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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선수가 신기술을 빛나게 한다

김한얼 | 39호 (2009년 8월 Issue 2)
최근 수년간 세계 남자 테니스계를 양분하고 있는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의 경쟁은 여러 면에서 테니스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페더러는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숨가쁘게 내뱉는 호흡도 없이 우아하게 코트를 누비는 스타일이다. 반면 나달은 터질 듯한 근육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베이스 라인에서 강력한 톱스핀 포핸드를 구사한다. 너무나도 대조적인 스타일의 두 선수는 숙명의 라이벌로 군림하며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에서만 일곱 차례나 맞대결을 펼쳤고, 2005년 7월 이후 세계 랭킹 1, 2위는 언제나 두 선수의 몫이었다.
 
두 선수의 무기인 테니스 라켓도 두 사람의 경기 스타일만큼이나 다르다. 라켓 헤드의 표면적부터 보자. 페더러는 90제곱인치(580㎠), 나달은 100제곱인치(645㎠) 라켓을 사용한다. 라켓 프레임의 두께 차이도 상당하다. 페더러의 라켓은 라켓 끝부터 그립 부분까지 17mm로 일정하다. 반면 나달이 사용하는 라켓은 모두 페더러의 라켓보다 두껍다. 끝 부분은 23mm, 그립 부분은 26mm에 달한다. 라켓 헤드 표면적과 프레임의 두께 차이를 가져온 이 기술 혁신은 각각 오버사이즈(oversize)와 와이드바디(widebody)로 불린다. 테니스 라켓의 진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 혁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테니스 산업에서 오버사이즈나 와이드바디처럼 항상 성공한 기술 혁신만 있었던 건 아니다. 많은 독자들은 테니스 라켓 줄이 항상 가로세로로 새겨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라켓 줄이 대각선 방향으로 존재했던 데이비스의 ‘톱스핀 라켓’, 가로-세로-대각선의 네 방향으로 존재했던 매드라크의 ‘애틀랜타 라켓’ 등도 있다. 심지어 라켓 헤드가 목과 손잡이 부분에서 42도 각도로 기울어진 스너워트의 ‘에르고놈 라켓’, 라켓 그립의 끝 부분이 15도로 꺾여 있던 ‘센트라 그립 라켓’도 존재한다. 희귀 테니스 라켓을 수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테니스광이라도 이런 라켓들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테니스 라켓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기술 혁신들이 수없이 등장했다 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탁월한 혁신 기술의 실패
 
그렇다면 오버사이즈나 와이드바디 라켓처럼 성공한 혁신과 실패 혁신 사례의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성공 혁신 사례는 성능 면에서 뛰어났기에 소비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실패한 혁신들은 성능 면에서 열등했기에 실패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상상만으로도 모양이 이상한 실패 라켓은 그 성능이 매우 뒤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기술의 우월함이 성공으로 직결된다는 일반적 믿음이 가져온 오류일 뿐이다. 미국 <월드 테니스(World Tennis)>라는 잡지가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발표해왔던 라켓 성능에 관한 자료를 보자. 그 결과는 라켓의 기술 혁신이 시장에서의 성공과 일치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라켓 헤드를 42도 기울여 선수들의 손목 부담을 줄여준 스너워트의 에르고놈 라켓은 1984년에 나온 라켓 중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라켓 줄이 네 방향으로 놓여진 매드라크의 애틀랜타 라켓도 1989년 제품 중 호평을 받았다.
 
반면 테니스 라켓 산업의 가장 중요한 혁신으로 칭송받는 프린스의 초창기 오버사이즈 라켓은 평균 이하의 점수를 받는 데 그쳤다. 최소한 테니스 라켓 산업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기술 발달로 인한 혁신이 상업적 성공으로 직결되지 않았다.
 
에르고놈 라켓이나 애틀랜타 라켓의 모양이 이상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주장할 독자도 있겠다. 라켓 헤드가 기울어져 있거나, 라켓 줄이 네 방향으로 존재한다면 그 모양이 이상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오버사이즈 라켓도 처음 나왔을 때 소비자들로부터 “저 라켓은 쓸데없이 왜 이렇게 큰 거야”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술 혁신이 한 산업의 실질적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자리잡을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인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즉 오버사이즈 라켓의 성공 후에 소비자들이 ‘라켓의 헤드가 클수록 더 좋은 라켓’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셈이다.
 
