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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론 ‘렌즈’로 본 금융위기

‘효율적 복잡성’이 부른 예고된 ‘참사’

신동엽 | 19호 (2008년 10월 Issue 2)
19세기 중반 카를 마르크스가 ‘지금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 대륙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선언한지 150여 년이 지난 현재 대공황 이래 최대 참사로 보이는 월가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유령처럼 떠돌며 곳곳에서 치명적인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거액의 구제금융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금융시장은 연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고, 실물경제로의 위기 전염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도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 경기 침체 등이 겹쳐 IMF 구제금융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자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암시했듯이 국내외 반(反)시장주의적 진보 진영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면적 재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시장경제는 자기파괴적 본질 때문에 실패하고 말 것인가. 필자는 지금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경제 자체의 본질적 모순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시장을 중앙집권적 통제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장애 요인들을 제거하고 감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시장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복잡성과 효율성의 위험한 동거
조직이론의 거장인 예일대 찰스 페로 교수는 그의 역작 ‘당연한 참사(Normal Accidents)’에서 인도 보팔 화학공장 사고, 옛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 등 대참사들의 공통적 원인으로 복잡성과 효율성의 결합을 강조했다. 페로 교수는 많은 구성 요소가 서로 연결된 복잡한 시스템을 공학적 사고방식으로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으로 설계하려고 시도할 경우 구성 요소들 사이에 설계자도 예측하지 못한 충돌이 일어나 시스템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특정 부분의 사고는 완충지대(buffer)가 없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전체 시스템으로 확산돼 참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런 ‘당연한 참사’의 원리는 ‘복잡성’과 ‘효율성’이 동시에 공존하는 조직구조나 제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 글로벌 금융위기는 ‘효율적 복잡성’이 만들어낸 ‘당연한 참사’의 전형적인 예다. 미국의 부동산(주로 서민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어떻게 리먼브러더스 같은 거대 투자은행을 붕괴시키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는지 그 복잡한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간단히 정리해 봐도 먼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서민들, 담보권리를 기반으로 여러 저당 채권을 분산 혼합해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파는 업체, 이를 사들여 또 다른 채권과 함께 혼합해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파는 회사, 이를 또다시 묶어 펀드를 만들어 파는 회사, 이를 사들이는 소비자 등 수 많은 경제 행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결과 실제 판매되는 펀드나 채권상품과 같은 금융상품의 가치 및 리스크는 심지어 이를 직접 설계한 사람조차 정확하게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다. 그런데 금융 전문가들은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을 통해 이 과정을 최대한 공학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설계하려고 노력했다. 소액의 부동산 담보가 몇 배나 되는 금융상품으로 레버리지되도록 고도로 복잡한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느 한 단계에서 펑크가 나면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위험을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대치 않게 이 복잡한 연쇄 레버리지 사슬 맨 앞에서 담보로 잡은 부동산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부동산 담보를 기반으로 복잡하게 만들어진 수 많은 파생 금융상품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됐다. 따라서 이 연쇄적 사슬과 관련한 모든 금융기관이 동시에 부실해진 것이다. 여기에 급속한 세계화와 경계 파괴로 서로 복잡하게 뒤엉킨 전 세계 금융 부문과 여기에 연결된 각국 실물경제까지 휘청거리게 된 것이 현 위기의 전개 과정이다. 그 결과 이제 일반 소비자들이 금융회사를 신뢰하지 못하게 돼 소비경기가 위축됐고,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들은 기업 어음 등 신뢰에 기초한 금융거래를 꺼리면서 실물경제마저 위축시킴으로써 연쇄 도산과 전 세계적 공황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즉 이번 위기는 과도한 복잡성과 공학적 효율성이 결합해 발생한 ‘당연한 참사’의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금융 당국들은 어떻게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응해야 할까. 구체적인 정책이나 제도적 장치는 각국 정책 담당자들의 역할이므로 필자는 이 글에서 당면한 위기극복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네 가지 핵심 원칙을 금융제도의 기반이 되는 정치경제이념, 제도와 시스템, 기업조직, 위기관리 전략 측면에서 각각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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