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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Interview: 김범주 유니티 에반젤리즘 본부장

제페토가 증명한 가상공간의 힘
고객들, 단순 소비자 넘어 적극 참여자로

조윤경 | 317호 (2021년 03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가상현실(AR) 기반의 아바타 플랫폼 ‘제페토’가 전 세계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제페토뿐 아니라 최근 들어 VR•AR 등의 기술이 제조업과 같은 일반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 수많은 게임 제작사에 게임 개발 툴을 제공해온 3D콘텐츠 제작 및 운영 플랫폼사 유니티에 따르면 메타버스란 개념이 회자되면서 게임 이외 산업군과 협업이 더욱 활발해지는 중이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다. 현실에서 이뤄지는 활동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몰입도를 높여 단순 소비자가 아닌 ‘주민’으로 활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10대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가상현실(AR) 아바타 플랫폼 ‘제페토’의 글로벌 가입자 수가 2020년 12월 기준 2억 명을 돌파했다. 출시된 지 불과 2년 4개월 만이다. 제페토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아바타를 만들어 게임이나 액티비티를 즐기는 모바일 플랫폼이다. 업계에서는 제페토를 급성장 중인 동시대 메타버스의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꼽는다.

제페토는 글로벌 3D 콘텐츠 제작 및 운영 플랫폼 회사인 유니티의 기술로 제작됐다. 2004년 덴마크에서 3명의 게임개발자에 의해 시작된 유니티는 주로 게임을 만드는 툴, 즉 게임 엔진을 개발하고 이를 여러 게임 제작사를 비롯한 다양한 기업과 개인에게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전 세계 모바일•PC•콘솔 게임의 50%가 유니티의 기술로 제작됐으며,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18개 국가에 4600여 명의 임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했다. ‘게임 개발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유니티는 ‘크리에이터가 더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나아진다고 믿는다(We believe the world is a better place with more creators in it)’는 기지를 내걸고 있다.

메타버스를 준비하는 기업이 유니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게임에 주로 적용되던 2D, 3D, 증강•가상현실(AR•VR) 등 기술이 영화나 제품 및 건물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도 쓰이기 시작하며 게임 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던 유니티의 활동 분야도 넓어졌다. 현재 아티스트, 건축가, 자동차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가 유니티를 기반으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 최근엔 메타버스의 개념이 떠오르며 건설업, 제조업 등 분야의 기업들까지 유니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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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주 유니티코리아의 에반젤리즘(기술전도사) 본부장은 최근 DBR와의 인터뷰에서 “다양한 산업군에서 하나의 목적(메타버스)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현업에서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AR•VR 기술이 지금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오락, 쇼핑, 경제활동과 연결되는 것을 말하며, 이들 조합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이에 기업들도 자사 제품이나 플랫폼, 프로젝트에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 중이다. 김 본부장을 만나 메타버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유니티 자체적으로 시도한 메타버스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달라.

유니티에서도 고객사와의 협업뿐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유니티코리아는 매년 전국 게임개발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콘퍼런스 ‘유나이트서울(Unite Seoul)’을 개최한다. 그런데 2020년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가 전면 취소됐다. 이에 유니티코리아는 네이버제트주식회사의 ‘제페토’ 플랫폼 안에서 오프라인 콘퍼런스를 구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콘퍼런스를 진행한 곳은 많았다. 하지만 메타버스라는 가상세계에서 나와 닮은, 혹은 나와 닮지 않은 아바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한 콘퍼런스로는 전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지난해 제페토에서 진행된 유나이트서울에는 자체 집계 결과, 3일 동안 총 1만7000명이 방문했다. 그 이전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3일 동안 콘퍼런스를 진행했을 때 보통 5000명 정도가 방문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정도 많은 수치다. 서울에 있는 유저뿐만 아니라 지방 관객, 나아가 전 세계인들의 방문이 모두 용이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오프라인 행사나 온라인 생중계 행사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나이트서울의 기존 오프라인 행사에선 국내외 연사들의 신기술 관련 강연을 비롯해 유니티 기반으로 제작된 작품을 전시하고 방문객들이 시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다. 이번 가상현실 속 행사에서도 포토월이나 동영상 형태의 전시 등을 똑같이 재현했다. 굿즈숍을 만들고 유니티의 로고가 들어간 티셔츠나 모자를 구입해 아바타에게 입힐 수 있게 했다.

