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조직의 세부 기능을 쪼개어 분배하는 단위로는 적합하지 않다. 기능별 조직은 보통 창업 이후 조직규모가 커지면서 경영자의 개인적 능력만으로 조직을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난다. 업무 프로세스에 따라 기능이 분화되고, 최고경영자의 초기 의사결정과 최종 의사결정에 따라서 각 선-후 기능이 일사불란하게 투입(Input)돼 산출(output)을 내 놓으며 가치를 창출한다. 기능별 조직이 정착되며 조직 내 3,4개 이상의 크게 다른 제품계열이나 사업이 생기기 시작하면, 관료주의와 구성원 무임승차(free-rider)의 문제가 야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 단위를 제품 또는 고객단위로 구분하고 책임과 권한을 대폭 위임하는 형태의 사업부제가 도입된다. 이후, 각 사업부에서는 신제품의 개발, 특정 문제의 해결, 사업부 내 단위부문이나 부서 간 협력(cross-functional cooperation)을 위해 팀제를 도입한다. 또한 사업부 체계가 정착되면, 사업부 내에서 다시 단기 성과책임을 세분화해 부여할 수 있는 팀을 구성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더욱 세분화하게 된다.
A기업은 R&D에서 납품영업관리까지의 기존 업무 프로세스의 전-후방 기능을 세분화해 팀으로 구분했다. 이는 사실상 과거의 기능별 조직체계와 구조상 전혀 다를 바 없는 일종의 ‘무늬만 혁신’에 해당한다. A기업은 기존 상시 업무영역과 사업에 대해서는 기능별 조직을 유지하되, 신제품 개발, 신고객 개척, 업무프로세스 효율화, 새로운 제도 도입과 같은 기능간 협력이 요구되는 영역이나 한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가 뚜렷한 개선 과제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팀이나 태스크포스(task force team)를 도입했어야 했다. 이후 제품군이나 고객군이 다변화되고 각각의 규모가 커지면, 특정 제품별, 특정 고객군별, 또는 지역별 팀을 도입해서 고객과 시장에 더욱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는 조직구조로의 전환을 꾀하는 게 바람직했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팀제를 통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구글, 3M, 듀폰, 고어와 같은 조직들의 공통점은 소규모 팀의 활용에 있다. 구성원의 자율적 관심과 흥미에 의해 상향식(bottom-up)으로 형성된 수많은 소규모 팀을 신기술 R&D, 신상품 개발, 서비스 및 품질 개선과제, 기존 핵심역량 재편성 또는 기존 사업 간 융합을 통한 새로운 사업영역 개발, 서비스와 제공가치 개선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문제해결 등에 활용한 것이다. 구글에서는 2, 3인이 모여 즉각적으로 팀을 만들 수 있다. 제조업체인 고어는 혁신성을 장려하기 위해 어떤 공장이든 소속 구성원 수가 200명을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 즉, 대규모 상설조직으로서의 팀이라기보다는 소규모 조직으로서의 팀제 활용을 통해 기존 사업보다는 미래 성장 동력의 발굴과 개발에 기여하도록 한 점이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⑤구성원의 역량과 팀 리더의 저변
다섯째, 팀제를 통해 기대효과와 성과를 창출할 구성원의 역량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객관적 파악이 쉽지 않은 영역이긴 하지만, 팀제 도입과 활용 유형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검토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팀제에서 핵심은 팀 스스로가 가진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팀 목표에 대한 팀원들의 지대한 관심과 몰입에서 나온다. 즉, 수동적으로 명령을 실행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구성원이 조직 내 상당수 존재해야 팀제가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관심과 몰입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관심분야를 해결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개인의 전문성이 팀원 간 협업에 의해 더욱 탁월한 조직의 전문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협업적 태도가 강한 구성원들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촉진시킬 수 있는 코치(coach)로서의 리더, 즉 팀 리더(team leader)의 저변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는 팀장이 아니라 팀 리더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사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 뿌리내린 한국형 팀제, 이른바 ‘대부대과(大部大課)’형 팀제로 인해 형성된 ‘팀장’의 의미는 지극히 관리자에 가깝게 자리 잡았다.(그림2) 관리자는 엄연히 리더와 다르다. 전 하버드대 교수 존 코터(John P. Kotter)는 그의 논문 ‘리더의 진정한 역할(What Leaders Really Do)’에서, 리더(leader)와 관리자(manager), 그리고 리더십(leadership)과 관리(management)의 차이를 명확히 밝혔다. 관리자는 하향식으로 부여받은 수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을 일정한 규율에 따라 통제하고, 조직화하며, 끊임없이 목표와의 괴리를 줄여나가기 위한 문제해결에 집중한다. 리더는 스스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에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고, 구성원들이 제시된 방향으로 일보 전진하는 데 필요한 답을 스스로 찾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즉, 진정한 팀 리더는 상사나 구성원들에게 직접 답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촉진하며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역할을 한다.
