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이 웹서핑 하는 직원들이 정말 미워 보이더군요.”
회사를 창업해 본 경험이 있는 한 사업가의 솔직한 경험담이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밤잠을 설치는 많은 오너 기업인들은 이 사업가의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소모되는 각종 비품, 부서 업무에 비해 과도한 인력, 공장에서 실수나 업무 태만으로 낭비되는 자원들…. 이처럼 기업에 불필요한 낭비를 가져오는 요인들은 수없이 많다.
경영학에서는 낭비적 자원을 ‘슬랙(slack)’이라고 부른다. 슬랙이란 생산에 필요한 최소 요구사항을 초과하는 잉여 자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에서 이런 슬랙은 ‘타도와 극복의 대상’이다.
하지만 경영학 ‘고수’들의 시각은 이와 달랐다. 조직이론의 대가인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 스탠퍼트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노벨상 수상자인 고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 박사는 이미 1950년대부터 슬랙이 혁신에 도움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후 몇몇 경영학자들은 이런 대가의 통찰이 진짜로 옳은지 실험을 해봤다. 하지만 조직의 슬랙을 정확히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설문조사를 하더라도 자기 기업에 잉여 자원이 많다고 순순히 실토할 관리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니틴 노리아(Nittin Nohria)교수 등은 묘안을 짜냈다. 기업인들에게 “만약 갑자기 일이 생겨 직원 10%가 부서 업무를 못하게 된다면 당신 부서의 내년 실적은 얼마나 악화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이다.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고 대답한 부서의 경우 슬랙이 거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실적이 그대로일 것이라고 대답한 부서에는 슬랙이 많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설문을 토대로 슬랙과 혁신 성과(각 부서의 혁신이 기여한 이익 규모)와의 관련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슬랙과 혁신 성과는 ‘역U자(inverted U shape)’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슬랙이 늘어날수록 혁신 성과가 높아지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과가 다시 나빠졌다는 것이다. 즉, 슬랙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너무 적은 것도 문제였다. 오히려 ‘적당한’ 슬랙을 가진 기업이나 부서의 혁신 성과가 가장 좋았다.
왜 일정 수준의 슬랙이 혁신에 도움을 줄까. 슬랙 없이 최소 필요자원만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나 부서는 원가를 낮출 수는 있겠지만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기는 힘들다. 당장 생산과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또 새로운 시도도 하기 어렵다. 새로운 시도에는 필연적으로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슬랙이 없으면 생산 활동에 큰 지장을 주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는 시도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경영자에게도 슬랙은 매우 중요하다. 경영자의 ‘관심(attention)’은 매우 희소한 경영 자원이다. 경영자가 한정된 관심을 어디에 쏟느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슬랙이 없는 경영자는 당장의 현안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당연히 미래에 대비하거나 변화하는 고객 욕구를 감지해 새로운 시도를 할 여유가 없어진다.
따라서 현명한 기업이나 경영자는 의도적으로 일정한 슬랙을 만든다. 3M이 기술진에게 개인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15%의 시간을 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식 경제 시대를 맞아 슬랙을 또 다른 경영자원으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