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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포트폴리오 변경 방법론

‘전략적 인내’로 영속하는 기업 만들어라

정호석 | 65호 (2010년 9월 Issue 2)



 

삼성, 삼호, 삼양, 개풍, 동아, 락희, 대한, 동양, 화신, 한국글라스….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혹은 생소하기도 한 이 10개 기업의 리스트는 무엇일까?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 ‘락희’(현 LG)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개풍’ ‘삼호’ 간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정답은 다소 놀랍다. 이는 불과 50년 전인 1964년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10대 기업을 나열한 명단이다. 당시 10개 기업 중 ‘삼성’ ‘락희(현 LG)’만 지금까지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 다른 기업들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삼호’ ‘개풍’ ‘화신’처럼 아예 문을 닫아버린 회사도 세 개나 된다. 이러니 기업 경영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다.
 
필자는 사석에서 만난 어느 재벌 총수에게 기업 경영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은 “손자는 물론 증손자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회사를 가꾸는 것”이었다. 경영학원론 첫 시간에도 ‘영속하는 기업(going concern) 만들기’가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라고 가르친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짐 콜린스의 책 제목 ‘Built to Last’가 의미하는 바도 이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영속하는 기업은 이다지도 적을까. 과연 영속하는 기업의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을 떠올려 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효과적이고 적절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통해 ‘수익성 있는 성장(profitable growth)’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올리버 와이먼 고유의 사업포트폴리오 설계 방법론인 ‘VDBD(Value-Driven Business Design, 가치지향형 비즈니스 디자인 설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 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요인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성공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이란 무엇인가?
우선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의 의미에 대해 간략한 정의를 내려보자. 일반적으로 다각화된 기업 즉, 성격이 상이한 복수의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는 단일 기업이나 복수의 계열사나 자회사를 거느린 기업 집단이 기존 사업 영역별 시장 매력도, 시장 내 지위, 성장성, 수익성 등을 면밀히 분석해 ‘어떤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 육성할지’ ‘어떤 사업을 축소 혹은 퇴출할지’를 결정하는 일련의 활동이다. 기업 활동의 영역을 재정의 한다는 점에서 ‘어디에서 싸울 것인가(Where to compete)에 대한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존 사업의 매력도가 향후에도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기존 사업 내 투자 우선 순위 결정이나 사업 범위 확장(밸류 체인 상의 확장, 제품 및 서비스 라인 업 확장, 지역적 확장) 등을 먼저 검토할 수 있다. 반면 기존 사업 영역들이 성장성, 수익성 등 주요 지표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되면 청산, 매각, 신속한 사업 철수 등을 포함한 과감한 구조조정 및 신규 사업 기회를 모색하는 작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조조정, 기업 변신, 신성장 동력 혹은 신 수종 사업 발굴, 세계 시장 공략 확대, 전후방 통합 혹은 수직계열화 등이 사업 포트폴리오 진단 및 조정 범주에 포함되는 사안들이다.

 


VDBD
1단계: 기존 비즈니스 디자인 명확화 및 각 비즈니스 디자인별 현재 성과 진단
2단계: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적 위험 요인 및 성장 기회 도출
3단계: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 확정 및 투자 대상 및 우선 순위 의사결정
4단계: 전사 차원의 인재 확보 및 변화 관리
비즈니스 디자인은 사업 수행의 핵심 요소 및 실행 체계 전반을 포괄하는 올리버 와이먼 고유의 개념으로 Value Proposition(대 고객 가치 제언), Pro-fit Model(수익 모델), Scope(사업 수행 범위 및 방식), Strategic Control(차별화 및 경쟁 우위 지속 방안), Organi-zational Architecture(사업 수행을 위한 최적 실행 체계)의 5개 요소로 이뤄진다.(표1) 두산그룹의 포트폴리오 조정 사례를 통해 VDBD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기존 비즈니스 디자인 명확화 및 현재 성과 진단
‘비즈니스 디자인’ 개념에 의거해 자사(自社)의 현재 사업 영역 및 실행 방식을 정의하고, 각 비즈니스별 현재 성과 및 경쟁력 수준을 진단하는 단계다. 이 단계의 핵심은 기존 사업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특히 비즈니스 디자인의 요소 중 하나인 ‘Scope’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자사의 사업 영역과 연계된 전체 사업 범위에 대한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 올리버 와이먼에서는 이를 인접 경제 영역(Economic Neighborhood)이라 부른다.
 
<그림1>에 나온 제지산업의 사례를 통해 인접 경제 영역의 개념을 알아보자. 제지업체의 일반적인 사업 영역은 원재료를 매입한 후 종이, 종이보드, 목재 등의 상품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시장이다. 따라서 1차 인접 경제 영역에는 제지 원재료 생산 및 가공 사업, 제지 상품 관련 사업이 해당한다. 가치사슬 관점에서 보면 자사가 담당하고 있는 사슬의 전후방에 가장 가까운 영역이므로 근거리 경제 영역이라 부르기도 한다.
 
근거리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은 다음의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어떤 원료 공급회사의 협상력이 지나치게 강해 원재료 조달 가격이 비싸고, 납기의 안정성도 확보하기 어렵다면 해당 상품을 만드는 업체는 자체적으로 원료 공급 업체를 설립해 구매 안정성을 높이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둘째, 1차 가공상품(예: 제지 상품)보다 응용 상품(출판물, 포장재, 건축, 가구)의 시장 규모 및 부가가치가 훨씬 높을 때다. 이때 1차 가공업체는 상품 기획 및 디자인 역량을 확보해 응용상품 시장으로의 진입을 모색할 수 있다.
 
2차 인접 경제 영역의 가장 일반적 예는 기존 고객회사(예: 응용 상품 업체)의 고객이다. 제지업체의 고객인 인쇄업체의 고객, 즉 언론사는 광의의 개념에서 제지업체의 사업 영역에 해당한다. 이를 원거리 경제 영역이라 부른다. 언뜻 보면 제지업체와 부동산개발 산업이 무슨 관련이 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인접 경제 영역의 개념을 적용해 보면 양자의 관련성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시 인접 경제 영역에 대한 정의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기존 사업 내 고객 가치 이동 트렌드(value migration trend) 파악, 본원적 관점의 경쟁 우위 및 열위 발생 요인 규명, 향후 사업 확장 기회 모색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런 큰 그림 하에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사의 사업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기존에 간과했던 어떤 시장을 노려야 할지 등을 찾아낼 수 있다.
 
이후에는 적절한 평가기준을 통해 현재 사업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진단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사업영역 간의 차별적 속성, 즉 해당 시장에 대한 진입 시기, 경쟁 강도, 산업 수명 주기, 자사 시장 지위 등을 성과 진단 시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황금률 같은 성과평가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이나 상품 간 차별화 정도가 낮은 일상재(commodity) 산업에서는 매출액이나 시장 점유율보다 수익성 지표를 우선한다. 반면 신규 추진 사업에서는 수익성보다 매출액 및 시장 점유율 지표를 우선한다. 단기적 수익 창출보다는 파이 자체를 키워 우월한 시장 지위를 확보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므로 투자 효율성이 중요한 사업에서는 ROIC(투자자본 수익률)이나 EVA(경제적 부가가치)처럼 경제적 기회비용을 감안한 성과 지표를 사용하는 게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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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호석

    정호석

    -에이티커니 이사(1996∼2004)
    -모니터그룹 이사 및 한국공동대표(2004∼2007)
    -올리버와이만 비금융부문 한국 대표(2007∼2015)
    -글로벌 인적자원 서비스·관리 업체 가이드포인트의 한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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