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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내부 제보자의 경고를 존중하라

니콜라스 블랭크,박진형 | 35호 (2009년 6월 Issue 2)
다국적 기업 A사의 한국 지사는 얼마 전 내부 비리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간부 직원 한 사람이 회사 돈을 유용한 것. 해당 사안은 내부 문제를 넘어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간부 직원의 부정행위는 내부 제보로 알려졌다. 회사는 이를 사내의 주요 책임자들에게 알렸는데, 그 와중에 제보자의 신분이 드러났다. 결국 제보자는 회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쓴 공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회사를 떠났다.
 
A사 아시아 지역 본사는 구체적인 인터뷰 등의 내부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한국 지사 임직원들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를 감싸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간부는 증거를 은폐할 시간을 벌었다. 지역 본사 조사팀이 동료나 상사의 부정행위 조사에 협조하기를 꺼리는 한국적 조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경기 불황 시 늘어나는 사내 부정행위
금융위기는 기업 내부의 부정행위 빈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거나, 구조조정·임금 삭감 등으로 회사에 불만을 갖게 된 직원들은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
 
국제부정감사인협회(Association of Certified Fraud Examiners·ACFE)에 따르면, 2008년 미국 기업들의 내부 범죄 손해액(9940억 달러)은 전체 매출액의 7%에 이르렀다. 이는 경제 위기 이전(2006년)의 5%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ACFE는 2008년 기업 내부 범죄 조사 역시 전년에 비해 절반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물론 내부의 부정행위를 감시할 시스템을 갖추는 데는 비용이 든다. 최신 회계 정보 시스템과 정보 보안 및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이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은 기업에 큰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다. 불황기의 경영자라면 누구나 이런 추가 비용 지출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내부 관리 기법도 존재한다. 바로 내부 제보자의 활용이다. 내부 제보를 이용한 부정행위 적발의 활성화는 일부 제도적인 보완 및 제도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각별한 주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사내 부정행위 감시와 적발의 첨병, 내부 제보자
기업들이 내부 제보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양과 질 2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부정부패 고발에서 내부인의 제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양적으로 가장 많다. ACFE 조사(2006년 1월2008년 2월, 미국 내 959개 사내 부정행위 대상)에 따르면, 내부 고발자에 의한 사내 부정행위 적발 건수는 내부 감사에 의한 것보다 거의 2배 정도 많았다.(그림1)
 
여기서 추가로 하나 짚어봐야 할 사항은 내부 고발자 중 고객과 납품업자의 비중이 30%를 넘는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이 사내 부정행위를 감시·고발할 교육 프로그램에 납품회사나 하청회사를 적극 참여시키고, 이들이 부정행위 적발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DBR TIP ‘익명 제보 핫라인의 유용성’ 참조)
 
[DBR TIP] 익명 제보 핫라인의 유용성
 
기업은 제보를 원하는 고객과 납품회사 등을 위해 별도의 채널을 열어놓아야 한다. 익명 제보의 중요성을 아는 기업들은 직접적인 제보 채널 외에 ‘내부 제보 핫라인’ 등의 추가적인 통제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핫라인을 통해 고객과 납품업자들은 의심스러운 상황을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다. 특히 납품업자들은 관련 업계의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정보원이다.
 
실제로 필자들은 한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B사)가 대리점으로부터 기술 유출 관련 제보를 받은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해당 대리점은 동종 업계 내의 여러 회사와 동시에 거래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정 회사의 2대 주주가 비밀리에 회사를 설립했으며, B사로부터 기술을 빼돌리고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B사의 핫라인에 제보했다. B사와 크롤은 즉시 조사에 들어가 자칫 회사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었던 중요한 사안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핫라인은 납품업체가 경쟁 업체(다른 납품업자)의 부정행위를 제보할 의향을 높이는 역할도 한다. 영업 직원이 납품업자에게 중개인을 통한 계약을 종용하거나, 향응을 받거나, 특정인에게 금품을 상납하고 이를 가격에 반영해 계약하도록 제안하는 경우 등이 핫라인으로 제보되는 사례도 많다.
 
둘째, 내부인의 제보는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높다. 한국 국민권익위원회가 20022007년 접수한 전체 사건 중 70.4%가 실제 부정부패로 확인됐다. 이 중 내부 제보로 접수된 사건은 75.4%가 사실로 확인됐다. 게다가 내부 제보로 회수된 돈(491억 원)은 총 회수 금액(648억 원)의 75.8%를 차지했다. 내부 제보를 통한 신고 건수가 전체의 40% 미만임을 고려한다면, 그 유효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부 제보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다음은 필자들이 수년 동안 다국적 기업들의 부정행위를 조사하고, 내부 제보자를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포인트다.

 
내부 제보 활성화를 위한 3가지 포인트
내부 제보자를 보호하라 이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다. 미국의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내부 제보자의 절반 이상이 비리 고발을 이유로 해고된다고 한다. 더구나 그 불이익이 가족에까지 미치는 사례도 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내부고발자보호법(Whistle-blower Protection Act of 1989)’과 ‘부정주장법(False Claims Act of 1986)’에 의거해, 공직 사회는 물론 민간 부문 내부 제보자의 죄를 경감해주는 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필요한 경우 이들을 동료 범죄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른 주로 이주시키기까지 한다. 2002년 제정된 ‘사베인스-옥슬리법’도 제보를 이유로 보복을 당할 경우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이것은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사내의 문제점을 상사나 정부에 제보하는 내부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내부 고발자의 보호는 중요하다. 일단 내부 고발자를 보호해야 사내 비리 행위의 고발이 계속 이어지며,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내부의 문제가 외부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서구의 많은 기업들은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조치와 제도 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롤은 고객들에게 “부정행위 조사팀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내부 제보자 관련 문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내부 제보자와의 미팅 장소로는 제보자의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동료 직원들의 눈에 띌 염려가 없는, 안전이 보장되는 장소를 선택하게 한다. 미팅은 철저하게 근무 시간 외에 잡고, 제보자와의 통화는 반드시 휴대전화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
 
회사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당연히 제보자의 신분을 비밀로 유지해야 하며, 이외에도 경제적·행정적 불이익이나 어떠한 보복도 없을 것임을 보증해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내부 제보자의 가족과 친지, 친구 등 주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인 보호 장치도 마련해줘야 한다.
 