가장 큰 성과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참가자들 간 네트워킹이었다. 오프라인 행사에선 개발자들이 자연스럽게 행사장에서 만나 네트워킹을 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기업이 선택하는 실시간 온라인 중계 방식의 콘퍼런스에선 작은 채팅창으로만 겨우 소통할 수 있다. 이번 행사를 진행해보니 메타버스에선 오프라인 행사에서처럼 참가자들이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의 콘퍼런스 전시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음성 채팅 등을 통해 실제 현실에서 만난 친구처럼 이야기하며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가능한 것으로 관찰됐다.

해본 것과 안 해본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처음엔 이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이제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 전시회인 CES 같은 대형 행사 주최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DBR mini box I

성큼 다가온 가상세계…
밀레니얼•Z세대의 메타버스 놀이터 ‘제페토’

사진을 등록하고 피부색을 선택했더니 휴대전화 화면 속에 나를 닮은 캐릭터가 나타났다. 방금 탄생한 내 몸이 신기한 마음에 한쪽 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이리저리 들여다보기도 했다. 체형을 선택하고 이름까지 지었더니 드디어 완성된 형태의 ‘그녀’가 홈 화면에 나타났다.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고 들숨 날숨에 따라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인다. 호기심 많은 얼굴로 나를 보며 싱긋 웃기까지. 분명 내가 방금 만든 캐릭터인데 기분이 묘하다.

네이버제트주식회사(이하 네이버제트)가 출시한 가상현실(AR) 아바타 플랫폼 제페토는 자신만의 개성 있는 아바타를 만들어 게임이나 액티비티를 즐기는 모바일 플랫폼이다. 3차원으로 구축된 여러 가상의 ‘월드’를 아바타의 신체(?)를 빌려 둘러볼 수 있다. 서울 한강공원이나 영화관처럼 오프라인의 공간을 옮겨다 놓은 월드뿐 아니라 우주, 무릉도원을 테마로 한 상상의 세계까지 다양하다.

제페토란 서비스명은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왔다. 김대욱 네이버제트 대표는 “피노키오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데서 영감을 받았다”며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자신을 닮은 아바타 캐릭터를 창조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온라인에서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는 상상 속의 일을 누구나 경험하도록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네이버제트는 본래 사진 보정 기능을 선보였던 카메라 앱을 필두로 탄생한 스노우의 서비스 중 하나였다. 스노우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카메라 앱에서 더 나아가 보정 기능이나 AR 기술을 기반으로 한 ‘셀카 스티커’ 기능 등을 제공하고 있다. AR 기술이 눈•코•입 등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사용자의 얼굴과 표정에 맞게 셀카 스티커를 조정하며, 화면 속 얼굴 위에 셀카 스티커를 얹는 것이다. 제페토는 카메라 서비스에 들어가는 콘텐츠에 대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다가 시험적으로 시도한 아바타 서비스였다. 이후 2018년 5월 아바타 서비스의 글로벌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전방위적 아바타 생태계를 구축한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위해 제페토 서비스만 따로 분리해 네이버제트가 출범하게 됐다.

가상현실 속에 나를 투영하는 아바타란 개념은 과거부터 존재해왔지만 제페토 서비스가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생생한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네이버제트는 유저와 닮은 아바타를 생성하기 위해 스노우 카메라 앱과 비슷한 기술을 활용 중이다. 제페토는 다양한 외모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얼굴의 형태나 위치 등을 알아서 학습하고, 이 같은 딥러닝 기반의 정교한 안면인식 기술로 눈, 코, 입뿐 아니라 머리 모양까지 사진 속 각 부위를 스타일별로 분석해 3차원 이미지를 생성한다. 또한 각 부위의 크기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 아바타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정교함을 더했다. 아바타가 짓는 수천 개가 넘는 표정과 아바타가 착용하는 각종 의상이나 안경 등 액세서리는 이에 따라 자동적으로 위치 값이 조정된다.

