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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포트폴리오 변경 방법론

‘전략적 인내’로 영속하는 기업 만들어라

정호석 | 65호 (2010년 9월 Issue 2)



 

삼성, 삼호, 삼양, 개풍, 동아, 락희, 대한,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혹은 생소하기도 한 이 10개 기업의 리스트는 무엇일까?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 ‘락희’(현 LG)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개풍’ ‘삼호’ 간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정답은 다소 놀랍다. 이는 불과 50년 전인 1964년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10대 기업을 나열한 명단이다. 당시 10개 기업 중 ‘삼성’ ‘락희(현 LG)’만 지금까지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 다른 기업들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삼호’ ‘개풍’ ‘화신’처럼 아예 문을 닫아버린 회사도 세 개나 된다. 이러니 기업 경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
 
필자는 사석에서 만난 어느 재벌 총수에게 기업 경영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손자는 물론 증손자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회사를 가꾸는 것”이었다. 경영학원론 첫 시간에도 ‘영속하는 기업(going concern) 만들기’가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라고 가르친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짐 콜린스의 책 제목 ‘Built to Last’가 의미하는 바도 이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속하는 기업은 이다지도 적을까. 과연 영속하는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을 떠올려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효과적이고 적절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통해 ‘수익성 있는 성장(profitable growth)’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올리버 와이먼 고유의 사업포트폴리오 설계 방법론인 ‘VDBD(Value-Driven Business Design, 가치지향형 비즈니스 디자인 설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 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요인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성공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이란 무엇인가?
우선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의 의미에 대해 간략한 정의를 내려보자. 일반적으로 다각화된 기업 즉, 성격이 상이한 복수의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는 단일 기업이나 복수의 계열사나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 집단이 기존 사업 영역별 시장 매력도, 시장 내 지위, 성장성, 수익성 등을 면밀히 분석해 ‘어떤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 육성할지’ ‘어떤 사업을 축소 혹은 퇴출할지’를 결정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기업 활동의 영역을 재정의 한다는 점에서 ‘어디에서 싸울 것인가(Where to compete)에 대한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존 사업의 매력도가 향후에도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기존 사업 내 투자 우선 순위 결정이나 사업 범위 확장(밸류 체인 상의 확장, 제품 및 서비스 라인 업 확장, 지역적 확장) 등을 먼저 검토할 수 있다. 반면 기존 사업 영역들이 성장성, 수익성 등 주요 지표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청산, 매각, 신속한 사업 철수 등을 포함한 과감한 구조조정 및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작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조조정, 기업 변신, 신성장 동력 혹은 신 수종 사업 발굴, 세계 시장 공략 확대, 전후방 통합 혹은 수직계열화 등이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 범주에 포함되는 사안들이다.

 


VDBD
1단계: 기존 비즈니스 디자인 명확화 및 각 비즈니스 디자인별 현재 성과 진단
2단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적 위험 요인 및 성장 기회 도출
3단계: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확정 및 투자 대상 및 우선 순위 의사결정
4단계: 전사 차원의 인재 확보 및 변화 관리
비즈니스 디자인은 사업 수행의 핵심 요소 및 실행 체계 전반을 포괄하는 올리버 와이먼 고유의 개념으로 Value Proposition(대 고객 가치 제언), Pro-fit Model(수익 모델), Scope(사업 수행 범위 및 방식), Strategic Control(차별화 및 경쟁 우위 지속 방안), Organi-zational Architecture(사업 수행을 위한 최적 실행 체계)의 5개 요소로 이뤄진다.(표1) 두산그룹의 포트폴리오 조정 사례를 통해 VDBD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기존 비즈니스 디자인 명확화 및 현재 성과 진단
‘비즈니스 디자인’ 개념에 의거해 자사(自社)의 현재 사업 영역 및 실행 방식을 정의하고, 각 비즈니스별 현재 성과 및 경쟁력 수준을 진단하는 단계다. 이 단계의 핵심은 기존 사업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특히 비즈니스 디자인의 요소 중 하나인 ‘Scope’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자사의 사업 영역과 연계된 전체 사업 범위에 대한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 올리버 와이먼에서는 이를 인접 경제 영역(Economic Neighborhood)이라 부른다.
 
