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기획력’에 대한 정의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전통경제학이 경제학의 주류였던 시대에서는 기획력의 정의는 이처럼 단순했다.
단순한 기획력의 정의는 대략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밝힌 ‘세계화 1.0’ 시대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 1.0 시대를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했을 때부터 1800년 전후까지를 가리키고 있다. 국가가 변화의 주체가 되어 국가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의 기획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800년 전후부터 2000년까지 다국적 기업이 출현하면서 세계 경제가 하나의 경제권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던 ‘세계화 2.0’ 시대에는 그 정의가 달라진다. 피터 드러커가 주장하고 있는 ‘지식사회’와 ‘지식근로자’의 개념이 기획력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다. 드러커는 <넥스트 소사이어티>라는 책에서 지식사회의 정의를 ‘첫째, 국경이 없다. 왜냐하면 지식은 돈보다 훨씬 더 쉽게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둘째, 상승 이동이 쉬워진다. 누구나 손쉽게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 가능성도 높다. 어떤 사람도 직무의 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승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세계화 2.0’ 시대의 기획력은 정보 확산의 용이성과 속도를 감안해 컴퓨터 기술자,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임상실험실의 분석가, 제조 기술자 그리고 법률 전문가들이 갖추어야 할 지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모든 것은 지식으로 통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세계화 3.0’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기획력은 ‘글로벌 기획력’이라는 의미로 재해석돼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환경 아래에서 기업의 전략이 세워져야 하고 인터넷의 출현과 업무의 디지털화 때문에 가속되는 속도의 경쟁은 생산원가의 개념, 생산기지의 전환 그리고 자원의 개념도 송두리째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러한 변화가 가속화된 분기점을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9.11 테러사태에서 찾고 있다. 반면 <부의 창조>라는 책에서는 2001년 12월11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한 사건이 세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중국경제의 무한질주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2040년에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 15년간 1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이며 세계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갈 추진 동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버나드 하트만 AT커니 중국 매니징디렉터는 “전근대 시대 중국은 세계 GDP의 30%를 점유했던 경제강국이었다”며 중국은 머지않아 미래에 옛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부의 창조>에서 언급된 인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인도가 새로운 힘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고서를 내놓은 리만브러더스는 ‘인도:무한한 성장 잠재력’이란 보고서에서 ‘인도경제가 향후 10년간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중국과 인도의 출현으로 왜 글로벌 기획력까지 고려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아직도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가 출현하면서 대두된 글로벌 경제 이슈인 ‘오프쇼링(offshoring)’을 생각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간단히 말해 본토의 일자리가 해외로 마구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오프쇼링은 처음에는 박스에 넣을 수 있는 산업에만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옮길 수 있는 산업이 되었으니 제2의 산업혁명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001년 이후 실제로 18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미국에서 사라졌다고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소(EPI)가 분석했다. 미국의 델 컴퓨터를 고치거나 피자를 주문하려고 800으로 시작하는 전화를 걸면 인도에서 전화를 받고,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 하는 일은 밤이 되면 인도의 방갈로르에서 이어받아 24시간 진행된다. 오프쇼링의 큰 변수는 중국에도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2007년 대학졸업생이 475만 명, 우리나라 대학졸업자의 10배 정도에 이른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이공계 출신이 20%. 글로벌 기업들이 앞 다퉈 중국에 연구개발센터를 세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텔 연구소는 2007년 우리나라를 떠났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8000명을 고용하는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우겠다며 상하이와 베이징에 부지를 계약했다. IBM이 자사의 미래가 여기 있다고 찬사를 늘어놓은 곳도 바로 인도의 방갈로르였다. 이쯤 되면 오프쇼링 역시 기획력의 단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경영학의 진리체계>라는 책에서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지식 중에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탐색시행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탐색시행 혹은 경험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을 노하우(know-how)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하우가 탄생하면 과학자들은 노하우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유 즉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탐구하는데 이렇게 밝혀진 지식을 노화이(know-why)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상할 수 없는 경제성장률의 경제대국의 등장과 기존 세력의 몰락이 대두되면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는 더 이상 과거의 경제 논리와 경험 즉 노하우로는 오늘을 설명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단순한 기획력’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기획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리해 보자. 세계화를 바꾼 사건과 국경 없는 자원 전쟁, 비즈니스의 속도를 바꾼 인터넷 혁명 그리고 두말할 필요 없는 중국과 인도의 등장 등의 환경에서 기획력은 과연 어떻게 정의 되어야 하는 것일까. 답은 하나다. 글로벌 기획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와 같은 표현을 쓴 저자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책에서는 적어도 글로벌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노력해서 글로벌리스트가 될지 아니면 현 위치에 만족하고 살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전통경제학에서의 ‘기획력’은 이제 그 의미가 변화한지 오래다. 이제는 글로벌 환경 아래에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속도전을 펼쳐내야 하는 것이 새로운 기획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경제신문, JCMBA를 거쳐 현재 북세미나닷컴 대표로 재직 중이다. 200여 차례 넘게 북세미나를 진행 중이며 ‘책을 통한 개인 전략과 기업의 미래 전략 수립’에 대한 주제로 기업체와 대학 등에서 강의와 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