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관시(關係)’다. 중국 토종 기업이든 해외 기업이든 관계나 연줄, 네트워크는 사업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다.
실제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영자의 사적 네트워크가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what you know)’보다 ‘누구를 아는가(who you know)’가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학문적으로도 개도국에서 관시가 왜 중요한지는 이미 여러 차례 연구를 통해 규명됐다. 많은 개도국들은 급속히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고 있지만 선진국 수준의 자율 경쟁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불충분하다. 사업 인허가 절차가 불투명하고 산업 육성 정책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으며 분쟁 발생 시 효과적으로 해결해주는 시스템도 부족하다. 이런 ‘제도적 공백(institutional void)’을 매워주는 것이 바로 ‘사적 네트워크’나 ‘관시’다. 행정부나 사법부를 통해 투명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개인적으로 아는 정치인이나 관료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관시’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진 많은 한국 기업인들이 최근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다. ‘야반도주’까지 일삼는다는 전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홍콩 시티 대학의 줄리 주앙 리 교수 등은 전략경영 분야 최고 학술지인 ‘Strategic Management Journal’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관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베이징과 상하이 등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중국 토종 기업과 외국기업의 경우 네트워크가 성과에 미치는 양상이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토종 기업들은 인간관계의 폭이 넓을수록 기업의 성과가 지속 상승했다. 하지만 외국 기업의 경우 네트워크의 폭이 넓어지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성과가 좋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난 후에는 오히려 성과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외국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네트워크를 가졌을 경우 오히려 실적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초기 외국 기업도 정부 관료나 정치인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어느 정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해상충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중국 관료들이 결국 자국 기업의 편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이해관계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외국 기업들은 중국을 생산 기지나 단기적 판매 시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토종 기업들은 평생, 혹은 대를 이어 중국에서 영업을 해야 한다. 뜨내기 손님 격인 외국 기업들이 중국 관료들과 장기적 관계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연구진은 또 경쟁이 심한 업종에서는 네트워크를 많이 갖고 있어도 상대적으로 효과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도 관시의 효과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연구 결과는 한국 기업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중국이나 개도국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반드시 일정 수준의 사적 네트워크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관시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오히려 성과를 방해하는 위험한 일이다. 일정 수준의 관계를 형성했다면 전반적인 글로벌 전략과 로컬 마케팅 전략 등 본원적 비즈니스 역량을 강화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김남국march@donga.com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