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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형 교수의 의사결정 미학(美學) <4>

과잉 친절 ‘백기사’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민재형 | 56호 (2010년 5월 Issue 1)

개인이나 조직에서 의사결정만큼 신중하게 행해져야 하는 것도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의사결정보다 더 어려운,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잘못된 결정은 조직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한 번 일어나면 그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의사결정이란 단순히 어떤 일을 하겠다는 정신적인 의지(mental commitment)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의지에 따라 실제로 자원을 돌이킬 수 없게 배분하는 것(irrevocable allocation of resources)이다.
 
하지만 경솔한 의사결정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가.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반복되는 불필요한 피드백과 때늦은 수습에 조직의 한정된 역량을 낭비하기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번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차분함과 정보 수집 능력이 현대 조직의 경영자에게는 필요하다. 이번 호에서는 경영자들이 일상 업무에서 무심코 빠지는 공정성, 윤리성, 지식 등 인식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3가지 함정을 소개한다.
 
공정성 추구와 ‘백기사(白騎士)’의 함정
어떤 사람이 100만 원을 주면서 친구와 나눠 가지라고 한다. 내 친구는 내가 제안한 분배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를 거절할 수도 있다. 만일 친구가 분배안을 받아들이면, 제안한 대로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분배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00만 원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며, 나와 친구는 한 푼도 건질 수 없다. 나는 내 몫으로 99만 원, 친구에게는 1만 원을 분배하자고 제안했다. 당신이 내 친구라면 이러한 분배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전통적인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인간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을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고 한다. 이는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자신이 얻는 것뿐 아니라 남이 얼마나 가져가는가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효용을 최대화하지 않고, 심지어 손해를 감수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 ‘제한된 이기심(bounded self-interest)’라고 한다.
 
제한된 이기심을 증명하기 위해 ‘최후 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 많이 이용된다. 이 게임에는 갑과 을이라는 두 플레이어와 돈을 제공하는 제3자가 참여한다. 갑은 제3자가 기부한 돈을 분배하고, 을은 이러한 분배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한다. 만일 을이 갑의 분배 제안을 받아들이면 양측은 갑이 제안한 대로 돈을 분배받고, 을이 갑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돈은 분배되지 않고 제3자에게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게임이다.
 
만일 인간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행동한다면, 갑이 을에게 얼마를 분배하든 그 분배 금액이 “0”이 아닌 이상 을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실험 결과에 의하면 갑이 을에게 분배하는 몫이 평균적으로 전체의 20%가 안 되면 을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경제적 인간이라는 전통적 경제학의 기본 가정과는 맞지 않는 일이나 실제로 사람들의 행태는 이러하다.
 
심지어 최후 통첩 게임에서 갑의 입장을 강화한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다. 독재자 게임이란 갑이 분배하는 대로 을은 받아들여야 하는 게임이다. 즉, 100이라는 금액을 갑이 모두 갖고 을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분배라도 을은 승낙하여야 하는 게임이다. 이런 식이라면 갑이 모든 금액을 다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게임에서도 갑은 자신이 전부 갖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신이 모든 것을 가져도 되지만 상대방을 의식해 모두 다 갖지 않고 을에게도 일정 부분을 떼어준다.
 
독재자 게임에서 다른 플레이어(병)를 포함시켜 다음과 같은 게임을 진행시킬 수도 있다. 즉, 병은 갑이 돈을 배분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갑을 벌주기 위해 자신의 돈을 내놓게 된다. 그리고 갑은 병이 내놓은 돈의 3배만큼 자신의 몫에서 제하게 된다. 이때 병은 자신이 아무런 직접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데도 ‘갑의 배분 안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면, 자신의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갑을 벌주려 한다. 이를 ‘이타적 처벌(altruistic punishment)’이라고 한다. 한 실험 1 에 따르면 독재자 갑이 전체의 반이 안 되는 돈을 을에게 배분하고자 하면 관찰자인 병의 55% 정도는 갑을 처벌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의 이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도 불공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희생을 무릅쓰고 불공정한 상황을 초래한 주체를 벌하려는 행태를 보인다. ‘백기사(white knight)’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타적 처벌은 공정성(fairness)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유지하는 도구로서의 유용성도 보인다. 하지만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불공정한 것을 응징하려는 ‘욕망 자아(want-self)’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나 개인이나 우리 조직에게 이득이 되는 것일까 하는 ‘당위 자아(should-self)’ 사이의 절충을 시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백기사는 때때로 자신의 관점이 항상 옳고 표준이라는 자아 중심적인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이 도움을 준 상대방에게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의를 요구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속성도 가진다.
 
타인을 구원하려는 고질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도움을 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지나쳐 오히려 인간관계를 망치고 자신이 상처받는 ‘백기사 신드롬’의 재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류의 ‘백기사’는 자신이 준 도움에 대한 확인, 칭찬, 신뢰, 보상 등을 받길 원하지만, 때로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상반된 포지션과 행동을 취함으로써 자신을 속인다. 때론 ‘나는 왜 늘 베푸는데 상대방은 왜 내 마음 같지 않을까’ 하는 배신감도 느낀다. 결국 상대방과의 건전한 관계를 잃을 수 있다.

