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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의 Negotiation Newsletter

적과의 협상: 감정의 덫에 빠지지 마라

박연진 | 61호 (2010년 7월 Issue 2)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당신이 적이라 여기는 사람 및 조직과의 협상뿐이라면 어떨까? 적과의 협상은 도덕적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일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 협상을 거부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로버트 음누킨 하버드대 협상프로그램연구소 소장은 그의 신작 <적과의 협상: 언제 협상하고, 언제 싸울 것인가(Bargaining with the Devil: When to Negotiate, When to Fight)>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 정치범이 이 딜레마에 접근한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소비에트 시오니스트 운동의 핵심 인물 아나톨리 샤란스키는 조작된 간첩 혐의로 1997년 KGB에 의해 수감됐다. 샤란스키는 KGB와의 협상을 단호히 거부했다. 교도소와 포로수용소에 있던 9년간, KGB 수사관들은 샤란스키를 죽이겠다는 협박과 요구에 순응하면 석방해주겠다는 회유를 반복했다. 체스의 대가이자 승부사였던 샤란스키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보다는 협상에 따르는 비용과 이익이 무엇인가를 따져봤다. 결국 협상 대신 자신의 명분을 지키겠다는 선택을 밀고 나갔다. 그가 고수했던 원칙을 오롯이 지켜내고도 1986년 샤란스키는 동 베를린으로 석방됐다.
 
간첩 활동 협의로 수감 생활을 하던 23년간 남아프리카 민족회의의 수장 넬슨 만델라는 자신이 적이라 여기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와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던 1985년 만델라는 남아공 정부와 여당이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 헤이트를 종식시키라는 여론의 압박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델라는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여러 사안을 놓고 정부 고위관리와 비밀리에 논의를 시작했다. 석방을 앞당겨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만델라는 그가 제시한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감옥에 있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결국, 만델라는 당시 F. W. 드 클락 남아공 대통령을 만났다. 클락 대통령은 1990년 만델라가 제시한 조건을 들어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석방된 만델라는 아파르트 헤이트 종식 이후 남아공 대통령이 됐다.
 
물론 우리 중 누군가가 소련 연방이나 남아공 정부처럼 획일적이고 압제적인 정권과 협상을 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탐욕 덩어리 사촌이 됐든, 사악한 전(前) 배우자가 됐든, 부도덕한 기업이 됐든 우리는 종종 불구대천의 원수와도 협상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샤란스키나 만델라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 적이라 여기는 사람 혹은 집단과 협상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 질문엔 옳은 답도 틀린 답도 없다. 샤란스키는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만델라는 협상을 받아들임으로써, 각각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뤘다.
 
음누킨에 따르면 대개의 사람들은 너무 성급히 협상을 거부하거나,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간다. 감정이 앞서다 보니 협상을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는 뜻이다. 그러나 샤란스키와 만델라는 적과 협상을 벌일지 말지 신중하게 따져보았다. <적과의 협상>에 소개된, 적과 협상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하는 기준을 보자.
 
계략적’이란 무엇인가?
협상자들은 종종 ‘계략적’이라는 표현을 불명확하게 쓴다. 음누킨은 ‘계략적’이라는 표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계략적 행위란, 탐욕의 발로로서 정당화될 수 없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해를 미치는 행위다. 이 정의에 따르자면 계략적 행동은 부주의한 행동이 아닌, 반드시 의도적인 행위여야 하며, 합리화되거나 용서 받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피해를 초래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계략적이라는 표현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점이다. 음누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계략적이라고 비난할 때, 약자에게서 이익을 취하는 행동처럼 단 한 가지 행동만을 판단의 잣대로 삼는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를 비난하는 사람 또한 똑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건, 사생활 문제건 우리는 협상가로서 사고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모두 상대방이 도덕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론 우리 스스로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을 인정하는 일’이다.
 
음누킨은 적과 비즈니스를 할지 말지 고민 중인 협상가들이 세 가지 이유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고 지적한다. 첫째, 감정의 덫에 빠져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둘째, 협상 외의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어떤 비용과 이익이 따르는지를 따져보지 못한다. 셋째, 그에 따르는 윤리적·도덕적 쟁점 사항을 감당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거듭 말하지만 당신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이성적인 분석이 아닌, 직관에 과도하게 의존한 탓이다.

 

1.
감정의 덫에 빠지지 마라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인 함정이든, 누구나 적과의 협상을 기피하거나 혹은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런저런 감정의 덫에 빠지게 마련이다. 음누킨에 따르면, ‘악마로 규정 짓기’, 즉 상대가 본질적으로 계략적이라고 바라보는 태도는 부정적인 감정의 덫의 가장 일반적인 예다. 상대를 악마로 바라볼수록, 그 사람과 엮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덜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악마로 규정 짓기는 ‘상황을 핑계로 한 합리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대가 내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쉽게, 어쩌면 순진하게 용인할 때가 바로 상황을 핑계로 한 합리화에 해당한다.
 
악마로 규정 짓기 못지않게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는 감정의 덫으론 ‘선민의식’과 ‘자기합리화’가 있다. 선민의식은 내가 속한 집단은 선하지만 상대는 악하다고 보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 합리화는 문제의 책임을 전적으로 상대에게 돌리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다.
 
