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에어팟은 2016년 12월 출시와 함께 스스로 무선 이어폰 시장의 표준이 됐다. 에어팟 이전에 시장에서 팔리던 다양한 형태의 블루투스 헤드셋들은 에어팟의 등장과 함께 귀에 꽂는 이어폰 형태로 통일됐다. 에어팟은 이전까지 무선 이어폰들이 갖던 고질적인 문제들, 즉 음질이 유선 이어폰보다 떨어지고, 완전한 무선이 아니며, 배터리 사용 시간이 짧고, 무엇보다 페어링(Pairing)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이슈를 해결했다. 이를 위해 애플은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블루투스 이어폰 관련 특허를 취득하고 필요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가장 완벽한 제품’을 만들 역량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완벽함이 아닌 소비자의 니즈와 감성을 아우르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 결과 에어팟은 애플의 매출 효자 제품으로 떠 올랐고 전체 무선 이어폰 시장점유율 70%라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게 됐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2017년 3월 1호(220호)에 게재된 케이스 스터디11DBR 220호(2017년 3월 1호) DBR Case Study: LG전자 톤플러스 기사 참고.
닫기를 통해 LG전자의 넥밴드형 블루투스 헤드셋 ‘톤플러스’의 글로벌 성공 스토리를 다뤘다. 당시 LG전자는 음악 감상이 가능한 스테레오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미개척 시장에 발 빠르게 뛰어들어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찾아냈고 목에 거는 넥밴드형 헤드셋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시장에 안착시켰다. 그 결과 2011년 86억 원에 불과했던 LG전자의 무선 헤드셋 매출액은 2016년 3371억 원으로 정점을 찍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시장점유율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40%를 기록했고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도 30%에 육박했다. 내로라하는 전통적 음향기기 전문 업체들을 제치고 LG전자가 해외에서 만든 혁신 사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7년에 들어서며 매출액은 2033억 원으로 떨어졌고 2019년에는 576억 원까지 폭락하며 시장 지배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애플의 ‘에어팟’ 출시가 있다. 애플이 2016년 12월 에어팟을 출시하자 관련 시장이 에어팟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애플 에어팟은 후발 주자임에도 어떻게 이토록 빠르게 시장을 독식할 수 있었을까. 동시에 왜 LG전자는 애플의 시장 진입을 예상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에어팟이 출시된 지 4년이나 지난 지금, 에어팟의 시장 진출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애플이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시장을 잠식해 나가기 때문이다. 즉, 에어팟의 성공과 경쟁사들의 실패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다른 제품 카테고리에서 애플과 경쟁하는 많은 기업에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조롱을 환호로 바꾼 에어팟
많은 비평가가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 제품에서 혁신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애플의 신제품에서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기술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을 때도 애플은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아니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애플 제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애플 제품들은 대부분 해당 카테고리의 최초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애플을 있게 한 아이폰 이전에도 이미 스마트폰을 출시한 휴대폰 제조사들이 있었고 아이팟 이전에도 MP3플레이어는 있었다. 애플 제품들은 대부분 출시 초반에 오히려 “저런 제품을 누가 쓰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기존에 출시된 경쟁사 제품들보다 기술적 스펙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드는 혁신을 추구하지 않는다. 애플이 잘하는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제품을 소비자 기준에서 조금 더 편하고 감각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음악을 듣는 경험을 바꾼 아이팟이나 스마트폰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을 날리며 스마트폰 대중화를 이끈 아이폰,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이에 태블릿 PC가 꼭 필요할까라는 의심을 뛰어넘은 아이패드까지, 모두 출시 초기에는 비평가들의 비아냥을 들었던 제품들이다. 그리고 최근 애플의 제품 중 가장 애플다운 혁신을 보여주는 사례는 블루투스 이어폰인 ‘에어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