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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노사관계 관점에서 본 중대재해처벌법

노동 시장 변하면서 ‘위험의 외주화’ 가속
안전 투자는 비용 아닌 자산 축적 인식을

박종식 | 341호 (2022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한국의 10만 명당 치명적 산재 발생률은 여전히 OECD 국가들 중 상위권에 속한다. 특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혼자 작업하던 젊은 하청 근로자들이 끼임 사고로 연이어 사망한 사건이나 2019년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 등 후진적인 산재가 반복적으로 일어난 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발한 원인이 됐다. 하지만 영국의 기업살인법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중대재해 발생 시 그 처벌 대상을 기업으로 확대하는 것만으론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다. 이보다는 1970년대 영국에서처럼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위해 중장기적인 전략과 행정 체계를 정비하고 노사가 적극 참여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양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는 무역량으로는 세계 6∼7위권, GDP로는 세계 10위권 이내 수준으로 경제 규모가 커졌고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제조업체들도 여럿 보유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고도성장 과정에서 숨기고 싶은 어두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산업재해 영역이다. ‘안전제일’이라는 익숙한 구호와 달리 실제 사업장에서는 ‘생산 제일’이 우선이었고 안전은 차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전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규제 수준에 맞춰서 법 위반을 하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 접근이 일반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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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동안 한국의 산업 안전보건 수준은 질적으로 크게 향상돼 왔다. 한국의 산재 발생률, 산재 사망률 모두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의 산업재해율1 은 1982년 3.98에서 꾸준히 낮아져 1995년 0.99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 아래 숫자를 보였다. 2003∼2004년 전후 일시적으로 높아졌으나(당시 금속노조에서 제조업 근골격계 질환자 대상 집단 산재 신청과 승인으로 질병재해율이 일시적으로 상승), 이후 다시 완만하게 감소해서 2017년에는 0.48까지 낮아졌다. 최근 산업재해율은 0.5∼0.6 수준으로 198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매우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공학, 산업 보건 분야 전문가들이 주도한 산재 예방 노력을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하면서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주도로 사업장 내 위험 요인들을 줄여나갔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의 노사가 모두 안전보건 수준 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비율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월등하게 높아지게 됐다.

취약 부문의 등장과
산업 안전보건 제도의 진화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후 산업재해율이 줄어들었지만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산재 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집단적으로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고통받게 된 일이나 1988년 온도계 제조 업체에서 일하던 중학생 나이대의 어린 근로자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 등은 산업재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1990년에는 산업안전보건법 1차 전부개정을 통해 산재 예방 기금의 설치와 유해 위험 작업 도급금지 조항이 신설됐다. 중화학 공업화가 추진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서 도급 거래가 활발해지던 시점에 유해위험작업을 외부로 떠넘기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은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유해위험작업 도급금지 규정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적용됐다. 이러한 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주 산업군의 변동에 따른 새로운 위험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1990년 1차 전부개정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산업구조 변화의 특징으로 산업 전반에서 대기업이 사업을 하청 업체에 맡기는 형태의 원-하청 관계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한 서비스업 노동자 수도 크게 늘었다. 아울러 노동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표현되는 현상이다. 즉, 불안정한 비정규직 고용의 확산, ‘위장된 개인사업자’2 로 표현되는 개인사업자의 증가 등을 대표적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로 하청 부문, 비정규 고용 부문에 위험이 전가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졌다. 이와 같은 위험 전가의 우려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위험의 외주화’로 201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에는 한국의 사회 환경 변화에 맞춰 28년 만에 2차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 이뤄졌다. 산업안전보건법 1차 전부개정에서 선언한 ‘유해한 작업의 도급금지’ 원칙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보다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또한 기존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새롭게 보호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안전보건 제도의 진화와 달리 일선 회사들에선 노사 모두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변화에 둔감했던 게 사실이다. 단적으로 안전보건 의제를 논하는 것은 회사 측이나 노조 모두 부차적인 이슈로 여겼다. 안전보건부서는 생산 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부서라는 인식 탓에 회사 내에서 위상이 낮았고 관련 업무 역시 대부분의 직원이 기피했다. 필자가 인터뷰한 한 제조업 대기업에는 안전보건 담당 임원이 있었는데 임원진 회의에서 ‘공동의 적’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같은 회사 내 노조에서조차 안전보건 업무는 핵심 업무가 아니었으며 노조 내 소위 엘리트들은 정책기획 업무나 조직 업무에 배치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사업장 내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꾀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안전보건 의제를 성과급 등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교섭의 도구로 활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즉, ‘안전보건 활동=생산에 차질을 주는 활동’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는 노사 간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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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인 산재 사망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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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기준에 따라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 이내에 사망이 발생한 사고’인 10만 명당 치명적 산재 발생률을 확인한 결과 한국은 1994년 34.1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해 2015년에는 5.3까지 낮아졌다. 그만큼 중대재해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10만 명당 치명적 산재 발생률이 0.5∼0.9로 1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은 1960년대의 10만 명당 치명적 산재율이 지금 한국 수준인 4∼53 이었던 터라 우리나라 산업 현장과는 거의 50년의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이 OECD 국가들 중 산재 사망률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다 강력한 산업재해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왔다. 특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혼자 작업하던 젊은 하청 근로자들이 끼임 사고로 연이어 사망한 사건이나 2019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사고, 건설 현장에서 안전장치 없이 작업하다가 추락사하는 사고 등 재래형 산재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기본적인 안전 설비 및 장비에 대한 투자 부족, 위험하지만 단순한 업무들의 과도한 외주화 등에 대한 비판도 지속적으로 재기됐다.

