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한 경영대학원 동문회 홈페이지에 ‘그린 미팅(Green Meeting)’을 열었다는 안내문이 내걸렸습니다. 동문들끼리 골프 모임을 열고 친목을 다졌다는 얘깁니다. ‘그린’에서 모였으니, 말 그대로 ‘그린 미팅’을 한 겁니다.
한국은 골프장에서 그린 미팅을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그린 미팅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에너지 소비, 이산화탄소 배출,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회의를 열자는 흐름입니다.
인간이 모이면 자원과 에너지가 필연적으로 소비됩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여 대면 회의(face to face meeting)를 하다 보면 에너지와 자원 낭비, 환경 오염 등 집적의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대면 접촉의 장점을 극대화하자는 대안이 바로 그린 미팅입니다.
그린 미팅은 변화의 키워드이며, 새로운 게임의 룰입니다. 산업계와 도시에는 새로운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발주자도 친환경 도시 인프라와 시설을 갖추면 그린 미팅이라는 새로운 규칙으로 경기에 뛰어들 수 있습니다. 반면 적절한 투자 시점과 방향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시간의 필요성 때문에 새로운 경기에 초대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의 대표적인 컨벤션 센터들은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절감 등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고 친환경 인증을 받기도 합니다. 그린 미팅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는 컨벤션 센터들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 포틀랜드의 한 컨설팅 회사는 도시의 친환경 정책과 친환경 호텔, 컨벤션 센터 등의 인프라를 종합 평가한 ‘그린 미팅 최적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대륙별 참석자 수와 항공 운항 거리를 기준으로 환산한 도시별 탄소 소비량도 알려줍니다. 국제 행사 개최지를 결정할 때 개최 후보지의 예상 탄소 소비량을 시뮬레이션 해보라는 얘깁니다.
국제 행사 개최지 후보로 비슷한 도시들이 맞붙는다면 ‘그린 미팅 스코어’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도시 인프라와 첨단 컨벤션 시설을 갖춘 도시들은 그린 미팅 스코어를 다른 곳과 차별화하는 홍보 포인트로 내세울 수도 있겠죠. 동계 올림픽 등 대형 국제 행사에 목매고 있는 국내 지자체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한 화두입니다.
그린 미팅은 호텔, 항공, 여행 업종의 소비자 구매 행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여행 예약사이트인 트레블로시티(www.travelocity.com)는 올해 4월 친환경 호텔의 숙박료를 할인해 제공하는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가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환경 친화적인 사업에 추가 비용을 낼 의향이 없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지만, 친환경을 호텔 선택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응답도 59%를 차지했습니다.
경영 전략의 대가로 꼽히는 프라할라드 미국 미시간대 교수 등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9월 호에 기고한 ‘지속 가능성은 혁신의 키워드’라는 논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규제 준수를 사업 기회로 인식하라’고 지적합니다(동아비즈니스리뷰 41호 참조). 정부 규제나 업계 표준이 자리를 잡기 전에 과감하게 움직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린 미팅을 위해 골프장에 가는 이도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