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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현실과 만난 ‘감성 마케팅’

김동욱 | 16호 (2008년 9월 Issue 1)
감성 마케팅의 대명사’ 스타벅스가 위기를 겪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22%의 매출 성장을 기록해 왔고, 2007년 기준 매출 94억 달러에다 전 세계 44개국에 약 1만 6000개의 매장을 가진 세계 최대 커피 전문점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난해 처음으로 매장당 방문 고객이 감소세에 들어섰으며, 주가도 전성기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최근 도이치방크 보고서에서는 ‘모래 위에 쌓은 성(Castles in the sand)’으로 불리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창업자의 복귀, 구조조정 추진
스타벅스가 이처럼 어려움을 겪자 올해 1월 스타벅스 신화의 주인공 하워드 슐츠가 8년 만에 최고경영자(CEO)에 복귀했다. 그의 복귀 후 스타벅스는 매장 감축 등 다양한 구조조정과 재도약 추진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미국 내 소비 위축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확산이란 환경에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올해 7월 1일 스타벅스는 미국 내 600개 직영 매장 폐쇄와 1만 2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감원 추진이란 강력한 구조조정 조치를 추가로 발표했다. 7월 29일에는 호주 내 매장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1개 영업점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또 ‘베끼기의 달인’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인 던킨도너츠를 모방해 미국 전역에 강화된 스무디 메뉴를 내놓기로 했다.

성장 모멘텀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스타벅스는 올해 2분기에 상장 16년 만에 최초로 분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스타벅스의 미래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타벅스 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유가 및 원자재가 상승 등 경제 상황 악화가 원인일 수도 있다. 커피는 필수재가 아닌 기호품이므로 불경기의 영향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현재 스타벅스가 처한 위기는 근본적으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복합적인 상황에서 온 것이며, 특히 내부적 요인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다점포 전략으로 비용 늘고 차별성 상실
위기의 내부적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다점포로 대표되는 사업 전략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최근 수년간 스타벅스는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해 왔다. 이 전략이 고객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직영 매장 중심의 확대 전략은 고정 비용 증가와 매장당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 고객 측면에서 스타벅스는 과거에 가지고 있던 희소성과 차별성을 잃고 브랜드의 프리미엄 속성이 낮아지게 됐다. 브랜드와 감성적 이미지는 진입장벽이 낮은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스타벅스를 지켜주는 ‘무기’였다.

스타벅스가 차별화한 이미지와 브랜드 프리미엄을 잃고 있다는 증거는 실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의 소비자 전문지 컨슈머 리포트가 지난해 실시한 커피 분야 소비자 여론 조사에서 스타벅스는 맥도날드에 뒤졌고, 브랜드 컨설팅 업체인 브랜드 키스가 매년 실시하는 ‘커피&도넛’ 분야 소비자 충성도 조사에서도 최근 2년 연속 던킨도너츠에 밀렸다.

국내 시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타벅스의 ‘대중화’로 인해 유행에 앞서가는 로열티가 높은 기존의 젊은 고객 상당수가 파스쿠치, 투섬 플레이스, 홈스테드 커피, 에스프레사멘테 일리 등의 경쟁업체로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에 대한 대응 미흡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은 경쟁 심화와 이에 대한 스타벅스의 미흡한 대응에 있다. 현재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스타벅스는 맥도날드 등 기존 업체의 반격에다 로컬 기업 등 새로운 경쟁 업체의 도전에 직면해 치열한 격전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어정쩡한 포지션(stuck in the middle)’에서 파생하는 전략적 딜레마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고가와 저가 시장 모두의 공격에 노출돼 양쪽 사이에 낀 ‘넛 크래커(Nut-Cracker)’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먼저 저가 커피 세그먼트에서는 맥도날드와 던킨도너츠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값싸고 좋은 커피를 지향하며, 스타벅스의 절반 가격에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맥도날드는 이탈리아 라바차 고급 원두로 커피를 업그레이드하더니 전문 바리스타까지 고용하며 자사의 커피 전문 매장인 맥카페를 확대하고 있다. 맥카페는 이런 고급화에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최고급 커피를 적당한 가격에 공급한다’를 모토로 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내년까지 미국 내 1만 4000개 매장에 맥카페를 추가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일리가 새롭게 론칭한 ‘에스프레사멘테 일리’와 같은 정통 에스프레소 바들이 스타벅스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는 감각적인 디자인과 이탈리아 정통 에스프레소를 주요 셀링 포인트로 한다. 전문 바리스타가 만드는 에스프레소 등 커피 음료는 물론 커피 칵테일과 이탈리아 와인까지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스타벅스는 지역 소비자의 취향을 빠르고 유연하게 반영하는 로컬 업체 및 이들의 전략을 따라하는 소규모 글로벌 업체와의 싸움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필자는 올해 5월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스타벅스, 커피빈과 같은 글로벌 업체들과 커피 클럽, TCC 등 로컬 업체들이 경쟁하는 구도에서 스타벅스를 제외한 나머지 주요 업체들은 매장에서 샐러드와 파스타 같은 음식까지 판매한다는 사실이었다.

