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펜하겐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가 화제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를 기존 대비 30% 감축하기로 확정한 바 있다. 그간 온실가스 감축에 미온적 반응을 보였던 미국도 17%라는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의견 차이 등 일부 난관은 있지만 이번 총회는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 못지않게 향후 세계 비즈니스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하지만 이에 대비하는 한국 기업은 많지 않다. 지속가능 경영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관련 행위는 이미 원가, 매출, 자본 비용, 현금 흐름 등 기업의 가치 창출에 매우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지속가능 경영은 어쩔 수 없는 기업의 도덕적 책임이나 새로운 마케팅 도구가 아니다. 기업의 핵심 전략이자 경쟁력 확보의 수단이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이슈에 반드시 대응해야 하는 이유를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본 조달의 용이성 기업이 가장 주목해야 할 요인이다. 투자회사들이 투자 대상을 결정할 때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성과부터 고려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많은 투자은행, 자산 운용 회사들은 투자 대상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활용해 각 기업의 점수를 매긴 후 자사 투자 포트폴리오를 결정한다. 유럽 대형 투자은행인 뱅크 사라신(Bank Sarasin)은 투자 대상 기업이 속한 산업과 개별 기업의 지속가능성 성과를 환경 분야와 사회 분야로 나눠 평가한다. 이후 각 분야 상위 그룹에 속한 일부 기업에만 투자한다.
지속가능성 관련 펀드 수 또한 증가하고 있다. 유럽 지역의 SRI 펀드(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Fund•펀드 편입 종목을 고려할 때 사회, 환경, 윤리적 요인을 고려하는 운용 방식을 지닌 펀드)는 1999년 159개에 불과했지만 2008년 498개로 10년간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SRI 펀드들이 운용하고 있는 자산 규모 역시 1999년 111억 유로에서 2008년 404억 유로로 4배가량 늘었다. 2007년 유럽 내 SRI 펀드로 인한 매출만 93억 유로에 달했다. 이는 SRI 펀드가 더 이상 틈새 시장용이 아니라 펀드 시장의 주류 상품으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2. 공공 정책 2005년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대해 국제적으로 목표치를 정한 ‘교토 의정서’를 필두로 각국 정부의 환경 관련법, 규제, 정책 수가 급증하고 있다. 단순히 수만 증가한 게 아니라 내용 측면에서도 과거 전통적인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요소가 늘고 있다. 미국 환경 관련법 제정 현황을 살펴보면 1870년대 법 제정이 시작된 후 1970년대를 기점으로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대에는 무려 120개 이상의 환경 관련법이 제정되었다. 유럽 환경 관련법 제정 현황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급증하고 있다.
공공 정책이 미치는 영향은 산업별로 다르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이라 해도 개별 기업 상황에 따라 공공 정책 영향을 달리 받는다는 사실이다. 여러 산업 중 이산화탄소 규제 정책에 가장 민감한 북미 전력 산업을 보자. 북미 전력 시장에 존재하는 기업 중 아메리칸 일렉트릭(American Electric)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평균 25%를 규제 정책 대응 비용으로 쓰고 있다. 반면 엑셀론(Exelon)은 불과 1% 비용만을 지출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비용을 소모하는 의약 산업을 보자. 마일런 랩(Mylan Laboratories)은 EBITDA의 9%를 지출하고 있으나 존슨앤존슨은 불과 0.04%만을 지출하고 있다.
3. 원자재 가격 급변동 및 에너지 소비 2008년 세계 원유 가격은 한때 14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단순히 가격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가격이 종종 급등락한다는 게 더 문제다. 원자재 가격 급변동은 경영 불확실성을 높이고, 효율적인 자원 및 에너지 사용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운다.
기업들의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는 투자의 중요 지표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 지표인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는 세계 25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기준들을 평가하여 상위 10% 기업을 선정하는 지수다. 다양한 평가 기준이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기준이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 및 에너지 소비 실태다. DJSI 에 속했다는 건 전 세계 자산 관리자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됐다는 점을 뜻한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DJSI에 편입되는 일을 회사 운영 목표로 삼는 이유다.
또 다른 지표로 산업 평균 대비 탄소 배출 우수 기업들로 구성된 탄소배출우수기업 지수(ECPI Carbon Winner Equity Index)가 있다. ECPI Carbon Winner Equity Index에 속한 기업들은 미국계 펀드 운용에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 잡은 모건스탠리의 모건스탠리종합지수(MSCI) 소속 기업들보다 꾸준히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03년 이후 ECPI 소속 기업의 주가는 MSCI 소속 기업의 주가보다 평균 20% 이상 높았다.
4. 경쟁 우위 확보 특정 산업, 예를 들어 대형 소매 산업에서는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 및 성과 등이 경쟁 우위를 창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와 달성 정도를 일반 대중에게 적극 홍보하고, 그 성과를 일부러 경쟁 회사와 비교한다. 자사 위상을 높이고,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영국 테스코는 2008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0년 대비 60% 이하로 낮추기로 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 있다. 지속가능성 이슈는 이미 기업 간 경쟁의 주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5. 공공 책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 성과에 대한 사회 압력이 점점 높아지면서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으로 이에 대응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발간하는 사회적 책임 관련 보고서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현재 FTSE 소속 100대 기업의 99%가 기업의 지속가능성 성과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자사의 지속가능 경영 관련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주요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회사 브랜드 가치도 높이기 위해서다.
지속가능성 문제에 관한 기업의 전략적 대응
기업들이 개별 회사가 처한 지속가능성 이슈에 적절히 대응해서 자사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성실(integrity)과 혁신(innovation)이라는 2가지 관점에 따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성실은 기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달라지고 있으며, 그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는 행동이다. 혁신은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욕구에 대응하여 새로운 사업 수행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험 노출 최소화, 제품 포트폴리오 변경, 비용 절감, 신규 수익원 발굴이라는 4가지 실천 방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