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CASE STUDY
서울 서초구 서초동 KT 사옥 한 회의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기 관리가 경영의 키워드로 떠올랐던 2009년 KT는 이곳에 ‘워룸(War Room)’을 꾸렸다. 당시 환율과 금리, 주가, 원자재 가격 등 변동성이 커지면서 경영 계획 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시장 환경이 급변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GE나 IBM, 지멘스 등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 국내 일부 기업들도 워룸 같은 비상경영 상황실을 설치했다. KT도 국내외 기업들을 벤치마킹 했다. 이 회의실에는 각종 거시경제 지표와 KT 경영 지표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모니터들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제 워룸은 일반 회의실로 변했다. 복잡한 그래프와 각종 지표를 보여줬던 물리적 워룸 상황실은 사라졌다. 하지만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활용한 가상의 워룸이 언제 어디서나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일상적인 경영진 회의가 워룸에서 열리던 회의를 대체했다. 특정 물리적 공간으로 제한돼있던 워룸이 조직 전체로 퍼져나간 셈이다. 이는 KT가 위기 경영에 대한 개념을 바꿨기 때문이다. 모든 위기 경영의 출발은 불확실성에서 시작하며, 위기 관리는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통신시장은 변화가 일상화된 시장이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전체 휴대전화 사용자 중 1%만이 스마트폰을 썼다. 당시 스마트폰은 얼리 어답터 정도나 다룰 수 있는 ‘기계’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불릴 정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스마트폰 이용자 비중은 2010년 15%에 이어 올해 40%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마케팅 재무 등 각종 전략도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서 끊임없이 수정해야 한다. 중장기 계획에만 의존하는 게 사실상 힘들어졌고 위기 상황이 상시적으로 이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는 지금도 워룸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 워룸 운영 방식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워룸을 진화 발전시켜 상시 위기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KT의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일시적인 위기에서 일상적인 위기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금융 시장 불안과 실물 경기 위축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 축소와 비용 통제에 초점을 두고 워룸을 운영했다. 하지만 KT의 워룸은 초기부터 ‘비용 절감+α’를 목적으로 했다. 비용 절감을 중심으로 긴축 경영을 하고, 핵심 경영 아젠다를 모니터링할 뿐 아니라 각종 경영 현안을 한눈에 파악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게 목적이었다. 이런 형태의 워룸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한계도 적지 않았다. 한정된 분야의 몇몇 임원이 모여 특정 공간에서 밀실 회의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외부환경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종합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려 전면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KT는 임원뿐 아니라 일선 현장 직원까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소프트웨어적 변화가 없다면, 위기 경영은 그야말로 캐치프레이즈에 그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2010년 강력한 경기 부양책 덕에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서 위기 경영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일시적 위기라기보다 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상적인 위기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경쟁사들의 동향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동통신, 집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등 각 분야에서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른 경쟁 양상이 나타났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소비자들의 니즈나 소비 행태도 급변했다. 더 이상 동일한 시장에서, 동일한 상품을, 동일한 방식으로 판매할 수 없는, 극도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펼쳐졌다.
따라서 이벤트성 위기 관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KT는 위기 관리가 상시적 활동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기 경영의 프레임워크 수립
KT는 프랑스텔레콤과 텔레포니카(Telefonica), SFR(originally Société Française de Radiotéléphonie), 벨가컴(Belgacom) 등 서유럽 통신사들을 대상으로 벤치마킹에 나섰다. 경영성과 모니터링 체계와 시장 경쟁 방법론, 워룸 운영 등 베스트 프랙티스를 발굴했다. 이들 회사는 유선 및 무선 시장 모두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국내 통신사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서유럽 통신 시장에서 무선 시장 보급률은 평균 125%로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유선 인터넷 시장 보급률 역시 60%로 성숙 단계였다.
KT는 벤치마킹 결과 이 통신사들이 상시적인 위기감(Sense of Urgency)을 전제로 성과 대시보드, 섀도 캐비닛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들 회사는 핵심 고객을 유지(Retain)하기 위해 세분화된 플랜 및 컨버전스 로열티 플랜을 마련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Acquisition)하기 위해 맞춤형 서비스 제공, 결합 상품 판매를 확대했다. 또 개인 사용자당 평균 매출(ARPU)을 늘리기 위해 무선 데이터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했고, 비용 효율성을 증진하기 위해 온라인 채널을 개발했다.
KT는 벤치마킹을 토대로 <그림1>과 같은 위기 경영 프레임워크를 마련했다.
1.위기 경영은 Right Indicator에서 출발: 모니터링 지표 수시로 바꿔
KT 위기 경영의 첫 출발은 경영 아젠다에 따른 워룸 핵심 지표를 올바르게 선정하는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각 조직별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설정해 일정 기간 평가한 후 임직원 보상에 반영했다. 통상 전년도 지표를 기본으로 하되 당해 연도 경영 환경 변화를 고려해 세부 내용을 수정했다.
워룸의 지표는 과거 성과 평가를 하기 위한 KPI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워룸에서는 상시적으로 바뀌는 ‘역동적인 지표’를 썼다. 고착화된 지표로는 시장 상황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쟁 상황이 바뀌면 지표의 달성 목표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또 기존의 주력 상품이더라도 변동성이 낮아지면 모니터링을 간소화하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출시되면 규모는 미비해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했다. 이처럼 급변하는 트렌드를 신속하게 따라 잡고 대응하기 위해 핵심 지표를 모니터링하고 조기에 경보를 해서 적시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런 방법을 쓰니 문제 포착 방식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우수 고객 해지율이 왜 이렇게 떨어지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을 때 각 부서의 대응책을 받아 단순 취합해 해결한 적이 적지 않았다. 임원이 언제까지 대응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하면 주무 부서가 연관된 부서에 동일한 템플릿을 주면서 자료 제출을 요청해 이를 그대로 취합해 대응책으로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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