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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불확실성 시대, 구매 혁신이 살길

DBR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남국·문권모·정임수 기자 dbr@donga.com
 
건축 기술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온 것은 도시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든 19세기 후반 미국 시카고 대화재였습니다. 중세 흑사병 참사는 노동력 감소로 인한 농민들의 임금 상승과 교회 권위의 약화를 불러와 봉건제를 무너뜨린 촉매제가 됐습니다. 참담한 비극을 불러온 재앙이 역사 발전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지금 충격과 공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이 역사의 경로를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재앙 속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리더의 위대한 노력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위기의 한가운데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구매 혁신을 제안합니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원가절감 효과뿐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구매 혁신의 비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구매 역량이 부상하고 있다. 구매는 최종 제품의 품질과 가격에 결정적 역할을 끼친다. 구매는 특히 최근 환율 급등과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기업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경쟁력 강화 대안을 제시해 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이마트 등 구매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대표 기업들의 혁신 사례를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개발·구매 협력 시스템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우수 인력을 구매 부서에 전진 배치한 삼성전자는 국내 기업 구매 혁신의 모델로 불린다. 삼성전자는 e프로큐어먼트(e-procurement) 등 IT 인프라의 전사 구축을 완료한 현재 구매 혁신의 다음 단계로 전략구매 부문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구매 혁신의 핵심은 구매 부서가 개발 초기 단계에 참여해 원가절감 및 부품 최적화 효과를 달성하고, 협력업체와 구매 및 물류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개발·구매 협력 시스템(PES)을 구축했다. PES는 개발 부서와 구매 부서가 제품 개발의 초기 단계부터 공동으로 부품 정보 관리와 공급업체 선정 등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발 및 구매 부서의 협력은 경쟁력 있는 부품 과 업체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시판 이전부터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제품 설계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궁극적으로는 개발 기간을 줄여 제품을 적기에 시판하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제품 개발 초기 단계에 구매 부문이 반드시 참여하도록 업무 절차를 시스템화했다. PES는 구체적으로 개발과 구매의 공동 목표 수립 → 부품의 글로벌 소싱과 최적화를 위한 제안 활동 → 경영진의 의사결정 지원을 위한 성과관리 → 공용성이 높은 최적의 부품을 선정하는 평가체계 등 4개 핵심 요소로 이뤄진다. 삼성전자는 2004년 프로세스 설계에 착수했으며, 지난해 국내 전 사업장에 설치가 완료됐다.
 
PES는 실제 현장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삼성전자 컴퓨터시스템 사업부는 본사 구매전략팀과의 협업을 통해 컴퓨터 시장에서 적기 제품 생산과 개발기간 단축이란 성과를 냈다. 컴퓨터는 제품 라이프사이클이 6∼12개월로 짧으며 부품 수가 2000개가 넘어 적기 시판이 매우 어렵다. 심지어 새 부품 조달이 늦어져 신제품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김재묵 삼성전자 구매전략팀 전략소싱그룹장은 “PES의 성과는 개발 초기 단계에 공용성이 높은 최적의 부품을 선택하는 ‘원칙’과 ‘프로세스’ 덕분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회장직에 취임하자마자 협력사와의 상생과 구매 혁신의 상충된 관계를 두고 “구매는 (상생까지 고려하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LCD 총괄은 협력업체와 상호 협조해 부품과 공급망을 개선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부품 개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자주연구회’의 운영이다. 자주연구회는 삼성전자가 기술 전문가를 협력회사에 파견하고, 이들이 협력업체 담당자들과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어 부품을 개선하는 활동을 한다. 예전에 삼성전자에 LCD 섀시를 공급하는 업체는 총 4개였다. 기존에는 각 업체의 섀시 두께와 치수가 달랐지만 자주연구회 프로젝트를 통해 섀시의 표준화가 이뤄졌다. 이는 도요타자동차와 협력업체와의 상생모델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물류 프로세스 혁신도 많은 원가 절감 요인을 만들어냈다. 삼성전자 LCD 총괄은 2005년부터 1차 협력업체와 함께 서로의 생산계획과 재고량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재고를 줄이면서 적기에 자재를 공급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1차 협력업체와 이들에게 자재를 공급하는 2차 협력업체 간 자재조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LCD 총괄은 1, 2차 협력업체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물류 흐름을 분석했다. 그 결과 1, 2차 협력업체 간 생산계획과 재고량이 공유되지 않고, 2차 협력업체별 포장용기가 제각각이어서 1차 협력업체는 다양한 포장용기를 일일이 뜯어 자재를 다시 정리해야 했다. 프로젝트팀은 우선 2차 협력업체에도 표준화한 정보전달 체계를 구축했다. 이에 따라 2006년 보름이 넘던 1, 2차 협력업체의 재고일수는 2007년 일주일로 줄어들었다. 업체별로 제각각이던 포장 용기는 모두 동일하게 통일했다. 이후 1차 협력업체들의 업무 효율이 높아진 것은 물론 포장 해체를 위한 인력 투입이 줄어드는 등 비용 절감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LG전자의 5단계 구매 혁신
LG전자는 구매 원가 2% 절감이 매출 20% 향상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판단 아래 구매 혁신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실제 LG전자는 올해 초 IBM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구매 전문가인 토머스 린턴 부사장을 최고구매책임자(CPO)로 영입하면서 구매 혁신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는 구매 혁신을 가격 할인을 위한 협상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교원 LG전자 글로벌 구매담당 부장은 “시장에서 가격 협상을 통해 1만 원짜리 물건을 5000원에 사는 게 구매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렇게 접근하면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라도 공급업체의 경쟁력 약화로 장기적으로는 원가 상승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시장에서 1만 원에 거래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공급업체와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내는 게 원가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이런 인식을 토대로 원가절감을 위한 5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다. 우선 원가절감의 첫 출발점은 경매 도입이다. 역경매 방식을 도입하면 입찰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특히 일부 입찰자는 대형 거래처 확보나 미래 투자라는 측면에서 매우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 실제로 LG전자는 다이오드 부품 등에 대한 역경매를 실시해 입찰 가격을 20∼30% 낮췄다.
 
