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들어 세계화와 기술 혁신이 빨라지면서 기업들은 다양화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수의 상품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업들은 단일 사업부 내에서도 다수의 상품들을 보유하게 됐고, 이는 결국 사업부 수준의 전략인 경쟁 전략의 필요성을 촉발시켰다. 이 시기에 전략적 감각이 뛰어난 서구의 일부 기업들은 패밀리 브랜드나 개별 브랜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높은 신뢰도를 주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상품에 기업 브랜드만을 부착했다. 물론 신상품임을 알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알파벳이나 숫자 등 브랜드 수식어(brand modifier)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엄격히 말해 오늘날과 같은 브랜드 포트폴리오 관리에 입각한 방식은 아니었다. 이는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상품이 가지는 개별적 특성들의 조합으로 간주한 초기의 연구 흐름에서도 알 수 있다(Dacin and Smith, 1994).
이 시기에 기업들이 당면했던 문제는 개별 사업부 내에서 각기 다른 단일 브랜드를 부착한 상품들이 증가함으로 인해 다수의 상품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상품의 생애 주기에 따라 상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방법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기업 전략과 마찬가지로 경쟁 전략에서도 한정된 마케팅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야 상품 출시 후 성장하는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상품 관리가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기업 전략에서 사용하던 BCG 매트릭스를 경쟁 전략에서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업 전략의 BCG 매트릭스와 경쟁 전략의 BCG 매트릭스를 구분하기 위해 경쟁 전략에서 사용한 BCG 매트릭스를 상품 포트폴리오 매트릭스(PPM·Product Portfolio Matrix)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 통찰력 있는 일부 학자들은 이 시기에 전개된 변화의 흐름에 주목해 상품이 아닌 브랜드 관점에서 기업 경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Murphy, 1990; Aaker, 1991; Kapferer, 1992).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술 혁신으로 경쟁 상품들 간에 품질 격차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지각된 품질(perceived quality)이라는 용어가 출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각된 품질이란 기능적이고 객관적인 품질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지극히 상대적인 품질을 의미한다(Aaker, 1991). 다른 하나는 상품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브랜드의 수 또한 점차 증가하는 현상에 착안해 상품과 마찬가지로 브랜드도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Kapferer, 1992; Aaker and Joachimsthaler, 2000).
브랜드 포트폴리오(brand portfolio)를 이해하려면 먼저 브랜드 아키텍처(brand architecture)를 알아야 한다. 브랜드 아키텍처는 다수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이 브랜드 관리를 최적화하기 위해 만든 브랜드의 수평적·수직적 구조를 말한다. 이때 수평적·수직적 구조는 브랜드 하이어라키(brand hierarchy), 즉 브랜드 간 서열을 뜻한다. 브랜드 하이어라키의 최상위에는 기업 브랜드(corporate brand)가 있다. 다음으로 여러 상품군을 포괄하는 패밀리 브랜드(family brand), 특정 상품에만 부착되는 개별 브랜드(individual brand), 브랜드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브랜드 수식어(brand modifier) 순으로 구성된다. 흡사 축구에서 선수들을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골키퍼로 배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각각의 브랜드별로 역할을 할당하고,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도록 함으로써 브랜드 자산을 강화하는 관리 기법이다. 즉, 축구에서 어떤 선수를 공격의 주축으로 삼을지, 어떤 선수를 수비의 중심축으로 활용할지, 누구에게 게임 메이커의 역할을 맡길지를 결정하는 방식이 바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랜드 전략가인 제프리 싱클레어는 브랜드 포트폴리오 관리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각각의 브랜드는 하나의 가족과 같다. 각각의 역할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각각 정립되어야 한다.”
실무적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한 기업이 여러 시장을 공략할 때와 단일 시장을 공략할 때 모두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휴대폰, 컴퓨터, 디지털TV 등 다양한 종류의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은 서로 다른 시장 영역에 각각 애니콜, 센스, 파브 등의 브랜드를 붙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제품으로 서로 다른 시장을 공략하는 상황에서 자사 브랜드 간의 관계 및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먼저 구축한 후 개별 브랜드 간의 하이어라키를 정립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처럼 자동차라는 단일 제품으로 단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현대차처럼 다수의 개별 브랜드로 단일 시장을 공략할 때는 개별 브랜드 간 하이어라키를 먼저 정립한 후, 브랜드 포트폴리오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모델
비즈니스 혹은 상품 포트폴리오 관리의 목적은 기업의 최적 수익을 위해 다수의 사업이나 상품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데 있다. 그러나 브랜드 포트폴리오 관리의 목적은 조금 다르다. 물론 브랜드 포트폴리오 역시 기본적으로는 다수 브랜드들 상호 간에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더 큰 목표는 해당 회사의 모든 브랜드를 강력한 하나의 유무형 자산으로 구축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