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건조기 상품 기획

빨래 말리는 기계? 건강 지키는 기계!
먼지필터로 소비자의 니즈를 꽉 잡다

263호 (2018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LG전자 트롬 건조기(트롬 인버터 히트펌프, 트롬 듀얼 인버터 히트펌프)의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설치의 어려움, 사용 효과에 대한 의구심 등 건조기 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작은 요인까지 찾아내 기술적으로 해결했다.
2. 옷에 붙은 미세먼지 제거, 이불 털기 기능과 같이 소비자들의 잠재적 니즈를 간파한 제품을 개발했다.
3.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신속하게 출시해 건조기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종수(연세대 창의기술경영학과 3학년) 씨가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건조기를 쓰면서까지 빨래를 말리는 것은 사치다.”

따스하고 쨍한 햇볕, 산뜻한 바람을 ‘흔하다’고 여기던 시절, 빨래 건조는 자연의 몫이었다. 베란다나 야외에 빨래를 널어 햇빛으로 살균하고, 바람으로 말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건조기는 불필요한 가전제품으로 인식됐다. 일부 여유로운 가정에서 일손을 덜기 위해 쓰는 가전기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조기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2016년 출시된 LG전자 트롬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가 큰 역할을 했다. 먼저 써본 소비자들은 건조기 전도사가 됐다. 인터넷상에서 “건조기가 삶의 질을 바꿨다”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쓴 사람은 없다”는 후기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건조기 기능과 효과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중년 여성들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건조기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들은 결혼하는 자녀나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 사이에서도 이제 건조기는 혼수 필수 아이템으로 통한다.

트롬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는 국내 건조기 시장을 여는 일등공신이 됐다. 신제품을 출시한 해에만 국내에서 10만 대가 판매됐다. 2017년엔 그 6배인 60만 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업계에 따르면 2018년 LG전자를 포함, 전체 건조기 판매량은 약 130만∼150만 대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조기 시장을 사실상 개척한 LG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약 70%에 달한다.

건조기 시장 전망도 밝다. LG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 건조기 보급률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의 보급률이 90%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1

LG전자는 2004년 건조기를 출시한 이래 국내 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10년 동안 기존 건조기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낀 불편함과 한계점을 파악하고 하나하나 해소했다. 소비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잠재적 니즈도 먼저 찾아내 제품에 반영했다. 그 결과 LG전자는 사치재로 불렸던 건조기를 생활 필수가전으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DBR은 LG전자 트롬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의 성공 요인을 심층 분석했다.



건조 겸용 세탁기에서 찾은 작은 단서
LG전자는 건조기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저절로 바뀔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건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능동적으로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아내 제품을 개발했다.

2004년 LG전자가 처음 출시한 가스식 건조기는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주로 건조기 사용이 일상화된 유럽과 미국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판매했다. 세탁기를 100년이 넘게 사용해 온 지역에서 이미 건조기는 세탁기와 함께 쓰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시간 널리 쓰이면서 사람들이 편의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특히 속옷과 같은 개인 빨랫감을 밖에 널어서 말리는 것을 사생활 노출로 여기는 풍조도 건조기의 선호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소비자들은 건조기의 성능과 가격, 전기사용료 등 많은 요소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기껏해야 해외에서 거주하면서 건조기를 써본 일부 가정주부들이 구매했을 뿐이다.

LG전자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국 건조기 시장의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열리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한국 소비자들도 곧 미국이나 유럽 소비자들처럼 건조기를 필수 가전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LG전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건조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단서는 LG전자가 1990년대부터 판매한 ‘건조 겸용 세탁기’였다. 성능이 동일한 세탁기라면 돈을 조금 더 지불하고 건조 기능이 추가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았다. 평상시에 쓰는 기능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필요한 기능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건조기를 원하는 잠재 수요도 확인할 수 있었다. 건조기 용량의 절반 수준인 건조 겸용 세탁기의 건조 용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일부 소비자도 있었다.


