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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도시가 셰익스피어를 파네!

김민주 | 35호 (2009년 6월 Issue 2)
스트랫퍼드(Stratford)라는 도시가 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의 고향이다. 정식 명칭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 도시에 에이번 강이 흐르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데 영국 말고 캐나다에도 스트랫퍼드라는 도시가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퍼스 카운티에는 스트랫퍼드라는 인구 3만여 명의 소도시가 있다. 퍼스 카운티는 휴런 호, 이리 호, 온타리오 호로 둘러싸여 있고, 비옥한 들판과 언덕, 숲, 그리고 작은 강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이 도시는 사실 셰익스피어와 큰 관련은 없다. 다만 1832년 온타리오 주 남서부 지역에 셰익스피어 호텔이 세워졌는데, 이를 계기로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를 따라 이름이 붙여졌을 뿐이다. 도시 주변의 강 이름도 영국 이름을 그대로 따서 에이번으로 지었다.

기차 정비 도시로 발전
1886년 스트랫퍼드는 철도 여행객들의 환승지 겸 지나가던 기차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를 하는 기차 정비 도시로 개발됐다. 동시에 스트랫퍼드의 지도자들은 이 지역을 가구 산업 중심지로도 육성했다. 이에 힘입어 1890년대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이 대거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1930년대 대공황기에 심각한 노동자 파업 사태가 벌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결국 군이 개입해 사태를 진압했다. 이 사건으로 스트랫퍼드의 가구 산업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더구나 이 도시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기차 정비 산업도 위기에 부딪혔다. 캐나다 국영철도회사(CNR)가 기차 정비 관련 시설을 1953년에 모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핵심 산업이었던 가구와 기차 정비를 모두 잃자 스트랫퍼드는 경제 회생의 출구를 찾지 못했다. 이때 스트랫퍼드 출신으로 잡지 매클린의 기자였던 톰 패터슨이,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도시 이름이 같다는 점에 착안해 ‘셰익스피어 연극 페스티벌’을 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대다수 주민들은 허황된 꿈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시 당국이 그의 계획을 지지하겠다고 나서고, 일부 지역 경제인들도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1952년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이라는 법인이 설립됐다. 이듬해인 1953년 첫 공연이 열렸다. 첫해에 주최 측이 준비한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와 ‘끝이 좋으면 다 좋아’였다.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을 열겠다며 법인을 설립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연극에 필요한 배우들과 관련자들을 무명의 소도시로 불러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톰 패터슨과 주변 인물들은 페스티벌을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영국까지 가서 유명 배우들을 만나 공연을 해달라고 설득하고 호소했다. 이들의 열성에 감동해 당시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로 꼽히던 알렉 기네스가 주인공 리처드 3세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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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월간 진행되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초기에는 극장도 없어 텐트를 치고 공연을 하던 스트랫퍼드에도 1957년 에이번 강변에 ‘페스티벌 극장’이 세워진다. 이 극장은 텐트를 치고 처음 공연했을 때의 초심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에서 텐트 모양으로 설계됐다.

오늘날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겨울을 제외하고 4월에서 11월까지 거의 7개월 동안 계속된다. 이제 이 도시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인 페스티벌 극장을 비롯해 에이번 극장, 스튜디오 극장, 톰 패터슨 극장 등 4개의 극장에서 공연이 열린다. 2008년부터는 야외 공연도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이라는 이름답게 처음에는 셰익스피어 연극 위주로 공연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연극 축제로 자리를 잡아가자 레퍼토리도 계속 늘었다. 오늘날 전체 공연 중 셰익스피어 연극은 4분의 1 정도다. 다른 고전극과 현대 연극 및 뮤지컬이 함께 공연된다. 실내외에서 각종 음악 공연도 함께 펼쳐진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에는 각종 페스티벌 소식을 알려주는 ‘페스티벌 프린지(Festival Fringe)’도 발간된다.
 
오늘날 스트랫퍼드의 경제를 끌어가고 있는 것은 제조업과 관광업이다. 스트랫퍼드에는 허니웰 컨슈머 프로덕트 그룹, FAG 에어로스페이스 등의 기업들을 비롯해 자동차 부품, 우주항공 부품, 정밀 베어링, 산업용 기계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의 실업률은 캐나다 전체 평균 실업률보다 낮다(2006년 기준 4.8%, 캐나다 전체 평균은 6%). 제조업이 해결 못하는 고용을 셰익스피어 페스티벌과 다른 관광 서비스 산업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2008년 고용 현황을 보면, 스트랫퍼드에서 가장 큰 고용주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주최 기관인 ‘페스티벌오브캐나다(Festival of Canada)’다. 이 기관이 직접 고용한 인원은 1773명이고, 간접 고용 인원도 1523명에 이른다. 2008년 이 페스티벌의 직접 수입은 4072만 달러(여기서 ‘달러’는 모두 ‘캐나다 달러’)였고 기부금, 정부 보조금, 재단 이전금까지 포함한 페스티벌의 총 수입은 6001만 달러였다. 2008년 스트랫퍼드를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는 55만 명이 넘었다. 이 도시가 벌어들인 관광 수입은 숙박, 식당, 기타 서비스를 포함해 1억4533달러에 달한다. 작은 도시가 이루어낸 성과로는 실로 눈부시다.
 
진품 못지않은 완벽한 짝퉁 도시
영국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이 셰익스피어의 실제 유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면, 캐나다의 스트랫퍼드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냈다. 있는 것이라고는 스트랫퍼드라는 이름과 그 옆을 흐르는 에이번 강뿐이다. 그것도 셰익스피어와는 아무 상관없는 완벽한 ‘짝퉁’이다. 하지만 스트랫퍼드는 도시 이름 하나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을 창조했다. 이제 캐나다 스트랫퍼드에서 만들어진 연극은 본고장인 영국 스트랫퍼드로 역수출되고 있다. 페스티벌은 세계 3대 영어 연극제로 발돋움했다.
 
스트랫퍼드는 페스티벌 개최에 만족하지 않고, 최고의 문화관광 도시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 전문가 양성학교 ‘스트랫퍼드 셰프 스쿨’을 세웠다. 또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공공 정원 및 개인 주택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운동을 시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덕분에 스트랫퍼드는 1997년 스페인에서 열린 ‘아름다운 도시 뽑기 대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뽑혔다. 2006년 꽃이 핀 도시들의 모습을 겨루는 ‘Communities in Bloom Com-petition’에서는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등극했다.
 
스트랫퍼드가 문화예술 도시로 자리잡은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도시의 산업 기반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온 탁월한 아이디어가 중요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았더라도, 도시 공무원과 시 위원회 사람들이 개방적이지 않았다면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은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페스티벌을 준비한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나서 유명 배우들을 섭외했고, 주민들도 자원봉사자로 나서 텐트를 만들었다. 캐나다의 스트랫퍼드는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짝퉁이지만, 진품 못지않은 완벽한 짝퉁으로 우뚝 섰다.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합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김민주 김민주 |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mjkim89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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