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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벤치마킹의 양면성과 밀도의존 이론

신동엽 | 59호 (2010년 6월 Issue 2)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이라는 말은 유명 경영학자 톰 피터스와 맥킨지 컨설팅 등에 의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말이 등장한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열렬한 벤치마킹 추종자였다. 새로운 혁신 기법이나 베스트 프랙티스가 나타나면 이를 별 생각 없이 모방하는 ‘밴드왜건(bandwagon)’ 현상이 외국에서도 나타나긴 한다. 하지만 그 범위와 강도 면에서 한국 기업들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외환위기 이후 단기 성과주의적 연봉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하에 유행했다. 당시 일반 기업은 물론 비영리 공공조직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연봉제화가 진행됐다. 팀제 구조가 선진 기업들의 베스트 프랙티스라고 소개되자 불과 1, 2년 만에 대다수 기업들이 조직 구조를 팀제로 바꿨다. 사업 분야 선택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들은 어떤 사업이 유망하다면 앞다퉈 같은 분야에 진입, 심각한 중복 투자 문제를 낳곤 했다.
 
벤치마킹의 실제 성과 기여도
과연 벤치마킹 전략은 조직 성과에 얼마나 기여할까?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행이나 대세를 모방하는 벤치마킹은 조직 성과나 경쟁우위와 통계적으로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물론 어떤 연구에서는 벤치마킹이 어느 정도 기업의 생존에 기여한다고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적 경쟁 우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더 많다. 엄청난 시간, 노력, 비용을 투자해 유행하는 혁신 기법들과 베스트 프랙티스를 열심히 벤치마킹해 온 우리나라 CEO들이 들으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이 왜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데 안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할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잘 알려진 적합성(fit) 논리다. 글로벌 초우량 기업의 경영 시스템이라 해도 자신이 속한 환경의 독특한 요구에 적합하지 않으면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각 기업은 다른 회사의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이 아니라 각자 속한 환경의 성격을 정확하게 분석한 후 이에 적합한 경영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전략 경영 분야의 모태인 상황 적합성 이론(Contingency Theory)의 관점을 충실히 반영한 의견이다. 챈들러(A. Chandler), 퍼로(C. Perrow), 우드워드(J. Woodward), 톰슨(J. Thompson), 로렌스(P. Lawrence) 등 거장들에 의해 1960년대에 발전해 아직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두 번째는 1980년대 말 조직생태학 분야의 거장인 해넌(M. Hannan) 교수가 제시한 밀도 의존 이론(Density Dependence Theory)이다. 이 이론은 상황 적합성 이론보다 베스트 프랙티스 벤치마킹의 한계를 더욱 정밀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론의 핵심 내용을 성서의 <좁은 문> 비유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넓은 문으로 가는 길은 결국은 멸망에 이르나니…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지드의 자전적 소설 ‘좁은 문’은 성서의 마태복음에 기초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좁은 문과 넓은 문 중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좁은 문을 선택하라고 한다. 넓은 문으로 가는 길은 쉽고 널찍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만 결국은 멸망으로 이를 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좁은 문의 지혜는 시대와 분야를 초월한 교훈이다. 특히 대세에 순응하기 위해 무작정 다른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벤치마킹하는 행동의 결과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 성서 구절은 대세를 따라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행동의 두 가지 상반된 결과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사람들은 왜 넓은 문을 선택할까. 길이 넓고 걷기 쉽기 때문이다. 즉 대세를 추종하는 벤치마킹은 초기에는 상당한 장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성서가 지적한 대로 넓은 문으로 가는 길은 결국 멸망에 이른다. 이는 대세추종형 벤치마킹이 장기적으로 큰 단점과 위험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왜 넓은 문으로 가는 벤치마킹이 장기적으로는 멸망에 이르는 위험을 초래할까? 해넌 교수는 밀도 의존 이론을 통해 그 원인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해넌 교수도 벤치마킹이 초기에는 기업의 성과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유행하는 경영 시스템을 채택하는 행동은 투자자, 소비자, 규제당국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눈에는 해당 조직이 시대 환경의 요구에 신속하고 혁신적으로 적응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투자 유치, 대출, 허가권 획득과 같은 전략적 자원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해넌 교수는 이를 ‘정당성 효과(legitimation)’라고 부른다.
 
신 제도 이론의 거장 디마지오 교수는 조직이 벤치마킹을 통해 새로운 경영시스템을 유행처럼 채택하는 건 실제 그 시스템이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는 어떤 시스템이 더 우월한지와 관련해 높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다른 조직들 사이에 유행하는 대세를 모방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라는 설명이다. 정당성이 높은 경영시스템을 채택한 조직이 자원 획득에 유리할 때가 많기에 많은 기업들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식하는 연봉제나 팀제를 채택한 기업들은 투자기관이나 정부로부터 호의적 평가를 받았다. 투자유치, 허가획득, 지원정책 등에서 우선권을 얻었을 때도 많았다.

해넌 교수는 대세를 따르는 이 벤치마킹이 ‘단기적’으로만 조직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이 유행에 동참하는 조직의 수가 많아지면 궁극적으로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대다수 조직이 너도나도 유행하는 경영시스템을 도입하면 정당성 확보에서 유리함을 가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조직이 똑같은 시스템을 지녔기에 경쟁이 급격히 증가, 그 자체가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행하는 특정 경영 시스템의 채택 여부가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성 등에서 실제로 누가 더 우월하느냐가 성과를 좌우한다. 따라서 넓은 문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경쟁력이 약한 조직들을 사정없이 사멸시킨다.
 
이게 바로 해넌 교수의 밀도 의존 이론이다. 즉 성서의 구절은 밀도 의존 이론의 예측과 동일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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