그러나 경매가 무조건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출혈 경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구매자가 적절한 수준에서 경쟁 강도가 유지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또 전자입찰, 공정한 게임 룰 확립 등을 통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투명한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초기에 정해진 규정대로 구매 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법적 분쟁이 일어날 소지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경매는 특히 유사한 품질로 다수 업체가 제품을 공급할 때 효과가 크다. 반면에 공급업체가 한 곳이거나 소수 업체가 차별적 제품을 생산할 경우 경매는 원가절감에 한계가 있다. 또 초기에 경매를 통해 업체를 선정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매번 계약을 경매로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음 단계의 혁신 방법, 즉 원가 분석이 필요하다.
 
LG전자는 공급 업체들의 실질적인 원가가 얼마인지를 파악해서 협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LG전자는 자체 분석을 통해 추정한 납품업체의 실제 원가를 ‘should cost’라고 부른다. LG전자는 실제 직원을 파견해 납품 업체의 공장을 둘러보고 실제 원가를 추정하기도 한다. 또 각종 자료나 데이터 접근이 어려운 경우 증권거래소 등에 신고한 연례보고서나 경쟁사로부터 확보한 자료 등을 참조해 원가를 추정한다. 이런 분석을 통해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급업체와 납품 단가를 협의할 경우 협상력이 훨씬 높아진다. 특히 반도체나 브로드밴드 칩, LCD 등을 공급하는 대형 업체와 협상을 할 때에는 이런 원가 정보가 필수적이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가격을 깎아달라는 식으로 접근해 봐야 외국의 거대 제조업체는 눈도 깜짝 하지 않는다”며 “최근 공장 가동률을 80%로 추정하고 있는데 우리가 약 10%를 높여줄 수 있으니 가격을 낮춰달라고 제안해야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 단계로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단가를 낮춰야 한다.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물량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만족할 만한 품질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 장기 구매 계약을 맺어 단가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또 사업장별로 구매하지 않고 글로벌 공장 전체가 구매 계약을 맺을 경우 물량이 커지기 때문에 추가적인 단가 인하가 가능하다. 공정한 평가를 통해 3, 4개 업체로 물량을 몰아주는 것도 단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이다. 또 아직 개발되지 않은 제품의 경우 납품업체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신 개발 후 제품을 다소 싸게 구매하는 형태로 계약할 수 있다. 실제 LG전자는 블루투스 이어폰 등을 이런 형태로 납품받아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다음 단계로는 납품업체의 제조 공정 효율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이 있다. LG전자 직원들이 아예 납품업체로 파견을 나가 불합리한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각종 낭비 요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실제 LG전자는 약 30명의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6개월에서 1년 동안 납품업체에 장기 파견해 생산 효율화 등과 관련한 각종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들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 등 첨단 기법을 토대로 원가절감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원가절감을 위해 리디자인(redesign)을 고려할 수 있다. 제조공정 효율화를 통한 원가절감 기법은 현재의 틀에서 개선을 추구하는 것으로, 일정 수준 이상 원가를 절감하는 데 한계가 있다. 과거 디자인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게 리디자인의 목표다. LG전자는 리디자인을 위해 납품업체를 사전 제품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게 하는 ESI(Early Supplier Involvement)를 추진하고 있다.
 