필자들이 한국 내의 많은 기업들을 감사하며 느낀 점은 ‘한국화하지 않은’ 외국계 기업과 ‘한국화한 외국계 기업(순수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의 내부 제보자 관리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국화하지 않은 외국계 기업들은 내부 제보자의 신분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감사를 담당하는 크롤뿐 아니라 고객사의 감사 책임자조차 내부 제보자의 신분을 파악하지 못하는(또는 파악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화된 외국 기업이나 한국 기업에서는 내부 제보자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조사를 받는 사례가 종종 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제보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안으로 조사가 진행되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부 제보자가 신변의 안전을 느낄 수 없다. 결국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회사를 떠나거나, 연락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편 앞서 언급한 핫라인은 제보자가 신분 노출의 두려움 없이 비위 사실을 제보하게 해주는 중요한 도구다. 핫라인은 특히 직원들이 일반적 채널을 통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예: 대주주나 고위 경영진이 연루된 경우)의 제보에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내부 제보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라 내부 제보를 활성화하려면 제보자에 대한 보호 장치와 더불어 합당한 보상도 필요하다. 보상은 단순한 금전적 혜택뿐 아니라, 내부 제보에 대한 조직 내부의 부정적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부정부패 제보자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보호 및 보상 제도는 관련 제도가 잘 발달돼 있는 미국이나 영국과 비교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민간 기업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선진국과 큰 차이가 있다. 다행인 것은 일부 기업들이 내부 제보에 대한 보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력은 2004년 6월부터 부조리신고 포상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불법 하도급 행위를 신고하는 직원이나 외부인에게는 신고 대상 공사 계약금의 5% 범위 안에서 최고 2000만 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한다. 2004년 7월부터는 금품 수수, 향응 제공 등 업무와 관련한 내부 부조리를 신고하는 직원에게 최고 1000만 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전력의 사례는 내부 제보자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투명성 향상과 대외 이미지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 1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의 청렴도는 시·도를 포함하는 모든 자치단체와 행정기관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내부 제보자의 문화와 환경을 이해하라 마지막 포인트는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벌이는 다국적 기업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사업이 진행되는 현지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내부 제보자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부정행위를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필자들이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는 언어에 대한 이해다. 조직 내부의 비리 고발은 주로 e메일을 통해 이뤄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어권 출신자가 아닌 사람의 영문 e메일(내용과 문체)은 글쓴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열쇠가 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을 예로 들면, 내부 제보자의 영어 문체로 그가 광동어를 쓰는 사람인지, 대만어를 쓰는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내부 비리를 담당하는 사람은 외부에 e메일을 그대로 공개하지 않거나,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한편 중국인은 종종 모호한 단어를 선택해 조사관을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진술을 아예 영어로 받는 편이 낫다.
 
둘째, 문화적 습관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극동아시아의 내부 제보자들은 피고발자의 여러 혐의를 한꺼번에 고발하는 사례가 많다. 각각의 혐의가 모두 불법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고발이 정상적인 행위까지 포함하는 경우에는 해결이 복잡해질 수 있다. 따라서 내부 비리 담당자는 복잡한 초기 진술 중에서 정작 중요한 부분을 ‘발라내야’ 할 수도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셋째, 국가에 따라 비리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뇌물이 현금이나 추적이 불가능한 상품권, 선물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선진국이 아니라면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물리적인 제도나 시스템도 기업 내부의 부정행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제도와 시스템은 이를 통제하는 사람이 부정한 의도를 갖고 감시를 피하려 한다면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내부 제보는 동료 압력(peer pressure)을 통해 기업 구성원들의 윤리적 긴장감을 높이고, 부정행위를 효과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내부 제보가 기업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앞서 제시한 3가지 포인트는 물론, 기업 구성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동료와 공공의 자산을 보호하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니콜라스 블랭크 크롤 서울사무소 지사장은 미국 세인트 메리 칼리지(St. Mary’s College of Maryland)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중국 베이징대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존스홉킨스대에서는 국제 경제와 전략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에 부임하기 전에는 상하이사무소에서 7년 동안 근무했다. 기업 내 부정행위와 지적재산권 침해 분야의 전문가다. 박진형 크롤 서울사무소 이사는 한국경제TV에서 기자 겸 주식 애널리스트로 일했으며, 삼성증권에서도 근무했다. 동국대 경영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재무분석사(CFA)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글로벌 위험 관리 컨설팅사 크롤(Kroll)은 DBR 35호부터 격호로 ‘Crisis Management’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 시리즈는 크롤의 현장 컨설팅 경험을 기반으로 기업이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위험 요소를 어떻게 예측하고 관리해야 할지를 제시해드릴 예정입니다. 전문 컨설턴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독자 여러분께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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