카메라 얼굴 인식을 통하지 않고 사용자가 직접 아바타를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실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도 만들거나 살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현실의 나와 닮은 모습, 현실의 나와 닮지 않은 모습 두 가지 방향으로 사용자 제약을 줄인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며 “이처럼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은 제페토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애플이나 삼성의 이모지 기반 서비스나 로블록스, 심즈와 같은 게임 등 아바타를 생성할 수 있는 앱이나 플랫폼은 제페토 외에도 많다. 하지만 제페토 서비스만의 특장점은 소셜라이징과 창작 요소를 더했다는 점이다. 제페토에서는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없어도 제페토 내 포토부스, 비디오부스 등을 이용해 높은 퀄러티의 사진 및 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가 있다. 이용자들은 다양한 콘셉트의 3차원 월드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다. 물론 아바타를 통해서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이, 내 아바타 페이지에 업로드할 수도 있다. 오프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나 제페토월드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이를 공유하기도 한다. 다른 아바타의 페이지를 방문해 그의 직업, 국적 등 프로필을 읽고, 그가 올린 콘텐츠에 ‘좋아요’를 남길 수도 있다. 그 덕분에 제페토는 10대 이용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체 이용자 중 10대 유저의 비중은 약 80%다. 현재까지 제페토 내부에서 쇼트 포맷 UGC(User Generated Contents) 창작물은 10억 회 이상 생산됐다. 제페토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도 생겨나는 추세다. 김 대표는 10대 이용자들에 대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성향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강한 세대”라고 말했다.

제페토 이용자들은 월드라 불리는 가상공간도 직접 만든다. 제페토에는 현재 사용자들의 주도하에 약 1만5000개 이상의 맵(Map)이 존재하며, 사용자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활용해 이전에 없던 공간을 새로 창조하거나 디자인할 수 있다. 제페토에 따르면 학교를 테마로 한 교실 맵이 가장 인기가 많으며, 디즈니나 블랙핑크 등 제휴된 지적재산(IP)을 테마로 제작된 맵, 게임 요소가 가미된 맵 등 다양한 분야의 맵 역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제페토와 제휴하는 IP 기반의 가상 아이템 등 콘텐츠 판매량은 10억 개에 달한다. 예를 들면, 나이키 로고가 박힌 의상이나 디즈니 만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콘셉트의 맵 등이다.

현실 세계를 본떠 만든 맵도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맵에서는 실제 한강공원처럼 반포대교 무지개 분수와 남산N타워, 푸드트럭 등이 재현돼 있다. 또한 오프라인에서처럼 편의점에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수상택시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체험도 가능하다.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한 ‘제페토스튜디오’에서는 유저들이 아바타의 의상 등 아이템을 제작해 제페토에 출시하고 이를 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네이버제트에 따르면 6개월 만에 현재 40만 명이 넘는 크리에이터들이 해당 스튜디오에 등록했다.