아는 것은 실천할 때 가치를 갖는다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 파고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리처드 코바세비치는 출장 중 회사의 중요한 전략 계획을 비행기에 놓고 내린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의 중요한 기밀문서가 유출된 데 대하여 크게 우려했지만 그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 계획을 실행할 기업은 없을 테니까요. 우리의 성공은 우리가 세운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을 적시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질까? 아쉽게도 아는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우리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기도 한다.
 
올해 신문과 잡지 등에서 가장 많이 기사화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일본 도요타의 리콜 사태다. 도요타는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이었고, 품질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도요타의 경영 철학과 생산 방식에 대한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 도요타가 차량 결함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세계인의 질타를 받고 있다. 도요타가 리콜을 발표한 이후 2주 만에 주가는 21.7%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우리 돈으로 약 40조 원이나 빠졌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시장에서 품질과 안전성의 아이콘이었던 도요타의 신뢰성도 함께 추락했다.
 
도요타의 차세대 주력 차종인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제어 시스템 결함에 대해서는 ‘제동 장치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의 감각 문제’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 일본에서조차 도요타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도요타의 사상 최대 리콜 사태는 아는 것을 적시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치러야 했던 뼈아픈 대가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실행에 집중하라>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된 래리 보시디와 램 차란의 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교훈은 간단하다. 진짜 경쟁력의 원천은 아는 것을 적시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행력이라는 것이다. 요즈음 경영자들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들은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천 권의 경영 서적이 발간되고, 수없이 많은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경영 컨설팅이 진행되고 있다. 수많은 경영학과 졸업생들이 산업계로 진출하고 있으며, 경영 관련 연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마치 내가 ‘해낸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의 교육은 철저한 실천주의(learning by doing)에 입각한다. “하나를 들었으면,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음에는 실제로 해보라(hear one, see one, do one)”는 교육 원칙이다. 들은 것은 잊어버리지만 본 것은 기억하고, 해본 것은 이해하기 때문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고,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이다. 아는 것이 행동을 대신하지 못하는데도, 우리 주위에는 백문(百聞)에 그치는 경영자들이 너무도 많다.
 
제한된 윤리성
조직 폭력배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두목이라는 자는 성실한 사업가 행세를 하곤 한다. 온갖 나쁜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고, 그 책임도 뒤집어쓰도록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직접 행동을 하는 하수인도 나쁘지만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나쁜 일을 사주하는 두목이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는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러한 비윤리적인 행위는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때론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감추어지고, 심지어는 좋은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의사결정이란 사려 깊고(prudential), 법적으로 타당하며(legal), 윤리적(ethical)이어야 한다. 사려 깊은 의사결정이란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말하며, 이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 법적으로 타당한 의사결정이란 현실 세계의 법규와 규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의사결정이 법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는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인 의사결정이란 그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윤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비윤리적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제한된 윤리성(bounded ethicality)이라고 한다. 제한된 윤리성의 원인은 자기기여(寄與)의 과대평가, 연고(緣故)에 기반을 둔 한정된 자원의 왜곡된 배분, 특정 집단에 대한 편의적(偏倚的) 잠재의식, 이해관계의 충돌, 간접적으로 행하는 비윤리적 행동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가장 교묘한 것이 남을 통한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즉, 자신이 직접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자신은 비윤리적인 행동에 직접 가담하지 않으니 사회적 비난을 비켜갈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의 손을 빌려 비난받을 행동을 초래하고,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게 된다.
 
2006년 3월 12일자 <뉴욕타임스>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Merck)가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항암 치료제 머스타젠(Murstagen)은 그 대상이 특정 암(피부 림프 종양) 환자에게로 국한돼 시장이 좁았다. 원가보다 판매가가 낮게 책정돼 이익도 전혀 나지 않는 제품이었다. 판매가를 올리자니 대기업으로서 이윤만 생각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고, 약의 생산을 중단하자니 제약회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베이션(Ovation Pharmaceuticals)이라는 작은 제약회사가 머스타젠의 제조 및 판권을 인수하겠다고 제의했다. 이 제약회사는 연구개발(R&D)을 하지 않고 대형 제약회사에서 인기가 시들한 제품의 판권을 사서 사업을 해온 작은 회사였다. 대중적인 인지도도 낮았다. 결국 머크는 머스타젠의 제조 및 판권을 오베이션에 넘겼고, 제조 및 판권을 넘겨받은 이 회사는 머스타젠의 도매가격을 단번에 10배로 올려놓았다.
 
이러한 가격 인상은 해당 암 환자에게 치명타였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규모가 워낙 작아 비난 여론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머크는 머스타젠 가격의 대폭 인상이라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직접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행동을 다른 회사가 대신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해당 암환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막대한 추가 비용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비윤리적 행동이란 의식적으로 행해지기보다는 인간의 인지 편향(cognitive biases)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윤리 교육은 의식적인 비윤리적 행동에 국한되어왔다. 성인(成人)에게 윤리적으로 행동하라는 가르침은 별 효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경영자를 대상으로 하는 윤리 교육은 인간의 인지적 한계로 의도적이지 않게 발생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 민재형 | - (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 영국 캠브리지대(The British Chevening Scholar) 객원 교수 역임
    -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 교수 역임
    jaem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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