 경영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국내외 유명 기업의 임원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CFO 과정의 교육생들은 총 6개월간의 교육 기간 중 각자의 회사에서 겪은 경험과 강의를 통해 배운 지식들을 접목, 자사의 경영 사례들을 다른 교육생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 발표된 사례 중 특히 한국 기업에 많은 도움을 줄 만한 사례들을 엄선해 DBR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기업 현장에서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 담긴 이 코너를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에 위치한 삼성토탈 대산공장 직원들은 최근 분주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2007 4월 이후 4년 만에 실시하는 정기보수(426∼531, 35일간)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보수 대상은 100만 평에 달하는 대산공장 내 13개 단위 공장( 10만 개 설비) 중 방향족 공장을 제외한 12개 공장이다. 설비 효율과 안전성 제고가 1차 목적이지만, 정기보수는 규모의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유화업체의 설비 증설을 위해서도 매우 의미가 크다. 기존 설비와 증설된 신설비 간 원활한 연계를 점검하는 마무리 작업이 바로 정기보수 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번 정기보수 기간 중 삼성토탈은 에틸렌 13t, 프로필렌 12t, 폴리프로필렌(PP) 10t 등 총 45t의 증설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증설로 에틸렌 기준 연산 100t 생산이 가능하게 돼 더욱 의미가 깊다.

정기보수를 통한 설비 효율화는 1 365일 안정적으로 공장을 돌려야 하는 석유화학 업체들에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삼성토탈은 2007년과 2009, 공장별 운전 성능과 효율을 평가하는 솔로몬(Solomon) 스터디 결과, 전세계 NCC(Naphta Cracking Center·나프타분해공장) 참여공장 100여 개 중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기본에 충실한 회사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이 회사는 갑작스레 공장 가동이 정지되는 횟수가 매년 20차례를 넘었을 정도로 운전 능력이 형편없었다. 기본적인 공장 운영이 이런데 회사 경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1991년 공장 가동 시작과 함께 국내 공급 과잉 및 세계 유화시장의 불황까지 겹쳐 10년간 흑자를 낸 해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삼성그룹 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이 회사는, 결국 외환 위기 당시 부채 비율 780%를 기록하며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대상 1순위에 오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삼성그룹 계열사들로부터의 증자, 대규모 외자 유치 등에 힘입어 회생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전사적생산성향상관리)’과 사내 제안활동을 양대 축으로 삼아, 기본에 충실함과 동시에 전사적 혁신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늘날 5조 원대 매출액에 4000억 원대 영업이익을 내는 우량 회사로 거듭났다. DBR이 서울대 CFO 전략과정과 공동으로 지속적 혁신을 통한 삼성토탈의 턴어라운드(turn-around) 과정을 심층 분석했다.

구조조정과 외자유치 통해 부실 기업에서 클린 컴퍼니로 전환

삼성토탈의 전신은 1988년 설립된 삼성종합화학이다. 1980년대 삼성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유화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판단 아래 석유화학종합단지 사업을 준비하게 됐고, 그 결과 태어난 기업이 바로 삼성종합화학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삼성종합화학이 본격적으로 공장 가동을 시작한 1990년대 초, 경쟁업체들의 잇단 공장 신·증설로 공급 과잉 현상이 벌어지면서 제품 가격이 폭락했다. 설상가상 전 세계적으로 유화산업의 불황까지 겹치면서 회사의 경영 사정은 한때 매출액 4000억 원에 적자만 1000억 원을 낼 정도로 악화됐다. 급기야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이자비용 부담만 한 달 300억 원이 넘는 위기에 내몰렸고, 결국 삼성종합화학은 정부 주도 하의 대기업 빅딜 대상으로 지정됐다.

당시 빅딜의 골자는 삼성종합화학과 동일한 대산 석유화학 단지에 위치한 현대석유화학을 하나로 통합한 후 외국 자본(일본 미쓰이물산)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쓰이물산이 한국 정부에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며 소극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빅딜 자체가 흐지부지 됐다. 결국 2000 2월 정부는연말까지 자구노력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끌어내리면 빅딜 대상에서 해제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에 따라 삼성종합화학은 즉각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희망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1900여 명에 달하던 직원 수를 900여 명으로 줄였다. 발전, 수처리 등 유틸리티(utility) 설비도 매각했다(2800만 달러, 3100억 원). 그래도 여의치 않자 삼성그룹으로부터 긴급자금을 수혈 받아 2045억 원의 증자를 단행했고, 폴리에스터 등 화학섬유 원료를 생산하는 PTA(Purified Terephthalic Acid·고순도텔레프탈산) 공장까지 매각(삼성그룹 내 또 다른 화학 계열사인 삼성석유화학에 22000만 달러, 3000여 억 원에 매각)했다. 이런 노력들에 힘입어 삼성종합화학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무려 11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상환, 부채 비율을 198%로 떨어뜨려 빅딜 대상에서 가까스로 제외됐다.
 
