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192호 (2016년 1월 Issue 1)

봉이 김선달의 아내가 어느 해인가 동지에 팥죽을 너무 많이 쑤었다. 날이 따뜻해 팥죽이 그만 몽땅 쉬어버렸다. 김선달은 아내에게 함께 팥죽을 들고 장터로 가자고 했다. 장터에 도착한 뒤 아내는 손님들에게팥죽을 한양식으로 초를 쳐 드릴까요, 아니면 그냥 시골식으로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이때 김선달이 아내의 말을 막으며 손을 내저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전부 촌사람들이라 한양식으로 주면 못 드신다오. 그냥 시골식으로 다 내오시오.” 그러자 손님들은촌놈이라도 입맛은 한양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양식을 주문했다. 쉰 팥죽을 받아 든 이들은 맛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불만 없이 한 그릇씩을 뚝딱 비워냈다.

 

이 얘기를 들은 많은 현대인들은봉이 김선달이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마케터였다고 평가한다. 이 말의 기저에 깔린 의미가 무엇일까. 마케팅=거짓말? 봉이 김선달의 쉰 팥죽 이야기에서처럼 마케팅이 거짓말로 오인되는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시사 프로그램, 심지어는 신문 논설에서도 이런 프레임이 종종 등장한다.

 

심지어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대화 속에서도 이런 선입견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이 소셜커머스에 들어가면 저 가방 30% 가격에 살 수 있어라고 말하는 A학생의 말에, B학생이그거 다 마케팅이야라고 일갈하며 속지 말 것을 경고하는 대목에서 이런 인식을 읽을 수 있다. 마케팅을 전공한 학자로서 매우 속상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소비자들에게 이런 인식을 심어준 것이 수십 년간 이윤 추구에 몰두한 기업들의 책임일까, 아니면 학교에서 마케팅 지식을 가르쳐 온 교육자의 책임일까. 그도 아니면 언론이 마케팅을 싸구려 거짓말로 매도해버린 건지 명확히 밝히기는 어렵지만 마케팅이란 용어가학대되고 있다는 인식은 지우기 힘들다. 마케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국마케팅학회를 대표하는 학회장으로서 이렇게 변한 상황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케팅이라는 개념은 1980년대 후반, 한국에 본격 상륙했다. 당시 마케팅은 기업과 소비자의 교환경제를 연구하는 연구이거나, 기업이 고객중심적으로 신제품 개발이나 광고, 판촉을 실행하는 개념으로 소개됐다. 1990년대 초반, 국내 대표 대기업인 LG와 삼성이 마케팅의고객 가치 창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사회 인식이나 소비자 인식에 따라 마케팅은 기업의판매 증대 기법정도로 진행됐다. 또 마케팅 기법은 비영리 기관과 정치 선거 등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고객 가치 창조라는 개념보다는소비자 기만 수법으로 전락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마케팅 철학과 개념, 기법을 전파해 온 마케팅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실천 학문지식으로서의 마케팅학 전공자로서 시장에서 일어나는 현실 문제에 대해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또 각 기업들이 선진 마케팅지식과 기법을 도입해 마케팅 의사결정을 하는 구체적 기준과 프로세스를 갖출 정도로 고도화된 마케팅 사회에, 마케팅 학자들은 거꾸로 이런 지혜와 방법론을 기업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빠르게 글로벌화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소비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제품과 경쟁하고 있는 사이, 정작 학자들은 지나치게 국내 시장만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마케팅학은 소비자 중심의 가치 창조가 핵심인데, 그동안 너무 기업 중심의 마케팅, 기업 중심의 연구와 후학양성을 해온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된다. 한국 기업의 건전한 비평가로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어떠한 목소리를 외쳤는지 더욱 고민해야 한다.

 

한국마케팅학회는 진정성을 갖고 성찰과 반성을 시작할 것이다. 학계는 물론 기업, 소비자,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지속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기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사기꾼 봉이 김선달에게 이렇게쓴소리를 해주고 싶다. “쉰 팥죽을 속여 팔면 손님들 배가 아프지 않겠소? 그런 팥죽을 판 당신은 행복할 수 있겠소? 그런 눈속임은 제발 거둬주시오.”

 

 

 

김용준한국마케팅학회장·성균관대 중국대학원장

 

김용준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University of Texas에서 경영학 석사(MBA),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박사학위(Ph. D)를 취득했다.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조교수, 중국 칭화대(MBA) 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삼성오픈타이드차이나 초대사장을 거쳐 성균관대 중국전문대학원 설립 추진위원장 등을 맡았으며 2014년 한국국제경영학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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