프린스의 오버사이즈 라켓이 처음 등장한 1976년을 보자. 과거 나무로 만들어졌던 테니스 라켓은 헤드 크기가 70제곱인치(450㎠)에 불과했다. 반면 오버사이즈 라켓의 헤드는 기존 라켓보다 60%나 큰 110제곱인치(710㎠)에 달했다. 이 제품이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누가 이런 라켓을 쓰겠냐며 조롱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테니스 라켓이 발전해야 할 방향과 정확히 반대에 위치한다” “라켓 표면이 크니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한 초보자는 혹시 쓸지도 모르겠다”며 비판했다. 이 사건이 주는 시사점은 간단하다. 즉 혁신의 성공 요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현재 시점이 아니라 그 혁신이 시장에 등장했을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기존 제품과는 판이하게 다른 혁신 제품이 시판되면 소비자들은 큰 혼란에 빠진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혁신 제품은 소비자들이 친숙하게 여기던 기존 제품과는 전혀 다른 기능과 형태를 제공하기에 소비자의 심리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신제품의 새로운 기능들이 과연 제조회사가 주장하듯 소비자들에게 더 큰 효용을 가져다줄지도 의문이다. 테니스처럼 전통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혁신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 반응이 더 크다.
혁신의 성패 가르는 상용화 전략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혁신 제품이 지닌 장점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가 상업적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즉 적절한 ‘상용화 전략(commercialization strategy)’이 혁신의 성패를 좌우한다.
 
테니스 라켓에서는 나달이나 페더러처럼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이 신제품을 사용하느냐 마느냐가 상업적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전문가이며, 자신의 기술과 기량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제품만을 사용한다. 때문에 그들이 사용하는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혁신적 장비’라는 신뢰감을 준다.
 
광고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4대 메이저 대회의 결승전이 공중파로 실시간 방송될 정도로 테니스의 인기가 높다. 유명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신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엄청난 광고 효과를 낳는다. 유명 선수들은 전문가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각종 미디어에 장시간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혁신 제품의 장점을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 효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 바로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롱바디(longbody) 라켓과 중국계 미국인 선수 마이클 창이다. 전통적으로 테니스 라켓의 길이는 27인치였다. 하지만 28, 29인치인 롱바디 라켓이 나오자 27인치라는 라켓 길이 표준은 완전히 바뀌었다. 라켓 길이가 길어지면 선수들이 더 높은 위치에서 서브할 수 있다. 이는 서브 에이스의 확률을 높여주고, 원심력을 이용해 더욱 힘 있는 스트로크를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때문에 많은 회사들은 앞다퉈 여러 형태의 롱바디 라켓을 내놓았다.
 
하지만 롱바디 라켓은 이미 1970년대부터 여러 차례 등장했다. 1984년에 선보인 매치메이트의 롱바디 라켓은 앞서 언급한 에르고놈 라켓과 함께 가장 성능이 우수한 라켓으로 평가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1980년대에 수차례 등장한 롱바디 라켓들이 모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스타 선수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롱바디 라켓의 상업적 성공을 주도한 인물은, 1987년 불과 17세의 나이로 프랑스 오픈 우승을 차지한 마이클 창이다. 창은 아시아인 특유의 왜소한 체구와 작은 키를 특유의 재기 넘치는 플레이와 능수능란한 풋워크로 극복한 선수다. 그의 우승은 아직까지도 아시아계 선수가 그랜드슬램을 제패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2m에 육박하는 건장한 서양 선수들과 달리 창의 키는 170cm 정도에 불과했다. 신체적 조건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그가 1990년대 내내 세계 톱 랭커로 군림한 이유가 28인치 롱바디 라켓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알려진 후에야 소비자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20년 넘게 묻혀 있던 롱바디 라켓에 라켓 제조회사들과 소비자들이 뒤늦게 열광한 점만 봐도, 스타 선수가 라켓 산업의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소비자의 거부 반응 없애는 게 핵심
 
유명 선수들의 제품 사용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테니스 관련 매체에 광고하는 게 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 결과, 혁신 제품을 내놓는 기업이 집행한 광고는 신제품의 상업적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광고 내용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익숙한 기존 제품과 확연히 구분되는 혁신 제품의 광고에는 더욱 낮은 신뢰를 보낸다. 때문에 혁신 제품을 선보였을 때는 막대한 돈을 들여 언론 매체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보낼 필요가 없다. 즉 테니스 라켓의 기술 혁신을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가려면 유명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는 상용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필자는 혁신 기술의 성공에서 차지하는 상용화 전략의 중요성을 테니스 라켓 산업의 자료를 통해 분석했다. 테니스 산업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방대한 정량적 자료를 분석해 얻은 결과인 만큼 적절한 상용화 전략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근거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혁신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는 기업들은 소비자의 거부 반응이라는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는 적절한 상용화 전략을 사용해야만 이를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번 연구를 참조해 다양한 혁신 제품의 상업적 성공을 이뤄내기를 기원한다.
  • 김한얼 김한얼 | - (현)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
    -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 교수
    hk3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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