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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를 단순화하라 과격할 만큼…

브래들리 스타츠 | 6호 (2008년 4월 Issue 1)
데이비드 M. 업튼·브래들리 R. 스태츠
번역 홍정민 drew97@naver.com
 
기업 임원들이 관행으로 굳어진 즉 획일적인 기업의 IT 프로젝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 시스템의 근본 문제는 에릭 레이몬드가 말한 것처럼 ‘성당 접근’을 사용해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에릭 레이몬드는 프로그래머이자 오픈 소스(open source· 소스 코드를 공개해 누구나 특별한 제한 없이 그 코드를 보고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지지자다.
 
중세 시대 유럽인들이 세웠던 대성당처럼 기업의 IT 프로젝트 역시 개발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며, 오직 완성됐을 때만 그 가치를 창출한다. 그 결과 시스템의 유연성은 떨어지고 기업은 프로젝트에 착수한 몇 년 전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최근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유연성 문제가 개선되고 있지만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시스템을 수정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엄청나게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일도 종종 있다.
 
시작하자마자 구식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매니저들은 구축 후에도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기업 IT 시스템의 설계와 실행에 대해 연구했으며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는 기업 상당수를 지원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기업의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기존 사업의 성장과 신규 사업 착수를 지원하는 접근법을 파악했다.
 
우리는 이를 ‘경로 기반’ 접근법으로 지칭한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기업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시스템의 모든 세부사항을 규정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서 시스템 개발 경로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접근은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도 전에 모든 필요 요건들을 규정하기가 어렵고 기존 접근법이 비용도 많이 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전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미리미리 생각해 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수요들은 대부분 시스템이 가동 중일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동한 후 사람들에게 이를 사용하고 완전히 파악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이러한 경로 기반 접근법을 적용 중인 기업 가운데 눈에 띄는 사례를 찾아냈다. 바로 일본의 신세이 은행이다. 이 은행은 1년 만에 5500만 달러의 비용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업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적용했다. 기존 패키지 시스템을 설치하는 시간의 25%, 비용으로는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신세이 은행의 새로운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을 운영하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세이 은행이 소매 금융, 소비자 금융, 일본 내 인도 뮤추얼펀드 판매 등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지지하는 역할도 했다.
 
신세이 은행이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 및 구축하고 출시하는 데 적용한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사업과 IT 전략을 그저 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기 가능한 한 단순한 기술을 적용하기 시스템을 철저히 모듈(module)화하기 이용자들이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기 이용자들이 향후 개선 작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기 등은 다른 기업들이 모범 사례로 삼아야 할 부분들이다. 이들 원칙 가운데 일부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약간 변형된 것이고 그 밖의 원칙들은 기존 통념들을 완전히 뒤집는 것들이다.
 
시스템, 필요에 의해 탄생하다
신세이 은행의 전신은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국가 산업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한 장기신용은행이다. 400억 달러의 부실 여신으로 파산한 장기신용은행을 2000년 미국 사모펀드 리플우드 홀딩스가 인수한 뒤 그 이름을 바꿨다. 신세이(新生)는 일본어로 ‘새로운 삶’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리플우드 경영진들은 당시 은퇴 후 쉬고 있던 야시로 마사모토 전 씨티뱅크 재팬 회장을 은행장으로 영입했다. 야시로 행장은 기존 상업은행 영업 부문과 국내 소매 금융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안을 마련했다.  



그는 특히 소매 금융 부문 개혁을 위해 당시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이란 기법을 도입했다. 이는 고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편리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전략을 통해 신세이 은행은 당시 일본에서는 드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수수료를 전혀 부과하지 않는 ATM, 인터넷 뱅킹, 온라인 외환 거래, 온라인 뱅킹 외국어 서비스, 거래 즉시 고객 계좌를 업데이트하는 실시간 데이터베이스 변화 등이 여기에 속했다.
 
야시로 행장은 소매 금융 시장에서 기회를 잡기 위해 더욱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신세이 은행의 기존 IT 시스템은 신사업은 커녕, 기존 사업조차 적절히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했다. 야시로 행장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씨티뱅크 재팬에서 IT 사업부를 이끌었던 드하난자야 제이 드비베디를 최고 정보관리책임자(CIO)로 임명했다. 드비베디는 곧 이전 부하 직원들을 중심으로 핵심 인재 팀을 꾸렸다.
 