<그림1>에 나온 제지산업의 사례를 통해 인접 경제 영역의 개념을 알아보자. 제지업체의 일반적인 사업 영역은 원재료를 매입한 후 종이, 종이보드, 목재 등의 상품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1차 인접 경제 영역에는 제지 원재료 생산 및 가공 사업, 제지 상품 관련 사업이 해당한다. 가치사슬 관점에서 보면 자사가 담당하고 있는 사슬의 전후방에 가장 가까운 영역이므로 근거리 경제 영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근거리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은 다음의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어떤 원료 공급회사의 협상력이 지나치게 강해 원재료 조달 가격이 비싸고, 납기의 안정성도 확보하기 어렵다면 해당 상품을 만드는 업체는 자체적으로 원료 공급 업체를 설립해 구매 안정성을 높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둘째, 1차 가공상품(예: 제지 상품)보다 응용 상품(출판물, 포장재, 건축, 가구)의 시장 규모 및 부가가치가 훨씬 높을 때다. 이때 1차 가공업체는 상품 기획 및 디자인 역량을 확보해 응용상품 시장으로의 진입을 모색할 수 있다.
 
2차 인접 경제 영역의 가장 일반적 예는 기존 고객회사(예: 응용 상품 업체)의 고객이다. 제지업체의 고객인 인쇄업체의 고객, 즉 언론사는 광의의 개념에서 제지업체의 사업 영역에 해당한다. 이를 원거리 경제 영역이라 부른다. 언뜻 보면 제지업체와 부동산개발 산업이 무슨 관련이 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인접 경제 영역의 개념을 적용해 보면 양자의 관련성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시 인접 경제 영역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기존 사업 내 고객 가치 이동 트렌드(value migration trend) 파악, 본원적 관점의 경쟁 우위 및 열위 발생 요인 규명, 향후 사업 확장 기회 모색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런 큰 그림 하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사의 사업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기존에 간과했던 어떤 시장을 노려야 할지 등을 찾아낼 수 있다.
 
이후에는 적절한 평가기준을 통해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진단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사업영역 간의 차별적 속성, 즉 해당 시장에 대한 진입 시기, 경쟁 강도, 산업 수명 주기, 자사 시장 지위 등을 성과 진단 시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황금률 같은 성과평가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이나 상품 간 차별화 정도가 낮은 일상재(commodity) 산업에서는 매출액이나 시장 점유율보다 수익성 지표를 우선한다. 반면 신규 추진 사업에서는 수익성보다 매출액 및 시장 점유율 지표를 우선한다. 단기적 수익 창출보다는 파이 자체를 키워 우월한 시장 지위를 확보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므로 투자 효율성이 중요한 사업에서는 ROIC(투자자본 수익률)이나 EVA(경제적 부가가치)처럼 경제적 기회비용을 감안한 성과 지표를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
 
 
두산그룹은 매출이 정체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잇따른 외부 컨설팅 작업을 통해 자사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창업 100주년을 맞았던 1996년 9400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게 소비재 위주의 기존 사업으로는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낳게 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적 위험 요인 및 성장 기회 도출
1단계 작업의 결과물을 분석해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단계다. 2단계에서는 자사의 위험 요인과 성장 기회를 동시에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1단계 진단 결과를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전략적 통찰력(strategic insight)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회사의 인접 경제 영역에서 현재 자사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으로 가치가 유입되고 있는지, 유출되고 있는지(value migration trend)를 분석하는 일이다.
 
가치 유입(value inflow) 혹은 유출(value outflow)의 규모 및 원인을 먼저 분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향후 지속적인 가치 유입이 예상되는 영역은 ‘향후 강화 및 확장’ 후보군, 지속적 가치 유출이 예상되는 영역은 현재 성과에 관계없이 점진적 퇴출 대상 후보군으로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치 유출 영역에서는 유출된 가치가 인접 경제 영역 내의 어떤 지역으로 유입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때 가치 유입 영역에 해당하는 사업이 신규 사업 추진의 최우선 후보군이다.
 