제품 구색의 확대와 차별화 측면에서 음식까지 파는 전략을 먼저 취한 것은 로컬 업체들이었다.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글로벌 업체인 커피빈은 동일한 의사결정을 내려 유연하게 대응했다. 반면에 규모가 큰 상장사인 스타벅스는 글로벌한 전략의 일관성, 품질 관리,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의 측면에서 음식을 판매하자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커피 전문점을 하나의 산업으로 볼 때 이 산업의 진입 장벽은 매우 낮다. 글로벌한 오퍼레이션을 하는 거대 기업이 된 스타벅스는 경쟁업체들과의 전선이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동안 스타벅스의 경쟁 심화에 대한 대응은 상당히 미온적이었다. 던킨이 음료 및 음식 제품군을 확대하며 매장 인테리어를 개선하고, 맥도날드가 맥카페를 확대해 음료와 베이커리 사업을 강화하는 동안 스타벅스는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 변화에 둔감했다.

결국 스타벅스는 다점포를 기반으로 돈의 가치 극대화(value for money)를 지향하는 대형 경쟁업체, 점포 수에서는 열세지만 고품질과 다양한 제품으로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업체, 차별화를 추구하며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로컬 업체 및 독립 점포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감성 넘어선 근본적 변화 필요
스타벅스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업은 성장할수록 유기적 성장의 한계와 더욱 거센 경쟁에 노출된다. 지속적인 성장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외형적 성장의 강조는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쉽고, 이익의 강조는 외형적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 글로벌 성장을 하는 경우 TAM(Total Addressable Market) 규모는 커지지만 이와 동시에 비즈니스 전략과 운영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아니라 향취와 경험을 판다’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감성 마케팅을 통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근의 위기를 자초한 것은 감성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신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스타벅스는 최근 옛 갈색 로고를 부활시켜 ‘향수 마케팅’을 전개하는 등 여전히 고객 감성에 집착하고 있다. 감성 브랜드·마케팅의 리스크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수재보다는 사치재에 가까운 ‘부가적 감성’은 경제 상황 악화와 경쟁 심화라는 변수에 따라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관련 제품의 수요도 급감하기 쉽다. 이렇게 해서 한번 손상된 브랜드는 회복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스타벅스의 비용 절감, 점포 폐쇄, 인력 감축으로 인한 이익이 경기 침체로 인한 부정적 영향에 의해 크게 상쇄될 것 같지 않다는 부정적 전망의 이유일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스타벅스는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매장 폐쇄라는 조치의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다. 가정과 직장이 아닌 소위 ‘제3의 장소(the third place)’로서의 스타벅스에 감정적 애착을 갖고 있던 고객들이 본인이 즐겨 찾던 매장이 폐쇄될 경우 갖게 되는 불만과 이에 따른 로열티 하락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강력한 경쟁자인 던킨도너츠와 맥도날드는 불경기 속에서도 선전하며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매장 확대를 계획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필자는 커피 애호가로서, 스타벅스 고객의 한 명으로서 누구보다 스타벅스의 턴어라운드와 변신을 기대한다. 그러나 매장 폐쇄 이전에 매장의 효율성 증대, 제품 개선을 통한 매출 확대, 자산 매각 등 사업구조 개선에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는 스타벅스가 구체적으로 △번들 메뉴를 통해 커피의 체감 가격은 낮추고 매출은 확대 △서브 브랜드 전략을 통해 가격과 고객을 차별화 △기존 직영과 라이선스 중심에서 벗어난 프랜차이즈 확대 △인수합병(M&A)을 통한 외형적 성장과 동시에 스타벅스라는 단일 브랜드와 커피에 대한 의존도 낮추기 등의 좀 더 유연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스타벅스가 옛 갈색 로고의 부활과 같은 과거 지향적 마케팅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 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고객에게 감성으로 어필하고 감성적인 가치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비즈니스 자체가 감성적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비즈니스는 언제나 가치 창출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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