결정적으로 2020년 4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고 그 결과, 2021년 1월 관련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됐다. 2021년 초 중대재해처벌법의 국회 통과는 사실 2000년대 이후 진보적인 안전보건 전문가들이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해왔던 움직임과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인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자체적으로 가시적인 대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지 않았단 점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만약 기업들이 2000년대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수위가 과거보다 강화됐을지언정 별도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태 :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이하 기업살인법)’과 산업안전보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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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그림 2]의 영국의 재해율 추이를 보면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영국의 치명적 재해율은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영국에서 기업살인법4 이 2007년 제정됐지만 사실상 영국의 산업재해, 특히 중대재해 감소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점을 입증시켜 준다. 영국은 1970년대가 오히려 산재 사망자가 크게 감소한 변곡점으로 2000년대 이후로는 100여 명 전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에선 1974년에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Health and Safety at Work Act 1974: HSWA 1974)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국은 1972년 일명 ‘로벤스 보고서’5 의 제안 내용을 바탕으로 안전보건 체계와 시스템을 정비하고 1974년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했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을 바탕으로 1975년 보건안전청(Health and Safety Executive, HSE)을 설립하면서 산업 안전보건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사망재해율을 점차 낮춰갔다. 아울러 보건안전청과 함께 설립된 보건안전위원회(Health and Safety Commission, HSC)는 노사정이 같은 비율로 참가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세 주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영국의 산업 안전 수준 향상을 주도하고 있다. 전반적인 사업 방향을 확정하는 HSC 회의를 통해서 노동계의 안전 활동 참여, 사업주의 안전 투자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은 근로자의 직접적인 참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즉, 영국은 HSE와 HSC가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산업안전보건제도 전반의 실행력을 향상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태가 된 영국의 ‘기업살인법’ 제정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1987년 여객선이 문을 열어둔 채로 항해하다가 벨기에 해안에서 침몰해 선원과 승객 193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사고 원인을 찾던 중 기업의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취지의 판결이 내려지면서 영국 시민사회의 공분이 커졌다. 이후에도 몇 건의 대형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기업의 과실치사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잇따랐다. 이에 노조와 시민단체들 중심으로 기업의 책임 강화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거세지면서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이 제정됐다.

2007년 법 제정 이후 2008∼2017년 총 10년 동안의 기업살인법 적용 사례들을 분석한 논문이 2018년 발표됐다.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가 진행한 연구6 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2008년부터 10년간 약 1000여 건의 산재가 발생했지만 이 중 기업살인법의 적용을 받은 건은 전체 3%(유죄 25건, 무죄 3건, 산업안전보건법 유죄 2건)에 불과하다. 각 사건에 따른 벌금은 최대 120만 파운드(18억 원 정도)로 나타나 기업살인법 적용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그림 2) 하지만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의 적용을 받은 기업은 대부분 안전보건 관리에 소홀하기 쉬운 매출액이 적은 소기업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즉 기업 자체가 보유한 안전보건 대응 역량이 낮은 중소기업에서 안전보건 의무를 준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종사자 사망사고가 발생해서 기업살인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응 역량이 충분한 대기업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한 결과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살인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과 쟁점