DBR mini box: 전기식 건조기 발전 단계

전기식 건조기는 크게 4단계에 거쳐 발전해 왔다. 히터식 건조기는 헤어드라이어기와 작동 원리가 유사하다. 에너지를 사용해 열을 만들어내 뜨거운 바람으로 옷을 건조한다. 열을 만들어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전기료가 많이 나오고, 고온에 옷을 말리기 때문에 옷 수축 현상 등을 방지할 수 없다는 게 큰 단점이다. 히트펌프식 건조기는 건조기 성능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공기 압축기를 이용해 건조기 통 안 공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습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이다. 40∼60℃의 저온건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에너지도 적게 들고 옷감 손상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건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다양하게 건조기 제어를 할 수 없다는 점이 한계다.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는 히트펌프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인버터 기술을 적용한 압축기인 컴프레서가 공기를 더 쉽고 빠르게 고열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건조 성능이 향상됐다. 또한 섬세한 건조기 제어로 사용자가 바람의 세기와 온도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건조 시간을 단축시킨 게 큰 장점이다. 듀얼인버터 건조기는 인버터를 장착한 컴프레서에 실린더를 두 개 설치해 기존 모델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도 건조기의 잠재 수요를 키웠다. 발코니 확장으로 실외 공간을 줄여 실내 공간을 늘리는 소형 아파트들이 늘면서 빨래를 널 장소가 마땅치 않아졌다. 바쁜 맞벌이 부부들이 빨래 과정을 단축해 가사 부담을 줄이려는 경향도 생겼다.

LG전자는 건조기 사용을 활성화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해보기로 했다. 잠재적 필요성만 가지고 있던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건조기를 직접 구매하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건조기에 대한 선입견,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을 속속들이 찾고 차례로 해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소비자 조사는 오랜 기간에 걸쳐 꼼꼼하게 진행됐다. 건조기를 사용하는 고객, 세탁기만 사용하는 고객, 건조 겸용 세탁기를 사용하는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했다. 사용하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점, 개선되면 좋은 점 등을 집요하게 물었다. 양해를 구하고 세탁실이나 베란다에 카메라를 설치해 고객들의 평소 이용 습관도 살폈다. 건조기 판매 영업사원, 설치기사들에게도 설문조사를 진행해 실태를 조사했다.

건조기 대중화를 가로막은 요인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가스식 건조기의 구조적 한계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편화된 가스식 건조기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았다. 가스식 건조기를 설치하려면 가스레인지에만 연결돼 있는 가스 배관에 추가 공사를 해야 한다. 건조기를 작동할 때 발생하는 뜨거운 열기를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창문이나 벽에 구멍을 뚫어 배기 덕트도 설치해야 했다. 이 때문에 건조기를 원하는 가정에 바로 제품을 판매할 수 없었다. 설치기사를 먼저 보내 설치 가능 여부를 따져봐야 했다.

사실 설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콘센트만 있으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전기식 건조기가 해법이었다. 실제로 LG전자도 2009년 전기식 건조기를 출시했다. 그러나 고객들이 우려했던 전기료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했다. 전기식 건조기는 헤어드라이어처럼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옷을 말린다. 그만큼 열을 올리는 데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건조기를 사용한 후 생기는 옷 손상도 문제였다. 높은 열을 가해 옷을 말리기 때문에 옷이 줄어들거나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전기식 건조기를 이용했을 때 옷이 잘 상한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많았다.

LG전자의 건조기 신제품 개발 목표는 분명해졌다. 소비자들이 어디든 자유롭게 설치해, 전기 사용료와 옷감 손상에 대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조기를 내놓는 것이었다.

LG전자의 핵심 기술로 찾은 솔루션
LG전자는 초점을 전기식 건조기에 맞췄다. 가스식은 설치가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전기 사용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집중했다. 전기 사용료를 ‘상대적’으로 낮추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아예 획기적인 수준의 혁신이 필요했다.