제페토의 성장엔 케이팝(K-Pop) 등 한류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사용자가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제페토에서 열린 블랙핑크 팬사인회에는 약 5000만 명의 팬이 블랙핑크 아바타와 만났다. 현재 전 세계 165개국에 서비스 중인 제페토는 해외 이용자가 90%를 차지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사용자들이 많으며 북미, 남미, 유럽 등 지역에서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최근 네이버제트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로부터 17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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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외 분야에서는 AR•VR가 적용된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건설, 설계, 제조, 통신, 항공, 교육 등 아주 많은 분야의 회사가 유니티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먼저 자동차 제조사 아우디의 가상 디자인스튜디오가 있다. 가로 15m, 세로 15m 길이의 대형 VR 홀로덱이 독일 아우디 본사에 설치돼 있는데, 엔지니어들은 이 몰입형 VR를 통해 새 자동차 모델의 실제 버전을 가상으로 경험하고 반복해서 수정할 수 있다. 물리적인 모델이나 프로토타입을 이와 같은 가상 렌더링으로 대체하면 디자인이나 기능 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훨씬 빨리 식별할 수 있다. 또한 여러 번 모델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반복 작업을 수행할 필요가 없게 돼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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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틴스플로어(13th Floor)라는 게임회사는 XR클래스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순발력 있게 만들어 발표했다. 유니티에 이미 기반 기술이 모두 존재했기 때문에 제작 기간도 3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XR클래스는 헤드셋을 끼고 가상의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앉아 수업을 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연세대, 동서울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이를 활용했는데 줌과 같은 실시간 동영상 프로그램보다 수업 몰입도가 크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얼굴을 보여주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카메라를 잘 켜지 않는 학생들이 메타버스에선 아바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도 이전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학생들은 노란 머리로 염색을 한다든지, 선글라스를 쓰고 수업을 듣는다든지 실제 교실에선 시도하기 어려운 점들을 구현할 수 있어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기능이 강조되던 기존 활동에 재미 요소를 더할 수 있는 것이 메타버스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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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해 여름 유니티로 만든 웨이브(Wave)라는 공연 플랫폼에서 미국 가수 존 레전드가 퍼포먼스를 했다. 그가 모션 캡처 슈트를 입고 춤을 추면 가상현실의 아바타가 그대로 따라 똑같은 동작을 한다. 실시간으로 진행된 공연이었고 폭죽 등 장식 아이템도 적용했다. 공연하는 가수를 한 개의 시점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기존 공연장과 달리 아바타 관객들은 가수의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관람할 수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행사가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 관객들로부터 공연비를 실시간 도네이션 형태로 받았다는 점이다. 실시간 소액 결제가 공연과 동시에 이뤄지는 것은 오프라인 공연에선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메타버스가 앞으로 더 확장될 것으로 보는가?

많은 기업이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은지 상담을 해오고 있다.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기업 규모 및 업종도 다양하다. 이런 변혁의 시대에 기존 사업에 안주한다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군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메타버스는 하나의 메가트렌드가 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이제까지 없던 기술이 나온 것은 아니다. 쓰고 있던 솔루션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몰입도를 높여서 충성도를 높이고 쇼핑 등 현실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경험하는 데 쾌적함과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메타버스 안에서 소비자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가 ‘주민’으로 활동하게 된다. 앞으로는 개인이 A라는 캐릭터로 쇼핑을 하고 B라는 캐릭터로 소셜네트워킹을 하는 등 여러 개의 인격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회사가 메타버스 플랫폼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소비 형태가 바뀌는 것과 맞물려 시장 조사 방법이나 고객과 소통하는 방법 등 마케팅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는 메타버스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사례처럼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온라인상에서 소비자와 기업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런 트렌드를 잘 이해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은 미래 가치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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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줄어든 데는 기술의 발전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이전에 세컨드라이프라는 메타버스 성격의 게임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메타버스와 달리 현실과의 접점이 많지 않았기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세컨드라이프 시절엔 경제활동과 같은 복잡한 부분을 백업해 줄 만한 네트워크 인프라가 없었다. 속도도 느렸고, 애니메이션의 섬세함을 받쳐줄 그래픽과 같은 기술이 상상력을 따라오지 못했다. 세컨드라이프 속 아바타들이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기술이 정교하지 않아 뭔가 관절이 툭툭 끊어지며 걷는 느낌이었다. 반면 최근 메타버스의 사례로 자주 회자되는 미국 가수 트래비스 스콧의 포트나이트 공연 같은 경우, 아바타들은 실제 사람과 거의 똑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것이 쉬워졌는지?

