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1997년 출간한 저서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기존 기술보다 성능이 낮은 열등한 기술이 저가 시장에서 출발해 점차 주류 시장을 잠식하며 산업 구조를 뒤흔드는 과정을 설명한 파괴적 기술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선두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가 기술력 부족이 아닌 고수익 시장과 주력 고객에게 집중하는 과정에서 초기 시장을 외면하는 선택에 있음을 밝혔다. 이후 그는 이 개념을 기술 중심 산업을 넘어 유통, 항공, 외식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며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다만 이 이론은 모든 혁신을 설명하는 ‘만능 이론’이 아니며 기존보다 우수한 기술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함께 제시했다. 또한 추가 연구를 통해 기존 기업도 별도의 독립 조직을 통해 파괴적 혁신에 대응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론을 수정·보완했다. 결국 파괴적 혁신은 피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전략적 선택과 조직 설계에 따라 대응 가능한 과제이며 오늘날 경영자에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실행력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1942년 발간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라는 저서에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이 새로운 소비자,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 방식이나 운송 방식,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 조직 형태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동인을 시장 균형(equilibrium)에서 혁신(innovation)으로 전환시킨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수요와 공급, 균형을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에 밀려 오랫동안 외면받던 슘페터의 이 사상은 1980년대 경영계에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리처드 포스터 맥킨지컨설팅 파트너는 1986년에 쓴 『Innovation: The Attacker’s Advantage』에서 기술의 비연속성에 주목했고 어떻게 신규 진입자(공격자)가 신기술을 활용해 기존 시장 지배자(방어자)를 몰락시키는지 설명했다. 학계에서도 여러 학자가 혁신 연구에 뛰어들었는데 그중에는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킴 클라크 교수도 있었다. 그는 혁신을 연구한 두 명의 특출난 제자를 배출했는데 바로 레베카 헨더슨과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었다. 특히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괴적 혁신’ 이론을 창안해 혁신 분야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현상 설명에 급급했던 혁신 문제를 이론의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혁신
1980년대 클라크 교수가 주목한 것은 복사기와 라디오 산업의 강자였던 제록스와 RCA가 각각 캐논과 소니의 공세에 시달리는 현상이었다. 만약 포스터의 주장처럼 캐논과 소니가 탁월한 신기술로 선두 업체를 공격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제록스는 정전기와 빛을 이용해 건조한 토너 가루로 문서를 복사하는 건식 복사(xerography) 기술을 상용화한 최고의 기술 기업이었다. 캐논은 제록스의 기술 특허를 회피하느라 소형 복사기를 개발한 것뿐이었다. RCA 역시 트랜지스터 기술의 선구자였다. 심지어 소니는 RCA로부터 기술을 라이선스받아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었다. 당시 RCA의 엔지니어들은 소니 라디오를 보고 음질도 조잡하고 장난감 같다고 무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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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dhlee67@catholic.ac.kr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으며 후발 기업, 비즈니스 모델, 생태계 등 경영 전략 지식을 다양한 기업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저서로는 『경쟁은 전략이다』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