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없이 덤벼들어 죽기 살기로 다투는 판에선 돈 벌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남과 다르게 해서 나만의 시장을 가져야 허리 펴고 살 수 있다. 이른바 블루오션 이야기의 핵심이다. 주어진 경쟁조건을 무작정 받아들이기 전에 새로운 시장과 경쟁을 생각하라니 코 앞의 일들에 쫓기는 경영자들에게 분명 신선한 자극이긴 하다. 하지만 경영학에 나오는 대부분의 좋은 말들이 그렇듯이 ‘블루오션 이론’도 새롭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래 전 마케팅 책에 나온 ‘블루 스카이’와 비슷하고 ‘주어진 게임을 하지 말고 나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만들라’는 게임이론의 가르침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블루오션이 뻔한 말이거나 말거나 세상 일에 도움이 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세상은 만만치 않아서 진정 ‘나만의 시장’을 얻으려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뭔가 남다르게 차별화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별로 다를 것이 없거나 달라 봐야 별로 쓸 데가 없는 경우도 있다. 본인은 다른 군인과 차별성을 갖기 위해 군복을 깔끔하게 다려 입고 전투화에 광을 내도 거리에서 보면 그냥 ‘군인 아저씨’일 뿐이다. 소형 승용차에 선루프를 단다고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다르게 느낄 것 같지는 않다. 그뿐인가. 정말 남다르고 새로운 사업이라고 반드시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신제품을 덜컥 사주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더구나 시장에 알리고 보급하려면 돈과 노력이 든다. 영악한 경쟁자들은 초기 진입 기업이 터를 닦은 후에 쉽게 싼 값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도 한다. 천신만고 끝에 ‘나만의 시장’을 얻어도 변덕스러운 세상에서 마냥 내 품에 있을 리도 없다. 세상이 몰라준다고 한탄하거나 혹은 이제야 세상이 알아준다고 잠시 뿌듯하다가 망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기업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신기술 개발이든 차별화 전략이든 돈이 든다. 경영학 이론에는 대부분 ‘사업이 좋으면 돈은 모을 수 있다’는 가정이 들어있다. 하지만 현실의 경영자에겐 돈 모으는 능력 자체가 ‘필살기(必殺技)’에 속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남들이 절대 모방하지 못할 기술력을 가지면 된다고 말할 지 모른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난공불락의 성’은 없다. 그 성을 짓느라 다른 곳이 텅 빈 경우도 많고 숨을 곳이 있만� 게을러진다. 혁신이 말처럼 쉬울까? 활 대신 새로 총을 개발하면 만들어 놓은 활은 재고품이 되고 활 기술자는 실업자가 된다. 자기 기술과 시장을 스스로 죽이는 꼴이다. 더구나 혁신에는 위험이 따른다. 편하게 정년을 맞고 싶은 동료들에게 혁신을 하려는 당신은 ‘골치 덩어리’일지 모른다.
블루오션이든 혁신이든 말처럼 쉽다면 누가 못하겠는가? 현실의 경영자들은 이런 수많은 어려움들을 뚫고 ‘성공’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월급쟁이는 눈치 보며 한 일이니 대단하고 창업자는 맨땅에서 일궈냈으니 더욱 대단하다. 애써 남들 못 만드는 제품을 만들어도 점유율과 원가를 심사해서 ‘적정이윤’만 받게 하는 이상한 법까지 나올 뻔한 나라에서는 더욱 대단한 일이다.
그렇다면 블루오션은 쓸데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까? 그렇진 않다. 참신한 말로 담긴 뜻을 쉽게 알리는 ‘수사적 가치’란 면에선 공을 인정해야 한다. ‘경영학은 다 아는 얘기를 참신한 말로 바꾸어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짓’이란 독설이 당장 나오겠지만 이론의 역할은 원래 여기까지다. 그럴듯한 말로 떠들고 나면 그만인 유치한 선생과 내·외부 환경이나 여건을 따져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이론을 도입하기에 급급한 ‘책상머리’ 경영자가 잘못된 것일 뿐이다. 경영이론에서는 힌트와 통찰력을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략을 짜는 데 있어서 블루오션 이론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하지만 실제 적용 가능한 이론인지 또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등은 경영자가 별도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필자는 블루오션 이론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TV 차력 쇼에는 ‘아무나 따라 하지 말라’는 자막이 나온다. 경영학 책 표지에도 담배 갑이나 술병에 쓰이는 경고 문구처럼 이런 말을 넣어보면 어떨까? ‘책에서 봤다고 무작정 따라 하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박찬희cparkdba@cau.ac.kr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전략경영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실전 체험을 통해 얻은 전략의 지혜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알리는 한편 기업과 정부에 도움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시류에 거슬러 힘에 부치면 수업과 운동으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