A기업은 소수 납품처의 요구를 맞추기 위한 수동적 대응생산에서 아직 탈피하지 않은 단계로, 능동적인 신제품 개발 경험이 아직 축적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스스로 이슈를 던져서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의미있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만한 구성원의 역량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리더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갖추고 팀 리더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할 중간관리자 층은 상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사적인 팀제의 도입은 어쩌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더구나 구성원과 팀장의 팀 리더로서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 고객군, 브랜드와 같은 책임경영이 명확한 단위의 팀이 아니라, A기업처럼 프로세스나 기능에 기반해 팀을 구분한다면 그 재앙은 더욱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리더십이 부족한 팀장은 부여된 자율권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나마 최종 결과에 대한 책임마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관리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섣부른 팀제의 도입은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는 자율성을 주장하며 회피하고, 성취하기 쉽고 편한 목표를 설정하고 희생은 꺼리는 팀 이기주의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
A기업과 같은 조직은 전사적으로 팀제를 도입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구성원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중간관리자의 리더십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 전체적인 조직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품질이나 서비스 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비공식적 학습조직이나 소규모 분과 활동을 활발히 하도록 지원해 특정 주제에 대해 전문성을 축적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또 특정 주제에 대한 소규모 프로젝트 팀을 발족시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이를 공유하면서 점차적으로 팀제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팀 리더로 적합한 팀장 후보군의 발굴도 이뤄질 수 있다.
⑥CEO의 권력분권화 및 의사결정 민주화 수용 의지
여섯째, CEO 자신의 성향과 의지도 팀제 도입 시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팀제가 효과적으로 기대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권한 위임과 자율성의 부여가 전제돼야 한다. 즉, 조직 내 집중화된 권력의 분산이 이뤄져야 한다. 창업 이후 일정 기간 모든 것을 직접 스스로 챙겨야 했던 시절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아는 CEO나 창업자에게 권한과 책임의 위임과 시스템에 의한 경영은 상당히 매력적인 진화 방향이다.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판단과 의사결정에 할애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고, 더 복잡하고 커진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자신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있다 하더라도 권한 위임은 쉽지 않다. 책임은 위임하나 권한은 위임하지 못하기도 한다. 과거 스스로가 이룬 성공 경험에 대한 맹신, 구성원의 역량에 대한 이해와 믿음 부족, 지엽적인 사항에 대한 관여의지(Phantom of Detail) 등이 권한 위임을 막는 심리적 장애요인을 만든다. 일부 실수가 일어나거나 성과가 일시적으로 하락하면 권한을 다시 회수하는 경우도 잦다. 위임된 권한이 빈번히 회수되거나 책임만 묻고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의지와 주인의식이 형성되지 못한다. 권한 위임에 따른 불안은 지속적인 관찰과 코칭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팀제를 통해 성공을 거둔 조직은 대부분 X이론이 아닌 맥그리거의 Y이론을 경영철학과 조직가치의 기본 관점으로 삼는다. Y이론의 핵심은 인간에게는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 문제해결을 해 나가는 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가치 있는 업무를 부여하고 업무 수행 과정과 결과에 대해 다차원적인 보상을 하면 구성원들도 CEO나 창업자와 마찬가지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 혁신적 소규모 팀제를 통해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조직으로 언급되는 대표적인 기업들인 홀푸드, 고어, 구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CEO가 구성원에 대해 Y이론적 관점과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 하에 상향식 아이디어 개진을 강조하고, 오늘날 민주주의 방식과 유사한 상향평가 또는 전체 구성원 투표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권한을 적극적으로 부여하고, 부여 받은 권한을 활용해 재무적이든 비재무적이든 마치 개인 사업자와 같은 수준의 책임의식을 느끼며 조직에 스스로 기여하도록 만든다. 즉, 팀제를 단순한 조직구조 차원의 하드웨어적 문제로 접근하고 활용한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믿음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조직의 문화적 토대를 강화시켜 나가는 소통 및 의사결정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에는 직함이나 계층이 없다.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라는 타이틀은 존재한다. 보통 특정한 분야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 회의를 소집해 조직화하고, 이에 응하는 사람들이 늘게 되면 바로 그 사람이 리더가 된다. 이후, 그 사람이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거듭 리더로서 봉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받게 되면 이들은 자신의 명함에 ‘리더’라는 타이틀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약 10%의 구성원이 스스로 특정 분야의 ‘리더’라는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즉, 고어에서 리더란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소규모 학습조직을 조직화해 그 해답을 얻는 과정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또 여러 번의 선례(track record)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리더로서 인정받은 사람이다.