소비재 중심에서 인프라 사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경한 두산그룹의 사례는 인접 경계 영역의 개념을 이용한 사업 확장이라고 보긴 어렵다. 소비재 업체의 1차 고객은 개인이기 때문에 이 개인을 상대로 한 2차 고객시장을 발굴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인접 경제 영역의 개념을 이용해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작업은 기존 사업의 매력도가 일정 수준 유지되거나, 기존 사업의 경쟁우위가 신규 사업 성공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 수 있을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두산그룹처럼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저조한 상태를 면치 못하면 극단적인 형태의 ‘Outside-In(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신규 사업 아이템을 모색하는 작업)’ 방식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인접 경제 영역의 개념을 이용했을 때보다 위험 수준이 훨씬 높지만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그만큼 크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두산그룹은 기존의 핵심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는 영역에서 남들보다 매력적인 사업 기회를 먼저 발굴하는 Outside-In 방법을 통해 인프라 사업이라는 신성장 동력을 발굴했다. 두산은 모기업인 OB맥주를 포함, 창사 이래 안정적 성과를 창출해 왔던 주력 사업군(소매 및 식음료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겉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SOC 관련 사업(중공업, 종합기계 등) 진출을 통해 주력 업종을 완전히 전환, 성공적인 기업 변신(corporate transformation)을 달성했다. 한국 경제의 성장 구조 변화, 기존 핵심 사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가능성, 소비자들의 요구 변화 등을 검토한 결과 기존 핵심 사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Inside-Out(인사이드 아웃), 즉 자사 핵심 역량 기반의 포트폴리오 조정 및 관리 방법론은 신규 사업 기회를 포착할 때 한계가 있다. 기존 사업 기반 및 보유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나, 이 장점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 기존 시장의 판을 흔드는 근본적 변화(quantum leap)를 수반하는 신규 사업 기회는 현재 기업의 핵심 역량과는 거리가 있는 시장, 지역, 제품에서 나타날 때가 많다. 때문에 현재의 강점에만 집중하다 보면 애플의 아이폰이나 닌텐도의 위(wii)처럼 혁명적인 제품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인프라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채택한 두산그룹은 선제적 사업 매각 및 청산 작업을 통해 소비재 위주의 기존 사업을 효과적으로 정리했다. 두산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불과 2년여의 기간 동안 한국네슬레, 한국 3M, 한국코닥, 두산씨그램, OB맥주 지분 등을 잇따라 처분했다. 현금흐름을 개선한 두산은 신규 주력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두산은 국내외, B2B와 B2C 등의 획일적 구분을 뛰어넘는 전방위적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한 끝에 인프라지원 사업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해외에서는 미국 AES, 영국 미쓰이밥콕, 중국 옌타이 유화기계, 미국 밥캣, 체코 스코다파워 등 세계 각지의 인프라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만일 두산이 내수 위주의 소매업에서 축적한 핵심 역량에만 의존한 채 포트폴리오 조정을 단행했다면 결코 세계적인 SOC기업으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다.
 
두산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가져온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2000년 4조 원에 불과했던 두산의 매출은 이후 지속적인 해외 시장 공략을 통해 2005년 11조 9000억 원, 2009년 21조 4000억 원으로 급증했다. 사업 구조를 개편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기업 규모가 다섯 배 이상 커진 셈이다. 매출 구조의 변화 또한 뚜렷하다. 1996년 두산그룹 전체 매출의 26%에 불과하던 인프라지원 사업의 비중은 2008년 87%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의 12%에 불과하던 해외 매출 비중 또한 56%로 성장했다.
 


 미래(To-be) 사업 포트폴리오 확정 및 우선순위 결정
앞의 2단계를 통해 도출한 위험 요인 및 성장 기회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미래(To-be) 사업 포트폴리오의 청사진을 확정하는 단계다. 기존 사업 군(群)에서는 강화 및 확대 대상, 현상유지 대상, 축소 및 철수 대상을 최종적으로 선정한다. 아울러 향후 추진할 신규 사업의 분야, 진입 방식, 투자 규모 및 집행 계획도 확정해야 한다. 이 단계야말로 기업 경영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우수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왔거나, 초기에 막대한 진입 비용을 투자한 사업이라 해도 향후 급속한 가치 유출, 시장규모 축소, 수익성 하락 등이 예상된다면 ‘철수’라는 용단이 불가피하다. 마찬가지로 현재 성과가 부진한 사업이라 해도 중장기적 관점에서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인내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 중차대한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경영진에게는 높은 수준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를 ‘전략적 인내(strategic tolerance)’라 부른다.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잭 웰치 전 GE회장은 개별 산업에서 1∼2위를 기록하지 못하는 사업부들은 아무리 우수한 성과를 달성해도 가차없이 정리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대량 해고 등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여전하다. 웰치 본인에게도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거나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치는 이 원칙을 예외 없이 밀고 나갔다. 웰치의 그 결정이 GE를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남아있게 한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 과정을 거쳐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의 청사진을 완성하면,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비즈니스 디자인의 5대 구성 요소를 각 사업별로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특히 2단계에서 파악한 기회 및 위협 요인을 효과적으로 반영한 새로운 Value proposition(대 고객 가치제언, 수익모델 및 지속적 경쟁우위 창출방안)을 설계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기존(As-Is) 사업 포트폴리오로부터 새롭게 정의한 미래(To-be) 사업 포트폴리오로 어떻게 이동할지를 의미하는 이행 계획(migration plan)도 수립해야 한다.
 