이교원 부장은 “구매 원가를 낮추기 위한 여러 방법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철한 경영 의지와 윤리 규범을 갖춰야 한다”며 “구매 기능이 여러 부서에 흩어진 경우가 많은데 구매는 상당한 역량이 필요한 전문 영역인 만큼 모든 구매 기능을 한 곳으로 모아야 효율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의 글로벌 소싱
신세계 이마트는 글로벌 소싱을 통한 원가 절감 및 제품 차별화를 올해 최대 역점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시장의 포화로 유통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상품 차별화 및 가격 경쟁력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시장에서 우수한 상품을 직접 발굴해 다른 유통업체에 없는 단독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게 이마트 경영진의 판단이다. 또 유통 과정을 최소화해 중간 벤더를 거치지 않고 해외에서 직접 상품을 구매, 제품 가격을 낮추고 이익 폭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마트는 이런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글로벌 소싱과 자체 브랜드(PL) 개발만을 전담하는 ‘상품개발본부’를 신설했다. 부사장급 임원을 신설 본부의 본부장, 상무급 임원을 해외 소싱 담당 책임자로 각각 배치했다. 특히 해외 소싱 담당 조직에는 총 34명의 베테랑 바이어를 배치했다. 글로벌 소싱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상품 개발부터 입점까지 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마트는 글로벌 소싱을 통해 기존의 수입 대행업체를 통해 수입하는 것보다 원가를 20∼40%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는 이를 통해 지난해 1000억 원 규모이던 글로벌 소싱 규모를 올해 들어 1500억 원으로 늘린 데 이어 내년에는 4500억 원, 2010년에는 1조 원으로 각각 증가시켜 회사 전체 매출의 10%를 점유토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마트의 이현옥 해외소싱팀장은 “글로벌 소싱 프로세스는 국내 소싱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우수한 상품과 공급업체를 찾는 전문가 집단을 가진 것이 이마트만의 노하우”라고 밝혔다. 이 팀장은 “이마트에서 오랫동안 구매 업무를 해 온 시니어 바이어 위주로 글로벌 소싱팀을 구성한 결과 소비자 니즈에 맞는 상품을 보는 안목과 적중률이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다른 글로벌 유통업체와 마찬가지로 이마트의 전체 글로벌 소싱 가운데 50% 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마트는 2004년 중국 상하이에 글로벌 소싱 담당자를 파견하고 우수 공급업체 및 상품을 발굴하는 노하우를 쌓았다. 현재 상하이 현지에서 소싱을 전담하는 인력은 과장급으로만 10명으로 늘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마트는 세계 유통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올해 9월 25일 중국 제조·생산업체를 대상으로 ‘제1회 차이나 소싱 페어’를 열었다. 한국 수출 기회를 찾으려는 중국 업체 160개가 참여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이마트는 이를 통해 의류, 주방용품, 전기 히터 등 우수 소싱 제품을 찾을 수 있었다.

해외 소싱 담당 팀원들이 한 달에 두 번 해외로 출장을 다니고 있지만 전 세계 모든 시장을 찾아다닐 수는 없다. 따라서 이마트는 글로벌 소싱 에이전트도 활용하고 있다. 국내 업체보다 앞서 우수 에이전트 2곳을 선점해 2년째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소싱 이후 상품 품질 관리 및 업체 관리도 이마트가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다. 이마트는 소싱 상품 불량률 0%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현지 업체가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에 맞춰 실제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지 직접 점검하는 것은 물론 심사 전문 업체를 선정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이마트는 앞으로 글로벌 소싱 규모는 물론 지역도 지속적으로 넓힐 예정이다. 글로벌 소싱에 따른 리스크를 분산하고 중국에 치중한 소싱 기지를 다변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는 물론 오세아니아,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지로 소싱 지역을 넓힐 계획이다. 또 궁극적으로 중국 상하이의 현지 소싱팀처럼 자체 역량으로 우수 업체와 상품을 발굴하기 위해 해외 주요 지역에 ‘해외 소싱 전담 조직(GP)’을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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