게임을 만드는 일이 과거에 비해 쉬워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금은 게임 엔진 개발 기업들 덕분에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20여 년 전만 해도 게임을 만드는 일은 컴퓨터 코딩을 할 줄 아는 프로그래머들의 전유물이었다. 디자이너나 기획자가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가능하겠느냐’고 하면 프로그래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도 게임회사에서 애니메이터 일을 할 때 최대한 연출에 신경을 써서 스토리보드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이를 구현할 프로그래머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그 부분은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아티스트가 원하는 바와 프로그래머의 구현 사이에 간극이 자주 발생해 벽에 막힌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유니티와 같이 게임 엔진을 제공하는 업체가 많아지고 대중화됐다. 프로그래머들뿐 아니라 디자이너, 기획자들이 크리에이터로서 게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개발자가 없어도, 코딩을 몰라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 즈음 유니티를 처음 접했다. 마우스를 이용해 화면에 나타난 그래프로 값을 조정하면 애니메이션의 결과물이 실시간으로 바뀌어 직관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구현해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네’ 싶으면 바로 작업을 변경하는 것도 가능했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후엔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다른 산업에서도 게임 제작에 쓰이던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게임 산업은 기술면에서 가장 많이 도전을 받는 분야다. 메타버스도 이런 과정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메타버스 플랫폼이 탄생할 것이란 전망이 가능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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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로 가기 위한 기술적 한계는 거의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술은 이미 과거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이를 더욱 쉽게 만드는 기술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돼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구글어스는 현실 세계의 지형, 도로, 도시까지 디지털 세계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니티에서도 메타버스 구현을 위한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유니티는 스마트폰 스캐닝 모델링 기술을 가진 레스트에이알(RestAR)이라는 업체를 인수했다.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레스트에이알은 현실에 존재하는 상품을 스마트폰으로 스캔해 메타버스 세계 속에서도 여러 각도에서 이 상품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모델링 기술을 가지고 있다. 레스트에이알의 프로그램으로 현실에서 사용 중인 운동화를 촬영하면 가상현실에 3D 형태로 바로 구현된다. 이처럼 사진을 찍어 이를 3D로 모델링하는 작업의 기반 기술을 포토그래메트리(Photogrammetry)라고 한다. 꽤 오래전부터 인테리어나 제품, 인물을 가상현실 속에 구현할 때 사용됐던 기술이다. 그런데 여러 각도에서 한 장씩 사진을 찍어도 어쩔 수 없이 카메라가 닿지 않는 부분은 까맣게 남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레스트에이알의 기술은 이러한 공백을 인공지능(AI)이 딥러닝을 바탕으로 추정해 비슷한 형태로 메워준다. 그 덕분에 정교한 모델링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수준으로는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메타버스를 위해서는 현실에 있는 사물들을 AR•VR로 최대한 많이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쇼핑몰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아주 많은 제품을 판매자들이 쉽게 3D 모델화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 굉장히 빨라지고 쉬워진 것이다. 개발자 입장에서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셈이다. 실제로 레스트에이알은 오프화이트나 어그 등 유명 패션•신발 브랜드와 협업해 이 기술을 이미 활용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가?

개인적으로 새로운 기술이란 전에 없던 것이 아니라 기존 기술의 새로운 조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메타버스도 전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던 생활 방식이나 개념, 기술들이 조합된 신영역이다.

개인이 생활하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정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에 기록하는 것을 라이프로깅이라고 하고, 구글어스나 카카오맵과 같이 현실 세계를 온라인에 반영하는 것을 미러월드(Mirror World, 거울세계) 개념이라고 한다. 메타버스는 이 두 가지를 증강•가상현실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디지털화를 통해 융합해 놓은 세계다. 이런 요소들은 다른 어떤 것끼리 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나 플랫폼을 탄생시킨다. 증강•가상현실 기술로 세계와 똑같은 세계를 온라인에 구현하고, 그 안에서 SNS와 같은 사회적 활동이 가능하다면 메타버스는 현실이 갖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장점을 갖게 된다.

쇼핑을 하는 상황을 예로 들면, 메타버스는 우리가 쇼핑몰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운동에너지는 소모하지 않게 하면서도 쇼핑몰에 방문해 느끼는 몰입도는 그대로 유지하는 식으로 응용될 수 있다. 메타버스의 개념을 처음 정리한 미국 비영리기관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의 목적이 결국 사람들의 인지능력과 지능을 향상시키는 도구(Intelligence Implication)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쇼핑 앱과 같은 서비스가 기능을 이용한 뒤 종료하는 개념이었다면 메타버스는 지속적인 생활의 일부로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플랫폼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얼마나 많은 애착을 갖게 되느냐의 정도가 매출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크다. 메타버스 안에서 사용자들은 콘텐츠나 제품의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창작자이자 주인으로 활동하려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의 마케팅이나 상거래의 성격을 크게 바꾸게 될 것이다. 각 분야에서도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의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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