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원군 한화 L&C 부강공장. 건축 장식재인 A제품의 생산 라인에서는 증설 작업이 한창이다. 최근 주문이 밀려 들어와 공장을 풀가동하는데도 이를 모두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8년까지만 해도 이 제품은 사업 철수까지 검토됐던 미운 오리 새끼였다. 당시 중소기업까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자가 난립했고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서 수요가 줄어들었다. 특히 대기업 특성상 설비 규모가 크고 인건비도 많아 고정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온 마케팅 담당 임원은 동네 중국집에 비유하면서 “이것 저것 팔면 결국 수익만 떨어진다”고 일침을 놓았다.
기로에 섰던 한화 L&C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강도 높은 효율화 작업을 벌이는 등 일련의 경영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로 했다. 수익에 도움되는 제품만 뽑아서 판매량을 늘리되 수익성이 낮은 제품은 과감하게 생산을 중단했다. 또 설비시설도 효율화해 고정 비용을 낮췄다. ‘보이지 않는 비용’과의 전쟁도 치렀다. 매출 채권을 줄이기 위해 ‘외상 제로 선언’을 하고 현금을 주는 업체와 거래하는 한편 재고를 최소화해서 원가를 절감했다. 최웅진 한화L&C 사장은 “버려야 한다”며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자”고 강조했다.
그 결과 바닥 장식재인 A제품 사업은 레드오션에서 탈출해 블루오션으로 탈바꿈했다. A제품을 비롯한 경영 혁신 대상 품목의 영업이익은 5배로 증가했다. 또 일부 품목은 오히려 사내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품목 중 하나로 꼽혔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내세운 덕택에 월풀과 샤프, 미쓰비시전자, 하이얼, IKEA 등 내로라하는 기업에 제품을 공급할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김영한 한화 L&C 재경 부문 상무와 홍순유 장식자재사업부 데코영업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2008년 진행된 한화 L&C의 사업 합리화 및 효율화를 통한 경영혁신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기로에 부딪힌 성숙 사업, 고정비>공헌이익
한화 L&C는 전통적으로 표면 장식재와 건축 자재 업계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중소기업들이 시장에 난립한 데다 중국 제품까지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소기업들은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만한 품질 수준을 갖췄다. 대기업 제품이라고 해서 프리미엄을 인정받지 못했다. 또 경쟁자가 많아지면서 제품 가격은 떨어졌다. 한때 30%대에 이르렀던 한화 L&C의 시장점유율은 15%로 추락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회사 전체의 매출액은 2005년부터 평균 18% 성장했지만, 수익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한화 L&C는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전사적 혁신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당시 3년간(2005∼2007년) 영업이익률이 저조하지만 개선 노력을 기울이면 수익을 높일 여지가 있는 품목을 추려냈다. 영업이익률이 3% 이하이면서 성장성이 있는 4개 품목을 선정했다. 이들 4개 품목의 매출액은 2005년 1379억 원에서 2007년 1923억 원으로 급증했다. 반면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9억 원에서 35억 원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500여 명의 생산직과 사무직 인원이 4개 품목에 매달렸지만, 지나치게 낮은 수익률을 내고 있었다.
특히 이들 4개 품목의 투하자본이익률(ROIC·Return on Invested Capital)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4개 품목의 ROIC는 2005년 -2%, 2006년 -2%, 2007년 -3%로 계속해서 감소하기만 했다. 대개 제조업 ROIC는 15% 안팎이어야 하는데, 4개 품목의 ROIC는 아예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 4개 품목 이외의 품목까지 합해 살펴본 한화 L&C 전체의 ROIC 역시 10%에 그쳐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쯤 되니 회사 전체의 수익을 갉아먹는 4개 품목 사업의 존폐를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적어도 이들 4개 품목에 한해서는 사업하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됐다.