 이후에도 삼성종합화학은 비용절감을 위해 서울과 대덕의 지원·영업·연구 조직을 대산공장으로 통합시키는 등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경영 정상화에 매진했다. 운좋게 시황까지 호전되면서 삼성종합화학은 2002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때마침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찾고 있던 글로벌 에너지·화학 기업인 프랑스 토탈피나엘프(TFE·TotalFinaElf)그룹의 석유화학 계열사인 아토피나(Atofina)가 투자의사를 밝혀왔고, 2003 8 5 5 합작 법인 삼성아토피나를 설립하게 됐다.(‘외자유치 통한 합작사 설립 과정 및 외자유치 효과참조) 그로부터 약 1년 후, TFE그룹이 정밀화학과 무기화학 등 일부 화학산업을 분리하면서 아토피나 브랜드를 포기함에 따라 회사명을 현재의 삼성토탈(2004 10)로 변경했다.

2001년 초 프랑스 토탈피나엘프그룹 계열사인 아토피나로부터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당시 중국과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필요했던 아토피나가 투자 대상을 물색하다 삼성종합화학에 투자 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삼성종합화학은 2003 8월 프랑스 토탈 측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고홍식 사장(현 삼성토탈 상임 고문)이 토탈 측과의 협상을 위해 다닌 해외 출장 횟수만도 50여 차례가 넘었다고 한다.

합작에 이르는 과정은 치열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삼성종합화학의 기업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였다. 협상 초기, 양측이 생각하는 순자산가치의 차이는 무려 2억 달러에 달했다. 치열한 공방 끝에 결국 순자산 가치를 155000만 달러로 잠정 합의했다. 합작법인을 구성하는 방식은 삼성종합화학이 자산·부채·설비·인력 등을 출자(현물 출자 방식)해 신설 법인을 설립한 후 신주 발행을 통해 지분 50%를 프랑스 토탈 측에 양도하는 방법이었다.

2002 12월 양사 간 합작법인 설립 관련 MOU(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정밀 실사에만 약 3개월이 소요됐다. 실사 이후에도 토탈 측은 잠정 합의했던 기업가치 금액에서 또 다시 2억 달러 삭감을 주장, 한때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부실자산이나 숨겨진 채무가 없고, 기업의 회생가능성을 자신하던 경영진은 단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2003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양사 간 합작 계약이 체결됐고, 그 해 8월 출범한 신설 합작법인에는 아토피나의 지주회사인 토탈홀딩스UK 77500만 달러( 9300억 원)를 출자했다. 삼성 측의 주장대로 155000만 달러의 기업가치에 대해 양측이 동의한 것이다. 경영진은 사외이사를 포함해 양측 각 3명씩으로 구성하되 삼성 측에서 사장을, 아토피나 측에서 수석 부사장을 각각 맡기로 했다. 신설 합작법인의 공동 최대주주인 삼성종합화학은 홀딩 컴퍼니 형태로 전환했다.

당시 이 외자 유치는 외환위기 이후 단일 사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투자금은 신설 합작법인의 자본금 확충 및 채무 상환 등에 사용됐다. 그 결과 합작사 삼성아토피나는 자산 18600억 원, 부채비율 100%의 클린 컴퍼니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됐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상당수 기업들은 경영권이나 지분비율에 연연해 외부 자금 유치를 주저하다 회사 발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그러나 삼성토탈은 지분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회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자금을 확보해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삼성토탈의 전신인 삼성종합화학은 2002년 구조조정에 성공하고 흑자전환을 했지만 그 이전인 1999∼2001 3년간 설비투자는 거의 하지 못하면서 자산매각을 통해 약 5000억 원대의 운영자금을 조달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는 계속된 적자 상태에서 회사운영이나 부채상환에 필요한 자금을 자산매각에 상당부분 의존했다는 뜻이다. 그는 “2002년 흑자로 전환됐더라도 실질적으로 회사 발전을 위해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며과감히 지분의 50%를 매각함으로써 회사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실제 삼성토탈은 합작사 전환 이후 2004 400억 원, 2005 10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설비투자에 사용했다이는 결과적으로 삼성과 토탈 양측 모두에윈윈이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한 지분 인수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협상 파트너를 끈질기게 설득해 양측 모두윈윈할 수 있음을 납득시킨 점이나,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밈없이 투명한 재무제표를 작성해 협상 상대방의 신뢰를 얻은 것도 다른 기업들이 배워야 할 점으로 꼽았다. 그는대부분 분식회계는 회사가 어려울 때 발생한다삼성토탈은 그런 상황에서도 깨끗한 재무제표를 발표해 평가된 적정가치에서 한 푼의 에누리 없이 협상을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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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실smile@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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