당시 신세이 은행은 투자자금이 충분치 않았다. 이 때문에 야시로 행장은 드비베디에게 IT를 혁신하되 신속하고, 낮은 비용으로 할 것을 주문했다. 두 사람은 소매 영업을 위해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를 사전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성장을 이끄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통상 대규모 기업 시스템을 구축할 때 선택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기존 시스템을 한꺼번에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교체하는 ‘빅뱅 접근법’, 기존 시스템을 하나씩 차례로 개선하는 ‘점진적 방식’이 있다. 드비베디와 그의 팀은 신세이 은행의 현금 압박, 이로 인해 프로젝트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을 감안할 때 빅뱅 방식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점진적 방식은 35년이라는 긴 기간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따라서 이들은 ‘세번째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처음에는 기존 시스템과 병행 사용이 가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다. 기존 IT 분야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이는 미친 짓이었다. 세번째 길을 위해 드비베디는 기존 시스템과 새 시스템을 잇는 수많은 연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했다. 이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드비베디는 이전 작업과 다른 CIO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새로운 IT 시스템이 실패하는 이유가 기술이 아닌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시스템 도입을 위한 비용이 교체를 통해 창출하는 이익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드비베디는 단순하지만 혁신적인 기술 솔루션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기존 시스템의 형태와 느낌을 모방한 후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 속도를 높였다.
 
사업 구축비용과 일본의 부진한 경제 상황 및 규제 환경 등으로 신세이 은행의 소매 금융이 빠른 시일 안에 흑자로 돌아서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업 IT 시스템은 신세이 은행이 신속하게 일본 소매 금융업계의 강자로 부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영업하던 2001년 신세이 은행의 소매 금융 고객은 5만 명에도 못 미쳤으나 지난해 6월 말에는 2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아시안 뱅커 저널은 2004년과 2005년 신세이 은행을 일본 최고 소매 은행으로 선정했다. 일본 최고의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도 2004년부터 3년 연속 신세이 은행을 일본 고객 만족도 1위 은행으로 꼽았다. 이제 신세이 은행의 경로 기반 접근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사업과 IT 전략을 통합하라
많은 사람들이 사업 전략과 IT 전략은 조화를 이뤄야 하며, 실제 이용자들이 기업 시스템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은 몇 가지 측면에서 엄청나게 어렵다. 우선 IT 책임자들은 사업의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사업 책임자들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술의 장단점을 파악하려 하지 않고, IT 담당자들을 부차적 서비스 제공자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두 집단이 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해도 이것이 지속적 논의 과정이 되기보다는 일회성 일정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산업에서 정보 시스템은 사업 전략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으로 변모했다. 사업 책임자들이 여전히 IT 담당자들을 부차적 인력으로 인식한다면 두 집단 간 지식 이전이 난관에 봉착한다. 결국 기회는 날아가고 최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없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기업들이 표준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도입할 때 사업을 기술에 맞추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업들이 비효율적 프로세스를 버리고 소프트웨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기능을 취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관리자들은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는 특유의 강력한 기능들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기능들을 개발해 혜택을 보려면 프로젝트 진행에 들인 시간과 비용 외에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IT 시스템을 기업 전략과 통합하기 위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프로젝트 기획 작업에 앞서 총괄 관리자들은 IT 담당자들이 해당 사업을 잘 이해하고 조직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많은 대형 기업들은 IT 보고서를 최고 재무책임자(CFO)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CFO가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정보책임자(CIO)에게 제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업 관리자들도 IT를 통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 야시로 행장과 그의 후임자 티에리 포르테 행장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 IT 시스템에 대해 배웠다. 포르테 행장은 드비베디 CIO와 자주 대화를 나눴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그와 공식 회의를 가졌다. 신세이 은행의 IT 및 운영 센터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방문했다. 야시로 행장은 “고객들의 수요에 부응하고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CEO는 고객과 직원들에게 IT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프로젝트 개발에서 가장 첫 단계는 현재의 환경이 아니라 예측할 수 있는 사업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업들은 기존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지금까지 적용했던 프로세스에 대해 고민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는다. 이는 오래된 지저분한 길을 닦는 일과 같다. 보스턴이나 런던의 복잡한 도로를 운전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있는 사업 목표를 파악한 후 관리자들은 스스로에게 맞는 IT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업 목표와 IT 결정 및 제약에 대해 사업 그룹과 IT 그룹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복적 논의를 거치면서 양측은 점차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 사업 사용자들이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IT 담당자들은 이에 따라 견본을 내놓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잠재적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신세이 은행의 경우 IT 그룹과 사업 그룹 간 긴밀한 관계를 통해 각 지점 고객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 각 창구에 창구 직원과 고객용 스크린을 각각 하나씩 설치했다. 고객용 스크린에는 인터넷 뱅킹 창이, 직원용 스크린에는 인터넷 뱅킹 창과 고객에 대한 추가 정보가 뜨도록 했다. 이 스크린을 통해 직원들이 거래를 원하는 고객에게 스스로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말 그대로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또 신세이 은행의 창구 직원들은 현금을 갖고 있지 않는다. 고객이 예금 입금이나 인출을 원할 경우 직원이 고객과 함께 ATM으로 간 후 고객이 스스로 거래를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IT와 그 밖의 인프라(지점, ATM, 창구 직원)를 통해 자연스럽게 일부 업무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아울러 이를 통해 절약된 시간과 인력을 활용해 한 차원 높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창구 직원들의 경우 고객들이 어떤 부분에 불편을 겪는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시스템 개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예를 들어 계좌 개설, 자금 이체 등의 업무에서 고객들이 서류를 작성하면 창구 직원들은 이 정보를 받아 시스템에 입력해야 했다. 창구 직원들은 이 과정에서 고객들이 잘못된 서류를 작성하거나 틀린 내용을 기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은행은 곧 프로세스를 변경했다. 현재 이들의 업무는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받아 시스템에 입력한 뒤 온라인 확인서를 보여주고, 그 즉시 조회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최대한 단순화하라 중세 시대의 저명한 철학자 윌리엄 오컴은 이론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IT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가급적 적은 표준(네트워크 프로토콜, 운영 체제, 플랫폼 등)으로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많은 조직들이 처음에는 몇 개의 표준으로 시작하지만 표준은 시간이 가면서 늘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특정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하거나 개발한 기술은 최대한 단순해야 한다. 기술적 결함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할 방법을 찾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표준은 가급적 많은 부분을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표준 소수의 부품 몇 개만 표준화하는 것은 경로 기반 접근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보잉 737기만 운항함으로써 이익을 얻었던 것처럼, IT 인프라를 단순화할 경우 기업은 복잡성을 줄일 수 있다. 이 외에도 전문성을 높이고 시스템의 부품을 재사용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이는 나아가 개발을 가속화하고 유지비용도 감소시킨다. 부품 표준화를 통해 조직은 품질 유지에 드는 시간을 절약하고 새로운 기능을 구축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드비베디는 적극적으로 시스템 표준화 작업을 추진했다. 그는 관계자들로부터 참여를 요구했지만 합의를 도출할 때까지 기다린 후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가 내린 가장 공격적 결정은 신세이 은행 IT 시스템의 중추였던 IBM의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없애고 이를 인텔 서버로 교체한 것이다. 당시 일본 은행들과 세계 금융 기관 대부분이 빠른 작업 처리 속도와 신뢰도 높은 가동시간을 이유로 메인프레임을 선호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급진적 인 결정이었다.
 