건조기 개발을 주도한 LG전자는 이미 보유하고 있던 핵심 기술에서 해법을 찾았다. 첫 시작은 히트펌프였다. 히트펌프는 공기를 순환시켜 주변 온도를 저온에서 고온으로, 고온에서 저온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우선 LG전자가 개발한 공기압축기인 컴프레서에 공기를 관통시켜 따뜻하게 데운다. 40∼60도로 따뜻해진 공기는 건조기 통 내부로 들어가 옷감의 수분을 수증기로 만든다. 수증기는 냉매를 통과하면서 물이 되고, 내부의 물통이나 기기 외부로 배출된다. 옷에 직접적으로 열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옷감 손상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히트펌프로 건조기의 작동원리를 혁신한 LG전자는 2012년 히트펌프 건조기를 유럽 시장에 먼저 출시했다.

히트펌프 기술이 기존 건조기의 문제점을 해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었다. LG전자의 기대만큼 전기 사용료가 줄지 않았다. LG전자는 인버터로 문제를 극복했다. LG전자는 이미 인버터 기술을 통해 작동 원리가 비슷한 에어컨의 전기 사용료를 획기적으로 낮췄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인버터 기술은 컴프레서에 공급하는 전력을 원하는 전압이나 주파수로 바꿔준다. 컴프레서를 보다 섬세하게 제어할 수 있고 전력 소모량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정한 속도로 기기를 계속 작동시키는 ‘정속형’ 방식의 기존 히트펌프 건조기보다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LG전자 연구진은 인버터 기술로 시중에 없는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인버터 기술을 건조기에 접목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개발 기간만 무려 4년이 걸렸다. 이미 다른 가전기기에 적용한 인버터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제품의 크기나 구조에 따라 구동하는 패턴이 다 다르다. 여러 방식으로 실험하면서 건조기에 최적화한 인버터 설계를 찾아내야 했다.

이렇게 만든 인버터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LG전자는 다양한 조건의 건조 테스트를 거치면서 코스별 최적의 제어조건을 찾았다. 속옷, 청바지, 수건처럼 일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랫감을 골라 다양한 무게로 수없이 건조기를 돌렸다. 옷감별로 최적의 건조 조건을 찾아내는 작업도 진행했다.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 기술도 추가해 건조가 덜 되거나 과하게 되는 것도 막았다.

그 결과 2016년 LG전자는 세계 최초로 트롬 히트펌프 인버터 건조기를 출시했다. 5㎏ 빨래를 건조기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돌린다고 가정할 때, 전기 사용료가 이전 전기식 건조기의 4분의 1 수준까지 내려갔다. 이 정도면 어떤 제품과 견주어도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저온 건조가 가능한 히트펌프 건조기의 장점도 그대로 가져왔다. 수건, 이불, 셔츠, 기능성 의류(등산복 등), 란제리, 이불 털기 등 다양한 맞춤형 코스를 탑재해 소비자가 원하는 상황별로 건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소비자들은 신제품에 큰 관심을 보였고 건조기에 대한 호평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당시 건조기 개발을 주도한 정영석 세탁기Dryer개발팀장은 “우리가 설정한 환경대로 건조기가 작동하지 않으면 다시 분해해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때 들어간 옷감만 약 2000만 원어치였고, 옷감마다 적정한 설정값을 찾아내기까지 2000번 이상의 실험을 거쳐야 했다”고 말했다.



건조기에서 의류 관리기로… 먼지가 일깨운 경각심
LG전자는 소비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니즈도 집중 공략했다. 요즘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를 겨냥한 기능으로 어필했다. ‘있으면 좋은 제품’이 아닌,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설득하기 위한 전략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건조기 하단에 설치된 이중 먼지 필터 기능이었다. 모든 건조기에는 필터가 설치돼 있다. 바람을 통해 건조를 하면 옷에 있는 이물질이나 먼지 등이 떨어지는데 이를 먼지 필터로 보내 한곳에 모은다. 그렇지 않으면 먼지가 건조기 내부에 그대로 남아 건조기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이 평범한 먼지 필터에도 차별화된 기능을 집어넣었다. 건조 과정에 생기는 먼지만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옷에 있는 미세먼지까지도 제거할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필터의 성능은 필터의 촘촘함과 먼지를 빨아들이는 바람의 세기가 결정한다. 두 요소의 적절한 조합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너무 작은 입자까지 걸러내도록 설계할 경우 자칫 옷감이 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필터를 성기게 만들거나 빨아들이는 바람을 약하게 하면 먼지를 털어내는 효과가 떨어진다. LG전자는 여러 조합을 실험한 끝해 200메시(mesh) 정도의 촘촘한 필터와 함께 가장 적절한 바람의 세기를 찾아냈다. 2

