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의료서비스 시장은 대변혁을 맞고 있다. 이는 시장 개방과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환자중심의 의료서비스, 병원경영의 효율화, 합리적인 가격의 의료서비스 제공 등 병원 간의 치열한 경쟁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의사, 간호사는 물론 병원 경영자도 고객인 환자의 만족에 대해 무관심했다. 최근에는 의료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역전돼 의료 서비스 시장의 주도권이 공급자인 의료기관에서 구매자인 환자들에게 넘어갔다. 의사가 대량으로 배출되고 국내 의료기관이 수적, 양적으로 증가하게 돼 의료시장의 경쟁도 심화하고 있으며,인터넷으로 병원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는 환자들도 늘고 있다. 중소병원의 폐업이 늘고, 병원 문을 닫고 식당을 개업하는 의사까지 나온다고 한다. 이제는 의사들이 과거의 의사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환자들을 의료서비스의 구매자 즉 고객으로 인식하고 고객만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높아지는 고객 불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는 분야일수록 고객중심의 서비스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 의료시장도 마찬가지다. 의료서비스 시장의 공급자인 의사들은 전문적 지식과 권위에 도전하려는 환자 중심적인 사고에 일반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낸다. 현재 의료시장에서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불만을 고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의사들은 고객인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 환자들은 자기가 구매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많은 정보를 기대한다. 예를 들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치료법이 가능한지, 현재 받고 있는 치료는 전체 과정의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치료의 부작용은 무엇인지, 집에서 자가 치료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예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이 환자가 원하는 정보다. 둘째, 환자들이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특히 종합병원은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가더라도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는 종합병원의 의료서비스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과 의료기관의 공급자 중심적인 의료 서비스 전달시스템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들이 종합병원을 찾게 되면, 병원 본부에서 의료서비스 구매를 신청한다. 이 접수증을 가지고 각 전문분과로 가서 접수한다. 검사가 필요하면 다시 병원 본부의 접수처에 신청하고, 대금을 지불한 다음 해당 검사실로 가서 접수를 한다. 본부와 각 전문 진료 분과와 검사서비스 분과를 오가는 동안에 시간은 흘러가고, 종결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셋째, 의사들이 환자들을 의료서비스를 구매하러 온 고객으로 하대하거나 함부로 대한다는 불만도 많다. 넷째, 의료기관의 전문분야 및 서비스 품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환자들은 자기들의 문제를 가장 잘 처리해 줄 의료기관을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은 공공 의료기관이 지역 내의 의원들을 전문분야에 따라 분류하여 환자들에게 추천해주며, 각 의원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다. 다섯째, 불필요한 과잉 진료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과잉진료로 환자들에게 환불된 금액이 총 7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신관련 진료에서 과잉진료에 대한 민원이 많았으며(전체 처리 민원 건수의 12.6% 차지), 환불비율도 매우 높았다. 여섯째, 의료사고 처리 절차가 투명하지 못한 데다 효과적인 재발방지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2008년 법원과 한국 소비자원, 의협 공제회 등에 각각 접수된 피해 구제 건수를 모두 합하면 모두 2079건이나 된다는 보고가 있다.
고객 중심 서비스 혁신이 대안
고객중심의 서비스 혁신을 의료기관의 경영에 도입하면, 환자들의 의료기관에 대한 불만을 상당수 줄여 환자들의 병원에 대한 만족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병원의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
고객중심 경영의 개념은 전사적으로 고객만족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고객중심 사고가 기업경영의 모든 측면에서 반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고객만족 경영은 주로 A/S, 보상, 환불, 보증 수리 등 판매 이후의 고객 서비스에 집중됐다. 하지만 진정한 고객만족경영은 제품개발에서부터 조달, 생산, 마케팅, 물류, 영업 그리고 마지막 A/S에 이르기까지 기업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가치창출 활동이 고객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달성된다. 즉, 고객의 관점에서 기업의 모든 가치창출 활동이 수행되고 이러한 활동들이 전사적으로 통합 조정되어 고객에게 높은 가치를 제공할 때 비로소 진정한 고객만족이 이루어진다. 고객중심경영은 지금까지의 기업 중심적 경영을 고객이 중심이 되고, 고객에 의해 이끌려지는 경영(Customer-Driven Management)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고객중심 경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달성돼야 한다. 첫 번째 전제조건은 고객중심 조직 문화의 형성이다.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고객을 만족시키고 열광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조직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둘째, 종업원 만족이다. 만족하지 않은 종업원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듯이, 외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종업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경영자들은 종업원들이 자기의 첫 번째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종업원들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종업원의 불만을 파악하여 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고객만족 실적에 따라 종업원의 보수가 결정되게끔 고객만족과 평가 및 보수체계를 연계해야 한다. 또한 종업원들이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게끔 권한을 일정 부분 위임해야 한다. 고객 중심적 조직 문화와 종업원 만족이 이루어져야 고객중심경영이 이루어지고, 고객의 만족 수준도 비로소 높아지게 된다.
고객이 만족했다고 해서 고객중심 경영의 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고객중심 경영의 궁극적 목적은 조직의 목표인 경영 성과를 높이는 것이지, 고객만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만족 수준이 높아졌다고 해서 기업의 이익 및 매출이 자동적으로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고객만족을 통해 경영성과를 높이려면 또 다른 과정 즉 고객유지 노력을 통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객을 만족만 시키고 고객유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고객중심경영의 궁극적 목표(기업의 경우 매출과 이익 증대)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최근의 고객서비스 혁신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면 고객 만족이 조직 목표 달성(기업의 경우 이익극대화)으로 연결되려면 높은 고객충성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고객만족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고객유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고객의 충성도는 낮아지고, 그 결과 재구매 비율 및 제3자에게 추천하는 비율이 낮아지게 된다. 이처럼 고객충성도를 높이고 고객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고객관계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다.
이러한 고객중심 경영의 전체적 과정이 <그림1>에 나타나 있다. 의료기관의 경우에도 이러한 고객중심경영의 전체적 과정을 잘 분석해 단계별로 무엇을 어떻게 실행해야 될지를 연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고객중심의 서비스 혁신을 도입한다면 환자들의 만족수준이 높아지고, 그 결과 의료 기관의 경영성과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