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관리의 대가, 블랙록

69호 (2010년 11월 Issue 2)

 
 
글로벌 금융위기로 리먼 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많은 금융회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됐다. 하지만 자산운용 업계의 맹수라 불리는 블랙록은 금융위기 와중에 사세를 대폭 확장했다. 블랙록의 운용 자산규모는 2010년 6월 기준으로 3조 150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3.5배에 달한다. 블랙록이 설립된 1992년에는 이 규모가 고작 170억 달러에 불과했다. 어떻게 18년 동안 무려 160배의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첫째 이유는 블랙록만의 위험 관리 시스템이다. 금융위기로 추락한 많은 금융회사들은 금융상품의 이익에만 집중하고 그 위험은 외면했다. 하지만 블랙록은 ‘그린 패키지’라는 위험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펀드의 위험을 시장 위험, 국가 위험, 환율 위험, 산업 위험 등으로 세분화한 후 이를 수치로 나타내준다. 블랙록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투자 전략을 수립해 투자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블랙록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명성은 대단하다. 2007년 11월 당시 플로리다 주 정부의 펀드 매니저는 다급하게 블랙록을 찾았다. 주 정부의 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로 부실해지자 이 펀드의 고객인 학교 소방서 경찰 등에서 돈을 빼가는 ‘펀드 런’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몇 주 만에 펀드 규모가 270억 달러에서 140억 달러로 급감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블랙록은 며칠 만에 주 정부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서 부실 자산을 진단하고 그 처리 방안을 수립해 사태를 성공적으로 진정시켰다.
 
둘째, 담대한 모험 정신이다. 블랙록은 처음부터 잘 나갔던 회사가 아니었다. 블랙록의 CEO인 로런스 핑크는 1992년 블랙스톤 자산운용에서 해고당했다. 블랙스톤의 CEO였던 스티븐 슈워즈먼과 투자 전략에 관해 의견 충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해고당한 로런스 핑크는 자신이 지휘하던 식구들을 통째로 데리고 나와 블랙록을 설립했다. 당시의 운용자산이 바로 170억 달러로, 업계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이에 로런스 핑크는 과감한 도전 즉, M&A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공격적으로 성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1995년 미국 PNC 파이낸셜 은행, 2005년 스테이트 스트리트 리서치 앤드 매니지먼트, 2006년 메릴린치의 자산운용 부문, 2007년 켈로스 캐피털을 잇따라 합병했다.
 
성장의 정점은 2009년 있었던 바클레이즈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인수였다. 세계 자산운용업계 2위인 바클레이스 글로벌 인베스터스(1조 5020억달러)와 3위인 블랙록(1조3000억 달러)이 합병했기 때문이다. 합병 회사는 1조 62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했던 이전 1위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를 누르고 총 자산 2조 8000억 달러의 세계 최대 운용회사가 됐다.
 
여러 차례 금융회사를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워나가는 블랙록에 대한 비판의 시선도 있다. ‘서로 다른 운용회사에서 일했던 펀드 매니저들 간의 화합이 어렵기 때문에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블랙록에 합병된 메릴린치의 펀드 투자자들은 블랙록의 기업분석 능력과 위험관리 능력을 통해 자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운용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다양한 펀드 상품군을 갖춘 상태에서 위험 관리 위주로 자산을 운용한 덕에 금융위기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경제가 회복되면서 신성장 사업에 주목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18년 만에 160배의 성장을 이룬 블랙록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루더라도 그 근간에는 고유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하지만 그 전에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고,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부터 갖춰야 한다.
 
한일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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