메인프레임 시스템은 너무 비싼데다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일반 메인프레임의 연간 유지비용은 최초 구입가격의 1520%에 달했다. 기존 메인프레임 기반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코드를 잘 아는 프로그래머조차 풀기 어려운 자체 암호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메인프레임을 서버 기반 플랫폼으로 교체한 후 신세이 은행은 연간 40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드비베디와 그의 팀은 이 같은 단일 서버 플랫폼과 함께 델의 PC,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인터넷, IP전화, 기업 시스템 간 표준 메시징(messaging) 등의 표준도 도입했다.
 
단순하고 재사용 가능한 솔루션 드비베디와 그의 팀은 새로운 은행이 기존 기술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은행이 발생하는 사업 상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구조를 마련했다. 이 구조 하에서 드비베디 팀은 우선 사업상 문제를 파악한 뒤 이를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에 맞는 기술 솔루션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이 팀은 우선 자체적인 표준 모듈과 구성 요소 툴킷(tool kit)을 검토해 이미 솔루션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했다. 만일 기업내부에 솔루션이 없다면 기업외부를 뒤져 구입할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았다. 구입할 솔루션조차 없는 경우에는 인도 소프트웨어 회사 56개 가운데 한 곳에 관련 솔루션 개발을 의뢰했다.
 
신세이 은행의 새로운 ATM 네트워크 개발과 설치 역시 이러한 접근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2000년 일본의 은행들은 타 은행뿐 아니라 자기 은행 ATM 사용에도 요금을 부과했다. ATM 서비스는 지점 영업시간에만 제공했다. 신세이 은행은 비용이 많이 드는 다른 은행들의 ATM 네트워크를 그대로 따라갈 경우, 24시간 무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사업 그룹과 IT 그룹은 필요한 서비스 기능을 파악한 뒤, 관련 문제들을 가능한 한 자세히 나눴다.
   
