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서 필자가 흥미롭게 들었던 수업은 토머스 디롱(Thomas J. DeLong) 교수의 ‘리더십과 조직 행동’이다. 모건스탠리에서 최고 인사 담당 책임자를 맡았던 디롱 교수는 인간과 사회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자극하고, 활발한 토론을 유도해낸다. 최근 그는 캐런 리어리라는 메릴린치 시카고 지점장의 사례를 수업에 사용했다. 필자는 이 수업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런 점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하버드에 오는구나’를 느꼈을 정도다.
케이스 소개
캐런 리어리(Karen Reary, 37)는 메릴린치 증권 시카고 지점장이다. 그녀는 시카고 근교에 거주하는 대만 화교들이 아직 증권사를 많이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고 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녀는 대만계 미국인인 테드 청(Ted Chung, 41)을 고용했다. 청은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600만 달러를 보유한 VIP 고객 한 명을 데려왔다.
청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을 데려 왔지만 리어리 지점장은 맘이 편하지 않다. 우선 청은 지점의 문화에 잘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젊은 여비서가 청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한테 그 따위 일을 시키다니”라고 화를 내면서 단칼에 요청을 거절했다.
특히 청은 고객에게 자주 콜드 콜(Cold Call, 영업 직원들이 사전에 고객의 동의를 얻지 않고 불시에 고객에게 전화하는 행동. 사전 예고 없이 고객을 방문했기에 고객들의 반응이 싸늘할 때가 많다는 점에서 유래한 단어)을 하라는 자신의 지시를 무시했다. “대만계 고객은 전화보다 점심을 같이 하는 걸 더 좋아한다”고 주장하며 고객과의 점심에만 몇 시간을 쓰는 일도 예사다. 메릴린치가 권유하는 주식을 거래하지 않고 고객이 원했다는 핑계를 대며 엉뚱한 주식을 사고 팔 때도 많다. 리어리는 청의 고객에게 정말 그런 거래를 원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어를 못하고, 대만계 고객은 영어를 잘 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어 답답하다.
어느 날 청은 리어리 지점장에게 자신만의 사무실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지점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던 직원들도 아직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리어리는 형평성 때문에 사무실을 내주긴 어렵다고 말했다. 청은 “사무실을 주면 더 많은 고객들을 데려오겠다”며 재차 요청한다. 당신이 리어리라면 청에게 사무실을 주겠는가?
케이스 토론과 상황극
“크리스, 자네가 리어리라면 청에게 사무실을 주겠나?” 디롱 교수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린다. 오늘은 크리스가 교수로부터 콜드 콜을 받았다. 교수가 90명의 수강생 중 무작위로 한 명을 뽑아 그에게 긴 발표를 하게 하는 방식은 이제 익숙할 때가 됐는데도 언제나 떨린다. 그 학생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나머지 학생들도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다행히 크리스는 케이스에 관한 예습을 잘해 왔다.
“저라면 절대 사무실을 주지 않겠습니다. 첫째, 청이 다른 직원에 비해 더 나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직 고객을 한 명 밖에 데려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고객은 VIP지만 한 명이라는 숫자만으로는 그가 정말 영업력이 뛰어난지, 그냥 운이 좋았는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그는 조직 문화에 잘 융화되지 못한 직원입니다. 그에게 사무실을 준다면 시카고 지점 전체의 분위기나 다른 직원들의 업무 의욕에 악영향을 미칠 겁니다. 셋째, 지점장의 권한에 도전하는 부하 직원에게 순순히 사무실을 준다면 이는 리어리의 리더십에도 큰 타격을 줄 겁니다. 리어리가 다른 직원들을 통솔하는 데도 문제를 낳을 소지가 큽니다.”
디롱 교수는 열심히 칠판에 크리스가 말한 내용을 적고 있었다. “더 얘기해 보죠. 맥스, 크리스의 의견에 동의하나요?” 여성 운동가 출신으로 MBA와 정치학 석사를 함께 공부하고 있는 맥스가 손을 든다. “동의합니다. 과거 청이 보여준 행동은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상사의 권위에 도전한 일도 많았고, 여비서의 간단한 요청을 무시하는 등 여성에게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상사가 여성이라 상사의 권위를 더 무시하는 듯 합니다.” 그 후에도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청이 정말 고객의 요청대로 거래를 하고 있는지, 왜 청은 회사에서 다른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지 등등 청이 사무실을 받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만 쏟아졌다.
디롱 교수가 나섰다. “여러분들이 리어리였다면 청은 사무실을 얻지 못했겠네요. 사무실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은 없나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지난 몇 분간 청에게 불리한 내용만 오가다 보니 사무실을 주는 일도 전략적 선택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발표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가 필자의 영어 이름을 부른다. “좋아. 션, 왜 청에게 사무실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