다시 국내로 돌아와 보자. 2010년대 이후 산업재해 사망이 지나치게 많은 것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가 점차 커지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였던 김용균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2018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도급업무에 대한 일부 제한,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 노무 제공자 전반에 대한 법 적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전부개정안에 대해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에 이어 2018년 태안 발전소에서 20대 젊은이가 또다시 후진적인 끼임재해로 사망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2019년 4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설치돼 1년간 운영됐다. 이후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포함한 중장기 시스템(조직구조) 개편과 산업안전보건 감독 및 예방 확대의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대로 2020년 4월 말,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사건으로 인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는 더욱 커졌다. 발주처의 공사 기간 단축 요구,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접수한 안전보건공단의 수차례 보완 조치 요구 경시, 위험 작업들의 동시 진행 등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안은 채 화재가 발생하고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38명의 노동자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었다. 이에 공사 책임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커졌다. 이후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됐다. 그리고 2020년 5월27일, 136개 시민사회단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결성했으며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시민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2020년 6월 21대 국회가 출범했으며 정의당은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선정했다. 한편 제정 운동본부는 10만 명의 입법 청원이 있으면 국회에서 법안을 심의해야 한다는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9월1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운동을 시작하고 21일 만에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했다. 2020년 11월10일 당시 국민의 힘 김종인 대표가 중대재해법에 대해 ‘초당적 협력’ 발언을 하면서 여야 정치권 모두가 중대재해법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형국이 됐다. 그동안 이중 규제, 과잉 규제라는 이유로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하던 경총은 상황이 급박하게 바뀌자 11월 말,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이처럼 당을 막론하고 경쟁적인 법안 발의가 이어지긴 했지만 법안에 대한 우려와 신중론도 여전히 강력했다. 이때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를 비롯한 ‘제정 운동본부’에서 법안 제정 단식농성이 열흘 넘게 이어가는 가운데 정부 법안이 제출됐고 일부 내용 수정을 거쳐 2021년 1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2022년 1월27일자로 법안이 전격 시행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노사 간 의견 대립은 격화됐고 시민단체들은 법안 통과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법 제정 과정에서 처벌 강화를 통한 산업재해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찬성 의견도 많았지만 사업주에 대한 지나친 처벌이라는 반대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에 팽팽한 대립이 이어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법률 제정으로 이어진 것은 경총을 비롯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산업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앞서 주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특히 반복된 산재 사망사고의 심각성에 대해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는데도 자율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결과, 시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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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이후에도 찬반 양측 모두 통과된 법률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 규모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2년 유예 또는 제외됐다는 점에서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기업의 과실 정도와 상관없이 사업주에 대한 징역형만 있어 처벌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사업주의 의무 규정들이 지나치게 모호해 법 위반에 따른 결과로 처벌한다는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한다.

한편 전문가들 가운데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처벌을 강화했다고 바로 중대재해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앞서 영국의 1970년대 대응과 같이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전략과 행정 체계 정비, 노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다시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 현재처럼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만 제정된 상황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일차적으로는 안전보건 경영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법 취지와 달리 오히려 위험을 외부로 전가할 가능성 역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영국에서도 관련 법 시행 10년 동안 1000여 명 이상의 산재 사망자 중 25건만 기업살인법으로 처벌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기업이 명시된 안전보건 의무 사항들을 명백하게 준수하지 않은 결과 중대재해를 낳았다는 사실이 명확히 입증돼야만 처벌로 이어질 것이다. 2020∼2021년 연간 800여 명의 중대재해 사망 사건이 있었고 2022년에도 수백 건의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겠지만 적용 제외/유예 사업장을 제외하고 보면 과연 몇 건의 중대재해가 사업주 처벌로 이어질 것인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보완 대책 고민할 필요