LG전자는 적극적으로 이 기능을 소비자들에게 알렸다. 소비자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만큼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LG전자 매장 안에 건조기를 놓은 세탁실을 꾸며놓고 건조기를 실제로 돌려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곰 인형, 수건 등을 넣고 건조기를 돌린 후 여기서 나온 먼지양과 건조 결과를 소비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인형과 수건이 보송보송해지는 동안 먼지 필터에는 먼지가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먼지를 확인한 소비자들은 옷을 세탁하는 것만으로는 옷에 붙은 먼지까지 제대로 제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거실, 드레스룸 등 실내에 빨래를 널면 이 먼지들이 실내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는데, 건조기를 사용하면 이런 현상도 막을 수 있었다. 미세먼지 등 공기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은 더욱 민감해졌다. 단순히 빨래를 편하게 말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건조기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신종훈 LG전자 H&A 사업본부 세탁기상품기획팀장은 “건조기를 돌린 후 먼지가 배출되는 것을 보고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굉장히 많았다. 물론 먼지떨이 기능이 건조기의 핵심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먼지 필터는 빨래에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는 역할을 했고, 결국 건조기가 단순히 빨래 말리는 기계가 아니라 의류를 관리하고 가족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상품이라고 설득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LG전자는 이불 털기 기능, 콘덴서 자동세척 시스템 등 기존 고객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을 찾아내 제품에 반영했다. 이불은 자주 빨기가 어려워 밖에서 먼지를 털어내 덮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좁은 베란다, 미세먼지와 같은 공기 오염 등으로 바깥에서 이불을 털기 어려워졌다. LG전자는 먼지를 떼어내고, 채집할 수 있는 건조기 기능을 살려 이불 털기 기능을 추가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건조기 기능 중 하나가 됐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건조기를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부가 기능도 잊지 않았다. 건조기가 걸러주지 못한 먼지를 자동으로 세척해주는 ‘콘덴서 자동세척 시스템’ 기능이 대표적이다.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물이 나오고 건조기 안에 남아 있는 먼지를 청소해 밖으로 배출한다. 사용자가 건조기를 청소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동시에 미세먼지가 쌓여 건조기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구매 ‘장애물’ 제거해 선점 효과 극대화
LG전자는 소비자들의 건조기 구매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도 해결했다.

대표적인 게 공간 제약의 문제였다. 건조기가 보편화된 유럽이나 미국에서 건조기는 세탁기 옆에 배치하고 쓰는 제품이다. 단독주택이 많아 상대적으로 제품을 놓을 공간도 확보하기 쉽다. 하지만 한국은 세탁기 한 대 놓기도 버거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LG전자의 세탁기와 건조기를 모두 구매할 경우 직렬 배치가 가능하다. 건조기를 세탁기 상단에 배치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세탁기 상단 커버를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자사 건조기 크기에 맞게 살짝 패인 공간을 만들어 건조기를 위에 놓아 고정하는 방식이다. LG전자뿐만 아니라 세탁기와 건조기를 동시에 판매하는 국내외 브랜드들이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고객이 다른 브랜드의 세탁기를 이미 구매해 사용하고 있는 경우 LG전자 건조기를 직렬배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자사 건조기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는 고객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시장에서 확보할 수 있는 고객을 눈앞에서 놓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타사 세탁기 위에도 건조기를 놓을 수 있는 범용 스태킹 키트(Stacking kit) 개발에 돌입했다. 조립할 수 있는 책상 모양의 선반을 만들어 아래에는 세탁기를, 위에는 건조기를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해 보이는 이 키트가 완성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일반 전자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똑같이 디자인, 설계, 실험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시안만 수십 개였다. 이 중 고객들이 가장 쓰기 편하고 미관을 해치치 않으면서 안정성이 높은 안을 채택했다.

