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포트폴리오 변경 방법론
삼성, 삼호, 삼양, 개풍, 동아, 락희, 대한,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혹은 생소하기도 한 이 10개 기업의 리스트는 무엇일까?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 ‘락희’(현 LG)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개풍’ ‘삼호’ 간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정답은 다소 놀랍다. 이는 불과 50년 전인 1964년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10대 기업을 나열한 명단이다. 당시 10개 기업 중 ‘삼성’ ‘락희(현 LG)’만 지금까지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 다른 기업들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삼호’ ‘개풍’ ‘화신’처럼 아예 문을 닫아버린 회사도 세 개나 된다. 이러니 기업 경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
많은 기업들이 대대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한 성공적인 기업 변신을 추구한다. 안타깝게도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올리버 와이먼은 광범위한 국내외 고객사 사례 연구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변경 실패를 야기하는 7가지 원인을 발견했다.
첫째, 조직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이다.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은 조직 내 크고 작은 수많은 ‘변화’들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기존 구성원들이 이러한 ‘변화’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기존 방식이나 관행에 따라 움직이려고 한다면 기업이 추진하고자 하는 어떠한 변화도 추진 동력을 얻기 힘들다.
둘째,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경영진의 역량 미흡(Low management competence)이다.변화란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리더들이 명확한 비전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조직 전체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셋째, 전략 및 조직 시스템의 오류(Wrong strategy and organizational systems)다.시장과 경쟁 상황에 대한 판단 착오로 적절치 못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압도적인 시장 리더 지위를 확보하면 안정적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오판 때문에 사양화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일이 핵심 과제인 산업에서 틈새시장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넷째, 조직 전반의 혁신 역량 부족(Low innovation ability)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탁월한 성과를 구가하는 기업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오랜 기간 시장을 선도해온 기업들은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는 탁월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룰과 관행을 뛰어넘는 혁신을 창출하는 데는 상당히 미흡하다. 대표적 예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의반 타의반으로 ‘태블릿 PC’ ‘인터넷TV’ 사업 등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는 기존 이동전화, PC, 디지털 TV시장에서 구축한 압도적인 입지 및 성과에 크게 하회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
다섯째, 낮은 조직 성과(Low performance or-ganization)다.경영진이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기반한 적절한 전략을 마련했다 해도 이를 실행하는 조직 역량이 부족하다면 사업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조직 역량은 단순히 구성원의 평균 학력 수준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부여된 목표와 과제를 최대한의 효율로 처리할 수 있는 실행력을 뜻한다. 법에 의해 독점적 시장지위가 보장됐던 국영기업들이 민영화 이후 각기 야심 찬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도 선의의 내외부 경쟁 및 자발적 혁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과도한 주주가치 고려(Focus on share-holder value not comprehensive enough)다. ‘단기 수익성 중심의 경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화학공업 등 장치 산업은 지금 당장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도 빨라야 5∼10년 이후부터 투자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때가 많다.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의 결실조차 중장기 이후에 발생하기에 대다수 전문 경영인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 의사결정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럴 경우, 해당 산업으로의 성공적 진입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일곱째, 과도한 프로젝트 추진(Project overkill)이다.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추진하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면 온갖 종류의 TF(task force), 협의기구, 임시 관리조직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필자가 담당했던 한 고객회사는 ‘변화 과제를 추진하는 A팀’ ‘A팀을 지원하는 B팀’ ‘A팀과 B팀이 잘 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C팀’ ‘C팀을 관리하는 D팀’을 동시에 운영하는 자원 낭비를 저질렀다. 경영진의 과욕, 상이한 사업부 간의 소모적 경쟁, 외형 위주의 변화과제 추진 등은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를 야기하는 원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