일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시행됐고 50인 이상 기업에서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도 발생했지만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아직까지 중대법 첫 번째 적용 사례는 확정되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요청이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서 제정된 법안인 만큼 일단 1년 정도는 시행을 해 본 뒤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선 기업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사업주 의무 규정들이 매우 모호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기되는 모호함과 추상적인 문구들은 개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산재 사망사고의 80%를 차지하는 중소 규모 사업장의 법 적용 제외 및 유예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법 적용 제외는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 특히 소기업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손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소기업에서 지속적으로 다수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마냥 방치하고 있을 수는 없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소기업도 산업 안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는 적용 제외 대상은 없애는 대신 기업 규모가 작아질수록 사업주의 역할과 책임을 완화하는 방안 등으로 개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들 가운데는 오히려 정부가 권고하는 수준 이상으로 안전보건 관리를 잘 지키고 있는 사례도 많다. 이는 대응 역량이 충분하고 적극적인 안전 관리가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안전보건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그들의 역량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의무사항들을 규정하고 최소한의 의무사항들은 준수하도록 하면서 스스로 산재 예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부족한 역량들은 정부 차원에서 매뉴얼 제공, 자금 지원 등을 통해서 보완해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중소기업의 중대재해를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들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과 노사 자율 참여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산업 안전보건 부문은 어느 정도 수준이 높아졌다. 국내의 관련 제도들도 세밀하고 촘촘하게 짜여 있다. 오히려 지나치게 촘촘한 제도로 인해 기업들의 자율 안전 활동을 저해할 수도 있을 수준이다. 이제는 노사 모두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일선에서부터 사고 예방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안전보건을 위한 투자를 비용(cost)으로 보고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관행을 유지해선 안 될 시대가 됐다. 안전보건 분야에 대한 투자를 통해 자산(asset)을 축적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안전보건 전문가들이나 노동조합에 앞서 안전보건 의제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산업 안전보건 영역에서 노사의 역할 재정립도 필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1년에 ‘법제도 변화 이후 산업 안전 수준 제고를 위한 과제’에서 기업의 안전보건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 재해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경영 목표에서 안전을 강조할수록,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할수록, 근로자들이 적극적으로 안전 장치를 사용할수록 재해율이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영국의 산업 안전 수준 향상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산업 안전보건 이해당사자로서 노사의 적극적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한다. 즉, 근로자 및 근로자 대표의 참여가 회사의 재해율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경영자의 의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들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회사 외부의 안전보건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통해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 근로자들을 직접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위험 요인들을 사전에 점검, 노사가 함께 제거해나가는 것이 생산설비에 대한 이해가 낮은 외부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위험성 평가 제도에 대해서 국내 기업의 안전 관리자들은 근로자들이 2∼3년 이상 꾸준히 위험성 평가에 참여하면 할수록 현장 근로자들의 위험 요인 발굴과 개선 효과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은 기업 내 안전 관리자들이 제안하는 안전보건 활동과 근로자 참여가 조화를 이룰 때 한국 사회 전반의 산업 안전 수준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최근 산업 재해에 대한 시민들의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 재해 발생은 해당 기업이나 업종 전체의 사회적 평판을 나빠지게 하고 기업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현대산업개발이 대표적으로 광주 아파트 부실 공사와 건설근로자 사망 사건으로 인해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그리고 최근 조선업에서는 선박 수주가 크게 증가하고 있어 건조 작업에 참여할 근로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나 조선소의 안전 관리 수준이 낮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청장년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

이제 근로 환경 개선과 중대재해 감소는 인력 확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기업 경영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비재무적인 ESG 경영 요소 중 사회(social) 차원에서도 안전보건 경영에 대한 투자와 산업 재해 감소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안전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은퇴하는 사회를 위하여

아울러 개별 기업 차원에서의 인식 전환과 함께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산업 안전보건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산업 재해는 단 한 명의 피해자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근절’ 대신 ‘감소’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도 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한 교통사고 근절이 불가능하듯 생산 활동을 계속하는 이상 산업 재해 근절도 불가능하다는 점은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 재해의 최소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산업 안전보건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매년 100명 내외로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인구 규모와 산업 특성을 고려해 한국에서도 중대재해 사망자 발생 목표를 현실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산업 재해 근절을 목표로 할 경우 산업 재해들을 오히려 은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산재 은폐는 제대로 된 예방 대책 수립을 방해하면서 더 큰 사회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무재해 달성’에 대해 포상하거나 산업 재해 감소를 기계적으로 수치화해서 평가하는 관행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산업 재해는 생산 차질과 숙련 인력 손실, 근로자들의 건강 악화라는 점에서 개별 기업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다. 본 기고문에서는 주로 사고를 중심으로 논의했지만 업무로 인해 다양한 신체 부위에서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 유해 화학물질에 조금씩 노출되며 서서히 건강이 악화되는 문제 등도 있다. 당장 일을 하는 동안에는 건강이 악화된 것을 가시적으로 확인하지 못하지만 일을 그만두거나 은퇴한 뒤 질환을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결국 일을 그만둔 상태에서 병원 이용률을 높이는데 이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될 여지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업무로 인해 질병을 얻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업들이 앞장서고 이 일에 근로자와 노조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안전을 위한 행동과 투자는 낭비적인 지출이 아니라 기업뿐 아니라 사회의 생산적인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foral@kli.re.kr
필자는 연세대에서 산업/노동 사회학 전공으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기업 간 관계, 노동 시장, 노사 관계의 속성을 산업 재해 및 산업 안전과 연계한 연구들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조선업중대재해국민참여조사위원회(2018년)를 비롯해 다양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비표준고용의 유형과 안전보건과제(2021)’ ‘서비스업 야간노동(2019)’ 등의 보고서를 함께 집필했다.
  • 박종식 | 연세대에서 산업/노동 사회학 전공으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다. 기업 간 관계, 노동 시장, 노사 관계의 속성을 산업 재해 및 산업 안전과 연계한 연구들을 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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