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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패러다임 변화

기술, 글로벌, 그린, 상생…4가지 新경영으로 ‘생존’과 ‘성장’을 잡아라

DBR | 50호 (2010년 2월 Issue 1)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를 필두로 유수의 금융 기관들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이번 금융위기는 대공황 때와 상당히 유사하며 회복 때까지 최소한 3, 4년은 걸릴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1년 남짓 지난 현 시점에서 당시 평가가 다소 과장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의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가 향후 글로벌 경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향후 1, 2년간 글로벌 경제는 경기 회복 속도와 정부의 대응에 따라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이 모두 가능한 상황이며, 기업들도 비상 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이 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특히 산업 구조 및 각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어떠한 구조적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한국 기업의 미래 비즈니스 전략에는 어떠한 시사점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은 제조업, 중국은 내수로… 글로벌 산업 지도가 바뀐다
아놀드 토인비가 역저인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해석하고 창조적 소수에 의한 발전을 역사의 결정 요인으로 파악했듯이 향후 산업의 모습은 위기 이후 도전에 대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창조적 대응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글로벌 위기 이후 주요국의 정부 정책도 새로운 경제 환경에 맞춰 금융위기를 ‘경제 체질 변화’와 ‘신성장 산업 진출의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금융·내수 중심에서 제조·수출 중심으로 경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데, 특히 지식과 연구개발(R&D) 기반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려는 계획을 수립했으며, 중국도 수출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내수를 중시하는 쪽으로 중국 경제 모델 자체를 수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가 전략의 변화에 따라 경제 및 글로벌 산업 지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과거 대공황 시에는 미국 자동차 회사가 300개에서 4개로 축소되고,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내 30대 대기업 집단 중 14개사가 탈락한 것처럼 이번 위기로 기업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크게 증대되고 있다. 과거 1등 기업들은 최근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2009년 상반기 중 수익성이 크게 하락했다. 기업 순위도 급변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금융위기로 제조-금융 결합 모델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는 구글의 등장으로 독점적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도요타는 북미 시장과 고급차에 편중된 전략으로 중국 시장을 경시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뉴 노멀’ 시대에는 과연 어떠한 산업 구조의 구조적이고 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6가지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소개한다.

 
1) 산업 리더십 발휘할 ‘차이나 파워’
먼저, 중국의 글로벌 산업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이번 위기에서 4조2000억 위안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하고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의 구원 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아직 미국 경제의 소비 회복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므로 중국의 수출도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정부의 내수 중심형 경기 부양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중국은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9, 10%대의 경제 성장률을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위기 이후 중국으로의 부의 이동이 지속되면 산업 분야에도 큰 구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9년 1∼3월 사이 중국 주요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주도권 확보를 위해 10대 산업 진흥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의 주요 10대 산업을 대상으로 ①내수 확대 및 해외 시장 점유율 유지 ②재정·금융 지원 ③기술 혁신·개조 지원 ④기업의 인수합병(M&A) 추진 ⑤총량 규제 및 낙후 시설 도태를 통한 산업 구조조정을 향후 3년간(2009∼2011년) 실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전까지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외국 기업의 유치를 통해 외국 기술을 배우는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위기 이후에는 자국 경제력의 상승세를 이용하여 주요 산업에 있어 선진국과의 격차를 단시간에 줄여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은 글로벌 산업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데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중국의 지난해 차 판매량은 1350만 대로서 미국(1000만여 대)을 누르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 올해는 1500만 대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작년 초 자동차 산업 조정 및 진흥 계획을 발표하고 디이자동차, 둥펑자동차 등 4개 대형업체를 전국 단위 합병 선도 업체로 지정하고 M&A를 통해 국내업체 대형화에 나서는 한편, 주요 해외 자동차업체의 M&A에도 적극 나섰다. 2009년 10월 텅중중공업이 제너럴모터스(GM)의 허머 브랜드를 인수한 데 이어 지리그룹이 포드자동차의 스웨덴 자회사인 볼보를 사실상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빅3’ 업체가 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으면서 세계 자동차 선도 업체들 간에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중국 위치도 확고해지고 있다. 중국으로 인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재편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중국의 글로벌 산업 리더십 제고 노력은 반도체, 조선 등 타산업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의 경우 중국 정부의 ‘자국 발주, 자국 건조’ 원칙의 영향으로 수주와 건조 양면에서 한국과의 격차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또 중국 정부는 지난 수년간 경쟁적인 과잉 투자로 인한 공급 과잉 문제를 안고 있는 산업들을 이번 기회에 정리한다는 계획인데, 철강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철강업은 과잉 생산 능력이 약 2억t에 이르는 상황인데도 추가적으로 5800만t 규모의 설비가 건설 중이다. 중국 정부는 중소형 업체의 통폐합을 통해 상위 5대 업체의 철강 생산 비중을 현재 약 30%에서 3년 내에 45%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구조조정에 다양한 애로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중국 정책은 선도 업체들의 생산량 변화를 통해 글로벌 철강업의 지도를 바꾸어놓을 것이 분명하다.

 
2) 신흥 시장의 역습
신흥국의 내수 시장 확대가 글로벌 생산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앞서 중국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신흥국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중국 이외에도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처럼 위기 중에서도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꽤 많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시장(많은 인구)과 자원을 겸비해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개념 대신, 비시스(BICIs·브라질,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를 제시한 바 있고, 마빈스(MAVINS·멕시코, 호주, 베트남,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라는 개념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이들 신흥국들이 내수 부양 정책을 쓴 영향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도, 인도네시아 같은 인구 대국 중산층의 급속한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신흥 국가를 중심으로 글로벌 산업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으며, 글로벌 생산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을 두고 브랜드와 기술 우위를 기반으로 한 선진국 기업들과 정부 지원과 원가 우위를 바탕으로 한 현지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GM은 제2본사의 중국 설립을 검토하고 있으며, 코카콜라도 추가 투자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 현지 기업 중에는 백색 가전 분야의 하이얼과 전기자동차 업체인 BYD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글로벌 기업들은 신흥 시장에서 좀 더 효과적인 내수 시장 확보를 위해 현지 완결형 경영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과거 생산 기지형 및 현지 지향형 경영에서 벗어나 현지의 경영 자원을 기획, 생산, R&D, 판매 등 가치 사슬 전반에 최대한 투입하는 현지 완결형으로 해외 기업의 경영 방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
시장의 소비자 선호 또한 글로벌 주요 산업의 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상당 기간 침체가 예상되는 선진국 시장의 중대형, 고가차 중심의 시장에서 벗어나서 신흥국의 소형차·저가차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GM은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 4000달러 이하의 초저가 자동차 판매를 서두르고 있으며, 포드는 인도 내수용 1만 달러 이하 저가 자동차 생산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도요타는 인도, 브라질, 중국 등지에서 8000달러대 저가차를 연간 50만 대 규모로 생산하기로 했고, 혼다도 ‘피트’를 기반한 8000달러대 저가차를 태국에서 생산해 인도, 중국 등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휴대전화 업계의 강자인 노키아도 신흥 시장 현지화 전략으로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를 고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에서 대형 및 중소 유통망 연대 강화 및 중국 내의 R&D 투자로 점유율 4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신흥국 기업들의 위상도 크게 올라가며 글로벌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다. 표에서 신흥국 기업 중 <포춘> 500대 기업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번 위기를 전후로 확산되고 있는 신흥국 기업에 의한 선진국 기업 M&A, 이른바 역(逆) M&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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