두산그룹은 SOC 사업으로의 성공적 진입을 위해 크게 2가지 이행 계획을 세웠다. 첫째, 국내 M&A기회의 적극 활용을 통한 초기 사업 역량 확보다. M&A를 앞세운 역량 확보 시도는 이미 완성된 역량을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자체 투자를 통해 순차적으로 역량을 확보할 수도 있겠으나 내수 소비재 사업 경험 밖에 없는 두산이 내부 노력을 통해 글로벌 SOC사업을 수행할 만한 역량을 획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선(先) 국내업체 인수 후(後) 글로벌 업체 인수다. 우선 국내업체 인수를 기반으로 인프라 사업에 대한 이해 및 기반을 공고히 한 뒤, 자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역량을 확보한 시점에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전략이다. 두산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중공업, 고려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 등 국내업체를 인수하며 M&A 역량을 쌓았다. 이후 2006년부터 AES, 미쓰이밥콕, 밥캣, 스코다파워 등 해외 업체들을 잇따라 사들였다. 즉 ‘과감함’과 ‘신중함’을 겸비한 이행 계획을 통해 성공적으로 기업의 체질을 확 바꾼 셈이다.
 
 
많은 기업들이 대대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한 성공적인 기업 변신을 추구한다. 안타깝게도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올리버 와이먼은 광범위한 국내외 고객사 사례 연구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변경 실패를 야기하는 7가지 원인을 발견했다.
 
첫째, 조직 관성(organizational inertia)이다.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은 조직 내 크고 작은 수많은 ‘변화’들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기존 구성원들이 이러한 ‘변화’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기존 방식이나 관행에 따라 움직이려고 한다면 기업이 추진하고자 하는 어떠한 변화도 추진 동력을 얻기 힘들다.
 
둘째,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경영진의 역량 미흡(Low management competence)이다.변화란 본질적으로 끊임없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리더들이 명확한 비전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조직 전체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
 
셋째, 전략 및 조직 시스템의 오류(Wrong strategy and organizational systems)다.시장과 경쟁 상황에 대한 판단 착오로 적절치 못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압도적인 시장 리더 지위를 확보하면 안정적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오판 때문에 사양화가 예상되는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일이 핵심 과제인 산업에서 틈새시장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넷째, 조직 전반의 혁신 역량 부족(Low innovation ability)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탁월한 성과를 구가하는 기업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점이다. 오랜 기간 시장을 선도해온 기업들은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는 탁월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룰과 관행을 뛰어넘는 혁신을 창출하는 데는 상당히 미흡하다. 대표적 예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의반 타의반으로 ‘태블릿 PC’ ‘인터넷TV’ 사업 등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는 기존 이동전화, PC, 디지털 TV시장에서 구축한 압도적인 입지 및 성과에 크게 하회하는 실적을 내고 있다.
 
다섯째, 낮은 조직 성과(Low performance or-ganization)다.경영진이 명확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기반한 적절한 전략을 마련했다 해도 이를 실행하는 조직 역량이 부족하다면 사업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 조직 역량은 단순히 구성원의 평균 학력 수준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부여된 목표와 과제를 최대한의 효율로 처리할 수 있는 실행력을 뜻한다. 법에 의해 독점적 시장지위가 보장됐던 국영기업들이 민영화 이후 각기 야심 찬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도 선의의 내외부 경쟁 및 자발적 혁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과도한 주주가치 고려(Focus on share-holder value not comprehensive enough)다.단기 수익성 중심의 경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화학공업 등 장치 산업은 지금 당장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도 빨라야 5∼10년 이후부터 투자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때가 많다.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의 결실조차 중장기 이후에 발생하기에 대다수 전문 경영인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 의사결정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럴 경우, 해당 산업으로의 성공적 진입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일곱째, 과도한 프로젝트 추진(Project overkill)이다.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을 추진하는 기업들을 들여다보면 온갖 종류의 TF(task force), 협의기구, 임시 관리조직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필자가 담당했던 한 고객회사는 ‘변화 과제를 추진하는 A팀’ ‘A팀을 지원하는 B팀’ ‘A팀과 B팀이 잘 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C팀’ ‘C팀을 관리하는 D팀’을 동시에 운영하는 자원 낭비를 저질렀다. 경영진의 과욕, 상이한 사업부 간의 소모적 경쟁, 외형 위주의 변화과제 추진 등은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젝트를 야기하는 원인이다.