굴삭기 제조업체인 캐터필러는 CoP(Community of Practice) 활동을 강조한다. CoP는 특정 문제나 과제에 대해서 공통적인 관심이 있는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소규모 학습조직을 형성해 자율적으로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는 활동이다. 회사는 CoP로 등록된 소규모 조직이 원활하게 학습활동을 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 회의장소, 공식적 학습활동으로의 대체인정, 필요강사 및 외부전문가 공급, 은퇴자나 고객사와의 연결 주선 등 인프라 지원 및 활동장려를 위한 부분에 집중했다. 그 결과, 실제 경영 과제 해결에 유용한 결과를 제시하는 CoP가 크게 늘었다. 캐터필러는 이들의 성과와 활동을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지해 다른 구성원의 피드백과 동참을 더욱 늘릴 수 있었다. 또 이 과정에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모임을 주도하는 리더를 발굴해 리더급 인재의 저변을 늘리는 효과도 얻었다. 나아가 캐터필러는 혁신과 개선에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는 안을 제시한 CoP의 리더에게 소규모 팀을 공식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교육과 실제 문제 해결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캐터필러의 접근방법은 A기업과 같은 전통적 제조업체에서 적용할 수 있는 단계적인 팀제 도입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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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은 단기간에 성취하기 어렵다. 팀제 도입으로 변화를 추진하려면 조직 구성원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자율성 부여가 이뤄져야 한다. A기업은 팀제 도입 후 단기적 실패와 혼란이 일어나자 다시 과거 체계로 돌아가버렸다. 물론 앞서 실패 원인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A기업에 전면적인 팀제 도입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하지만 A기업의 CEO는 전면적으로 팀제를 도입하기 전에 팀제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기능별 조직의 단점 보완을 위한 프로젝트 팀 신설, 신 사업 또는 신규고객 발굴을 위한 팀 신설과 같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먼저 시도했어야 했다.
사실 국내 기업들은 팀제를 업무프로세스혁신(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이나 전사적품질관리(Total Quality Management)와 같은 경영혁신 기법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작금의 경영환경에서 무조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당위라고 생각하고, 팀제를 도입하면 바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또 팀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과거 전통적 인사제도와의 상충에 따른 혼란, 업무 방식과의 괴리 등이 발생함에 따라 이른바 한국형 팀제라고 할 수 있는 대부대과형의 팀제를 정착시켜 왔다.
하지만 사실 대부대과형 팀제는 순수한 의미의 팀제로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과거의 과부제 방식에서 명칭과 약간의 운영 방식만 바뀐 무늬만 팀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상시적 기능이나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야 할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도 대부분 ‘팀’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면서 팀이 가져야 할 본래의 의미와 목적이 퇴색된 측면도 있다.
팀제 자체를 당위나 목적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성장을 위한 최적 조직구조 및 의사결정 체계 구축, 핵심경쟁우위에 적합한 조직운영 방식 도입, 구성원의 주인의식과 자율성, 전문성 강화, 개인과 조직목표의 동기화, 책임과 권한의 위임 등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요소들을 균형 있게 강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동태적인 소규모 팀제를 활성화해, 이들이 혁신의 전파자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 및 기술, 제품을 개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융합적 연구를 촉진시키기 위한 R&D 조직, 고객의 잠재적인 수요를 발굴하는 인사이트 마케팅 조직, 각종 운영 효율화를 위한 혁신을 주도하는 조직, 신성장 동력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구체화하는 조직 등이 소규모 팀제 도입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역이다.
또 수직적 단계의 축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규모 팀 간, 프로젝트성 팀과 기존 조직 간의 수평적 의사소통 활성화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 간 협업과 융합적 아이디어 도출을 장려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팀제 성공의 핵심요소다.
필자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미국 테네시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앤더슨컨설팅과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쳐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사인 머서의 한국지사 공동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 및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인재관리 및 육성 전략, 기업 인수합병 후 인사통합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