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초 미국 상원의원들은 당시 중장이었던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면 이라크 내에서 종파 간 다툼이 얼마나 심각하게 전개될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페트레이어스는 “이라크에서 어떤 세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렇게 먼 곳에서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미군 철수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당시 질문을 던졌던 상원의원들은 큰 그림을 원했다. 사실 최고경영자(CEO)들도 끊임없이 큰 그림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곤 한다. 페트레이어스는 큰 그림이 의미를 가지려면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대개 CEO들은 세부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볼 만큼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여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CEO들은 기업 조직을 사업부와 각 지역으로 세분화한 다음, 각 조직별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세부 관리에 대한 요구를 기품 있게 처리해왔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정보기술(IT)이 눈부시게 발전한 덕에 기업들이 매우 세분화된 시장을 목표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시장 모멘텀(momentum), 인수합병(M&A), 시장점유율 확보 등 성장에 도움이 되는 요인들을 한층 자세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지금껏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 최고의 성장 기회를 발굴할 통찰력을 얻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실제 활동 중인 시장 구조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세밀한 정보를 갖고 조직을 구성하며 관리하는 기업은 더욱 드물었다.
기업들이 경쟁에서 탈피해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잠재적 기회를 바로 여기에서 찾아낼 수 있다. 경쟁 업체의 시장 현황 및 현재 성과와 자사의 그것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훨씬 뛰어난 성장 전략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전략을 세우면 자원 할당 방식, 인력 배치 방식, 결과 점검 방식 등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세밀한 분석을 진행하면 비용 절감, 공세 전략 등의 미세한 전략을 수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세분화된 접근 방식을 택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이 논문을 통해 필자는 시장의 글로벌화 및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세분화됐는지 살펴볼 것이다. 또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들의 성장 잠재력을 파악하고 이런 새로운 관점이 조직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힘겹게 알아가고 있는 기업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이 글의 필자들은 최근 공동 집필한 저서 를 뼈대로 추가적인 분석을 하고, 성장을 위해 좀더 세분화된 접근 방법을 택한 기업 사례를 곁들였다. 이 글이 실용적인 로드맵이 될 것이다. 필자들은 세분화와 규모의 경제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실은 반드시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2가지 요소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익혀야 불황을 겪는 동안, 그리고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든 후에도 경쟁 우위를 지킬 수 있다.
성장은 곧 세분화를 뜻하지만 대개의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20세기 초 미국에는 다(多)사업부제 기업(multidivisional company)이라는 새로운 조직 형태가 등장했다. 다사업부제 기업이란 여러 사업 부서들이 각각 핵심 제품 라인을 담당하며, 모든 부서들이 자원을 공유하는 형태의 기업을 뜻한다. 듀폰은 일찍이 이런 조직 형태를 도입했다. GM의 전 사장 앨프레드 슬론은 1920년대에 여러 기업과 브랜드를 하나로 묶어 GM이라는 하나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방법으로 다사업부제 기업의 결실을 맺었다. 듀폰과 GM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은 이 구조를 받아들인 덕분에 좀더 정확하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성과를 측정하며, 근로자를 관리하고, 조직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본 연구에서는 앨프레드 슬론 GM 전 사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분화된 접근 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유럽의 한 대형 생활용품 제조회사의 사례를 살펴보면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 논문에서 실명을 언급하지 않은 기업들에 관한 내용은 모두 실제 사례들이지만, 해당 기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이 회사는 총 세 종류의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언뜻 생각해보면 이 회사의 주력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이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세 사업 부문의 성장 예상치는 1.6∼7.5% 수준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각 사업 부서에서는 기대 성장률이 놀라우리만치 다양한 국가, 제품 라인에 투자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향후 전망이 가장 좋은 세그먼트가 이 회사의 3개 사업부 중 가장 성장 잠재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은 사업부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회사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본 연구진은 1999∼2006년 세계적인 기업들에서 나타난 성장 패턴을 살펴봤다. 그 결과 세분화된 접근법을 활용하면서 더 작은 단위로 쪼개 분석하는 기업일수록 전체 성장률과 개별 섹터 성장률간의 상관관계가 급격히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을 따라 각 사업부 단위로 성과를 측정하고 조직을 꾸려 나가고 관리하는 대신, 5000만 달러에서 2억 달러에 이르는 세분화된 시장 단위로 관리를 하면 성장 가능성을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인터넷에서 혁신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졌다. 특히 정보 통신 기술 부문에서는 한층 빠른 속도로 혁신이 가능해져 과거에 비해 관리를 세분화하기가 더 쉬워졌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세분화로 나타나는 기본적인 경제적 문제들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세분화된 시장을 목표로 하면 초기에 매출이 매우 빠르게 늘어난다. 하지만 좀더 세분화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할수록 이런 효과는 점차 줄어든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객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복잡성을 키우다 보면 비용이 급격히 올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크리스 앤더슨이 <롱테일 경제학(The Long Tail)>에서 주장했듯이, 기술 플랫폼 비용이 감소하면 세분화된 고객층을 목표로 할 때 들어가는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