건조기가 높은 곳에 배치되면서 사용이 불편해지는 단점도 보완했다. 사용자의 키가 작아 건조기 상단의 버튼을 조작하기 어려울 경우를 고려해 건조기 문을 열고 빨래만 넣으면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게 했다.

신 팀장은 “스태킹 키트를 건조기의 부속 제품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업부 내에선 하나의 독립 제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초기 건조기 시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꾸준한 신제품 출시로 ‘No.1’ 굳히기
LG전자는 꾸준한 신제품 출시로 경쟁사들의 도전을 따돌리고 건조기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시장이 형성되는 시기에는 소비자의 요구사항도 많아진다. 처음 접했던 제품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성능 개선을 요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난다. 결국 까다로운 소비자의 요구에 신속하게 부응하는 제품이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마련이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신제품을 선보일 때마다 인상적인 기능을 추가했다. 트롬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를 출시한 지 1년 만인 2017년 ‘트롬 듀얼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를 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컴프레서에 실린더를 하나 더 추가해 더 적은 에너지로 동일한 성능을 내도록 했다. 두 개의 실린더가 서로 맞물리면서 더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을뿐더러 기기 제어의 폭도 넓어졌다. 또한 컴프레서의 최대 작동 속도를 기존 제품보다 40% 높일 수 있었다. 똑같은 5㎏의 빨래를 1회 건조한다고 가정할 때 전기료가 약 117원 정도로 이전 모델(약 221원)의 52% 수준에 그쳤다. 매일 사용해도 한 달 전기료가 3510원에 불과하다. 용량을 늘린 제품도 잇따라 선보였다. 20㎏ 이상의 대용량 세탁기까지 나온 상황에서 건조기 용량 9㎏은 너무 적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2018년 상반기 14㎏짜리 듀얼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를 출시했다.

LG전자의 제품 개발 역량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건조기 사업팀이 속한 LG전자 H&A사업본부의 세탁기사업부는 그동안의 세탁기 개발 노하우, 핵심 기술뿐만 아니라 소비자 조사 내용을 건조기 담당 직원들과 공유했다. 덕분에 건조기 개발 시 세탁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해 적용할 수 있었다. 10여 년 동안 건조기 연구를 담당했던 LG전자 가산 R&D센터의 선행연구팀에서는 글로벌 건조기 시장 동향, 한국 소비자 변화 등을 토대로 건조기 개발 로드맵을 제시했다.

정 수석연구원은 “신제품을 기획할 당시의 시장 상황에 맞춰서 급조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장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건조기의 빠른 ‘진화’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빛을 발했다. 유럽, 미국 등 해외 소비자들이 기존보다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LG전자 제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LG전자 트롬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는 호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지의 주요 소비자 조사에서 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신 팀장은 “건조기 신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지니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유럽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오고 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한국 시장에서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들이 해외 시장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성공 요인 및 시사점
1. 세탁기·건조기는 오버슈팅이 일어나지 않는 분야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의 기술 수준이 고객의 니즈를 넘어서는 현상을 오버슈팅(Overshooting)이라고 설명했다. 오버슈팅이 발생하면 소비자 니즈와 무관한 기술 개발에 몰두해 실패하는 기업들이 발생한다. 또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저렴한 제품을 만드는 틈새 공략 기업의 제품도 지배적 사업자의 제품과 기술적으로 차이가 없어진다. 이때부턴 기술력보다 마케팅이 더 중요해진다. 혁신적인 기능보다 브랜드 이미지 등에 더욱 집중하는 TV, 휴대폰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세탁 관련 기기는 아직 오버슈팅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세탁과 건조에서 소비자의 니즈를 제품 기술이 다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양복과 블라우스 등은 전문 클리닝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빨래를 널고 말리고 걷고 개는 작업도 많은 불편함을 유발한다. 건조기가 있다고 해도 건조기의 성능이나 효율성을 의심해 직접 빨래를 너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LG전자는 기존 건조기가 고객의 불편함을 확실하게 해소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LG전자는 전기 사용료, 옷감 손상, 설치의 불편함 등 고객들의 건조기 사용을 가로막는 요소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했고, 기존 건조기와 차원이 다른 제품으로 어필했다.

