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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광고 효과, 이제 뇌영상으로 검증

정재승 | 16호 (2008년 9월 Issue 1)
매년 2월이 되면 미국은 NFL(북미 미식축구 리그)의 챔피언을 가리는 슈퍼볼 열기로 온 나라가 뜨겁다. 다른 메이저 스포츠 종목 결승전들은 모두 7전4승제로 열리는데 NFL은 단판 승부로 최고의 챔피언을 뽑기에 온 국민의 관심과 시선이 한 경기에 집중된다.
 
지난해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실린 기사 ‘슈퍼볼 이코노미’에 따르면 중계방송 업체부터 스낵업체, HDTV 판매상, 쇼 비즈니스, 기업 광고, 슈퍼볼이 열리는 곳의 지역경제까지 슈퍼볼 행사에 따른 경제적 부가가치가 연간 1조 7000억 원에 이른다.
 
미국에서만 1억 명, 전 세계적으로 2억 명이 생중계를 시청하는 슈퍼볼의 막간을 이용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꼬박 1년을 준비한다. 슈퍼볼 시청자 중 10%가 광고를 보려고 슈퍼볼을 본다는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다. 코카콜라, 펩시콜라, 버드와이저, 페덱스, 델 컴퓨터 등 3040개 업체가 매년 불꽃 튀는 광고전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광고 단가는 천문학적으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실제 폭스방송의 30초당 광고 단가는 25억 원에 이른다. 광고 초당 약 8500만 원이 소요된다는 얘기다.(한국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가 2008년 2월 처음으로 슈퍼볼 중계시간에 ‘제네시스’ 광고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광고가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슈퍼볼’ 중계 때 광고를 내보낸 기업의 주가상승률(슈퍼볼이 열린 주 기준)은 S&P500 지수 상승률보다 평균 1.3%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슈퍼볼의 힘이 막강하다는 얘기지만 광고 자체의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의 제이콥 이아코보니 교수는 슈퍼볼 중계 도중 상영된 광고들을 슈퍼볼 중계 중에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준 뒤 뇌영상 이미지를 얻었다. 이 결과 코카콜라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선호를 표상하는 뇌 영역이 가장 활발하게 자극받은 것이다.
 
UCLA의 정신의학과 임상 조교수이며 FKF 어플라이드 리서치의 공동 창설자인 조슈아 프리드먼은 올해 방영된 코카콜라의 ‘비디오 게임’ 광고(무작위적으로 친절한 행동을 장려하는 60초 길이의 애니메이션 스폿광고)가 피실험자의 뇌에서 매우 긍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뇌영상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이처럼 기업들의 광고 효과를 직접 측정하려는 노력이 뉴로마케팅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진행되고 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은 사람들의 욕망, 두려움, 인지 제어 등 다양한 뇌기능을 수행하는 뇌 영역의 혈류 흐름을 분석해 자극을 제시하는 순간 어느 영역이 활발하게 활동하는지를 측정하는 뇌영상 기술 중 하나다. 뇌의 특정 영역이 활동적이면 그 영역의 혈액 순환과 산소가 증가하고, 영상 기술은 이 활동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제품이나 광고를 보여 주면서 뇌의 활동을 관찰하면 행동 이전의 소비자 반응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지난 5년 동안 신경과학자들이 인간의 선호와 선택을 연구해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이해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우선 프리드먼 교수 연구팀은 뇌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모든 광고물의 3분의 1에서부터 절반까지의 내용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억에 남는 광고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 주는 연구 결과다.
 
슈퍼볼 광고는 원래 돈을 많이 들인 뛰어난 광고물로 유명하지만, 프리드먼 교수는 (광고의) 대부분이 소비자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프리드먼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의 신경세포를 자극한 광고물은 대체로 인간의 공포와 불안을 이용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런 광고물을 한 번 본 다음 걸러내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일자리를 잃고 우울해진 자동차 제조 로봇을 찍은 GM의 ‘로봇(Robot)’과 같은 광고는 크게 실패했다. 성공을 거두지 못한 또 하나의 예는 스프린트의 ‘커넥타일 기능 장애(Connectile Dysfunction)’ 광고였다. 발기 장애를 코미디화한 이 광고물은 소비자 선호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프리드먼 교수팀에 따르면 2007년 슈퍼볼 광고 중 최악의 광고물은 연예인 로버트 굴렛이 사무실 직원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집기를 어질러 놓는 장면을 보여 주는 에메랄드 너츠의 광고였다. 반면에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스낵인 도리토스의 ‘리브 더 플래보’ 광고물은 시청자들의 뇌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리토스의 30초 스폿광고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남자와 거리에 서 있는 여자(둘 다 도리토스 가방을 들고 있음)를 보여 준다. 이 두 사람은 몹시 고민하며 돌아다니다가 서로 만나게 된다. 이 평범한 광고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본 기업 중에 맥주 회사 미켈롭이 있다. 미켈롭 맥주는 부드럽고 풍부한 맛을 강조한다. 1970년대 미켈롭의 광고 문구는 젊은 전문가들을 등장시킨 ‘당신이 나갈 때 미켈롭이 있다’였다. 이어 ‘주말은 미켈롭을 위한 시간이다’로 슬로건을 바꾸었으나 그다지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시 ‘주중에도 약간의 주말 분위기를 내자’는 카피를 만들었지만 효과는 역시 적었다. 1980년대 중반에 ‘밤은 미켈롭의 것이다’로 변경하기도 하고 1994년에 ‘특별한 날에 특별한 맥주를 준비한다’, 그 뒤 ‘미켈롭은 특별한 날을 위한 것’이라며 광고 카피를 계속 바꾸었지만 오히려 일관성을 상실한 채 소비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최초가 될 수 없다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그곳에서 1등 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 맥주시장에서 밀러는 ‘노동자의 맥주’, 하이네켄은 ‘고가의 외제 맥주’로 각각 포지셔닝하고 있다. 미켈롭은 이런 시장 상황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고가의 국산 맥주’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변경, 고유 영역을 개척하는 전략을 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성과를 냈다. 소비층을 나눠 공략하는 브랜드는 그렇지 않은 브랜드보다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잘 기억되며 선호도도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특히 얼마 전 미켈롭은 젊은 여성들이 비 오는 날 진흙탕에서 미식축구를 즐긴 후 미켈롭 맥주를 마시는 광고를 내보내 큰 히트를 쳤다. 매출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여성 고객이 급증한 것이다. 이 광고를 보여 줬을 때 남성의 뇌에선 큰 변화가 없었지만 여성 고객의 뇌에선 난리가 났었다. 여성 고객의 증가는 뉴로마케터들에게 예견된 결과였던 것이다.
 
한편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평균 31세의 남성 12명을 대상으로 스포츠카를 보여 주고 fMRI 장치로 뇌를 촬영했다. 스포츠카를 본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나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이 눈에 띄게 활성화됐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성취욕이 있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젊은 남성이 스포츠카를 좋아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스포츠카 광고를 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실마리를 제공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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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영상들의 전쟁, 광고. 이제 이 효과를 구매로 이어질 때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욕구’ 자체까지도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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