 전사(全社) 차원의 인재 확보 및 변화 관리
3단계까지의 과정을 통해 이륙을 위한 모든 준비는 마쳤다. 그러나 전체 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따져보면 4단계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50%가 넘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단계는 이제 본격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3단계에서 도출된 각종 전략 과제들의 성공적 실행을 위해서는 과제별로 필요한 역량을 지닌 인재들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일부 역량은 회사 내부에 이미 존재하거나, 자체 노력을 통해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의 폭과 깊이가 클수록 외부로부터 새롭게 수혈되어야 할 역량의 종류도 많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역량 확보의 시급성, 역량 획득의 효율성 등을 고려한 전사적 역량 확보 방안 수립 및 실행이 필수적이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최고 경영진이 이 단계를 주도하는 게 효과적이다.
 
두산그룹은 오너 경영자를 직속으로 보좌하며 기업 변신 작업을 주도하는 Tri-C팀을 운영하고 있다. Tri-C팀은 외국계 컨설팅회사, 투자은행 등 전문가 조직과의 상시 협업을 통해 기업 변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수립할 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가치 향상을 위한 추가 과제 발굴을 담당한다. 이러한 특별 조직의 운영은 일관성 있는 과제수행 및 신속한 문제 해결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역량 확보만큼 중요한 과제는 바로 변화 관리다. 변화 관리란 새로운 비즈니스 디자인 실행을 위한 경영 인프라 혁신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아무리 매력적인 비전 및 신규 사업 포트폴리오를 마련했다 해도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할 인프라가 없다면 성공적인 실행을 기대하기 힘들다. 국내 대기업들이 빈번하게 범하는 오류는 변화 관리의 범위를 제도나 시스템을 개선하는 하드웨어 측면으로 한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하드웨어 측면의 변화 관리도 중요하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의식과 마음가짐을 개선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변화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이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세 가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째 “그 변화가 내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둘째 “그 변화가 내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셋째 “그 변화가 내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다. 결국 대다수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이해득실을 중심으로 조직의 변화를 바라보고 대응하게 마련이다. 이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기도 하다. 따라서 최고 경영진이 직접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해당 변화의 필요성과 의미를 알려 구성원들이 그 당위성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직원 모두가 스스로를 변화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인식하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변화를 이끄는 모든 경영자의 필수 과제다.
 
맺음말
서두에 밝혔듯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은 본질적으로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분석, 충분한 사내외 전문가 의견 수렴이 필수적이다. 또 변화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도 중요하다.
 
미국 경영학계에서는 한국 대기업(재벌)이 가진 경쟁우위 중 하나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이끄는 오너 경영자의 과감하고 신속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의사결정을 꼽곤 한다. 단기 주주 성과, 본인의 성과급 등에 얽매여 근시안적 의사결정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의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약점을 지적할 때 빈번히 언급되는 내용이다.
 
오너 경영자가 이끄는 대기업이라면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필요하고, 전문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이라면 전문 경영자가 오너와 같은 마인드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건과 시스템을 구성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시의적절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의 지속을 통해 생명력과 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기를 기대해본다.
 
정호석 대표는 미국 UCLA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현재 올리버 와이먼 서울 사무소 공동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신우석 컨설턴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올리버 와이먼에서 금융, 하이테크, 통신 분야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 미 매사추세츠 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MBA과정에 재학 중이다.
  • 정호석 정호석 | -에이티커니 이사(1996∼2004)
    -모니터그룹 이사 및 한국공동대표(2004∼2007)
    -올리버와이만 비금융부문 한국 대표(2007∼2015)
    -글로벌 인적자원 서비스·관리 업체 가이드포인트의 한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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