이를 통해 은행은 새롭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ATM은 일반적으로 값비싼 임대 전용회선을 통해 이용자의 정보를 처리하는 은행의 백엔드(back end)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이 팀은 인터넷으로 임대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인터넷 연결의 경우 가동시간이나 신뢰도가 임대 전용회선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였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신세이 은행은 두 개의 다른 인터넷 제공 업체로부터 두 개의 인터넷을 별도로 설치했다. 이는 한 회선이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회선이 백업 역할을 하게 되는 형태다. 이를 통해 임대선 비용의 10% 정도로 신뢰도는 훨씬 높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새로운 접근법을 통해 신세이 은행은 경쟁 은행들의 기존 ATM 네트워크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훨씬 뛰어난 기능의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메모리 유출로 인한 고장에 대해 IT팀이 내놓은 해결책도 단순한 솔루션의 사례다. 어떤 운영 체제든 일단 작업이 끝나면 어플리케이션이 이전만큼 메모리를 보내지 못하는 현상, 즉 메모리 유출이 나타나기 쉽다. 이로 인해 운영 체제는 불안정해지고 기능을 멈출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통상적 해결책은 정교한 메모리 관리 및 디버깅(debugging) 툴을 설계해 모든 메모리 유출을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툴은 모든 메모리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신뢰할만한 방법이 아니다. 신세이 은행은 단순히 메모리가 서버 내에서만 유출될 것이라고 가정해 서버를 자주 재부팅하는 방법을 택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고 저렴한 솔루션이었다.
 
내부적으로 개발했건 외부 업체로부터 구입했건, 이들 구성 요소는 가능한 한 신세이 은행의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재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 드비베디 팀은 기존 및 향후 모듈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구성 요소의 필수 기능과 표준 인터페이스를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예를 들어 신세이 은행의 사업 및 IT 담당자들은 신용 조회가 은행이 제공하는 수많은 서비스 가운데 핵심적인 프로세스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모든 상품에 적용할 수 있는 재사용 가능한 신용 조회 모듈을 개발했다. 현재 이 기술 구성 요소 가운데 90% 이상이 적어도 한 부문 이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모듈이 아닌, 모듈화 대형 IT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모듈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다지 새롭지 않지만, 모듈화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어플리케이션의 다양한 부분이 모듈로 구성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어플리케이션이 반드시 모듈화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듈화란 인터페이스의 세부사항을 명확히 규정해 개발 작업이 다른 모듈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하나의 모듈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기업 시스템을 개발할 때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자동차 업체는 새로운 기업 시스템 모듈 여러 개를 구축하는 팀을 두고는 설계를 모듈화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터페이스 담당 팀은 인터페이스를 지속적으로 변경했고, 변경이 한번 있을 때마다 다른 팀들은 엄청난 시간을 들여 이미 완성한 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모듈 방식을 적용해 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커진 것이다. 진정한 모듈화 구조는 설계자들이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지엽적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구축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고 모듈화된 부품들이 시스템을 구성할 경우 조직은 시판중인 솔루션을 구입하거나, 내부나 외부 개발자들에게 특정 부품 개발을 의뢰해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모듈화 구조를 도입하면 시스템 구축은 물론 가동 후 모듈 안에서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기도 쉽다.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를 분리하고 해결할 경우 속도 외에도 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IT 팀은 각각의 부분에 대해 가장 저렴한 솔루션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작업을 분할함으로써 설사 실패하더라도 그 여파가 적다. 모듈 기능과 인터페이스의 세부 사항을 명확히 규정하면, 다른 어플리케이션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모듈을 구축하기도 쉬워진다. 모듈화 접근법은 신세이 은행의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드비베디는 “조직이 아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규모를 키우고,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시도하며, 필요하기도 전에 설비를 구축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듈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대출 프로세싱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프로젝트 팀은 시스템을 단계별로 내놓았는데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 관리자들에게 컴퓨터 시스템이 약속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너무 많은 자동화 기능을 한꺼번에 제공함으로써 관리자들과 사용자들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는다. 셋째, 기술적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선 이 팀은 시스템이 몇 건의 대출 관련 신용을 정확하게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그 후 하루에 200300건을 완전히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했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신세이 은행은 수작업을 완전히 없애고, 시스템을 통해 하루 6000건의 대출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자동화 시스템의 모듈화 구조 덕분에 신세이 은행은 다른 부분에 영향을 주지 않고 대출 신청이나 신용 조회 기능 등을 교체했다.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필요하거나 적절할 때마다 IT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백엔드 시스템을 바꾸는 동안 웹 페이지, ATM 스크린 포맷과 같은 고객 인터페이스를 유지할 수도 있다.
 
