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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직관으로 주식투자 한다고?

정재승 | 13호 (2008년 7월 Issue 2)
당신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암살을 당하지 않고 살아있다면 지금 몇 살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대답해 보라. 자, 시간을 좀 더 줄테니 당신이 방금 떠올린 답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천천히 답을 말해 달라. 케네디가 암살을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 몇 살쯤 됐을까.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당신은 케네디의 나이가 7578세가 됐을 거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 다음에 당신의 답을 8085세로 약간 상향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답은 이보다 좀 더 높다. 케네디는 1917년 5월 29 태어났으므로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91세의 할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당신은 처음 질문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젊고 활기차며 패기가 넘치는’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화면이 떠올라 선뜻 70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 그가 1960년대 초 40대 중반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나이를 약간 올리지만 충분히 올리지는 못한다.
 
신속한 판단 vs 신중한 결정
실제 잡지의 칼럼니스트인 제이슨 즈웨이그는 자신의 저서 ‘머니 앤드 브레인(까치, 2008)’에서 몇 년 전 세계 정상급 퀴즈 전문가에게 낸 똑같은 질문에 그 역시 첫 번째 추측은 75세였고, 잠시 다시 생각할 시간을 주자 답을 86세로 고쳤다고 전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 보면 90세가 넘을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0%도 안 되니, 혹시 당신이 틀렸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길.
 
이처럼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을 유추할 수도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도 쉽게 ‘직관’이란 것에 의존한다. ‘오랜 분석보다 직관이 훌륭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많으며, 직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좀 더 근사하게 보는 경향도 있다.
 
정교한 수학적 분석도 실패를 거듭하는 주식시장에서 이런 사람은 의외로 많다. 이름 있는 금융기관의 전문 주식거래자들도 하루에 수백억 원을 직관이 지시하는 대로 운용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 매니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조지 소로스는 요통이 발병하면 가진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에선 기술산업 주식들 중 몇몇 종목이 급등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식적인 회사 명칭에 닷컴(.com), 닷넷(.net)을 포함시켜 훨씬 현대적인 느낌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매출이나 구조, 기술 개발이나 마케팅 전략 등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저 이름을 바꾼 것으로 주식은 폭등했다. 물론 이로부터 23년 뒤에 대부분의 닷컴 주식들은 폭락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맬컴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블링크’(Blink)에서 ‘신속하게 내린 판단이 때론 신중한 결정보다 훌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직관은 때로 심사숙고보다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의 직관을 믿으라고 자신 있게 권한다.
 
물론 분석할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선 직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때론 동물적 감각이 과학적 분석을 앞설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주식 시장의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직관에만 의존해 투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증권시장에 떠도는 수많은 역설 중 하나가 “당신이 잘못된 투자 판단을 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당신의 육감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직관에 의존한 투자를 하는 데에는 우리의 뇌가 기본적으로 그렇게 작동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자신의 제한된 정보, 그것도 처음 들은 정보나 생각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 예멘의 인구가 500만 명보다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적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예멘의 인구가 500만 명보다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멘의 인구가 어느 정도라고 추정하는가. 당신이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이 생각한 숫자가 1000만 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질문을 “당신은 예멘의 인구가 5000만 명보다 더 많을 것 같은가, 적을 것 같은가”라고 물어본 뒤 답을 말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3000만 명과 7000만 명 사이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이 질문의 정답은 2000만 명이다) 이처럼 처음 제시한 숫자에 당신의 답이 크게 좌우되는 현상을 행동경제학자들은 ‘준거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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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승

    정재승jsjeong@kaist.ac.kr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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