최근 급부상한 고객의 잠재된 니즈도 찾아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능도 만들어냈다. 미세먼지, 공기오염 등 고객들이 민감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는 결국 건조기를 빨래를 지원하는 기기에서 가족의 옷뿐만 아니라 건강까지도 관리하는 의류 관리기기 시장을 형성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2. 고객 니즈에 대한 집착은 기본, 조직 역량에 의한 기술 혁신으로 문제 해결
LG전자는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요소들을 기술적으로 하나씩 해소해나갔다. 어느 한 사람의 뛰어난 역량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는 조직 내 축적된 기술 개발 노하우에 가깝다. 즉, 조직 역량인 셈이다.

LG 트롬 건조기 3 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로 탄생하지 않았다. LG전자가 그동안 축적한 핵심 기술을 적용해 만든 것이다. 냉장고에 적용된 공기를 압축하는 컴프레서 기술을 이용해 히트펌프식 건조기 토대를 만들었고, 세탁기와 에어컨에 적용된 인버터 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렸다. 기존 기술을 이용해 전혀 다른 효용을 주는 제품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LG전자의 히트상품인 트롬 스타일러의 핵심 기술도 인버터, 컴프레서 등으로 핵심 기술이 조금씩 변형된 형태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핵심 기술만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기술을 제품에 적용할지, 실제로 예상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어떤 설계가 필요한지 등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LG전자는 이 과정을 한 사람의 역량에 기대지 않는다.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은 끊임없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그 해답을 찾는다.

건조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건조기의 각 부품을 담당하는 개발자들은 수천 번의 실험을 통해 솔루션을 찾아갔다. 기존에 보유한 핵심 기술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외부 조건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 이렇듯 세탁기·건조기 사업에서 LG전자의 기술력은 1인의 천재가 아니라 철저히 조직 역량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3. 선순환 구조에 따른 미래 준비
LG전자는 고객 니즈를 누구보다 먼저 파악하고 조직 역량에 기반한 기술 혁신을 선도했다. 이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사업팀이 속한 LG전자의 세탁기사업부는 최근까지도 세계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0년간 LG전자 실적을 보면 세탁기사업부가 속한 H&A(Home Appliance & Air Solution) 본부 또는 HA(Home Appliance) 본부가 10년 중 6번 가장 많은 이익을 벌어들였다. (표 1) HA는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사업 등이 포함된 부문으로 세탁기 건조기, 스타일러 등의 사업만을 떼어내 성과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더 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LG전자의 대표이사 역시 세탁기사업부 출신임을 생각해 보면 그 성과를 짐작할 수 있다.

즉, LG전자의 세탁기사업부는 오랫동안 앞선 기술력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1등을 유지하기 위해 풍부한 자원을 투입해서 미래를 준비한다. 건조기 사용 고객의 불편함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몇 년 이상 연구개발에 투자한 것도 ‘경영의 선순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개발 계획을 세우고 신속하게 신제품을 출시한다. 1∼2년 간격으로 업그레이드된 건조기 제품을 내놓으며 시장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경영학계의 대가 제임스 마치(James March) 스탠퍼드대 교수는 기업이 오랜 기간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한 탐색(Exploration)과 현재 역량의 활용(Exploitation)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이 쉽지 대부분의 기업에서 적자가 나면 당장의 생존에 몰두하느라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반면 LG전자 세탁기사업부는 트롬건조기를 포함해 스타일러, 트윈워시 등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했다.

앞으로도 LG전자는 세탁기·건조기·스타일러 등 의류 관리 기기 분야에서 상당 기간 1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고객들이 놀랄 만한 제품을 출시해서 의복을 관리하는 우리의 불편함을 하나하나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필자소개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이병주 TVC 대표 capomaru@gmail.com
이병주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 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촉』 『3불전략』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92호 Hyper-personalization 2020년 3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