ROE(Return on Equity·자기자본이익률)는 기업의 이익을 자본으로 나눈 수치로 주주 입장에서 기업의 수익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여기서 이익은 각 회사별로 당기순이익, 영업이익, 또는 세전영업이익 등 이익을 나타내는 각종 수치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해서 사용한다. ROE가 높다면 수익성이 높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ROE만 이용해 수익성을 평가하면 착시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금 투자가 필요한 투자방안에서 자본비용이 높은 주식발행을 통해 현금을 조달하기보다는 자본비용이 적은 부채를 이용해 현금을 조달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부채비율이 증가하면 기업 전체적으로 위험수준이 증가하지만, 이 경우에는 전체적인 자본비용이 낮아지므로 ROE가 증가하는 것처럼 표시되는 문제가 있다. 즉, ROE만 이용해서 수익성을 평가할 때 위험부담을 더하면 할수록 ROE가 증가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기업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세계 금융위기 동안 몰락한 선진국 여러 금융회사들의 자본구조를 보면 부채비율이 수천 %에 달했다. 이는 대개 ROE 만으로 수익성을 평가해서 보너스를 지급하므로, ROE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빌려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으로 공격적으로 위험한 자산에 투자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는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불과 몇 달 만에 그렇게 수익성이 높던 회사들이 갑자기 파산한 것” 이라고 덧붙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OA(Return on Assets·총자산이익률)를 보완적으로 사용한다. ROA는 기업의 이익을 총자산으로 나눈 수치로, 자본을 통해 현금을 조달했든 부채를 통해 현금을 조달했든 관계없이 회사가 조달해서 사용한 총 자산의 금액에 따른 수익률이 얼마인지를 보여준다. 부채와 자기자본을 합친 총자산을 분모로 사용하므로, ROE보다는 부채 규모가 평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ROIC(Return on Invested Capital·투하자본이익률)는 ROA를 더 발전시킨 개념이다. 이는 이익을 투하자본으로 나누어 계산한다.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 중에서는 실제로 생산에 사용되고 있는 자산도 있지만 필요없는 유휴자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유휴자산을 제외하고 실제 생산활동과 관련돼 있는 일부 자산(= 투하자본)만으로 수익률을 계산하는 방법이다. 이 지표는 외부 정보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유휴자산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직접 계산해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 제품을 생산하는 개별 기업 입장에서 볼 때는 유용하다. 내부적으로 각 제품이나 사업부에서 실제 사용하는 자산규모와 그 자산을 사용해서 창출하는 이익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제품별 수익성을 평가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최종학 교수는 “자금 조달에 대한 의사결정이 본사 차원에서 이뤄지므로 제품별 담당부서 입장에서는 부서에서 사용하는 투하자본이 부채/자기자본 중 어느 원천에 의해 조달했느냐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ROIC는 부서가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부분만을 갖고 평가하는 것이므로, 내부 부서별 성과 평가 시에는 ROIC가 더 합리적인 평가지표”라고 설명한다.
|
4개 품목의 사업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업 일선에서 무조건 매출액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했다. 당연히 영업 사원들도 매출이 최우선이라는 마인드를 갖게 됐다. 사업부는 주 단위 매출 실적 달성 여부로 실적을 평가 받고 있었는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일단은 영업 인력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려 했다. 또 수요가 생기면 즉시 매출을 올리려고, 다양한 패턴의 재고를 보유했기 때문에 재고 비용도 높았다. 영업 일선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단발성 수주라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소량이라도 즉시 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에 생산 설비를 당연히 풀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탓에 매출을 열심히 올리는데도 수익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고정비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2007년 고정비가 전체 비용의 23%로, 공헌이익(매출액―변동비) 수준인 20%보다 높았다. 아이템 별로 소량 유통되면서 대량 생산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산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근무시간은 점차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나빠졌다.
보통 생산량이 늘어나면 고정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생산 시설을 풀가동하는데도 단가 경쟁에 따른 판매 가격이 하락하고 고정비율은 더욱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고정제조간접비의 비중이 높으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주로 하는 복잡한 제품군을 유지할 경우 소품종 대량생산방식에 비해 생산 로트(lot, 한 제품에 대한 고유 번호), 즉 배치(batch) 수가 증가한다. 결국 다수의 제품군 존재에 따른 고정비 증가요인에 더해져 판매량이 증가할수록 영업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 한화 L&C가 바로 이 경우였다. 따라서 당시 한화 L&C는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익을 거의 발생시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영업부서는 이런 변화에 둔감했다. 오히려 거래처를 유지하고 매출 역시 일정 수준 유지하기 위해 출혈 경쟁을 감수했다.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팽배했고, 실적이 좋지 않으면 경기 침체와 시장 경쟁력 악화 등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렸다. 내부에서의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4개 품목의 매출액인 1923억 원은 당시 전체 매출액의20%에 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