샤란스키와 만델라가 자신을 감옥에 가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한 건 이 감정의 덫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개개인에 대해서는 악감정을 품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샤란스키는 KGB 요원들을 적극적으로 악마로 규정지었다. KGB를 압제를 휘두르는 하나의 획일화된 권력으로 바라본 거야말로 샤란스키가 협상을 거부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반면 만델라는 자신을 체포한 사람들을 친절이나 동정을 베풀 수 있는 개인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만델라는 그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악마로 규정 짓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려 애썼다. 때문에 만델라는 협상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남아공 정부 관료들도 만델라가 자신들과 함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따뜻하고 존경할 만한 협상 상대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부정적인 함정과 긍정적인 함정 모두 협상에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어떻게 이 덫을 피해갈 것인가?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이 감정의 덫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도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
 
2.어떤 비용과 이익이 따를지 분석하라 아버지의 유산을 두고 글로리아, 앨버트, 제인 3 남매간에 갈등이 생긴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버지는 자신이 사망 후 40년간 유산을 신탁에 묶어두고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남아 있는 자녀와 손자들에게 그 돈을 나눠주도록 손을 써두었다. 공인회계사인 맏언니 글로리아는 연간 수임료를 아주 조금만 받고 자신이 직접 그 돈을 관리하며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제인은 은행에 돈을 넣어두고 관리를 일임하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글로리아는 자신의 능력을 무시하는 거냐며 제인을 비난하고 나섰다. 제인도 글로리아가 주도권을 쥐려 한다고 응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됐다. 은행에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할 걱정이 앞섰던 앨버트는 글로리아의 편을 들었고, 결국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 문제를 제인의 시선에서 들여다보자. 집안의 막내인 제인은 늘 대장 노릇을 하는 큰언니에게 진절머리가 난다. 때문에 제인은 자매 관계가 더 냉랭해지더라도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 사례는 음누킨의 책에 언급된 예는 아니지만, 그가 제시한 기본적인 방법을 적용해볼 수 있다. 음누킨이라면 아마 제인에게 친언니를 고소하기 전에 잠깐 숨을 깊이 들이쉬고 다음 5가지 질문에 답해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1.이 분쟁에서 내가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의 적이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2.이 협상에서 내가 가진 ‘대안’은 무엇인가? 나의 적은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3.각자의 대안이 아닌, 양측 모두가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잠재적 타협안’은 없는가?
4.협상 때문에 나는 어떤 금전적·시간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가? 나의 평판과 인간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쁜 전례를 남기는 것은 아닌가?
5.합의점을 찾는다면, 그 합의점이 제대로 이행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중요한 협상에서는 항상 살펴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미움과 분노로 판단력이 흐려진 상황이라면 협상에 따른 비용과 이익을 따져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명쾌하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이런 위험 분석을 통해 더 합리적인 의사 결정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분석을 기초로 지금 협상에 돌입하는 대신 앞으로 더 좋은 결실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혹은 적과 협상을 시도하는 게 최선책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제인도 이 같은 분석을 통해 문제를 법정으로 넘기기보단 글로리아, 앨버트와 직접 의견조율을 시도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누군가 중재자 역할을 맡아 도와준다면, 세 남매가 오랜 세월 가슴에 담아뒀던 가족간의 상처를 솔직히 털어놓고 슬픔을 함께할 수도 있다. 제인과 앨버트가 신탁 관리 수업을 이수하고, 매년 외부 회계감사자가 장부를 감사한다는 조건 하에 글로리아에게 관리를 맡길 수도 있다.
3.윤리적·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라 아마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잠깐만요, 물론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나 가족과는 어떻게든 의견 조율을 해나가야 한다는 게 옳은 말입니다만,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 회사의 아이디어를 빼낸 고객이나 위험물질을 파는 회사라면 어떤가요?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협상이라면 피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
적과의 협상>에서 음누킨은 적과 협상을 할지 말지 판단할 땐 명예, 정직, 정체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내리는 도덕적 판단은 뇌의 직관을 담당하는 부분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따라서 도덕적 판단을 핑계 삼아 상황을 면밀히 따져볼 생각조차 않는다면, 이는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다. 음누킨에 따르면, 내가 내린 도덕적 판단이 직관과 이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도출돼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엄격한 채식주의자인 프리랜서 마케팅 컨설턴트의 예를 살펴보자. 그는 육류 공급업체를 고객으로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만약 경기 침체가 한창인 와중에 육류 납품업체만이 그의 유일한 잠재고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의 기본적인 생계조차 위협 받는 상황이라면 아마 이 컨설턴트는 잠시 도덕적 죄책감은 접고 육류 업체의 일을 맡기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혹은 다른 고객을 찾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거나 부업 전선에 뛰어들 수도 있다.
 
이 사례는 도덕적인 딜레마를 방증한다. 음누킨은 윤리적인 이유로 적과 협상을 하지 않는 일이 타당한 의사 결정이 되기 위해선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내가 지나치게 감정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님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려면 나의 도덕성에 대한 직관적 판단이 앞서 제시한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오직 나 한 사람의 문제일 뿐이라면 얼마든지 개인적인 가치를 논리적인 분석보다 우선할 수 있다. 그러나 협상 거부라는 결정이 내가 대표하는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가족이나 동료들에게까지 간접적인 피해를 미친다면, 협상에 임해야 할 훨씬 더 막중한 도덕적 의무를 떠안는 셈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이력이 있는 사람과의 협상은 고통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잘못을 규명하고픈 심정과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픈 바람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음누킨은 원한 때문에 감정의 덫에 빠진다면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직관과 논리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대 로스쿨의 협상프로그램연구소가 발간하는 뉴스레터 <니고시에이션>에 실린 글 ‘Should You Do Business With The Enemy?’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콘텐츠 공급(NYT 신디케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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