사용자의 자발적 이용을 유도하라 많은 경우 대형 IT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적 문제보다 조직의 저항 때문이다. 사용자들이 새로운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이다. 기업이 새로운 시스템 사용을 강요하면서 직원들이 이에 저항하는 경우도 있지만, 직원들이 굳이 노력을 들여 새로운 시스템 운영 방법을 배워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새로운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이용자들을 설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용자들이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물론 조직 내 모든 사람들이 모든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가 훨씬 지난 후에도 대부분이 이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신세이 은행은 새로운 시스템 도입 초기에 기존 시스템과 비슷한 인터페이스, 즉 스크린 포맷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새로운 시스템 상에서 대출 신청서를 입력하더라도, 눈앞에 나타나는 페이지는 기존 시스템의 데이터 입력 스크린과 완전히 똑같은 형식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대출 신청 서류에 기존 스크린 상에는 없는 고객의 휴대폰 번호 정보를 입력해야 할 경우에는 새로운 데이터 입력 스크린으로 들어가야 했다. 결국 이러한 방식으로 양쪽을 오가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점차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드비베디 팀은 직원 대부분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한 후에 기존 데이터 입력 스크린을 폐쇄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들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훨씬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대가치고는 크지 않다고 그는 판단했다.
 
지속적 개선을 추구하라 드비베디는 이용자의 힘이 시스템 도입 단계뿐 아니라 지속적인 개선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지속적 개선을 위한 어떤 노력도 실패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세이 은행은 이용자들에게 기업 시스템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구했고, 이들을 매일매일 실험에 참여하도록 했다. 특히 이용자들이 자신의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한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의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드비베디 팀은 이를 위해 고객, 사업 이용자, 기술 이용자들로부터 피드백과 요구 사항을 받아 이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이 시스템을 통해 접수된 코멘트와 요구사항들은 하루 평균 약 100건에 달했다. 이 시스템은 제안이나 불만 사항의 순서를 정해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문제가 너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때는 조직의 고위층에게도 보고했다.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이를 제기한 사람에게 통보한다. 관리자들은 모기지 영업에서 발생한 문제를 이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시 주택 대출 신청자들은 요청한 서류를 이미 제출했음에도 시스템 상 미제출로 표시된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관리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자동적으로 통보받아 해당 영업 및 IT 담당자들에게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도록 했다.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해당 팀은 은행이 전달한 제출 서류 목록을 고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임을 밝혀냈다. 고객들은 날인 증서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결국 고객들이 잘못된 서류를 제출했던 것이다.
 
이에 해당 팀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IT 시스템이 고객들이 제출해야 하는 일련의 서류들을 자동적으로 파악하도록 하고 고객들에게 이들 서류 샘플을 보냈다. 그걸로 끝이었다. 신세이 은행은 이러한 방법으로 고객들이 한 번에 정확한 서류를 보내도록 함으로써, 고객과 은행이 서류 처리에 들이는 시간을 줄였다. 결국 고객 만족도도 대폭 높아졌다.
 
이 모든 조치들이 대단한 해결책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지속적인 개선 작업이 일상 업무로 자리 잡을 경우 직원들을 고취시키기 위해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 필요도 대단한 문제 해결책을 내놓을 필요도 없어진다.
 
현재 기업들은 매출액의 약 5%를 IT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액도 각기 다르지만 기업들이 IT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 역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사업 전략을 지원하고, 경쟁력을 제공하며 성장의 발판으로 작용하는 적절한 IT 시스템을 선택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선택의 범위가 늘어나고 급속히 변화하는데다 저렴한 프로세싱 기능, 네트워크 능력, 개발도상국의 정교한 IT 서비스업체 등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기업들은 꾸준히 개선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대규모 IT 시스템 구축을 창고를 짓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구식 관리자들에게 이는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창고야 그저 건물을 올리면 완성할 수 있지만 IT는 그렇지 않다. 이런 관리자들이 기업 시스템을 구축하면 가동 시점부터 구식으로 전락하고 비용만 잡아먹는 시스템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로 기반 접근법을 택하면 사업의 수요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새로운 기능과 사업으로 도약하는 발판 역할을 하는 유연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데이비드 M. 업튼(dupton@hbs.edu)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경영학과 교수다. 브래들리 R. 스태츠(bstaats@hbs.edu)는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기술운영 관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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